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하루를 쉰 승현은 다른 게이트를 탐색했다.
남은 다섯 개의 게이트는 모든 잠깐 들어가 임무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정도로 끝마치며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초기의 게이트의 경우 대부분 승현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회귀 전 승현은 그리 두각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다.
승현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앞으로 2년 정도 뒤에 일이다.
2년이면 국가들이 다시 기틀을 잡을 때이고 길드들이 거대 세력으로 자리 잡을 때이며 무엇보다 ‘놈들’의 출현 시기이도 하다.
그러니까 그 2년 동안의 변화나 정세는 아무것도 모른다.
더욱이 그때가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소멸된 게이트부터 던전 등은 승현이라고 해도 모른다.
지금 당장 그가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게이트뿐이다.
던전의 경우 아직 발견된 건 없지만 회귀 전 유명했던 던전이 있던 곳에 갔으나 없는 걸 보면 차후에 생길 것 같다.
일차적으로 500레벨을 달성하고 미궁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적의 사냥터가 필요한데 승현은 다시 일전에 밀림이 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200레벨까지 달성한 후에 다른 미리 확인한 다른 게이트로가서 레벨을 올릴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승현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협조 공문?”
“예, 공인 유저 센터에서 이번에 게이트로 진입하는데 협조를 요청해왔습니다.”
“거절하죠. 전 그들의 보모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상부에서도 허가를 내려서 거절하기가 좀······.”
“후우, 그러니까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제가 해야 한단 말이죠?”
“센터만이 아니라 길드에도 압력을 가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센터의 정예 유저와 각 길드의 정예 유저가 합동으로 게이트로 진입하니 약간의 협조를 당부하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승현은 한숨을 내쉬곤 협조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확실히 못을 박아두었는데 어디까지나 진입 후 초반부까지만 협조를 하며 그 후에 벌어지는 일은 모두 당사자의 책임으로 정했다.
30레벨도 안 되는 이들이 정예라는 이름으로 뭉쳐봤자 거기서 거기다.
굳이 목숨을 걸고 싶다면 말리지 않았지만 혼자서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넣고선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 사양하고 싶었다.
잠시 보좌관과 대화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첫 베이스켐프 설치까지만 함께하는 걸로 하고 그 이후에는 개인행동을 하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확실히 선을 그은 조건을 내밀자 몇 시간이 안 지나서 센터 쪽에서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각지에 흩어져있는 길드로 헬기가 출동해 정예 유저를 게이트 앞으로 모았다.
또 센터는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고레벨 유저를 받아들이고는 그들과 함께 게이트로 갔다.
가장 늦게 전용 헬기를 타고 게이트에 도착한 승현은 부산스럽게 짐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레벨 유저도 꽤 보이는데요?”
“아, 짐꾼으로 쓰인다고 하더군요.”
승현은 함께 온 보좌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력의 양으로 봐선 10레벨도 안 된 것 같은 유저들만 해도 백여 명이 넘어갔다.
센터와 일곱 개의 길드에서 모인 정예 유저들이 대략 5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한 명에 두 명의 짐꾼이 붙은 것 같다.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군.’
어느 정도 시스템이 안착되었을 때엔 한 파티에 두 명의 짐꾼을 쓰는 걸로 정해졌다.
한 파티에 10명이 구성되니 짐꾼의 자리를 빼면 8명이 된다. 즉, 4명에 하나의 짐꾼이 붙는 거다.
지금은 자기 몸 하나도 지키지 못할 곳으로 가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이 두 명의 짐꾼을 지킬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거기에 사제나 마법사는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한 명이 보호해야 하는 인원이 더욱 늘어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승현은 최 보좌관과 함께 각 단체의 대표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아아, 이제야 오셨군.”
센터의 대표인 서동욱이 시비조로 말했다.
그에 일곱 길드의 대표들이 승현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특수 대응 부대의 대장인 최승현입니다.”
“세종 포인트를 담당하는 로즈 길드의 길드장인 안영화라고 합니다.”
“저는 안동 포인트를 담당하는 바람 길드 길드장, 백강후입니다.
“평창 포인트 담당인 크리티컬 길드의 길드장으로 있는 김무석입니다.”
세 지역을 담당하는 길드의 길드장부터 부산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길드 네 곳도 모두 길드장이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대략 20레벨 전후.
게이트 안에서 가장 흔하게 출현하는 짐승 형태의 몬스터들은 평균적으로 25레벨 이상.
장비와 직업 조합 그리고 숫자를 생각하면 얼추 사냥은 가능할 거다.
모두와 인사를 나누자 바로 서동욱이 끼어들었다.
“이번 게이트는 여기 계신 최승현 대장님의 아주 특별한 허락이 떨어져서 들어갈 수 있는 거니까 모두 그 점을 잘 알아두시고 이번 사냥은 저희 공인 유저 센터가 주관합니다.”
승현은 서동욱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자신이 보고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 마냥 말하는 게 아주 우스웠지만 어차피 하루 정도 뒤면 헤어질 이들이니 신경 끄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최승현 대장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게이트를 먼저 탐험하셨으니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세요.”
로즈 길드의 안영화가 승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눈을 마주친 승현은 솔직한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모든 걸 조심해야 할 겁니다. 이곳은 기어 안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겪었겠지만 미묘하게 기어와는 다릅니다. 그 점만 명심한다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겠죠.”
“저도 대장님께 질문 드리죠. 일단 센터 측에서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만 반드시 가선 안 될 곳이 있습니까?”
“당연히 밀림 중심부입니다. 안으로 갈수록 출몰하는 몬스터의 레벨도 높아집니다. 하지만 가장자리라고 해서 고레벨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주의하세요.”
그밖에도 몇 가지 질문이 성동욱이 아닌 승현에게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약간씩 서동욱의 웃는 얼굴에 금이 갔는데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질문을 모두 마치고 준비가 끝이 나자 곧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승현이 앞장서서 안으로 진입하고 따라서 유저들이 들어왔다.
“그럼 저흴 어서 베이스켐프로 적당한 곳으로 안내를 하시죠.”
서동욱의 말에 승현은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이곳에서 150여명 가량이 머물 곳은 많지 않았다.
특히 레벨이 낮은 몬스터가 모인 곳은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승현은 적당한 곳을 한 곳 알고 있었다.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가는 승현은 한참을 걸었는데 많은 이들이 이동을 하다 보니 몬스터가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부러 빙 돌아서 가고 있는 게 컸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걸어 냇가가 있는 적당히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사냥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승현은 말을 마치고는 가장자리로 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유저들이 하는 걸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정예라 뽑힌 유저들은 가만히 앉아 잡담을 나누고 짐꾼으로 뽑힌 유저들이 텐트를 치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벌써부터 특권의식에 찌들은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파티에서 짐꾼은 잡일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에 일이다.
그때야 파티를 맺고 경험치를 공유하면서 목숨은 확실히 보장해주니까 잡일을 담당하는 거지 지금처럼 파티도 없고 목숨도 보장하지 못하는 와중에 잡일을 모두 떠맡기는 건 우스운 일이다.
‘저 유저들이 목숨을 걸고 얻을 수 있는 건 겨우 일당 정도겠지.’
고개를 저어보인 승현은 어서 베이스켐프가 설치되길 기다렸다.
그러던 중 승현의 감각에 저 너머에서 무언가 빠르게 달려오는 걸 느꼈다.
“몬스터가 출몰하니까 전투 가능한 유저는 당장 준비를 하세요!”
승현은 큰 소리로 경고를 주고는 검을 뽑았다.
말없이 처리해줄 수도 있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러자 잡담을 나누던 유저들이 바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래도 다들 기어에서든 현실에서든 사냥을 해봤다고 전투 준비는 빨랐다.
그렇게 수풀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는 거대한 크기를 가진 늑대였다.
승현은 이놈의 레벨을 대략 80레벨로 측정했는데 이놈은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다.
“몬스터는 최소 열 마리 이상! 추정 레벨은 80레벨이니 모두 방어에 치중하세요!”
이번에도 경고를 준 승현은 등장한 한 마리의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의 기척을 느낀 놈이 승현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짐승의 살기어린 눈빛과 괴성은 충분한 경험이 없는 이들이라면 몸을 움찔 떨 정도로 맹렬했다.
승현은 쩍 벌린 놈의 아가리에 그대로 검을 박아주었다.
무극검법의 효과로 둘러진 마력은 손쉽게 놈을 갈랐다.
바로 한 마리를 처리했지만 방금 처리한 놈의 괴성을 기점으로 사방에서 늑대형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유저들을 덮쳤다.
네 발로 서 있음에도 성인의 키와 맞먹는 큰 덩치를 가진 놈이 그대로 유저들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방패를 든 유저들은 놈들이 휘두른 앞발을 받고는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듯 넘어졌다.
이제 20레벨 정도인 유저들에게 80레벨의 몬스터가 내는 힘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대로 가드라인이 뚫리고 몬스터들은 눈앞의 유저를 물어뜯었다.
레벨 차이가 100레벨까진 나지 않았고 유저들의 기술 레벨이 높다 보니 공격이 먹혀들긴 했지만 공격을 받음에도 끄떡없이 유저들을 공격했다.
14마리의 몬스터를 승현이 모두 상대할 수 없는 탓에 일단 안으로 파고든 몬스터를 먼저 상대했다.
촤악!
“크허허헝!”
승현의 검에 한 유저를 짓누르던 앞발이 잘려나간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놈의 다리 아래에 진 그림자에서 검을 소환해 박아준 뒤 바로 다른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를 상대하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피해가 상당했다.
반 정도를 처리하자 승현을 의식한 몬스터들이 사냥감을 입에 물고 황급히 도망쳤다.
그런 몬스터들를 향해 머스킷을 꺼내든 승현은 내장 기술을 사용해 마탄을 박아주었다.
“아아악!”
“히, 힐! 빨리 힐!”
“힐러 어디 갔어?!”
“살려줘!”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차례 습격으로 상당수의 유저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거나 힐러를 찾는 유저들부터 죽어버린 동료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등 지금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개판이군.”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기어 안이 아니다.
그 말은 한 지역에 그 몬스터만 등장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이 지역에 이런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알려져도 그게 절대란 법이 없다는 말이다.
수습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망가진 베이스켐프 복구와 사망자 그리고 부상자 처리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기엔 당장 돌아갈 것을 원하는 유저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긴급하게 대표끼리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맨바닥에 서서 불안에 떠는 여러 유저들을 주위에 두고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최승현 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하세요!”
“······?”
“여기로 우릴 안내한 건 당신입니다. 이곳에 저런 고레벨 몬스터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 우릴 여기로 안내한 것 아닙니까?”
서동욱은 매서운 눈으로 승현을 노려보며 외쳤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모두 승현을 원망어린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서동욱은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반드시 정부에 보고할 겁니다. 많은 이들이 사망했고 이는 엄연한 인재입니다.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한!”
그리 말하고선 어디 변명을 해보라는 듯 자신을 보는 서동욱에 승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서동욱 앞으로 다가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이봐. 내가 미리 말했을 텐데? 40레벨은 찍고 오라고. 내 말이 우스웠나?”
“그걸 떠나서 당신이 안내한 이곳에 80레벨 몬스터가 출몰했다고!”
“멍청한 거야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거야? 여긴 기어가 아니야. 기어 안에서처럼 친절하게 필드가 구분되고 특정 몬스터가 소환되는 게 아니라고. 이것도 미리 보고했을 텐데?”
“어쨌든 이번 피해는 모두 그쪽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하,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겠군. 다시 한 번 말하지. 이곳에 있는 다른 유저들도 모두 잘 들어.”
승현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이곳의 최소 입장 레벨은 40레벨이었고 나는 그렇게 경고했다. 이건 나중에 내가 쓴 보고서의 원본을 공개할 수 있고 회의 당시의 녹화된 영상도 있다. 그걸 무시하고 여기로 끌고 온 이 머저리가 무슨 말을 하던 이제 난 상관 안 해. 협약된 대로 난 떠난다.”
“자, 잠시만 당신이 이러고 떠나면······!”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지. 나는 이미 협의된 대로 이곳까지 함께 했다. 이번 사냥은 네가 주도했으니 알아서 잘 해보라고.”
승현은 말을 마치고는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