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이번 게이트는 그가 겪은 게이트 중에서 넓기로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분포한 몬스터 레벨의 폭이 상당했다.
정말 낮은 건 10레벨도 안 되는 것들도 있었고 드물지만 300레벨짜리 몬스터도 가끔 보였다.
레벨 업을 하기엔 썩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나 주변에 고레벨 몬스터가 포진해 있어 가보진 않았지만 중앙에 다른 나무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나무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분명 뭔가가 있다.
처음 승현이 노렸던 몬스터의 경우 정말 다양한 곳에 분포해 있는 몬스터로 다른 몬스터들에겐 먹잇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곳의 생태계가 눈에 들어오니 그들이 왜 도망쳤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직도 동료의 시체를 가져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파악을 모두 마치고 승현은 바로 사냥에 들어갔다.
이번 게이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력석을 확보하는 것이다.
임무를 깨서 게이트를 닫기보단 안정적으로 레벨을 올리면서 마력석을 얻어내는 게 목적이다.
“마력석 하나에 얼마였더라.”
승현은 정부와 나눈 거래를 떠올렸다.
그가 공무원이 되었다고는 해도 유저 특별법이 적용된 한 명의 유저이다.
길드들은 정부가 제시한 법안을 통해 마력석의 존재를 알고 그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법안에 따르면 마력석 판매는 모두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즉, 마력석을 정부가 통제한다는 거다.
그러나 마력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유저들은 그에 대해 강한 반발을 일으켰고 그 결과 공무를 통한 협조나 참여시 기여에 따라 마력석의 소유권은 유저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또 정부는 유저들로 이루어진 공공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서도 길드와는 차별된 무언가를 제시해야 했던 정부는 정부에 고용될 경우 많은 혜택을 부여했다.
승현의 고용과 그가 속한 독립된 부대도 특별법 시행 후에 공식 승인을 받았다.
때문에 승현이 공무를 통해 마력석을 획득하여도 결론적으로 마력석의 소유권은 승현에게 있다.
그리고 이번 지령을 내리면서 정부는 마력석의 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측정된 값이 최하급의 경우 3천만 원이었고 하급의 경우 1억을 측정했다.
회귀 전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싼값에 파는 셈이다.
“마력석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길드들 때문에 가격이 좀 낮아졌긴 했지만.”
이것도 차후 조종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준 길드들의 안일한 판단을 생각하며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 입장에선 100레벨 몬스터만 몰이사냥을 해도 수십 개가 떨어지던 최하급 마력석을 무려 3천만 원에 팔 수 있다고 하니 바로 수락한 것 같다.
정말 초기엔 최하급만 해도 몇 억을 오갔는데 말이다.
승현도 큰 불만은 없었다.
돈이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아, 하나 나왔다.”
막 잡은 몬스터의 시체에서 마력석 하나를 찾은 승현은 마력석을 챙겼다.
승현의 공식 직함은 특수 대응 부대의 대장이다.
대통령 직속 부대로 들어갔으며 정무직 공무원으로 직함만 놓고 보면 장관 혹은 차관급 위치이다.
군의 계급으로 따지면 소위 말하는 별을 달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대장과 중장쯤에 위치함으로서 이는 승현도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높은 직책을 줄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자신에게 상당한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읏차. 솔직히 어디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이런 대우면 어느 정도 장단에 놀아줘야겠지.”
승현은 잡았던 몬스터의 해체를 모두 마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사실 승현이 국가에 소속되었던 것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편하게 활동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장관급 인사가 되어버렸다.
비록 다른 장관들과 달리 현장을 뛰고 있긴 하다만 이런 위치라면 나중에 안정기에 접어들어도 직함을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의 행동에 지장을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
지금이야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다지만 나중엔 특수 대응 부대를 서포터하는 하위 기관도 만들 예정이란다.
정부에 고용된 다른 유저들과 달리 정말 특수 부대 하나를 결성하고 싶나 보다.
승현은 레벨 업을 중심으로 사냥에 나섰다.
이번 지령이 마력석 확보라도 그에 적극적으로 응해줄 마음은 없다.
애국심이 투철한 것도 아니고 감시자도 없으니 편하게 레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냥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다 50레벨 이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력석이 모이고 있긴 했다.
“힘내서 70레벨만 만들고 나가자.”
이제 58레벨이니 상당히 오래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승현은 자신의 레벨보다 10에서 20레벨 정도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를 주로 사냥했다.
사냥 방법도 효율을 내고자 직접 움직이기 보단 원거리에서 처리했는데.
워낙 나무나 수풀이 많아 승현을 발견한 몬스터가 승현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난도질되어 죽어 손을 쓸 이유가 없었다.
중심부로 가는 게 아니면 위험할 것도 없어 더욱 쉬웠다.
부지런히 사냥을 하며 70레벨을 달성했을 땐 최하급 마력석을 상당수 확보할 수 있었다.
거의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했고 그 결과 약 130여 개의 마력석이 나왔다.
이 한 번의 사냥으로 40억에 가까운 돈이 벌렸다.
이래서 목숨을 담보로 한 걸 빼면 어느 재벌이나 사업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게 유저인 거다.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와 날짜를 확인해보니 일주일 정도가 지나있었다.
이번 게이트도 시간 비율 때문에 상당히 오랜 시간을 게이트 안에서 보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발신기를 꺼내 신호를 보내자 저 멀리서부터 헬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승현의 머리 위에 도착한 헬기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승현은 헬기를 타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의 풍경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무너진 잔해와 나무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가건물이 들어섰다.
아직까지 텐트촌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걸 알 수 있다.
헬기 위에서 보니 거점 인근에서 분주하게 사냥을 하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헬기장에서 내리자 강하늘 팀장과 몇몇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절 기다리셨나 봅니다.”
“아, 네. 최승현 대장님. 무사 귀환을 축하합니다.”
“반갑습니다, 최승현 대장님.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장인수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현재 국방을 담당하고 있는 구윤기라고 합니다.”
“공인 유저 대표인 서동욱입니다.”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눈 승현은 자연스럽게 강하늘을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그녀는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장 소장님은 마력석 인계를 위해 오셨고 구 장관님과 서 대표님은 게이트와 몬스터 처리에 대한 회의를 위해 모이셨어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그렇습니까. 일단 마력석부터 인계하고 시작하죠.”
승현의 말에 장인수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불렀다.
작은 상자를 승현에게 내밀었는데 승현은 그 안에 마력석을 쏟아냈다.
상자가 생각보다 작아서 마력석이 상자 안에 모두 담기지 않았다.
승현은 다른 사람의 손을 벌리게 해서 남은 마력석을 모두 넘겨주었다. 상당한 양의 마력석에 장인수 소장은 상당히 기뻐했다.
“개수를 확인한 후에 계좌로 금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은행 시스템이 살아났나 보군요?”
“예. 전체 시스템을 살린 건 아니지만 정상적인 은행 업무는 가능합니다.”
“후후, 돈이 생겼지만 쓸 수 있는 곳이 없는 게 아쉽네요.”
“늦어도 4년 후엔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마력석을 인계받은 장인수 소장이 떠나고 남은 세 사람과 함께 한 가건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상당히 깔끔했다. 정확히는 썰렁하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의자나 탁자 등 갖출 건 대부분 갖춘 곳이다.
모두 자리에 앉고 강하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자기 자리를 마련했지만 엄연한 공무라 지금부터 나누는 모든 대화는 기록됨을 알려드립니다. 유저 특별팀의 팀장인 강하늘입니다.”
“구윤기 국방부장관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이 신설된 공인 유저 센터의 대표를 맡은 서동욱입니다.”
“특별 대응 부대의 대장으로 있는 최승현입니다.”
형식적으로 각자의 소개를 하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회의의 진행은 강하늘이 맡았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들어올렸다.
“이번 비정규 회의 시작에 앞서 최승현 대장님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대장님. 이번 게이트에 대해 발표해주십시오.”
그녀의 말에 승현은 이번에 겪은 게이트에 대한 객관적인 부분과 주관적인 부분을 섞어가며 말했다.
지형에 대한 것부터 출몰 몬스터와 특징 그리고 유저가 레벨을 올리기 상당히 좋은 환경이란 점을 이야기했다. 승현의 발표가 끝나자 강하늘이 다시 회의를 이끌었다.
“현재 파악되기로 한국에서 등장한 게이트는 모두 7개입니다. 파악된 곳에는 최승현 대장님의 의견에 따라 모든 유저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6개의 게이트에 대한 조사가 시급합니다.”
“최 대장님. 게이트 안이 위험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나 이를 통제하시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적어도 길드에겐 출입을 허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판단됩니다.”
서동욱의 말에 승현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단체로 가면 뭐라도 될 줄 아나 본데 정말 우스웠다,
아직 50레벨도 안 된 유저는 승현이 갔다 온 밀림에 들어가면 먹이사슬 밑바닥에 깔릴 터다.
승현이야 암왕이라는 희대의 직업과 아이템 그리고 수많은 기술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걸 적절히 활용할 능력이 있었으니 밀림을 활보한 것이다.
당장에 탐색 기술이나 마력 탐지를 할 수 없다면 갑자기 등장한 100레벨 몬스터의 아가리에 들어가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자기 목숨을 그냥 내다버린다는데 말릴 마음은 없지만 가볍게 충고는 해주었다.
“제가 들어갔던 게이트라면 한 40레벨은 찍고 단체로 도전하면 좋겠네요. 다른 게이트는 글쎄요. 자살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리지 않습니다.”
“크흠, 너무 한국 유저들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닌지 우려됩니다.”
지금 상황은 모두 녹화되고 있다 보니 서동욱은 격한 말을 최대한 빼고 말했다.
승현은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고 진행을 맡은 강하늘에게 눈짓을 주었다.
“최승현 대장님께 내려진 다음 지시는 앞서 말씀드린 6개의 게이트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공인 유저와 계약된 길드 그리고 군을 파견할 계획인데 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주세요.”
“제시할 것도 없군요. 군대가 게이트에 들어가도 큰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고 현재 유저는 너무 약합니다. 군은 무기를 다시 갖추고 나서부터. 유저는 최소 40레벨을 찍은 후에 이 이야기를 다시 논의하죠.”
거침없는 승현의 발언에 바로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강하늘은 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중에서 가장 직급이 낮다 보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승현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강하늘에게 말했다.
“다음 안건을 말해보시죠.”
“아, 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2차 웨이브라 명명된 몬스터의 레벨 상승이 관측되었습니다. 한국에 2차 웨이브가 올 때까진 앞으로 두 달 정도이고 이렇게 되면 최대 30레벨의 몬스터가 출몰하게 됩니다.”
“그 부분을 회의할 필요가 있습니까? 당연히 군은 민간인을 통제하고 유저는 거점을 수호하면서 레벨을 올린다. 뭐가 더 나올 것이 있습니까?”
승현은 나오는 안건에 대해 빠르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유저 대표인 서동욱과 정부 대표인 구윤기도 종종 의견을 냈지만 승현이 신랄하게 쓴 소리를 하며 그들을 침묵시켰다.
비정규라고는 하나 정부와 유저의 첫 공식 회의였다.
사실 승현은 둘 사이를 중재하는 중재자 역할로 참여한 거다.
정부의 첫 고위직을 가진 유저이니 유저의 입장과 정부의 입장 모두를 포용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첫 회의이다 보니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던 당초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졌다.
가볍게 논의할 수 있는 주제로 가져왔더니 승현이 단답으로 모두 결론을 내어버리면서 회의는 빠르게 파장 분위기로 향했다.
회의가 반쯤 진행되었을 땐 구윤기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서동욱은 열심히 반론을 제기했지만 승현의 말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승현의 말에 틀린 점이 없고 반박할 근거가 부족하니 입을 다물게 되었다.
간단한 안건들이 모두 승현의 의견으로 정리되면서 회의가 끝났다.
“이것으로 회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저도 그만 일어나보죠.”
구윤기와 서동욱이 자리를 털며 나가고 녹화하던 카메라가 꺼졌다.
그러라 강하늘은 울상을 지으며 승현에게 하소연했다.
“최승현 대장님. 이번 자리가 공식적인 첫 회의인데 너무 두 분을 몰아붙이신 거 아닌가요? 저 두 분 표정이 어두워진 거 보고 저 피가 마르는 줄 알았어요.”
“막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을 준비도 없이 바로 회의에 앉히는 거나 회의할 거리도 없는 걸로 회의를 진행하는 건 좀 잘못됐죠.”
“그건······.”
“물론 이 자리가 가볍게 조성된 건 알고 있습니다. 내용도 그리 무거운 주제가 아니었고 자료만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 준비할 것도 없었죠.”
“······.”
“그렇지만 굳이 제가 이 회의에 참여해야 했느냐는 의문은 강하게 드는군요.”
“다들 최승현 대장님께 호기심을 가지고 계셔서요. 또 안건 중 반은 게이트에 대한 거라 대장님의 의견이 필요했습니다.”
애써 반론을 하는 강하늘에게 대답 대신 미소로 답해준 승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반론도 솔직히 일전에 한 보고를 통해서 충분히 대답이 되었던 것이다.
승현이 이 회의를 빠르게 끝낸 건 영양가 없는 회의가 큰 이유였지만 두 사람과 친목을 다지고 싶지 않기도 해서이다.
친목을 나눈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기로 한 거다.
사회관계를 봤을 땐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돈에 눈이 먼 서동욱이나 무능한 구윤기나 내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회의 내내 유저들의 게이트 진입을 어필하던 서동욱이 은연중 보여준 마력석에 대한 탐욕이나 승현의 말에 어설픈 반박도 못하던 구윤기는 가진 지위를 빼면 친해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