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더 이상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다가가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승현은 저 얼음을 통째로 태워 없애기로 결정하고 마의 불꽃을 꺼냈다. 그리고 불꽃을 일으켜 얼음을 향해 날렸다.
화르륵!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은 극도의 냉기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를 유지하며 타올랐다.
하지만 이내 어떤 작용을 하는 건지 마의 불꽃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마의 불꽃은 오직 마력으로만 끌 수 있는데 저 얼음에서 나오는 냉기는 아마도 마력으로 생성되는 건가 보다.
“음, 이거 참, 곤란하군. 다가갈 수 없으니 이걸 어떻게 한다.”
승현은 혹시나 하고 단검 하나를 꺼내 마력을 잔뜩 담고서 얼음덩어리에게 날렸다.
많은 마력이 주입된 단검은 희미하게 빛을 낼 정도였는데 무극신공의 묘리가 담긴 마력이라 순수한 마력보다도 더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몇몇 기술을 사용하니 단검 하나라고는 하나 커다란 바위 정도는 우습게 부술 수 있는 위력의 힘이 담겨졌다.
그대로 단검을 얼음을 향해 날리자 빛살같이 날아간 단검은 그대로 얼음과 충돌했다.
콰드득.
“역시. 그냥 얼음이 아니라 이거지?”
단검의 담긴 마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야 할 얼음덩어리는 멀쩡했다.
대신 마력이 잔뜩 담긴 단검은 얼음과 닿자마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단검에 담긴 마력조차도 냉기에 잠식당한 건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저 얼음을 부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마력을 이용해 부수는 건데······.”
승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마력으로 과연 저 얼음을 부술 수 있을까 계산했다.
저 얼음에게서 나오는 마력은 생각보다 농도가 짙고 강렬했다.
아마 신수화를 통해 마력을 두 배로 늘려도 저 얼음에서 나오는 마력보다 못할 거다.
“지금은 방법이 없다는 소리군. 그럼 일단 물러나자.”
승현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나기로 했다.
그때 얼음덩어리에서부터 막대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쩌저적!
순식간에 주위를 덮치는 냉기는 모든 걸 얼렸다.
공기조차 얼어붙는 모습에 승현은 급히 발을 놀렸다.
한 발 한 발 땅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승현의 몸은 총알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잔상마저 보일 정도였는데 그런 승현의 뒤를 바짝 쫓아오는 냉기 폭풍이었다.
모든 걸 얼릴 기세의 냉기 폭풍은 동굴 밖으로 나오자 더욱 기승을 부렸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냉기 폭풍은 정말 모든 걸 얼리기 시작했다.
설경에 자라난 나무나 몬슨터는 모두 얼음 동상이 되었다.
일단 동굴 밖으로 나온 승현이었지만 게이트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게이트가 산 너머에 있다. 게이트로 갈 수 없어.’
게이트 밖으로 나간다면 저 냉기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게이트는 승현이 있는 산 반대편에 있었다. 동굴에서부터 나온 냉기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이때에 반대편에 있는 게이트로 갈 수단은 없었다.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산을 내려온 승현은 그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계 앞까지 도착하자 냉기 폭풍이 어느새 승현의 멀지 않은 곳까지 도착했다.
“일단 몸을 피하자.”
승현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냉기 폭풍에 그림자 안으로 몸을 숨겼다.
암왕의 기술인 잠식은 사물뿐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그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대로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간 승현은 깊은 어둠과 마주했다.
그림자 안으로 들어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마치 우주 어딘가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는데 승현이 그림자 안에 잔뜩 넣었던 물건들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림자 안에는 빛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빛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인간의 눈은 빛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앞뒤좌우 모든 게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승현은 가만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승현의 정신력이 높은 것도 있지만 무극신공이 가져다 준 효과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렇게 가만히 그림자 안에 있던 승현은 다시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림자로 이동한 승현은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강한 추위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정령을 불러 체온을 유지시키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일단 한 차례 고비를 넘긴 것 같아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고자 했다.
푸드드.
발을 떼기 무섭게 근처 땅이 움직이며 커다란 무언가가 일어났다.
눈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골렘이었는데 그 숫자가 무척이나 많았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일어난 골렘은 모두 승현을 바라봤다. 쉽게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자 승현은 탐식을 꺼냈다.
순식간에 주위의 중력을 끌어올린 승현은 탐식에 담긴 수많은 능력을 발동했다.
내장된 능력만 해도 백여 가지가 넘어가는 탐식인지라 그런 능력들이 모조리 발동하자 골렘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하아압!!”
기합을 내지른 승현은 그대로 눈앞의 골렘에게 탐식을 휘둘렀다.
골렘에도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핵이 있어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놈이고 하나는 외부에서 마력을 공급 받아 움직이는 놈이다.
전자는 핵을 파괴하면 끝나지만 후자는 상대가 까다롭다.
원래라면 골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를 처리하거나 방해하면 끝난다.
하지만 마력을 공급하는 게 마법사가 아니라면 여기서 골치가 아파진다.
주로 환경 때문에 생겨난 골렘은 그 환경이 변하기 전엔 파괴되어도 계속 생겨나서 아주 귀찮다.
아마도 눈앞의 골렘들도 환경이나 예의 마녀가 있던 얼음덩어리로부터 마력을 받아 움직이고 있는 것일 터.
파괴해도 계속 재생을 할 거다.
승현은 걸리적거리는 골렘을 부숴버리면서 앞으로 달렸다.
막 생겨난 골렘이라 그런지 레벨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탐식을 휘두를 때마다 부서져나갔다.
골렘들은 승현이 지나칠 때마다 큰 팔을 휘두르며 공격을 했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 많아서 그들의 큰 동작은 역으로 주변 골렘에게 피해를 주었다.
공간 빽빽이 들어찬 골렘을 상대하며 앞으로 나아간 승현은 몇 시간이 걸려 겨우 게이트 근처로 도착했다.
“나중에 다시 와서 끝내주마.”
앞을 가로막는 골렘을 무시하며 게이트로 다가가던 승현은 곧 게이트 주위로 생겨나는 얼음벽에 발길을 멈췄다.
정확히 어느 위치에 게이트가 있는지 모르는 건지 그냥 그 주위를 통째로 얼려버리고 있었다.
“허, 탈출도 못하도록 막는 거냐.”
그렇게 얼음 안에 봉인된 게이트를 본 승현은 탐식을 들어 얼음벽에 휘둘렀다.
단단한 얼음이 쩍쩍 갈라졌지만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승현은 그런 얼음벽을 보고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이 일을 일으킨 원인인 마녀가 있는 동굴로 향하기로 했다.
여전히 잔뜩 모여 있는 골렘 사이를 지나쳐 동굴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승현은 빠르게 앞으로 가 바로 얼음덩어리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인을 감싸던 얼음이 사라지고 마녀로 추정되는 여인이 허공에 떠 있었다.
잠시 그 여인을 보던 승현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변화에 전투를 준비했다.
곧 그녀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떨리는 눈꺼풀이 열리면서 푸른색 눈동자가 승현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와 마주한 승현은 곧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실제로 몸이 얼기 시작했다.
황급히 뒤로 물러선 승현이었으나 얼어붙기 시작한 몸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통증에 미간을 구긴 승현은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사라진 걸 알아차렸다, 동시에 움직여지지도 않는다는 것도.
“젠장, 분명 마력은 그대로였을 텐데.”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자신의 주변에 퍼진 마력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승현은 이것이 하나의 ‘권능’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권능이란 마력과 달리 의식하는 것 생각하는 것으로 표출되는 현상 같은 거다.
승현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회귀 전 권능을 얻었다는 몇몇 영웅들은 신적인 힘을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링첸은 그 무엇이든 자르는 권능을 가졌다.
그녀의 그 권능 앞에선 그 무엇도 잘려나갔다.
레벨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 등장해 인류를 절망에 빠트렸을 때에도 링첸은 단신으로 그 괴물을 잘라버렸다.
토막이 난 괴물은 이윽고 그녀가 발휘한 수천 번의 검격으로 고기 조각이 되었다.
권능이란 근원적인 힘인 마력을 넘어선 어떤 현상이기에 만약 여인에게도 그런 권능이 있다면 지금 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권능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다.’
우선 레벨부터가 높아야 했고 그 레벨에 도달하고도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게이트에 포진해 있던 몬스터의 수준을 생각하면 여인의 레벨은 500레벨도 넘을 수 없을 터.
서서히 얼어붙는 몸을 회복하기 위해 승현은 머리를 굴렸다.
‘만약 이게 권능에 의한 것이라면 막는 방법은 같은 권능이나 그에 준하는 힘을 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게 가능한가?’
이제 200레벨 초반인 승현에게 권능에 준하는 힘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권능을 가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금 이 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기댈 곳이······. 하나 있군.”
승현은 바로 신수화를 사용했다.
신수화를 사용하자 몸을 잠식하던 미지의 힘이 멈췄다.
승현은 신수화를 사용한 후 바로 자리에 앉아 무극신공을 사용했다.
넘치는 마력이 무극신공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며 얼어붙은 몸을 원래대로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씩이지만 돌아오기 시작하는 몸에 승현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불가해라 명명된 것들은 모두 법칙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그러니 불가해의 힘이라면 권능이라 할지라도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승현이 노리는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동화율이 100%가 되었습니다]
승현은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변화가 생기길 기다렸다.
승현이 노린 것. 그건 바로 이 동화율이었다. 동화율이 모두 오르게 되면 일어날 변화는 분명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것이다.
약간의 문제라면 눈을 뜬 여인인데 그녀가 도중에 공격을 한다면 아주 위험할 수 있다.
허나 당장 몸을 치료하지 않으면 그대로 전신이 얼어붙어 죽고 말 것이기에 급한 대로 도박을 한 거다.
‘마음 같아선 그림자 안에서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그림자 안은 모든 것이 정지한 곳이다.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마력의 순환이 불가능한 곳이었고 안에서 무극신공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그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무생물일 것이 조건이기 때문이다.
마력이 멈춘 곳에서 마력을 움직일 수 없으니 가장 안전한 그림자 안에선 이 행동이 불가능했다.
다행이도 도박이 성공한 건지 여인의 공격은 없었다.
승현은 서서히 느껴지는 뜨거운 힘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