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질문을 결정한 승현은 입을 열었다.
“곧 지구에 이계의 존재가 들이닥쳐. 자신들을 원이라 칭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인류 멸망을 목표로 하고 있어.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있어?”
“예견된 미래는 너의 존재로 인해 심하게 뒤틀렸다. 그들 또한 이 뒤틀린 운명을 알 것이고 그로 인해 목적도 바뀌겠지. 뒤틀리기 전 그들의 목적은 어떤 것을 손에 넣는 것. 또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건 뭐고 뭘 완성하려던 거지?”
“질문을 이제 끝. 보아하니 상처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으니 마지막 결전을 벌이지.”
승현은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동안의 휴식으로 심각한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컨디션이 모두 돌아온 건 아니다.
승현은 다가오는 여섯 명과 그들에게 향하는 사내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사실상 지금을 위해 아껴둔 마지막 힘을 쏟을 준비를 했다.
우선 상대의 면면을 살폈다.
다들 변변찮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최소한의 방어구만 착용하고 있었다. 무기도 모두 평범하기만 했다.
대신 무기의 종류가 다양했다.
적당한 길의 장검과 사람 키 정도의 창 그리고 양손에 들린 두 개의 양날도끼, 성인 상체 크기의 커다란 망치, 팔뚝 길이의 검과 방패 마지막으로 천을 두른 주먹까지.
저들의 행색이나 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본인들이 평범하지 않았다.
제각기 뿌리는 기세는 누구하나 지지 않고 존재감을 냈다.
그들이 풀풀 뿌리는 기세는 무형적이지만 주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해서 그들 주변에 있는 길게 자란 풀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느껴지는 그들의 기세에 승현은 평가를 더욱 높였다.
‘최소 800에서 900레벨 이상이다. 어쩌면 천 레벨 이상일 수도.’
지금 승현의 입장으로는 한 명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버거울 테다.
눈으로 거리를 확인한 승현은 그대로 고유결계를 펼쳤다.
순간 초원이었던 풍경이 고요한 광장으로 변했다.
벽에 촘촘히 있는 촛불로 밝혀진 조금 어두운 광장에 서자 승현은 알 수 없는 힘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저 힘이 솟아나는 것만이 아니라 상처도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결계 안에서만큼은 상당한 버프 효과를 받는 모양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직 저들을 모두 상대하기엔 힘이 모자랐다.
마지막까지 숨겨두었던 힘.
알타의 힘을 개방했다.
여태까지 몸 안에 잠들어있던 불꽃이 사방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넓던 광장이 순식간에 불꽃으로 뒤덮였다. 일반인이라면 숨조차 쉬지 못할 열기가 공기를 뜨겁게 달궜지만 7명의 전사들은 걸음을 멈췄을 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의 주변에는 불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강한 마력이 불꽃을 밀어내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군. 아직 힘이 모자란 네가 왜 이곳에 왔나 했더니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서였군.”
“아직 놀라기엔 이를 거야.”
승현은 몸에서 발산하는 신수의 힘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이별한 이후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힘이지만 꽤 오랜 시간 몸에 잠들었던 덕에 서툴지만 통제가 가능해졌다.
무극신공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서서히 뜨거운 힘이 혈도를 따라 몸에 감기기 시작했다.
마력이 지나가는 길에 신수의 힘이 밀고 들어왔다.
여기서 무극신공의 또 다른 진가가 드러났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한 능력으로 모든 성질의 힘을 무극신공은 포용했다. 그것이 어떤 힘이라도 말이다.
신수의 힘이 다시 몸에 퍼지기 시작하자 승현의 몸에도 불이 일어났다.
그 뜨거운 열기에 그의 전신을 감싸던 룬이 처음으로 승현의 의지를 벗어나 움직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왼팔에서 벗어나지 않던 룬이 처음으로 승현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마치 슬라임 같이 승현의 옆에 뭉친 룬을 본 승현은 룬을 잠시 그림자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자 탐식 또한 승현에게 의사를 밝혔다.
‘나도. 나도 어서 그 안으로 넣어줘!’
둘은 승현의 든든한 방패이면서 검이었으나 지금 상태로는 쓸 수 없으니 탐식 또한 그림자 안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현의 신체는 완전히 불꽃에 휩싸여 사람의 형체만이 보였다.
사실 승현은 신수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알타를 받아들이면서 신수화 기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확정적으로 능력치를 두 배로 올릴 수 없게 된 만큼 용도를 찾아야 했다.
분명 알타의 힘은 굉장하다. 바위마저 녹이는 뜨거운 불꽃을 계속해서 내뿜으니까 말이다. 그렇게만 해도 어지간한 곳은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강적이 나타났을 때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이런 불꽃에도 끄떡없는 상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 알타의 힘으로 예전처럼 능력치를 올리는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신수의 힘을 완전히 자각하기 전에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고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 바로 넘쳐흐르는 알타의 힘을 무극신공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만 했던 구상을 직접 시도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승현은 몸에 흐르는 힘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신수라 불리는 존재의 힘. 비록 능력 자체가 오른 건 아니더라도 무한할 정도의 이 힘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어.’
자신감을 가진 승현은 주먹을 쥐어보였다.
승현의 몸에서 일어나는 불꽃은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노란색이 아닌 청색으로 타올랐다.
순수한 온도만으로 색상이 바뀐 것이다.
“준비는 모두 끝났나?”
“기다려줘서 고맙군. 시작하자.”
승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순간 일곱 명의 모습이 사라졌다.
눈으로는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것인데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꽃도 함께 움직이면서 그들이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승현은 불과 동화된 상태다.
그렇기에 사방에 깔린 불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가장 먼저 직선으로 달려온 창을 든 전사는 그대로 승현의 심장을 향해 창을 찔렀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승현의 몸을 관통한 창에는 기이한 마력이 둘러져 있었다.
“컥! 크으으······.”
심장을 관통 당했음에도 승현은 충격을 받았을 뿐 치명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대로 창대를 잡은 승현은 알타의 힘을 창대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보호되고 있던 평범한 철창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창을 든 전사는 창대를 힘껏 돌리며 창을 회수했다.
전사의 창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관통된 승현의 가슴 부위에서 작열하는 불꽃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어마어마한 불꽃에 휘감겨도 뜨거움 하나 느끼지 못했던 승현은 끔찍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관통된 부위가 바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승현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각자 자리를 잡은 전사들이 차례로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창의 전사가 했듯 직접 심장을 노리는 게 아니라 마력을 극도로 압축한 마력을 멀리서 쏘아냈다.
원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임에도 압축된 마력은 확실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마력이 그대로 승현에게 날아갔고 승현의 몸에 부딪혀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겨우 고통에서 벗어난 승현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코앞까지 다가온 압축된 마력들을 막아내야 했다.
‘폭발시킨다!’
의지를 발현한 승현은 그대로 몸 안을 휘감는 힘을 발산했다.
끝없이 내부를 돌며 응축되던 힘이 그대로 터졌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힘의 장벽에 부닿은 마력은 강한 반발력에 그대로 압축된 상태가 깨지며 제각각의 힘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승현이 내뿜은 알타의 힘에는 못 미쳐 그대로 퍼지는 힘에 휩쓸렸다.
결계 중앙에 있던 승현인지라 폭발한 힘이 그대로 광장의 벽을 때렸다.
콰아아아!!
자신들의 마력을 감싸 방어한 일곱 전사들은 그 압도적인 힘의 장벽에 부딪혀 광장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
유일하게 입을 열었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초라해지는군. 과연 신적인 존재의 힘이라 이건가. 이래선 우리가 증명을 받아야 할 판이야.”
잠들었던 알타의 힘은 엄청났다.
신의 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제대로 조절할 수 없는 힘이라 완전한 힘을 뿜어내지 못함에도 이런 결과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초월적인 힘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을 정도로 나약하진 않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주마.”
사내의 말이 끝나고 사방에 흩어진 전사들에게서 이전보다 더욱 강한 기세가 피어났다.
그런 전사들의 마력을 받은 무기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밝게 빛을 내는 무기들은 이젠 단순히 철로 된 무기가 아니게 되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강한 기세에 승현은 숨을 돌렸다.
“역시 저들 모두가 천 레벨은 넘는 것 같군. 그보다 방금 쓴 방법을 조금 다르게 쓰면 상당히 대단할 것 같은데?”
다시 차오르는 알타의 힘을 느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전사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다시 힘을 분출한다는 느낌으로 입으로 힘을 인도했다.
무극신공에 의해 응축된 알타의 힘이 단전 쪽에 모였다가 이내 급속도로 팽창에 위로 뿜어졌다.
동시에 벌린 입을 통해서 응축된 힘이 마치 광선처럼 쏘아졌다.
강대한 힘이 입을 통해 토해지니 목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입도 찢어질 듯 벌어져 턱 관절에 상당한 무리가 갔다.
때문에 직선으로 쏘아진 광선은 가누지 못하는 목 때문에 멋대로 움직이며 이리저리 사방으로 쏘아졌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던 승현은 응축된 힘이 모두 분출되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승현에겐 그저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그 행동이 만든 상황은 상당했다.
어지간한 충격에는 상처도 나지 않던 결계가 잠시지만 파손되었고 그 광선을 정통으로 받아낸 전사는 마력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천 레벨 정도가 되면 자연치유력과 마력으로 인해 웬만한 열기로는 화상을 입지 않는다.
몬스터 중에선 1억 도가 넘는다는 핵폭발도 버틴 몬스터가 있을 정도,
그런데 이제 300레벨인 승현이 가진 힘으로 천 레벨의 전사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비록 알타의 힘이 레벨이나 능력치에 따라 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불완전한 힘으로도 그 정도 위력을 보인 거다.
무엇보다 조준 실패로 상대는 2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밖에 노출되지 않았다.
한 명이 그렇게 허무하게 전력에서 이탈하자 남은 여섯 명의 전사들은 승현이 더 이상 날뛰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힘을 뽐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처음 승현의 심장을 찔렀던 창의 전사가 숨 한 번 쉴 짧은 시간 동안 수백 번이 넘는 찌르기를 선보였다.
짧게 움직이며 승현의 전신을 찌르는 창은 승현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몸에 구멍이 날 때마다 상처부위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며 즉시 재생시켰다.
도끼를 든 전사는 양손에 든 도끼를 전사는 승현의 팔을 절단할 기세로 양 어깨를 찍었다.
아직까지 300레벨에 불과한 승현의 육체가 이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수치적으로 봐도 세 배는 차이가 나니 상식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때론 상식이 깨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