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일단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섬으로 된 도시이다.
북, 북동, 동쪽에 각각 다리가 놓여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남쪽과 서쪽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도시가 있는 섬의 규모는 정말 크다.
거의 서울과 맞먹는 크기인데 섬이란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섬도 하나로 된 것이 아니고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작은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저 멀리 작은 섬도 하나 있는데 섬과 연결된 다리가 끊어져 있다.
아마도 생존자가 그 섬에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진다.
육지로 가는 세 개의 다리도 모두 끊어져 있는데 끊어진 다리 너머부터 결계가 둘러져 있었다.
아마도 감염자와 원인은 이 섬 안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탐색을 하는 동안 정말 많은 감염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림잡아 수만 명은 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 많은 감염자를 처리해야 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일단 원인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지. 또 그보다 먼저 생존자와 접촉을 하는 게 먼저고.”
작은 섬으로 갈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배와 같은 건 없었다.
다리도 끊어진 부분이 길어서 너머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 도시를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했다.
석양이 지고 밤이 찾아왔다.
감염자들은 진동에 민감하다.
소리를 내면 바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기민하게 몰려들었다. 빛이나 냄새 같은 거엔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승현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에서 불을 피우고 휴식을 취했다.
“원인이라고 했는데 애초에 감염자가 왜 생긴 걸까?”
생물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괴물.
그런 것들을 탄생시킨 무언가가 있을 거다.
바이러스든 외계의 소행이든 뭐든 그 원인이 있는데 바이러스라면 아마 원인을 제거하란 임무가 내려오진 않았을 거다.
임무는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줄 뿐이지.
즉, 물리적으로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소리다.
암전된 도시 풍경을 둘러보며 호리병을 기울이던 승현은 저 멀리 반짝이는 빛을 확인했다.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던 승현은 곧 그것이 미세하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설마······?”
챙겨둔 장작으로 피운 모닥불로 다가간 승현은 적당히 긴 장작 하나를 들고 크게 흔들어보였다. 그냥 흔들어선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저 멀리 보이는 빛도 육안으로 확실히 구분이 가능하게 움직였다.
그를 확인한 승현은 아직 이 도시 안에 생존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충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 있다니. 내일은 저곳으로 가봐야겠네.”
잠시간 불타는 장작을 흔들던 승현은 장작을 다시 모닥불에 던졌다. 상당히 떨어져있긴 하지만 이동하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으니까.
수면을 취한 승현은 해가 뜨는 새벽에 일어나 밤에 보았던 빛이 있던 방향을 살폈다.
대략 위치를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이동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하며 빛이 있던 위치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건물들이 늘어서 있을 뿐 특별한 건 없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감염자를 피해 건물 위에 올라온 승현은 탐색을 위해 마력을 펼쳤다.
파장이 일어나며 주위를 덮었는데 건물들과 수많은 감염자들 때문에 탐색이 쉽지 않았다.
그때 가까운 건물 근처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요란한 폭죽 소리에 감염자들이 폭죽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깨끗해지자 도로 한 쪽의 맨홀이 열리면서 방독면을 쓴 사람 네 명이 밖으로 나왔다.
한 명이 어떤 기계를 보더니 정확히 승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승현에게 모이자 승현은 3층 높이 정도 되는 높이에서 훌쩍 뛰어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머, 멈춰! 움직이면 쏜다.”
다급한 목소리에 승현은 자리에 멈춰서 양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총을 든 한 명이 거리를 두고 승현 뒤에 섰다.
“따라와. 허튼짓을 할 경우 머리를 날려버리겠어.”
한 사람씩 빠르게 맨홀 아래 하수도로 내려갔다.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더 많은 이들이 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며 맨홀이 닫히고 사람들이 켠 플래시의 빛만이 주위를 밝혔다.
“목표 완료. 본부로 귀환한다.”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알리고는 승현에게 지시했다.
“양손을 등 뒤로 모아.”
철컥.
십여 개의 총구가 일제히 승현을 겨냥했다.
순순히 손을 등 뒤로 하자 끈 같은 걸로 양손을 묶었다.
그렇게 손이 묶인 상태로 하수도에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일단 이들은 그를 헤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용히 이들을 따라 생존자들이 모인 곳에 도착해 리더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아마 리더에게서 이곳의 사정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참을 걸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두 번 정도 밟은 끝에 본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꺼운 철문을 규칙적으로 두드리자 곧 문이 열렸다.
안은 대피소 같이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는데 밝은 조명 덕분에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과 벽으로 나눠진 공간을 드나드는 모습을 쭉 살피며 한 방 앞으로 이동했다.
“보스. 아무래도 어제 신호를 보낸 사람으로 보이는 자를 데려왔습니다.”
“이렇게 빨리? 일단 안으로 들어와.”
문 너머에서 들리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평상복을 입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중앙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멈춘 승현은 책상 너머에 있는 여성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곳의 대표입니까?”
“맞아. 그러는 그쪽은 어디 소속?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딱히 소속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에 처한 문제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쟁이나 켈그 쪽 놈들이 아니고?”
“그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지옥에 들어온 거지? 답변에 따라서 어깨 위에 있는 게 사라질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이야기해.”
여성은 강렬한 시선으로 승현을 주시했다.
잠시 뜸을 들이자 뒤에서 재촉을 하는 듯 총구가 머리에 맞닿았다.
승현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총은 내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 말을 한 번 믿어보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책상에 올려진 권총을 들어 올린 여성이 그대로 승현의 머리를 정확히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에 룬이 저절로 반응을 하며 머리를 덮었다.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룬은 손쉽게 권총의 총알을 튕겨냈다.
한 번 반응을 한 룬은 그대로 승현의 몸 전체를 감쌌다.
조금 힘을 쓰는 걸로 손을 묶은 끈을 끊어내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 있던 이들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손으로 그걸 막은 여성은 권총을 조준한 채 승현을 바라봤다.
승현은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고는 붉은 머리의 여성을 올려다봤다.
“일단 앉아서 대화를 나눌까요?”
“······좋아. 확실히. 아주 놀라운 걸 봐버렸군. 질문을 바꾸지. 정체가 뭐야?”
“이번엔 내 차례. 이 도시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겁니까?”
잠시 가만히 승현을 보던 여성은 자리에 앉고는 필터가 잔뜩 뭉그러진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에 승현이 라이터를 꺼내 손에 쥐고 불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여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어울리지 않게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하나였는데.”
“아, 이거 죄송하군요. 취향일진 모르지만 이걸 대신 드리죠.”
승현은 손바닥을 책상 위쪽에 두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서 대충 지금 피어오르는 담배와 향이 비슷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그를 본 여성 조심히 담배를 집어 들고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꽉 차있는 담배에 여성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승현은 그제야 타고 있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는 그녀를 보며 다시 물었다.
“이 정도면 제 질문에 답해주실 수 있겠죠?”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요 몇 달 비정상적인 일투성이니 대충 넘어가고. 좋아, 대화를 하자.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
“이 도시에 벌어진 전반적인 일이요.”
“그래, 도시에 벌어진 이 빌어먹을 일들.”
여성은 담배를 모두 태우고는 한숨을 내쉬듯 연기를 내뿜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 감염자가 나오기 전부터 시작해야겠군.”
여성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그녀가 갱단을 이끌던 때부터 시작된다.
이곳 라이빈은 알아주는 범죄 도시인데 범죄 수익으로 돌아가는 통제가 불가능한 도시이다. 그런 이곳에서 납치나 실종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그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어느 날.
최초의 감염자가 도심 한 가운데 등장했다.
범죄 도시이지만 향락과 유흥으로도 유명한 라이빈이었고 최초의 감염자로 인해 순식간에 라이빈은 지옥으로 변한다.
“아수라장이 되고 불과 30분이 지나지 않아 육지와 연결된 세 개의 다리가 폭파됐어.”
“의도적으로 누군가 이곳을 고립시킨 거로군요.”
“그래. 그렇게 다리가 폭파되고 하루가 지났을까. 하늘부터 바다까지 이상한 막으로 막히면서 완전히 고립이 되어버렸지. 당연히 고립된 사람들은 대부분 감염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 달이 흐른 게 지금의 시점.”
“감염자가 처음 등장한 곳이나 이상한 징후는 없었습니까?”
“이번엔 내 차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정체가 뭐야?”
“정체라. 일단 인간입니다. 좀 특별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요.”
“그런 겉으로 봐도 알 수 있는 것 말고. 대화를 하자면서. 그렇게 나올 거야?”
“답해드리기엔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네요.”
“알았어. 그럼 질문을 바꿔서 저 막은 폭탄을 터트리든 뭔 짓을 해도 뚫을 수 없어. 그런데 세 달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서 외부인이 들어왔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전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승현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그러자 여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범죄조직을 이끄는 사람답게 금방 인상을 폈지만.
“어둠 속에서 물건을 꺼내는 거나 지금 몸에 두른 은색 금속이나 죄다 수상한 건 알고 있지? 현대 과학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고 저 빌어먹을 막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연관이 있다고 봐도 되나?”
“완전 연관이 없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깊이 연관된 건 아닙니다.”
“하아! 진짜, 답답하게 구네. 외부에서 안 들어왔고 마술을 부리면서 저 막이랑 연관이 있으면 외계인이나 차원이동이라도 했나 보지?”
“날카롭네요. 근접했습니다.”
“······할 말이 없군.”
여성은 고개를 흔들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잠시 자신을 지그시 보는 것에 친절하게 불을 붙여주었다.
“고마워. 라이터가 없어서 말이야. 그 라이터 그리 비싸 보이지 않는데 이왕 이걸 선물로 준 거 그것도 하나 줄 순 없나?”
“어려운 건 아니죠.”
라이터까지 그녀에게 넘긴 승현은 담배를 피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한 모금 담배를 빨아들이던 그녀는 이내 아까 승현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여태까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배후는 둘 중 하나야. 저기 파티장이나 쟁 혹은 켈그 놈들일 거야. 내 갱단은 무기 밀매가 주이지만 쟁은 마약이고 켈그는 인신매매가 주거든.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
“파티장이라고 하면 혹시 멀리 떨어진 섬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돈 많은 놈들의 별장이랑 카지노가 모인 곳이지. 사건이 터지기 불과 하루 전에 다리가 끊어졌어. 그리고 그 전엔 우리 쪽에서 무기도 잔뜩 사들였지. 냄새가 나지 않아?”
“당신은 그쪽을 좀 더 의심하고 있나 봅니다.”
“아니. 난 쟁이랑 켈그 두 놈들도 의심스러워. 지금 우리랑 같은 처지이지만 연관이 없진 않을 거야. 그리고 당신 보다는 옐이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옐. 저는 최승현이라고 합니다. 승현이라고 불러주세요.”
“이름도 나눴겠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옐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