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거점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숲.
승현은 숲 한 가운데에 멈춰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먹잇감을 기다렸다.
눈을 감고 귀를 통해 다양한 소리를 들었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부터 바람에 부딪치는 나뭇가지들까지.
그런 소리 중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를 잡아냈다.
어느 시점에서 승현은 대규모 탐색을 시도했다.
사방에서 잡히는 기척에 싸늘한 미소를 지은 승현은 은신 기술을 사용했다.
보름달이 뜬 밤이지만 숲 안은 어두웠다.
조용히 움직인 승현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 타르샤를 소환하여 순식간에 포위망을 구성한 한 길드원의 뒤로 이동했다.
이동과 동시에 양손에 들린 검으로 심장과 목을 찔렀다.
“꺼, 꺼억······.”
유저가 억눌린 비명을 다 지르기도 전에 그림자를 타고 이동한 승현은 다른 유저를 찔렀다.
한 명이 죽고 다음 한 명이 죽기까진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기척을 죽이며 포위망을 좁히는 최강 길드의 유저들이었다.
그들의 포위망이 약 200미터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이미 포위망을 구성한 최강 길드는 반 이상이 암살을 당했다.
소리도 없었고 어떤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머릿속에 작은 의문을 달기 시작했다.
슬슬 다른 유저들이 눈에 들어와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중에선 탐색 기술을 가진 이들은 승현이 포위망 안에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주위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다시 5분 정도가 흘렀다.
이젠 정말 몇 미터 근처에 아군이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아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건 최강 길드의 간부들과 길드장인 유동주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이쪽으로 뭉쳐!”
뒤늦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유동주가 큰 목소리로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포위망이 100미터 이하로 줄어들었을 때였고 아무리 어둡고 나무가 많아도 포위망 안에 있을 승현이 보여야 했다.
유동주의 외침에 은밀히 이동하던 길드원들이 빠르게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쯤 되자 승현도 암살은 그만 두기로 했다.
휘영청 뜬 달빛에 사방에 그림자가 져 있다.
달려가는 유저들의 속도에 맞춘 승현은 사방으로 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크악!”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수십 개의 검들에 대비하지 못한 유저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한 번 유저를 찌른 검들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급히 달리는 다른 유저에게 날아들었다.
유동주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유저는 불과 20명에 불과했다.
유동주를 중심으로 뭉친 최강 길드의 유저들은 긴장과 공포가 서린 얼굴로 사방을 살폈다.
200명에 달하던 동료가 불과 20명으로 줄었다.
저 너머에서 들리는 아직 죽지 않은 동료들의 신음과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하며 더욱 공포를 자아냈다.
유동주는 급히 간부들에게 숨겨둔 비장의 무기를 꺼내도록 지시했다.
“다들 그거 꺼내. 놈이 나타나면 아끼지 말고 쏴버려.”
유동주의 말에 간부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던 총을 손에 들었다.
소총이나 권총 등 민간인이 절대 구할 수 없는 현대식 화기였다.
각지에 흩어진 군부대 중에서 얻은 것들이다.
아무리 유저나 몬스터가 대단해도 결국 총 앞에선 무력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따로 챙겨두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승현은 혀를 찼다.
200레벨만 되어도 마력이 없는 화기는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서 500레벨이 되면 어지간한 폭발에도 멀쩡하기에 미사일이나 핵무기가 아니고선 그쯤에서 현대화기는 더 이상의 가치를 잃는다.
천 레벨의 몬스터 중에선 그 무식한 핵폭탄을 맞아도 살아있는 놈도 있다.
핵폭탄 정도의 위력이면 그 폭발의 힘만으로도 없던 마력이 생겨나는 정도이다.
재밌는 건 핵폭탄이 만든 열에도 끄떡없던 몬스터의 외피나 뼈 등이 대장장이나 연금술사의 손을 거치면 변형이 된다는 거다,
어쨌든 아직 승현의 레벨이 200레벨이 되지 않았기에 조심하긴 해야 했다.
승현이 걸친 장비 자체의 물리 저항력이 높긴 하다.
그렇지만 기어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착용자의 레벨이 맞지 않으면 제한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다.
아쉽게도 승현이 착용한 방어구의 등급은 특별함.
딱 제한이 걸리는 등급이다.
유일함부터 착용 제한이 사라지는 걸 생각하면 조금 아쉽긴 하다.
승현은 룬을 이용해 전신에 둘렀다.
이로서 총에 대한 대비를 마친 승현은 천천히 최강 길드에게 다가갔다.
“쏴, 쏘라고!”
승현이 자신들 앞에 등장하자 유동주가 외쳤다.
그와 함께 총격이 이어졌으나 룬을 뚫을 순 없었다.
승현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열 걸음 정도 남았을 때 최강 길드가 가진 모든 총알을 다 소진했다.
“거, 머스킷 유저가 한 명도 없었나?”
“······.”
“기술을 걸어서 쐈다면 조금은 아파해줄 의향이 있었는데.”
가볍게 농담을 던진 승현은 이내 유동주를 보며 말했다.
“내가 경고했지? 눈에 거슬리게 행동하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너 때문에 생목숨만 날아갔네. 다들 미래의 유망주일 수 있었을 텐데.”
“너, 정체가 뭐냐.”
두려움이 섞여 떨리는 목소리에 승현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자자, 이러지 말고 금방 끝내자. 사후세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깔끔하게 죽여줄게.”
승현의 말에 몇몇 이들이 무기를 놓고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세요!”
“저흰 잘못이 없습니다. 그, 그냥 길드장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에요.”
한두 명이 그러니 나머지 유저들도 모두 따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유저가 무릎을 꿇었을 때 승현은 가벼운 턱짓을 해보였다.
“컥!”
“끄륵······.”
무릎을 꿇은 그들의 모습은 그저 약점을 훤히 노출시킨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승현은 한 번 적이 된 이들을 살려둘 의향이 조금도 없었다.
예외적인 상황이나 필요에 의해서 살려둘 순 있어도 지금은 두 경우 다 해당되지 않는다.
순식간에 무릎을 꿇었던 유저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모두 치명상을 입어 당장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가망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유동주와 몇몇 간부로 보이는 이들 뿐이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으아아아!!”
승현의 말에 다들 무기를 들고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은 손에 들린 타르샤를 휘둘렀다.
유동주의 검을 가볍게 피하고 검을 복부에 찔렀다 빼내고는 다른 유저의 빈곳을 찔렀다.
어지간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깊은 상처를 입고서 움직이는 건 꿈도 못 꾼다.
기어에서야 통증이 상당부분 감소되었지만 이곳은 현실.
복부나 다리 등에 상처를 입은 유저들은 다시 일어나 공격하지 못했다.
특히 복부를 찔린 유동주는 바닥에 누워 꺽꺽대며 숨을 쉴 뿐이었다.
남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한 명씩 깔끔하게 목을 날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유동주 혼자 남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그를 바라보던 승현은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이로서 최강 길드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승현은 슬슬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몬스터를 생각해 그만 거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최강 길드의 증발과 곧이어 발견된 그들의 시신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갔다.
포인트 인근에서 200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벌어졌으니 민간인은 물론이고 유저들도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러 한국도 출몰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상승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생존자를 구출한 상황이었고 서울에서만 약 40만 명이 모였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되었던 걸 생각하면 무척 적은 생존자였다.
한국에 경우 약 100만 명이 좀 넘는 수의 생존자가 나왔다.
이중에서 유저의 수는 약 16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몬스터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유저들이 본격적인 사냥에 나섰다.
정부는 공장 등이 있던 곳으로 가 물자와 장비를 확보하기로 했다.
한편 유저 특별법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당연히 유저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이미 대형 길드와는 말을 맞춘 상태라 반발을 곧 사라졌다.
두두두―.
“저기서 내려주십시오.”
승현은 헬기 안에서 한 곳을 가리켰다.
정부의 요청으로 현재 또 다른 게이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두 번째로 발견된 게이트의 위치가 조금 멀어 특별히 헬기를 타게 되었다.
이번 게이트로 가는 목적은 역시 마력석이다.
아직까지 출몰하는 몬스터에게 마력석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마력석을 확보해두고 싶어 하는 정부의 뜻에 따라 게이트 안으로 가 마력석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임무에선 오직 승현 혼자만 파견이 되었다.
다른 유저들의 참여를 승현이 거부해서이다.
그에 따라 같은 파티인 세 사람과도 잠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 임무 완료 후 발신기를 작동시켜주십시오.”
“예. 나중에 뵙죠.”
헬기가 지상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승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땅에 착지한 승현은 바로 인근에 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안엔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저번처럼 맞아떨어지길 빌어야겠군.”
승현은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도 공기가 변했다.
조금 후덥지근한 날씨에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주위를 가득 채우는 녹색 물결을 봐선 밀림으로 보였다.
“이런 기후면 몬스터보다 벌레가 더 짜증나던데.”
승현은 벌써부터 눈에 밟히는 벌레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직 이곳 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은신을 활용해 조심히 돌아다녔다.
어딜 봐도 나무와 수풀이 시야를 채워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바로 탐색을 펼쳤다.
점점 범위를 넓혀갈수록 수많은 정보가 머리에 들어왔다.
그중 몬스터의 기척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골라냈다.
탐색을 마친 승현은 감았던 눈을 뜨고 기척이 감지된 곳으로 이동했다.
그때 임무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임무 : 최상위 포식자]
-숲의 왕들을 모두 처치하십시오.
임무를 확인한 승현은 이번 게이트 안에 보스 몬스터가 여러 명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왕이라 지칭되는 이들은 대부분 보스 몬스터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놈들은 모두 특별하기에 주의를 해야 한다.
탐색을 발동한 상태로 기척이 느껴졌던 곳으로 가자 서서히 멀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숫자는 대략 열.’
기척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간 승현은 나뭇가지 위를 요리조리 이동하는 원숭이를 닮은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마력을 봐선 그리 강한 몬스터 같진 않았다.
승현은 바로 단검을 놈들에게 날렸다.
푹!
“끼이, 끼익!”
단검에 맞은 몬스터가 땅으로 추락하자 이동하던 무리가 땅 아래로 내려왔다.
승현은 바로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승현을 발견한 놈들은 동료의 시체를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특이한 반응에 잠시 멈춘 승현은 멀찍이 달아나는 몬스터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지? 몬스터가 적을 두고서 동료의 시체를 들고 도망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일단 놈들을 쫓아보기로 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몬스터들을 따라 밀림 안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서부터 물소리가 들려왔다.
빽빽한 나무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폭포가 승현을 맞이했는데 폭포 안으로 들어가는 몬스터들을 보고 그곳이 저 원숭이를 닮은 몬스터들의 보금자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직 놈들의 전투력을 모르니 섣불리 따라 들어가진 말자.’
날아간 단검을 피하지 못한 거나 느껴지는 마력으로 봤을 땐 30레벨에서 40레벨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 놈 수백이 사력을 다해 공격한다면 처리하기 까다롭다.
또 우두머리도 있을 테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단 폭포 위쪽으로 올라가 다른 지역을 살펴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