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승현은 지금 한 가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바로 특수 대응 부대에게 배정된 건물로 각종 집기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수면실이나 회의실을 갖춘 가건물 안에는 여섯 명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최승현 대장님을 보좌하게 된 최서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바로 승현에게 붙은 보좌진들이었다.
보좌관인 최서진을 필두로 비서관 둘과 비서 셋이었는데 이렇게 보좌진까지 갖추니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게 조금은 실감이 났다.
다들 뭔가 기대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승현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흠흠, 앞으로 우리 부대가 국가에서 어떤 위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활동해보도록 합시다.”
말을 마치고 승현은 보좌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특수 대응 부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기관인지라 딱히 어떤 일을 하는지 정해져있지 않았다. 이들 보좌진들이 할 일도 사실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미안하네.’
승현에겐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는 직함인데 누구에겐 평생직장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승현은 개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보좌진들을 봤다.
곧 최서진 보좌관이 문을 열고 들어와 다음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떨어진 임무는 간단했다.
일전에 언급이 되었던 것처럼 6개의 게이트 안을 조사하는 것이었고 부차적으로 마력석을 얻어오는 것이었다.
“이 임무. 기간이 정해져있습니까?”
“아니요. 따로 기간이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좋군요. 혹시 사용 가능한 헬기가 있습니까?”
“저희 특수 대응 부대를 위해 한 대의 헬기가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이용하려고 하는데 준비를 해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참, 이건 현재 고위 공무원에게 지급된 휴대폰입니다. 모든 연락은 이곳으로 오게 될 겁니다.”
승현은 보좌관이 건네준 휴대폰을 받았다.
생각보다 정부는 승현과 특수 대응 부대에게 많은 걸 내주었다.
지금으로선 승현 개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이었는데 전용 헬기가 상시 대기하는 거나 보좌진 그리고 부대 전용 건물까지.
어떤 청사진을 머리에 그리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꽤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잠시 게이트가 열린 지역들을 확인하던 승현은 자신의 파티원인 세 사람을 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승현은 금방 세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셋만 모인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소혜가 나서서 생소한 얼굴의 두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오빠. 이쪽은 이번에 함께하기로 한 마법사이고 이쪽은 궁수에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마법사 직업을 가진 서태윤이라고 합니다.”
“궁수인 정오중이라고 합니다.”
마법사라 소개한 청년과 나이 지긋한 중년의 궁수가 각각 인사를 해왔다.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눈 승현은 간단하게 자신이 맡게 된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오빠도 공인 유저 센터 소속인 거예요?”
“그거랑은 달라. 조금 더 직접적인 일을 하게 될 거야.”
워낙 두루뭉술하게 설명을 해서 아직 다들 감을 못 잡은 것 같다.
미소를 지어준 승현은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조금 이르지만 잠시간 떨어져야 할 것 같아. 조금 더 성장을 도와주고 싶지만.”
“아니에요. 지금만 해도 충분한 걸요.”
“새로운 분들도 왔는데 갑자기 빠지게 된 게 좀 마음에 걸리네.”
승현은 잠시 새로 온 두 사람을 봤다.
책임지겠다고 말해두고선 이제 완전히 파티의 구성을 갖췄는데 자신이 빠지게 되었으니 그게 마음에 조금 걸렸다.
“괜찮습니다. 뭔가를 바란 건 아니니까요.”
“저 또한.”
“그리 말씀하시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그러면 나중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대로 파티를 맺도록 하죠.”
웃으며 말한 승현은 긴 대화를 나누다 나중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듣자하니 새로운 두 사람의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다고 한다.
자신이 뒤에서 조금만 밀어주어도 훌쩍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유저가 되어줄 것이다.
파티와 헤어진 승현은 곧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텐트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라 건물 안 수면실에서 잠을 청한 승현은 다음 날 헬기를 타고 일전에 들어갔던 게이트를 다시 찾았다.
70레벨을 만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직 부족했다.
다른 게이트의 조사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레벨을 올리기로 했다.
이번 목표는 150레벨인데 그 정도 레벨을 올리면 다른 게이트를 조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걸로 여겼다.
나중이 되면 고레벨 몬스터가 잔뜩 포진한 게이트가 등장하지만 지금은 초기라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수준이 높은 곳을 없어 보였다. 물론 이건 단 두 곳에 게이트를 겪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긴 하다.
다시 밀림에 들어온 승현은 파악해둔 각 몬스터의 영역으로 가 사냥을 시작했다.
“여긴 다시 와도 참 레벨을 올리기 좋은 곳이야.”
사냥을 하면서 생각한 승현은 별 위험 없이 고속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었는데 밀림의 중심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정보를 유저들에게 알리면 그들도 무난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다.
몇몇 보스 몬스터의 활동 범위에 대해서도 알아내며 밀림 안을 활보했다.
승현은 이 게이트의 임무를 깰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레벨을 올리기 좋은 게이트는 보존해두는 편이 좋았다.
나중에 유저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가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사실 길드나 고레벨 유저들의 경쟁과 욕심으로 사라진 게이트가 무척이나 많았다.
아마도 이 게이트도 그렇게 소멸한 게이트 중 하나일 것이다.
몇 달 동안 밀림에서 머물며 레벨을 올린 끝에 목표로 한 150레벨을 달성한 승현은 게이트를 벗어나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와서 마력석을 처분하고 보급을 마친 후 바로 가까운 미확인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의 생성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는데 밀림에 있는 동안 다시 세 개의 게이트가 더 생겼다고 한다.
이에 공인 유저 센터 측에선 지금의 비효율적인 게이트 조사를 센터 측에 일임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센터의 의견이 승현에게도 전달되었다.
승현은 이번 밀림이 있는 게이트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며 간단히 의견을 밝혔다.
멍청하게 목숨을 낭비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짧은 의견과 승현이 올린 보고서를 검토한 정부는 센터의 뜻을 꺾었다.
대신에 이번에 승현이 올린 정보를 센터 측에 제공하며 조사가 끝난 게이트에 대한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락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생각보다 승현의 말에 꽤 많은 힘이 실렸는데.
아무래도 많은 마력석을 공급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게이트 앞에 도착한 승현은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승현은 시야를 가리는 높은 빌딩들과 마주했다.
다만 빌딩의 모습이 처참했는데 유리는 모두 깨져 있고 어느 빌딩은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기도 했다.
[임무 : 최후의 전사]
-모든 감염자와 원인을 제거하세요. 본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거 참······.”
승현은 빠르게 떠오른 임무와 함께 게이트의 존재감이 사라진 걸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이렇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게 제약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겪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승현은 잠시 뒤를 돌아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거기엔 원래 있어야 할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이 세계에 갇힌 건데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을 경우 해당 세계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더욱이 이런 도시라면 식량을 구하는 게 더욱 어렵긴 하겠어.”
승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일단 다시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임무를 해결해야 했다.
“우선은 이 세계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겠어.”
골목으로 보이는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온 승현은 이곳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을 찾았다. 하지만 그 전에 그의 앞길을 막는 것들이 있었다.
“크아아아!!”
“저것들이 감염자인가.”
도로로 나오니 도로에 잔뜩 널려 있는 시체 같은 이들과 마주했다.
다들 핏기가 없이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괴하게 일어난 핏줄로 보아선 피 대신 무언가가 신체 안에 돌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승현은 헤이리아를 꺼내 활을 하나 날려보았다.
푸욱,
“케에에!!”
신성력이 깃든 빛의 화살이 박혔지만 언데드는 아닌 건지 괴로워하거나 잠깐의 멈칫거림도 없었다.
승현의 공격을 신호로 감염자들이 일제히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다음은······.”
아직 거리가 충분하기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미간에 정확히 화살을 박아보았는데 머리가 약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간에 화살이 박혀도 꿈쩍하지 않고 달려오는 통에 승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지막으로 심장 쪽에도 화살을 날려보았지만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척까지 다가온 감염자들에 승현은 양손에 타르샤를 소환하고 그대로 한 명의 감염자의 머리를 잘랐다.
서걱!
머리가 날아간 감염자를 무시하고 다음 감염자에게 타르샤를 휘두를 때였다.
“······?!”
발목을 붙잡는 강한 악력에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니 목이 달아난 감염자가 아직도 살아 움직이며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생각보다 그 힘이 강해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은 발목을 잡은 감염자의 팔을 잘라내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귀찮게 됐군.’
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달려드는 다른 감염자들을 봐라봤다. 적어도 백여 명은 넘어 보이는 숫자인데 이들 모두 약점이 없다면 처리하는 것이 아주 까다로워진다.
뒤쪽에서도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몰려드는 것 같은데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법사라면 광역 마법으로 쓸어버리면 되겠지만 아쉽게도 승현은 마법사가 아니다.
당장 자신을 덮치는 감염자들의 머리나 몸통을 가르면서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점점 활동 가능한 영역이 줄어들고 있어. 놈들이 상당히 촘촘하게 다가오는 걸 보면 이대로라면 반격도 못하게 될 거야.’
승현은 앞뒤할 것 없이 몸을 날리는 감염자를 피하며 결론을 내렸다.
그때 적당히 이동할 곳을 찾았을 때 갑자기 느껴지는 불길한 직감에 빠르게 무너진 건물에 있는 그림자로 이동했다.
승현이 이동함과 동시에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무언가 날아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폭발이 어찌나 큰지 승현이 있는 건물까지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팔로 얼굴을 보호한 승현은 먹먹한 귀를 한 채 밖을 내다봤다.
감염자들이 몰려 있던 곳은 온통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폭발에 수백 명의 감염자가 사라졌다.
폭발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감염자들은 잠시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다시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승현은 이 폭발이 결코 마력으로 일어난 게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폭탄 같은 걸 날렸다는 소리인데.”
아직 이 세계에 펼쳐진 결계나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생존자 혹은 그 비슷한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일단 그들과 접촉해서 상황을 들어보는 게 좋겠네.”
판단을 내린 승현은 아직도 발목을 강하게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 밖으로 던지고는 그가 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행이 이 주변에서 꽤 높은 건물이라서 도시 풍경이 어느 정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보아도 이 세계를 나누는 결계가 보이지 않았다.
“이 게이트도 상당히 넓나 보군.”
임무에 보면 모든 감염자와 원인을 제거하라고 나와 있다.
이 넓은 공간에 있는 감염자와 어디 있는지 모를 원인을 제거하는 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다시 도로로 내려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옥상으로 이동하자.”
다행이도 승현에겐 한 뼘의 그림자만 있다면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아무리 건물 사이가 벌어져도 몇 킬로미터가 벌어진 게 아니라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림자를 타고 도시 안을 이동하며 탐색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