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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65화 (65/111)

65화

얼굴까지 가리고 나서야 여인은 눈을 가린 손을 치우고 자신을 바라봤다.

상당히 부끄러운지 얼굴을 가렸음에도 여인은 승현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어, 어서 오라. 나의 경기장에. 흠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그대의 용기와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

“책 읽는 말투로 할 거면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떤지.”

“시, 시끄럽다! 크흠. 나는 이 경기장의 주인. 파를이라 한다. 도전자여. 그대의 선택이 만용이 아님을 내게 증명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다음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하아. 말을 말자. 계속해.”

여전히 책을 읽는 고저 없는 딱딱한 말투에 지적을 하려던 승현은 그냥 계속 준비한 대사를 하도록 했다.

“만용의 대가는 그대의 죽음이다. 자, 그러면 잘 해보도록!”

파를은 말을 마치고는 총총걸음으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나고 승현은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는 듯 원형 경기장과 관중석이 보였다.

그 규모도 상당히 거대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곳에서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다음 관문으로 가는 조건인 것 같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지금에서는 쉬운 일이다.

알타의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 힘이 없다하더라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천 레벨 정도의 적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경기장을 쭉 둘러보던 승현은 쪽문으로 보이는 곳에서 나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척에 몸을 돌렸다.

어딘지 깐깐해 보이는 인상에 안경을 낀 중년인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왔다.

“반갑습니다. 도전자님. 전 이번 대회를 담당하는 매니저인 알론이라고 합니다.”

“아, 최승현이라고 합니다. 방금 대회라고 했는데 설마 내가 그 대회에 참가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도전자님은 특별히 주인이신 파를 님의 추천으로 예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본선 대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아, 대회면 하루 안에 끝나는 건 아닐 테고.”

“예. 이 대회는 한 달 가량 진행되며 대회 종료 후 만찬 파티와 시상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본선 진출자는 저희가 제공하는 방과 서비스를 제공됩니다.”

한 달 하고도 며칠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는 소리에 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승현의 한숨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론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최초 탈락자부터 우승자까지 본선 진출자라면 모두 파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상식도 최고의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딱히 원치는 않는데.”

“또한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는 여러 차원에서 오시는 만큼 최상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모든 걸 준비해드립니다.”

“뭐, 경기에 쓸 독약 같은 것도 준비해줍니까?”

“원하신다면 준비해드립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 아니면 세포를 괴사시키는 독? 어느 쪽을 원하시는지요?”

“······농담이었습니다.”

가볍게 던진 농담에 진지한 질문이 돌아오자 머리를 긁적였다.

농담임을 밝혀도 알론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조차 없었다.

“아직 예선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조금 대기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승현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안내를 받던 중 승현은 전 방에서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알론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여긴 증명의 장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곳은 증명의 장 안입니다.”

“그런데 아까 전에 여러 차원에서 선수가 온다는 말 같았는데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안은 증명의 장이란 공간이다.

그런데 다른 차원의 생명이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이 공간은 지구의 유저들에게만 주어진 곳인 줄 알았는데, 다른 차원에서도 지구와 비슷한 현상을 겪는 곳이 있다는 소리일까?

아니. 그럴 순 없다. 왜냐하면 증명의 장은 이번에 생긴 공간이니까.

사내가 해준 말대로라면 한 차원에 너무 많은 법칙이 걸려 과부하로 인해 증명의 장이란 공간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증명의 장에 다른 차원의 존재가 온다는 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사내는 다른 차원이 소멸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러면 가능성이 하나 있긴 하다.

예전에 법칙이 적용되었던 차원의 존재들에게도 이번에 새로이 생겨난 이 증명의 장의 초대장이 날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존재가 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은 도전자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만약 다른 이들도 초대에 응한 거라면 굳이 예선을 치를 필요가 있을까?

승현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려는 때에 알론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은 모든 게 뒤틀린 공간입니다. 공간은 물론이고 차원과 시간축까지도 뒤틀리죠. 파를 님은 그걸 이용하여 수많은 차원과 수많은 시간대를 이곳과 연결했습니다.”

“그 말은?”

“도전자는 현재 고정된 차원과 시간대에서만 들어오지만 증명의 장 안에는 모든 차원과 모든 시간대의 존재가 유입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령 선조와 후손이 만나는 일도 벌어지곤 합니다.”

알론의 말에 승현은 그제야 머리가 정리되었다.

공간과 시간까지도 무시한다면 확실히 설명이 된다.

증명의 장에서 직접 불러들인 게 아니라 파를이란 한 존재가 증명의 장이 가진 특성을 이용해 이런 일을 벌인 것.

어떻게 이용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파를이란 여인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중 승현은 문뜩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면 예전에 법칙들이 적용되었던 차원의 존재나 법칙이 적용된 미래의 지구에서도 선수가 올 수 있습니까?”

“희박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워낙 쟁쟁한 분들이 참여하는 만큼 예선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증명의 장으로 비틀린 시공간으로 잠시 이동할 수도 있습니까?”

“그건 파를 님만이 아십니다. 이 증명의 장 안에서도 파를 님 같은 분은 몇 분 계시지 않습니다. 각 방은 그 자격이 맞는 이들만이 입장할 수 있으니 도전자님은 그 몇 분 중 또 다른 분과 만나실 수도 있겠군요.”

“그녀와 지금 만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만 우승자에겐 파를 님과 독대를 하는 시간이 있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승현은 주먹을 꽉 쥐어보였다.

어쩌면 미래의 지구에 가서 상황을 살필 수도 있고 지구 이전에 법칙이 적용된 차원으로 가 상황을 들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이 대회, 그가 우승을 차지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새 방으로 안내를 받은 승현은 호화 그 자체인 방안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킹사이즈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넓은 침대부터 시작해 방 한 쪽에는 실내 수영장과 연결된 것 같았다.

컴퓨터나 대형 스크린도 있는 걸 보면 여기서 인터넷이나 방송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럼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전화기의 1번을 눌러주십시오. 카운터로 바로 연결됩니다.”

“잠시. 이 대회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여러 가지요. 규칙이나 있다면 전 우승자의 신상 같은 거요.”

“우선 대회의 규칙은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독을 써도 되고 경기 전 상대를 살해해도 됩니다. 아, 굳이 있다면 경기 시작까지 경기장에 오지 않으면 실격패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기 시작 전에 대부분 선수가 죽겠는데요?”

“실제로 예전 대회 중에는 본선 시작 전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살해되어 실격패 처리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막 탄생한 공간이면서 대회를 몇 번이나 연 걸까?

“참고로 이번 대회가 152번째 대회입니다.”

“아, 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과거 본선 진출자들에 대한 신상이 정리된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알론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혼자 남게 된 승현은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로 했다.

욕실에 들어가니 작은 풀장 크기의 욕조가 있었는데 온도를 조절해 물을 틀어두자 금방 물이 차올랐다.

김이 올라오는 물에 몸을 담그며 이 대회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예선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승현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과거 선수들의 기록을 쭉 살폈는데 너무 들쑥날쑥했다.

어떤 대회는 정말 마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들만 나오기도 했고 어떤 대회는 무려 신성을 가진 초인들이 대거 출몰해 가히 신들의 전쟁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친절하게 여러 각도에서 찍은 영상도 있어 영상을 살폈는데 신성이라는 게 권능과 비슷한 것 같다.

백여 명이 좀 넘는 본선 진출자 전원이 권능을 가졌다니.

그 경기 자체가 정말 엄청났다. 시간을 멈춘다거나 공간을 도려내는 등 왜 이런 대회에 참가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이들로 구성된 대회였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런 존재들이 싸우는 와중에도 관객석엔 아무런 피해가 안 갔다는 거다.

첨부된 설명에 의하면 파를의 힘으로 막아낸 것이라고 하는데 권능을 막는 힘을 가진 존재가 왜 이 증명의 장에서 이런 대회나 열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회의 공통점은 정말 하나도 없다.

본선 진출자의 숫자도 매번 달랐고 능력도 천차만별.

그저 모든 걸 운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는데.

“증명의 장에 초대돼서 들어온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는 없겠지.”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라 승현은 지금의 달콤한 휴식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지금에는 조금 걱정이 될 정도였다.

“너무 호화롭게 지내서 나중에 어떻게 하나 몰라.”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특급 호텔의 음식부터 아주 오래 전 어머니가 끓여주었던 된장찌개까지 구해다오는데 정말 놀랐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게임이나 방송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었다.

마음대로 사치와 향락을 누리니 이젠 어떤 호사를 누려도 이곳 생각이 날 거다.

너무 늘어진 것 같아 가볍게 몸을 풀고 있자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몇 차례 마주쳤던 정장차림의 청년이 소식을 알렸다.

“세 시간 뒤에 개막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모든 선수들은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하니 준비해주세요.”

드디어 자신의 상대들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승현은 몸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몸 상태는 완벽해. 어디 다들 실력 좀 확인해 볼까?”

세 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개막식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선수들이 머무는 방은 다른 선수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되어 있는 건지 경기장에 입장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와아아아!!”

거대한 경기장을 감싸는 관중석은 만석을 이뤘다.

오늘 일정은 개막식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관중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열렬한 함성에 경기장이 작게 울릴 정도였다.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경기장 중앙으로 향한 승현은 정말 뜻밖의 인물과 마주했다.

“도, 도화?”

거기에는 수수한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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