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54화 (54/111)

54화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이라면 상당히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이란 말인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잠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 보스 몬스터가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검은 불꽃에 휩싸인 놈은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는 건지 몸을 치켜들고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발아래 놈은 아직 레벨이 높은 편이 아닌지라 이 불을 끌 수 없을 거다.

깊이 박아둔 탐식을 뽑아내고 놈이 도망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입을 꿰뚫은 탐식이 뽑혀나가자 바로 몸을 일으켜 땅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긴 몸체가 빠르게 땅 안으로 사라졌지만 유저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언제 다시 보스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현의 생각이 맞으면 보스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일단 이 사달을 낸 놈은 어디 있지?”

주위를 쭉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서동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도망을 쳤거나 잡아먹힌 것 같은데 후자라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질 놈이 사라졌으니 내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단 말이야.’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승현은 다시 눈에 들어온 남자를 바라봤다.

“괜찮습니까?”

“예? 아, 예······.”

“보아하니 짐꾼 같은데 이름이 뭡니까?”

“신우진이라고 합니다.”

“으음.”

그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승현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스파이 시절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그가 직접 처리한 유저였다.

하지만 분명 신우진의 직업은.

“보아하니 전투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 있습니까?”

“제 직업이 전투직이 아닌 건 어떻게 아신 건지······?”

“그 정도는 장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연금술사겠군요.”

신우진의 직업은 연금술사이고 살생부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는 영웅이라 불리는 뛰어난 유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생산직 쪽에선 나름 알아줬는데 뛰어난 연금술사와 대장장이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우진은 그런 연금술사 중에서 순위권에 드는 사람이다.

초기엔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데 톡톡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 이런 곳에 있다니 조금 놀라웠다.

“최 대장님!”

그때 상황을 파악한 각 길드의 길드장들이 승현에게 다가왔다.

다가온 그들은 바로 승현을 추궁했다.

그들 입장에선 유일한 길잡이인 승현이 자신들을 버리고 간 것으로 보였으니 할 말이 많았다.

“어디 계시다 이제야 나타나신 겁니까? 여기의 길을 아는 사람은 최 대장님 한 분 뿐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동욱에게서 어떤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또 그에게 이쪽 방향은 위험하다고 경고도 주었습니다.”

“그게 무슨······.”

“몰랐습니까? 서동욱과 전 각자 통신을 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승현은 무전기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길드장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 반응에 서동욱이 무전이 된다는 걸 숨겼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서 대표는 가장 먼저 보스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역시 그렇군요. 이제 어쩌실 겁니까?”

“저흰 게이트를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죠. 최대한 빠른 길로 갈 테니 잘 따라오세요.”

승현은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는데 종종 등장하는 몬스터는 모두 승현의 손에 쓰러졌다.

보스 몬스터나 20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아니라면 발목을 잡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이동한 거리를 단 하루만에 돌파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 보스 몬스터를 만나고 이틀이 되었을 때 게이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레벨이 오르고 나면 이곳에 오십시오. 다른 게이트가 있어도 들어가진 마시고요. 그 안에 어느 정도의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거든요.”

“명심하겠습니다.”

승현은 게이트를 통과하는 유저들을 바라봤다.

들어올 때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모두 어깨가 축 늘어져있었다.

그중 신우진을 발견한 승현은 그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했다.

“생산직은 기술 사용만으로 레벨이 오르니 그쪽을 알아보세요. 듣자하니 정부에서 생산직을 뽑는다고 하니 그걸 노려보는 것도 좋겠네요.”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없는 미소를 짓는 그는 이내 게이트를 통과했다. 승현은 모든 유저들이 게이트를 통과한 걸 확인하고 다시 사냥에 돌입했다.

“푸하학! 헉, 헉······.”

밀림의 중심부.

거대한 나무가 있는 그곳에 작은 토사물 사이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토사물은 끈적한 액체에 젖어있었는데 그 토사물에서 나온 사내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흙을 털어냈다.

그렇게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서동욱이었다.

토사물 아래쪽에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보스의 사체를 봐선 그 토사물은 유저들을 공격한 보스의 몸 안에 있던 것들인 것 같았다.

“사, 살았다. 살았어!”

그가 살아난 건 우연과 우연이 합쳐져 만들어진 기적이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향긋한 향기를 맡았다. 그 매혹적인 향기에 서서히 눈이 풀린 그는 흐느적거리며 향기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다.

레벨을 올리는 건 꽤 고단한 작업이다.

동등한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해선 쉽게 오르지 않았고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해서 경험치를 엄청나게 많이 얻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더해 표시되진 않았지만 기어 안에서 요구하는 경험치보다 몇 배나 많은 경험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기어보다 레벨을 올리는 게 어렵다. 그래도 승현은 단기간에 정말 빠르게 레벨을 올린 경우다.

“목표 레벨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사냥감이 별로 없네.”어느덧 승현의 레벨은 190레벨에 이르렀다.

이쯤 레벨을 올리니 비슷하거나 높은 레벨의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신수화까지 사용하면 이 밀림에서 승현이 상대하지 못할 몬스터는 없었다.

“그럼 한 번 저 나무로 가볼까?”

늘 궁금하던 건데 과연 저 나무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중심부에 있는 나무에 가기로 결정했다.

거대한 나무는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컸는데 다가갈수록 코를 자극하는 향기가 났다.

“매혹향이군.”

향기를 맡은 승현은 바로 그 향기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마력을 일으켜 향기에 저항했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향기였지만 마력을 통해 저항해낸 승현은 멀쩡한 정신으로 나무 가까이로 다가갔다.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향기 또한 짙어졌다.

아무래도 이 매혹향을 뿌리는 건 저 나무인 것 같다.

나무 근처에 도착하자 기둥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서동욱?”

그는 마치 나무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파묻혀있었는데 이젠 얼굴만 조금 튀어나온 정도였다. 다른 몸은 모두 나무 안으로 흡수된 것 같았다.

그걸 본 승현은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뒤로 물러나자 땅이 들썩이며 가느다란 뿌리가 잔뜩 일어났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느릿하지만 꾸준히 승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뿌리가 다가오는 속도는 느려서 피하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도망칠 걸 알기라도 하듯 주위에 뿌리가 일어나며 하나의 장벽을 이루기 시작했다.

“인간이여. 가까이로 오라.”

“이 뿌리나 치우고 말하지 그래?”

서동욱의 목소리로 말을 건 것에 승현은 말을 건 상대가 저 나무임을 알았다.

승현의 말에 움직임을 멈춘 뿌리들이 서서히 땅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 주변으로 일어난 장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 같은데 그냥 잘라내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말이 통한다면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무에게 다가간 승현은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지?”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거래라. 네게서 얻을 수 있는 게 있기나 하나?”

“있다. 내게 양분을 가져다준다면 이걸 주마.”

다시 땅에서 튀어나온 뿌리에 무언가 걸려 있었는데 수수한 느낌의 팔찌였다.

하지만 보이기에만 수수할 뿐 팔찌가 품고 있는 마력은 떨어져 있는 승현이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절대 평범한 팔찌는 아니야.’

최소한 전설적인 등급의 아이템이 분명했다.

“그 물건은 어디서 난 거지?”

“욕심이 나는가, 인간이여? 내게 충분한 양분을 제공한다면 이걸 주겠다.”

“내 물음에 대답해. 어디서 난 물건이지?”

“이건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있던 것이다. 내 사명은 이것을 지키는 것이었으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양분은 몬스터의 시체로 충분한가?”

“생물의 사체면 된다. 하지만 많은 양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좋아. 거래에 응하지. 만약 약속을 어길 경우 각오해야 할 거야.”

“나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나무는 곧 자신의 뿌리로 만든 장벽을 없앴다.

길이 열리고 승현은 바로 밀림을 돌아다니며 덩치가 크고 사냥하기 쉬운 몬스터를 잡기 시작했다. 시체는 모두 그림자 안에 넣어버렸는데 그렇게 수백 마리를 잡아들인 다음 다시 나무에게 향했다.

몬스터 시체를 나무 근처에 잔뜩 뱉어내자 바로 뿌리가 일어나며 닥치는 대로 시체를 자신의 몸체로 끌고 갔다.

특이하게도 나무기둥에 닿은 시체는 천천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뿌리를 이용해 땅 안으로 가져갈 거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백여 구의 시체를 집어삼킨 나무는 여전히 서동욱의 입으로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 양을 한 번 더 다오.”

“욕심이 많군.”

“아니면 보여주었던 걸 줄 수 없다.”

미간을 찌푸린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며칠에 걸쳐 시체를 모아다가 나무에게 전달했는데 그러자 나무는 다시 팔찌를 꺼내들며 승현에게 말했다.

“후후, 거래는 끝났다. 가져가라.”

승현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팔찌를 잡았다.

그의 손에 닿은 팔찌는 영롱한 빛을 냈다.

팔찌를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하지만 나무는 쉽게 승현을 보내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사방에서 뿌리가 일어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래가 끝났다 이건가?”

“덕분에 기력을 되찾았다. 이제 이 일대는 나의 영역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상을 해두었기 때문에 승현은 마의 불꽃을 꺼내들었다.

놈이 마력을 자유로이 다룬다면 마의 불꽃은 제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테지만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타는데 오래 걸리겠어.”

승현은 마의 불꽃을 들어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마력이 빨려 들어가며 검신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일어났다.

놈이 기력을 회복했다고 해도 저 거대한 몸체를 움직일 순 없을 거다.

마의 불꽃으로 일어난 불은 한 개체와 그 개체가 연결된 것들에 한해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이 밀림에는 큰 피해는 없을 거다.

잔뜩 마력을 머금은 마의 불꽃을 그대로 놈의 몸체에 날렸다.

순식간에 날아간 마의 불꽃이 나무의 몸체에 박히자 그를 중심으로 검은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

남자의 목소리로 내지르는 찢어질 듯한 비명은 별로 듣기 좋은 건 아니었다.

다시 마의 불꽃을 회수한 다음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무분별하게 휘둘러지는 뿌리를 지나쳐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니 저 멀리 검은색으로 물들은 나무의 모습이 보였다.

“팔찌를 지키고 있다고 했지만 분명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 그게 뭘까?”

승현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가 모두 타오르길 기다렸다.

이유는 별것 없다. 그저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걸 해결하기 위해서다.

놈이 타는 동안 승현은 얻어낸 팔찌와 일전에 게이트를 깨고 얻은 보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