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서서히 불길에 잠식되는 미라를 보며 검을 빼냈다.
미동도 없는 미라를 보아하니 확실히 끝이 난 것 같았다.
“그럼 이 신전은 어떻게 파괴하······윽?!”
순간 목을 억센 힘으로 목을 붙잡힌 승현은 자신의 목을 움켜쥔 미라의 팔꿈치 쪽을 강하게 쳤다. 사람이라면 그 공격에 팔이 꺾이고 손아귀에서 벗어났겠지만 상대는 언데드였다.
“크윽!”
점점 조이는 목에 승현은 그림자에서 탐식을 꺼내 미라의 팔 자체를 잘라내려 했다.
반쯤 팔에 박힌 검에 미라는 목을 쥔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허억, 허억. 젠장. 방심했어. 목을 날렸어야 했는데.”
급히 숨을 마시며 따끔거리는 목 주변을 어루만졌다.
룬으로 방어를 해두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바로 목뼈가 부러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전신이 검은 불길에 휩싸인 미라는 뻥 뚫린 눈으로 승현을 바라봤다.
일전에 스켈레톤 나이트 때와는 달리 미라는 고요를 유지한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란 말이지.”
마의 불꽃은 방어력을 무시하는 공격이다.
즉, 마력저항이나 물리력 저항이 아무리 높아도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는다.
이건 승현이 알아낸 사실이다. 즉, 레벨이 높든 낮든 사물이 가진 질량에 따라 사물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사물의 경우 빠르게 타버리지만 영혼이 있는 경우는 그 속도가 느리다.
또 레벨에 비례해 강해지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속도가 좀 느릴 것이다.
‘저 놈의 경우 인간 형태이니 다 탈 때까진 대략 10분.’
10분만 버티면 승현의 승리였다.
그러니 이변이 없는 한 승리는 예정되어 있었다.
“크오오오!!”
“······젠장.”
그리고 이변이 펼쳐졌다.
붉은 안광이 눈구멍에서 터지며 범상치 안은 마력이 미라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마력에 영향을 받는 마의 불꽃이라 미라에게 모여드는 마력에 서서히 불길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검붉은 마력이 미라를 덮으면서 불꽃이 꺼졌다.
천 레벨 땐 어지간한 마력에도 꺼지지 않았지만 현저히 낮아진 레벨에 불꽃이 쉽게 꺼졌다.
승현은 탐식을 손에 들었다. 기세부터가 변한 미라를 보며 긴장하고 있던 승현은 갑자기 시야가 기울어지는 걸 느꼈다.
순식간에 다가온 미라가 승현의 다리를 차 쓰러트린 거다.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탐식의 능력을 발휘했다.
미라에게 집중해 중력을 일으켰다.
연이어 공격을 이어나가려던 미라는 갑작스럽게 높아진 중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쓰러진 승현은 바로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수십 개에 달하는 효과를 가진 탐식을 통해 각종 디버프란 디버프는 모조리 미라에게 걸었다.
쭉쭉 마력이 빠져나갔지만 미라를 약화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와 함께 탐식이 가진 버프는 모두 자신에게 걸었는데 이쯤 되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력에 짓눌린 미라는 수십의 디버프를 받고도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던 동작은 반으로 뚝 떨어졌다.
승현은 그런 미라를 향해 돌진했다.
무술 고수인 건지 미라는 절제된 동작으로 승현의 공격을 피했다.
“그럼 이건 어떠냐?”
승현은 직접적인 공격과 함께 전과 같이 그림자를 이용해 총공세를 펼쳤다.
날아드는 검의 옆면을 쳐내 날리거나 피하는 등 놀라운 방어를 보여주었지만 수십여 개에 달라는 검 모두를 피하거나 막을 순 없었다.
서서히 몸에 박히는 검들에 안 그래도 너덜너덜한 미라의 몸이 고슴도치가 되었다.
승현은 검들을 박아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조종해서 미라의 몸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주었다.
단지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종 디버프와 상처를 입었음에도 간혹 날카로운 공격을 할 때가 있어 방심할 순 없었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승현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했다.
무극심법으로 점차 차오르는 마력은 족족 기술을 쓰는데 사용되었다.
찌르고 베고 때리고······.
착실히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승현과 룬에 의한 방어로 별다른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 미라와의 차이로 하여금 미라의 목이 바닥을 구르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아, 하아. 설마 또 살아나거나 하진 않겠지.”
그래도 혹시 몰라 마의 불꽃으로 머리와 몸통을 태웠다.
미라의 시체가 모두 타고 남은 자리에 황금으로 된 열쇠가 하나 나왔다.
그 열쇠가 이 신전의 비밀을 풀 것이란 걸 안 승현은 주위를 살폈다.
‘주인, 주인. 저기 떨어진 검. 나한테 줘.’
그때 탐식이 말을 걸어왔다.
승현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미라의 검을 보곤 검으로 다가가 감정을 해봤다.
[아이템]
황금 군주의 검
-등급: 전설적인
-내구도: 9,751/15,000
-황금 군주라 불리던 칼라우드의 검. 소유주의 행운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아주 간단한 기능의 검이었다.
행운을 대폭 올려주는 검.
기어에서도 행운을 올려주는 아이템이 몇몇 존재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 효과가 증명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등급이나 설명에 대폭이란 말이 붙었으니 뭔가 있긴 할 거다.
승현은 효과보단 앞에 나온 칼라우드란 이름에 주목했다.
“허, 그 미라가 칼라우드였단 말이야?”
승현은 놀람과 황당함으로 잠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미라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회귀 전 세계에서 일어나 여러 사건들 중 한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건이 있다.
그중 하나로 칼라우드는 서울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사내로서 수천 명의 유저를 학살하고 유유히 자취를 감춘 인물이다.
늘 전투 전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던 그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당시 평균이 300레벨이던 한국 유저들을 학살하였고 이주 동안 서울 인근에 서서 유저들을 상대하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다.
그가 어디서 등장했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칼라우드란 이름은 한동안 유저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불렸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칼라우드는 미라가 아니었는데.”
승현이 알기로 칼라우드는 30대 초중반의 얼굴을 한 남자였다.
어디서도 미라의 형태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칼라우드의 추정 레벨은 약 600레벨 이상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승현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상대였다.
정황상 그 미라가 칼라우드인 건 맞는 것 같지만 어떻게 사람의 모습을 갖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인. 어서 그 검을 내게 줘.’
“흐음, 지원이에게 한 약속이 있긴 한데.”
잠깐 고민을 한 승현은 탐식에게 검을 넘겼다.
이 황금 군주의 검은 효과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지금으로선 전설적인 등급인지도 확인시켜줄 수 없으니 나중을 기약하기로 한 것이다.
검이 탐식에게 사라지는 걸 지켜보던 승현은 이내 내부를 살폈다.
분명 열쇠를 사용할 곳이 있을 텐데 열쇠를 꽂을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아, 여기 있네.”
한참을 찾은 결과 미라가 나온 관 안에 문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열쇠를 꽂고 돌리자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한쪽 벽면이 서서히 열렸다.
“오······.”
그 안에 쌓인 금은보화를 본 승현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금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건 물론이고 잘 연마된 보석들도 곳곳에 있었다. 동화 속 왕의 보물창고가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금이라. 이런 쪽보단 아이템이 더 좋은데.”
사실 지금 상황에서 금이나 보석은 그리 큰 효용성을 보지 못한다.
나중에 세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땐 세계는 하나의 전자 화폐로 통합된다.
화폐의 이름은 크레딧인데 그 가치는 역시 금을 기준으로 하긴 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각국의 화폐도 사용되긴 하지만 국제적인 거래는 모두 이 크레딧으로 이루어진다. 1크레딧은 금 10그램에 해당하며 회귀 전 1크레딧의 시세는 한화로 2만 3천원 정도였다.
금이나 보석의 거래는 과거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
금의 수요가 확 줄어들었고 그건 보석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게이트나 던전을 돌면 곧잘 나오는 게 금화나 보석이다 보니 그 가치가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유저들이 보유한 금화나 은화도 온전히 창고에 남아 있어서 대량의 금과 은이 시중에 나돌게 된다.
어느 게이트에는 금이 흔한 물건이라서 쉽게 얻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금은 게이트 안에 있는 문명과 종족들에게 통용되는 화폐라서 그 가치가 완전히 하락한 건 아니었다.
뭐, 그러니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겠지만 처분도 어렵고 복잡한 이것들은 당장은 그저 보기 좋은 장식품이었다.
“못 챙기는 것도 아니고 챙길 수 있으면 챙겨두는 게 맞겠지.”
승현은 방 안에 가득한 금은보화를 모두 챙겼다.
방 안은 정말 금은보화 밖에 없었다.
아이템이나 가끔 등장하는 기술서도 없다.
확인을 마친 승현은 방 끝에 있는 척 보기에도 수상한 레버를 바라봤다.
“이게 이 신전을 부수는 장치이겠지? 생긴 건 딱 그래 보이는데.”
파괴가 임무였으니 분명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레버가 임무가 제시한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승현은 생각을 마치고 레버를 내렸다.
그러자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는 건 옳지 못하기에 바로 전력으로 달려 신전을 벗어나기로 했다.
보물이 있던 방을 나와 신전을 벗어나고 긴 통로를 지나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확인했다.
무너지는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니 출구가 보였다.
승현은 어느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통로가 바위로 위장된 것 같았다.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색을 막던 기류도 사라져 탐색을 통해 자신을 걱정할 세 사람에게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은 승현이 다가오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보상은 다들 확인했나?”
“예. 받긴 했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잠시 줘봐. 확인해줄게.”
승현은 소혜의 것부터 하나씩 확인해주었다.
셋 모두 유일함 등급의 아이템을 얻었다.
각각 소혜는 반지를 얻었고 다연은 목걸이를 그리고 지원은 귀걸이를 얻었다.
셋 다 장신구였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효과를 가진 것들이었다.
“오빠는 뭘 얻으셨어요?”
“확인해봐야지.”
창고를 연 승현은 안에 든 물건을 쭉 살폈다.
빠르게 수납할 수 있는 그림자 때문에 창고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중 칸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 하나를 꺼냈다.
“황금색 사과네요.”
“영약 같은 건가? 기어 끝에 가선 가끔 엘릭서 같은 게 올라왔잖아요.”
“일단은 확인해 봐야지.”
승현은 손에 들린 황금색 사과를 살폈다.
[아이템]
금단의 과실
-등급: 전설적인
-먹는 것이 금기시되는 열매입니다. 섭취할 경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정확한 설명도 없다.
그저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마치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를 판도라의 상자 혹은 랜덤 박스 같아 보였다.
등급이나 설명만 봐선 이 열매가 절대 평범한 일을 일으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름부터 금단이 붙었고 설명에도 먹는 게 금기시되었다고 쓰여 있다.
상자를 여는 판도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승현은 끌어 오르는 호기심에 열매를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