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승현의 태도에 당황한 서동욱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유저들도 이곳에 들어올 때 목숨을 걸었을 테니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다.
이 밀림에 잘 적응하면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다.
베이스켐프에서 게이트까지는 반나절 거리 정도 떨어져 있으니 왔던 길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큰 위험 없이 돌아갈 수도 있겠지.
승현은 유저들을 두고서 사냥을 떠났다.
이제 그가 사냥할 만한 몬스터는 모여 있지 않아서 발품을 팔아야 할 거다.
결계가 둘러진 밀림은 아주 넓기에 승현은 몬스터의 흔적을 밟았다.
한편 승현이 떠난 베이스켐프에는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서 대표님! 권장 레벨이 최소 40레벨이란 소리는 없지 않았습니까?!”
“장난합니까? 우리는 돌아가겠어요.”
“이 일은 확실히 밝힐 겁니다. 대장님이 맞는지 아니면 대표님이 맞는지 확인해볼 겁니다.”
서동욱에게 거센 항의를 하는 길드장들에 서동욱은 그들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우리는 모두 기어에서 알아주던 유저가 아닙니까. 권장 레벨이 40레벨이란 것도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분명 최 대장이 보고한 대로라면 우리 수준에서 충분한 사냥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방금 그 몬스터는 뭡니까? 그것도 우리가 상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도 기어 안에서 50레벨 정도 차이는 컨트롤로 극복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린 그때보다 장비도 좋습니다. 그저 조금 당황했을 뿐이죠.”
“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이곳은 베이스켐프로 적당하지 않은 겁니다. 분명 최 대장의 잘못된 인솔로 놈들의 영역에 들어온 거겠죠. 일단 여길 벗어나서 안전한 곳으로 갑시다.”
“됐습니다. 우리 로즈 길드는 이번 사냥에서 빠지겠어요.”
결국은 로즈 길드의 길드장인 안영화는 사냥 포기를 선언했다.
이번 습격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쪽이라서 바로 발을 빼기로 한 거다.
한 길드가 포기하자 다른 길드장들도 잠시 내부 회의를 가졌다.
이러다간 원래 목표로 했던 마력석 획득은 꿈도 못 꿀 것 같자 서동욱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모두 잠시 절 주목해주세요. 좋습니다. 떠나실 분은 떠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출구로 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 여기 계시는지요?”
그의 말에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선두에 있던 승현만을 따라 이곳까지 온 이들 중에서 길을 기억해둔 이는 거의 없었다.
바람 길드의 백강후는 당연하다는 듯이 서동욱에게 물었다.
“서 대표님이 길을 아는 것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저도 이곳은 처음 들어왔습니다. 이곳의 지리를 아는 건 오직 최 대장뿐이죠.”
서동욱의 말에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주최자인 서동욱이 길을 모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어 안에서도 지도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 지리를 숙지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까지나 주최자가 있는 상황인데 그 주최자조차도 길을 모른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 최 대장님은······.”
“그는 우릴 버린 겁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길을 모릅니다. 이번 사태에 저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나 공인된 사람이 무책임하게 우릴 버린 것도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죠.”
이때다 하고 열심히 승현을 비난한 서동욱은 자신의 뜻대로 유저들을 움직이고자 했다.
“돌아가서 절 비난하셔도 좋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힘을 모아서 이곳을 탈출하도록 하죠.”
그의 말에 유저들은 하는 수 없이 서동욱을 따르기로 했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도 한 사람이 지휘를 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하며 서동욱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유저들은 정비를 하며 하루를 쉬고 다음 날 길을 나섰다.
유저들의 베이스켐프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승현은 잠시 높게 치솟은 나무 위에서 한쪽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불빛을 바라봤다.
“뭐, 알아서들 잘 하겠지.”
잠시 베이스켐프 쪽을 바라보던 승현은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런 승현의 손에는 사전에 지급받은 무전기가 들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귀환할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땐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받은 거다.
서동욱과 승현이 나눠받은 것이라 만약 문제가 생기면 서동욱이 알아서 연락을 할 거다.
“그럼 이제 사냥을 시작하자.”
밤은 포식자의 시간이다.
많은 포식자들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할 시간.
바로 승현이 사냥할 사냥감들이 움직인다는 뜻.
삼일이 흘렀다.
유저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사냥을 하던 승현은 유저들이 조금씩 중심부로 들어가는 걸 깨달았다.
유저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많은 몬스터가 몰려서 사냥하기엔 편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20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에 들어선다.
유저들이 전멸하면 이쪽도 피곤해지기 때문에 승현은 무전기를 켰다.
“여긴 최승현. 지금 움직이는 방향은 밀림의 중심부다. 더 이상 들어올 경우 전멸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접근은 지양하도록 하라.”
경고를 날린 승현은 무전을 끄고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몬스터를 발견하고는 몸을 날렸다.
삼일 동안 유저들은 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건 고용된 짐꾼들인데 아직 레벨이 낮은 그들은 많은 짐을 지고 있어 도망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일어났다.
창고가 작동을 하지만 죽은 짐꾼의 짐도 챙기다 보니 결국 직접 짐을 들게 된 것.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처음과 같이 사냥이 아주 어려운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거야 승현이 적절하게 사냥을 해주어서 그런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피해가 더욱 심했을 거다.
그래도 유저들에게 성과가 아주 없던 건 아니다.
적당히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니 멈춰있던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레벨이 오르기 시작한 건데 그 속도가 상당해 다들 힘을 얻었다.
또 부수적으로 마력석도 하나둘 나오면서 모두가 만족하는 듯했다.
서동욱은 잠시 볼일을 보러 사람들과 떨어졌을 때였다.
잠잠하던 무전기가 열리며 승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동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흥, 중심부가 위험하다고? 힘들긴 해도 여태까지 위험한 적이 하나도 없었지. 혼자서 독식을 하려고 했던 거야. 오히려 중심부로 가면 몬스터가 더 약한 거 아니야?”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한 서동욱은 무전기의 전원을 꺼버리고는 다시 일행과 합류했다.
유저 일행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가 나올 때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며 서서히 밀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우거지는 밀림에 다른 유저들은 서동욱과 마찰을 일으켰다.
“이 길은 출구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벌써 5일 째입니다. 우리가 처음 반나절 만에 왔던 걸 생각하면 뭔가 이상합니다.”
“맞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다른 방향으로 가보죠?”
그런 유저들의 말에도 서동욱은 유저들을 살살 달래며 앞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게이트에 들어오고 일주일.
상당한 마력석을 확보하고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유저들의 레벨이 30레벨에 다가갈 때였다.
[보스가 등장합니다]
유저들에게 떠오른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모두가 자리에서 멈췄다.
이곳에 들어올 때 모두가 임무를 받았었다.
숲의 왕을 모두 처치하라는 임무였고 기어에서의 경험에 대입하면 왕이라 불리는 몬스터는 대부분 보스 몬스터였다.
모두가 소리를 죽이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보스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자자, 진정합시다. 보스 몬스터도 종류가 많았죠. 10레벨의 보스 몬스터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습니다.”
서동욱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들 긴장을 풀지 않고 사방을 살폈다.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분명 근처에 보스 몬스터가 존재한다.
그런데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경계심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 일단 뭉쳐서, 으아아아!!”
서동욱이 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그가 선 땅이 들썩이더니 커다란 애벌레 같은 몬스터가 서동욱을 그대로 삼켰다.
치솟은 몬스터는 어지간한 나무들보다 크고 두꺼웠다. 그렇게 솟아난 몬스터는 그대로 다른 유저가 선 땅과 그 유저를 커다란 아가리에 넣으며 다시 땅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일단 공격해!”
기다란 몸뚱이가 튀어나온 곳에서 다시 땅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노출된 몸통을 본 유저들은 한 명의 외침에 급히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검이며 화살은 놈의 몸에 박히지 않았고 마법 또한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 광경에 모든 유저들은 등장한 모스 몬스터의 추정 레벨이 100레벨이 넘는 걸 알아차렸다.
“일단 뭉쳐서 후퇴한다! 로즈는 내게 모여!”
“바람도 나한테 모여라!”각 길드의 길드장들은 다급히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곳에서 뿔뿔이 흩어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이성이 남은 유저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급하게 자신들의 리더에게 모였다.
하지만 공인 유저 센터 소속 유저들과 짐꾼들에 경우 어디로 모일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다시 한 번 놈이 지면을 뚫고 세 명의 유저를 집어삼켰다.
이번엔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면을 기어 다니며 닥치는 대로 아가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빨라 후퇴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젠장, 여기서 죽을 순 없다고······.”
짐꾼으로 참가한 신우진은 절망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거대한 보스 몬스터는 한 명의 유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기민하게 움직였다. 후퇴를 결심한 각 길드들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 수 있다.
보스는 도망치는 유저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보스 몬스터가 그대로 방향을 전환해 이번에 신우진을 바라봤다.
누도 없는 놈이 마치 자신을 노려본다고 생각한 신우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여기서 죽을 순 없는데.’
그렇게 죽음을 직감한 극 모든 걸 내려놨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보스 몬스터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와 함께 보스 몬스터의 몸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눈을 뜬 신우진은 바로 자신의 앞에서 멈춘 보스 몬스터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런 그의 눈엔 검은색 일체의 장비를 걸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쪽은 다른 곳으로 물러나요.”
탐식을 보스 몬스터의 머리에 꽂아 넣은 승현은 멍하니 자신을 보는 남자에게 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탐식을 더욱 깊이 박았다.
반 정도 박힌 탐식이 쑥 안으로 들어가며 손잡이만 남기고 모두 박혔다.
그렇게 탐식을 박아 넣은 후 마의 불꽃을 꺼내들어 불을 붙였다.
이런 종류의 몬스터는 머리를 부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수십 토막으로 절단해도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게 곤충형 몬스터였고 특히 이런 지렁이 같은 몬스터는 생명력이 더욱 질겼다.
마의 불꽃에서 일어난 불이 빠른 속도로 보스 몬스터를 삼키기 시작했다.
승현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남자를 바라봤다.
‘응? 저 사람은.’
승현은 낯익은 얼굴에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