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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62화 (62/111)

62화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한 명을 처리하면 다시 한 명이 빈자리를 채우며 압박을 이어갔다.

마법사나 궁수 같은 이들이 없어 그나마 상대가 가능했지만 여전히 힘겨웠다.

키기기기긱!또 다시 옆구리를 긁고 지나가는 검은 승현의 균형을 미세하게나마 무너트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상대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었다.

바로 치명적인 공격을 하진 않았다.

그저 팔이나 다리를 공격해 작은 빈틈을 크게 벌렸다.

그렇게 한 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이번에도 손도끼가 무릎 안쪽 부분을 찍으며 승현의 한쪽 다리를 무너트렸고 그와 동시에 다른 다리를 한 명이 발로 차 완전히 넘어트렸다.

넘어지면서 허공에 붕 뜬 잠깐의 시간.

다른 두 명의 검이 그대로 승현의 가슴을 꿰뚫을 기세로 내려왔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일격이 다가오자 승현은 지체하지 않고 한 명의 그림자로 이동했다.

승현이 있던 곳에 두 개의 검이 꽂히기 무섭게 바로 승현이 이동한 그림자에 다시 한 번 검이 날아왔다. 몸을 굴러 검을 피하고는 빠르게 일어난 승현은 천천히 자신을 포위하는 상대들을 노려봤다.

“후우, 이대로는 끝도 없겠군. 그보다 그림자밟기에 나도 모르던 뭔가가 있나 보군.”

승현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하고 있는 전사 모두가 그림자밟기를 통해 이동한 위치를 정확히 짚어냈다.

처음엔 모르고 당하던 전사들이었으나 몇 명이 죽고 나자 이젠 정확히 이동하는 곳을 알고 대응했다.

거기에 더해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무기나 물리력을 가진 그림자의 공격도 바로 대응했다.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변칙적인 공격을 모두 예측하고 대응하려면 어지간한 머리로는 안 된다.

직접 조종하는 승현조차 몇 년 동안 노력해도 동시에 네다섯 가지의 명령 정도만 할 수 있었다.

모든 그림자를 인식하고 또 어떤 공격이 올지 생각하면서 대응하는 것.

그리고 그걸 단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계산해내는 것까지.

어지간히 머리가 좋거나 직감이 날카로운 이가 아니라면 승현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놈들 모두가 그게 가능해. 더욱이 즉시 그 자리로 이동하는 줄 알았던 그림자밟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징조가 있어.’

승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전사들을 바라봤다.

“만약 룬이나 탐식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어떤 방어구보다 뛰어난 룬과 수많은 디버프와 버프를 가진 탐식이 없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거다.

몇 번이고 룬 덕분에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냈고.

탐식에 있는 수많은 디버프와 버프는 상대를 약하게 그리고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치명상을 입고 죽었을 거다.

승현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직업의 능력과 아이템에 너무 의존한다는 걸 이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좋아, 좋다고. 한 번 해보자 이거야.”

승현은 탐식을 허공에 띄우고선 그대로 정면에 선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자신의 실력이 모자란다는 걸 인정해도 바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면 가장 자신 있는 걸 해야 한다.

회귀 전 그는 레인저였고 레인저로서 활을 주로 다뤘다.

하지만 승현이 가장 자신 있는 건 막싸움이다.

어떤 형식도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싸우는 것.

예전부터 승현은 머리를 쓰기보단 육감으로 움직이는 편이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보다 바로바로 직감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보다 잘 통했고 또 편했다.

단단한 껍질에 쌓인 지금이라면 충분히 싸울 만하다.

무극신공으로 알게 된 수많은 투로가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상대의 공격은 몸으로 받아낸다.

바로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승현은 그대로 몸을 돌리며 뒤를 노리던 다른 상대의 턱을 발로 찼다.

어차피 상대방도 자신을 한 번에 죽일 수 없었고 자신도 상대를 한 번에 죽일 수 없다.

다음 상대들을 생각해 적절한 체력 안배가 필요하지만 자신이 가진 어떤 장비로도 이들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건 없다.

무엇보다 룬은 그냥 갑옷이 아니다.

푸욱!

손날치기를 통해 한 명의 목을 강하게 친 승현은 손날 쪽 부분을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 그대로 상대의 목을 베었다.

한 명이 자리에서 쓰러지자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한 명이 무기를 들고 다가왔다.

전사 하나하나가 지금의 승현과 엇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그런 그들이 완벽한 호흡으로 공격을 퍼부으니 여태까지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얻었던 승현에겐 상당히 버거웠다.

한 쪽 주먹에 마력을 가득 담아 그대로 한 명의 명치에 주먹을 박았다.

주먹에 깃든 마력은 그대로 상대의 몸에 파고들어 내부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높이 뛰어 좌우에서 들어온 공격을 피하고 바로 아래 모인 두 명의 전사 중 한 명의 어깨를 손으로 잡아 그대로 힘을 주어 무릎으로 등을 찍었다.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기 무섭게 승현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가 잡고 있던 전사의 몸을 뚫고 날카로운 창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몸을 날려 창을 피한 다음 머스킷을 꺼내 쐈다.

고속으로 날아간 마탄은 그대로 창을 든 전사의 이마에 구멍을 만들었다.

기습적으로 쏜 머스킷으로 한 명을 정리한 승현은 다시 다른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수십 명을 쓰러트렸지만 아직도 초원에는 수많은 전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승현은 최선을 다해 전사들을 쓰러트렸다.

백 명 째 전사를 쓰러트리자 정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한 명마다 상당한 체력을 소비했다.

“하아, 하아. 끝도 없군.”

그래도 검을 들었을 때보단 훨씬 성과가 좋다.

무극신공을 얻음으로써 검에 대한 조예도 깊어졌다지만 그건 몸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틈이 난 시간에 승현은 탐색을 이용해 정확한 상대의 숫자를 가늠했다.

“으음······.”

927명.

모두 범상치 않은 마력을 지녔지만 이중에서 가장 뒤에 있는 7명은 남달랐다.

지니고 있는 마력의 양은 적어도 500레벨을 상회했고 풍기는 기세 또한 달랐다.

이번 전투는 아무래도 아주 힘겨울 것 같다.

그나마 빠르게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인 선인의 호리병을 입에 물었다.

독한 화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곧 마력과 체력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 무섭게 다시 공격이 쇄도했다.

수만 차례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승현의 전투감각은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승현은 한계라는 벽을 넘어야 했다.

절반이 넘는 전사들을 쓰러트린 시점에서 승현은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아졌다.

비록 룬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충격을 모두 흡수하는 건 아니었고 누적된 타격에 아마 전신에 멍이 들었을 거다.

그냥 멍만 들었다면 다행이겠지만 연이은 충격은 근육에도 무리가 갔다.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는 몸은 당장에라도 휴식을 취하라고 주장했지만 승현은 쉬지 않았다. 아니, 쉬지 못했다.

상대는 승현에게 결코 휴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승현이 버틸 수 있던 건 정신적인 면이 컸다.

떨어지는 체력은 포션과 호리병의 효과로 어떻게든 채웠다.

그러나 이게 게임도 아니고 체력이라는 게 포션만 먹는다고 완전히 회복하는 건 아니다.

아마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가량 쉬지 않고 전투를 벌인 거고 때문에 정신과 육체에 많은 피로가 쌓였다.

이런 피로는 그저 체력을 채운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다.

“······.”

승현은 전신에 느껴지는 통증과 상당한 피로 그리고 무력감에 휩싸였다.

조금만 판단을 느리게 내리거나 삐끗하면 바로 죽음과 직결된다.

이쯤 되니 아무리 불가해 등급을 받은 룬이라 할지라도 비명을 지를 것이다.

‘실제로 처음보다 충격을 받아내는 거나 반응이 느려졌어. 이대로라면 일반적인 공격에도 뚫릴 수 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힘이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 그 힘을 쓰면 절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저 멀리 느껴지는 시선은 지금 당장 감춰둔 모든 힘을 내보이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후에 최후로 상황이 허락한다면 쓰지 않을 생각이다.

잠시 빈 시간에 각오를 다진 승현은 다시 사방에 서 있는 전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전투는 길게 이어졌다.

이젠 자신의 목숨마저도 던지며 공격을 하는 전사들에 승현은 수차례 목숨을 위협받았다.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 슬슬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았다.

푹!

덤벼들던 한 명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은 승현은 제게 쓰러지는 상대를 밀쳐 쓰러트렸다.

“크으, 이젠 한계인가.”

승현은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룬으로 보호받고 있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결국 몸을 가싸고 있던 룬이 수많은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뚫렸다.

옆구리와 등엔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한쪽 팔은 뼈가 보일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마지막 상대가 혼신을 답은 일격에 팔을 내주어야 해서 생긴 상처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공격하지 않고 기다린 7명의 전사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저들 중 한 명과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짝짝짝.

멀리 서 있던 7명 중 한 명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훌륭하다. 그대는 뛰어난 전사다.”

“······후우, 칭찬하자고 기다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여긴 증명의 장. 모든 것이 비틀려 탄생한 공간이다. 하지만 훌륭히 싸운 전사에게 약간의 보답을 해주고자 한다.”

“보상? 내 상태를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나?”

“그건 너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만 모든 질문하여라. 이곳에서라면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해줄 수 있다. 시간을 거스른 인간이여.”

“······!”

승현은 사내가 하는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것도 잠시 승현은 일단 자리에 주저앉아 상처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상처부위에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자 노력하며 승현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정말 모든 답할 수 있나? 내가 궁금한 모든 걸?”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모든 게 비틀린 곳이다. 그 무엇도 관여할 수 없어.”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지구에 벌어진 이 빌어먹을 상황을 만든 작자와 그 작자의 의도를 알고 싶은데.”

“그들은 법칙을 관장하는 자들. 그들이 여러 차원에서 벌인 행위의 의도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법칙을 만든 놈들이 이 짓거리를 여러 차원에서도 벌였는데 그 의도는 알 수 없다 이 말이야?”

“그렇다. 이 행위의 이유를 알려면 그들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 지구로 다가온다고 들었어. 뭐가 다가오는 건지 알 수 있어?”

“호오, 그걸 어디서 들었지?”

사내는 놀랍다는 듯 처음으로 감정을 보였다.

승현은 입을 다물고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사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답을 주었다.

“이번에 그들이 주목한 차원에는 여태까지 쌓아올린 수많은 법칙이 쌓여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한 차원에 걸리면서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이런 공간이 탄생했고.”

“······.”

“다가오는 것에 이름은 없다. 무어라 불러도 맞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건 그것이 가져올 결과다. 그건 모든 걸 무로 돌릴 거야. 모든 건 처음으로 돌아가겠지.”

“그걸 막을 순 있나?”

“네가 있는 차원에는 정말 많은 법칙과 그런 법칙을 어그러트리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어쩌면 막을 수 있겠지.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받지.”

마지막 질문이란 소리에 승현은 조금 더 신중하게 질문을 골랐다.

이런 상황을 만든 이들이 법칙을 만든 자들이란 걸 알았고 다가오는 무언가는 모든 걸 무로 돌린다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젠 조금 가까운 미래의 질문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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