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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60화 (60/111)

60화

심장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뜨거운 무언가는 곧 몸 곳곳에 퍼졌다.

승현은 그런 그것을 다시 무극신공의 이치에 따라 순환시켰다.

미증유의 힘은 사방으로 날뛰었지만 잘 다잡으면서 순환을 이어갔다.

수차례 순환을 이어가자 날뛰던 힘이 차차 안정을 되찾으면서 유순해졌다. 그와 함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무극신공을 얻었을 때처럼 몸 전체가 변화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열탕에 몸을 담근 듯 조금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승현은 자신의 영혼이 어디로 빨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유하는 느낌과 함께 어느새 승현은 모든 곳이 화염으로 뒤덮인 세계에 도착했다.

태양 중심부에 들어간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까.

사방이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이루어졌는데 역동적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던 승현은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어간 승현은 곧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었다.

존재감만으로도 그를 압박하는 무언가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봤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한 몸이 될 것이다. 너의 죽음까지 내가 함께하겠다.”

사방을 울리는 목소리에 승현은 눈앞의 존재가 바로 신수인 알타라고 직감했다.

곧 알타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승현에게 쏟아졌다. 자신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알타를 느낀 승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족감을 느꼈다.

알타가 몸에 들어오고 서서히 주변 세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승현은 보이는 광경에 입을 벌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동굴 안에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게 변해 있었다.

우선 하늘 뚫려있었다. 방금도 말했듯 동굴 안이었는데 지금은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동굴의 천장만 사라진 게 아니라 주변 벽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승현이 앉아있던 곳뿐이었다.

다음으로 설경이 펼쳐진 게 아니라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눈은 모두 사라졌고 골렘 또한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만이 존재했다.

이 난리를 낸 건 아무래도 자신 같아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본 승현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얼음덩어리를 바라봤다.

그 안에는 여인이 있었는데 승현은 여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화르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일어나네?”

승현은 발을 옮길 때마다 일어나는 불길에 자리에서 멈췄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승현은 전신에서 열기를 뿌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알타와 하나가 되면서 이런 힘을 얻은 것 같다.

우선 뿜어져 나오는 힘을 조절하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의식을 하자 오히려 저절로 몸 주위에 불길이 일어났다.

통제되지 않는 힘에 승현은 불편한 얼굴을 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조종할 수 있지?”

“글쎄. 당신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어느새 근처에 다가온 여인은 승현을 보며 말했다.

여인은 승현이 뿌리는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는데 아마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일 것이다.

“내 보금자리를 이렇게 망친 소감이 어때?”

“그건 좀 미안하군.”

“사과할 일로 끝나는 게 아닐 텐데.”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여긴. 내게 아주 특별한 장소라고. 그런 곳을 무단으로 들어와선 잔뜩 망쳐놨으면서 진심 하나 섞이지 않은 말투로 사과 하나 던져두고 끝내시겠다?”

여인은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승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그렇지만 승현에게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사단이 일어난 건 어디까지나 그쪽에서 힘을 써서 내가 그걸 극복하고자 생긴 거라고. 살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어.”

“그거야 당신이 여길 굳이 찾아와서 벌어진 일이잖아. 그리고 말은 바르게 하지?”

“......?”

“죽이려고 한 건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당신이 먼저였잖아.”

아무래도 여인은 자신이 단검을 날릴 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승현으로서도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지게 된다.

입을 다물고 눈을 굴리고 있자니 여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얼음으로 의자 하나를 만들어 거기에 앉았다.

“굳이 사과할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사과를 강요하진 않아.”

여인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승현을 바라보았다.

“사과 대신에 남은 시간 동안 내 옆에 있어주지 않겠어?”

“남은 시간?”

“응. 누구 덕분에 깨어나고 말아서. 그게 아니었다면 조용히 죽었을 텐데 말이지.”

“그런가. 그럼 여긴.......”

“내 무덤.”

여인은 싱그럽게 웃었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아름답게 웃는 모습에 승현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을 붙잡은 건 분명 나니까 내 잘못도 있으려나?”

“역시 게이트 주변에 생긴 얼음벽은 네 작품이었군.”

“힘을 개방하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게 신기해서 그만.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붙잡았지. 그런데 설마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정도로 약한 사람일 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여인은 승현을 바라봤다.

“지금 보아하니 아마 신적인 존재를 받아들인 것 같은데. 맞아?”

“그러는 그쪽은 어떻게 그런 힘을 얻은 거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보다 신기하네. 신적인 존재를 영혼에 받아들인 것 같아.”

요리조리 승현을 바라보던 여인은 승현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일단 그 주체하지 못하는 힘부터 어떻게 해봐.”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

“힘 자체는 너의 몸 일부야. 네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라고.”

“으음.......”

승현은 눈을 감고 가만히 힘을 느꼈다.

여인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사방에 자신의 힘이 뻗어가고 있었다.

그 힘을 천천히 몸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조금씩이지만 힘이 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이 모이자 마치 음식을 잔뜩 먹은 것처럼 극심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은데.”

“어휴, 너 정말 그릇이 작구나?”

여인은 한심하다는 듯 승현을 바라보곤 의자에서 일어나 승현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승현의 손을 덥석 잡았는데 그러자 승현의 힘이 그녀를 강하게 거부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이 충돌하면서 강한 돌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겨우 갈무리한 힘조차도 모두 튀어나와 여인을 밀어냈는데 놀랍게도 신수의 힘을 받은 승현의 힘을 무리 없이 받아내는 여인이었다.

오히려 승현의 힘을 조금씩 억누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던 힘이 여인에게 집중되고 이젠 무형의 힘이 눈에 보일 정도로 한곳에 집중되었다.

승현과 여인 주변으로 붉은색의 일렁이는 빛이 생겨났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 건지 바위로 된 땅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서서히 녹아내렸다.

여인에게서도 푸른색 빛이 일렁였는데 절제되지 않고 날뛰는 승현의 힘과 달리 딱 자신의 주변에만 옅게 둘러져 있었다.

“자, 네 힘을 압축해봤어. 이제 그 힘을 조종해.”

여인의 말을 듣고 바로 힘을 조종해봤다.

처음보다는 조금 쉽게 조종할 수 있었는데 뭔가 더 묵직해진 느낌이었다.

서서히 승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붉은 기운은 곧 자취를 감췄다.

여인은 승현의 발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는 바위를 냉각시킨 후 승현의 손을 놨다.

모든 힘을 품에 넣은 승현은 자신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았는데 조금만 집중을 잃어도 힘이 흘러나올 것 같기도 했다.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은 성공이네.”

여인은 승현의 뒤에 얼음 의자를 하나 만들어냈다.

“흐음, 오랜만에 깨어났는데 아무것도 없네. 마실 거나 먹을 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거라면 내게 있어.”

승현은 뒤에 진 그림자를 앞으로 끌어와 술을 꺼냈다.

그에 여인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바로 둘 사이에 둥그런 탁자 하나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한 거야?”

“내 다른 능력. 여러 가지 많으니까 말만 해.”

“오, 그래? 그러면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그녀의 부탁에 승현은 바로 버너를 꺼내 탁자에 올려둔 후 수프를 끓였다.

요리 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수프와 라면은 상당히 자신 있다.

서서히 끓는 수프를 보며 여인은 침을 삼켰다.

“물에 그냥 가루를 넣었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네.”

“조금 끓으면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나저나 네게 남은 시간은 얼마야?”

“내 생각이 맞으면 이르면 이틀이고 길어도 육일을 넘기기 어려워.”

“그런가. 좀 미안해지는군.”

“그래그래. 내가 죽기 며칠 전에 네가 찾아와서 방해한 거라고. 그래도 죽기 전에 이렇게 대화를 나눌 상대를 얻었으니 나쁘진 않아.”

여인은 탁자에 올려둔 술병을 열어 입에 부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고 말없이 수프를 먹던 여인은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그저 마녀 또는 얼음 마녀라고 불릴 뿐.

모두에게 배척받으며 살아왔다.

평범하지 않은 그녀는 다른 사람이 일생을 보내는 동안에도 죽지 않았다.

수백 년을 혼자서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많은 것을 보고 들어왔다. 그리고 끝내 영면에 들기 위해 이곳을 찾아 스스로를 가뒀다.

“그렇게 아주 긴 시간이 흘렀어. 쉽게 죽음이 찾아오진 않더라고.”

“남들에게 먼저 다가갈 순 없었어?”

“너도 당했지만 아무리 조절을 해도 내 힘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아. 내가 자아를 가졌을 땐 사방은 모두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어. 아주 가끔 날 죽이기 위해 찾아온 강한 이들을 빼면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지.”

여인은 미미하게 웃었다.

다시 한 번 술을 마신 여인은 승현을 보았다.

“이제 네 얘기를 내게 들려줘.”

“......어려울 건 없지.”

승현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무엇을 들려주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승현은 곧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나는 시간을 거슬렀어.”

이 말로 시작을 한 승현은 모든 걸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성장기부터 시작해 자신이 저질렀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까지.

“나는 인류를 배신했지. 그게 옳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인류를 위협한 존재들은 스스로를 원이라고 칭했어. 원들은 소수였지만 아주 강했고 한 명의 원만으로도 인류는 위태로워보였지.”

놈들, 원은 하나하나가 아주 강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강함에 무릎을 꿇은 이들은 승현 말고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렇게 원과 인류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초반에는 압도적으로 밀리던 인류는 서서히 힘을 되찾았다. 원의 존재와 별도로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몬스터도 존재했다.

“내가 죽기 전 나는 인류가 만든 최강의 무기인 신의 숨결에 대한 정보를 원에게 넘겼고 그 후 원에게 죽임을 당했어. 그리곤 다시 회귀를 겪고 지금에 이르렀지.”

“재밌는 이야기네. 지금이라면 원이란 이들을 막을 수 있겠어?”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

“확실하게. 막을 수 있어?”

“이대로라면 분명 막을 수 있어.”

승현의 말에 여인은 승현의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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