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승현과 일행은 며칠 동안 1층에서 머물다가 곧 2층으로 내려갔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중간 정도 진행하고 레벨 업에 집중했다.
원래는 1층에서 레벨을 올릴 계획이었으나 두 사람의 뜻에 따라 2층에서 사냥을 하게 되었다. 2층의 몬스터는 구울과 스켈레톤 조합이었다.
삼주일 정도 사냥을 하자 승현은 2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 20레벨이긴 하지만 승현만큼 빠르게 레벨을 올린 사람은 없을 거다.
아직 레벨 업의 조건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승현이 회귀하기 전에도 천 레벨이 넘어가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으니 그걸 감안한다면 지금의 성과는 아주 미비한 것이다.
소혜와 다연도 발맞춰 15레벨이 되었다.
휴식 시간마다 틈틈이 탐색을 한 승현은 2층에는 보스 몬스터가 없다는 걸 알아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이지만 5층 혹은 10층마다 보스 몬스터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추측이 맞으면 적어도 4층까지는 무난하게 진입할 수 있다.
1층부터 50레벨의 보스 몬스터라면 이 끝을 모르는 미궁의 최종 보스는 몇 레벨일지 모르겠다.
승현도 당장 이 미궁을 돌파할 생각은 없다.
그가 궁금한 걸 알려면 끝까지 가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대화가 통하는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는 걸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다른 목표로는 빠른 레벨 업이다.
이걸 위해서라도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승현은 휴식 시간 때 둘에게 의중을 물었다.
“어떻게 할래?”
“보스 몬스터만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레벨 업에 대한 감을 잡았으니 빠르게 레벨을 올리죠.”
“좋아. 그럼 내일은 3층으로 내려가자.”
뜻을 맞춘 셋은 다음 날 아래로 내려갔다.
3층부터는 스켈레톤에 직업이 부여되어 등장했다. 검사나 궁수 간혹 마법사도 있었는데 이들 모두 30레벨 정도의 몬스터들이었다.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갔네요.”
“다연이는 정신 바짝 차려. 이제부턴 내가 모두 커버할 수 없을 거야.”
“드디어 제 역할을 할 때군요. 여태까진 너무 얹혀가는 것 같았어요.”
2층까지도 승현이 대부분의 몬스터를 상대해서 다연과 소혜에게 흘러가는 몬스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30레벨이란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언데드의 무서운 점은 고통을 모르고 무한한 체력을 가졌다는 것도 있지만 무리 짓는 놈들도 아니면서 늘 떼로 다닌다는 거다.
한 마리만 상대한다면 셋이서 충분하지만 늘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등장한다.
곧 놈들이 몰려오고 승현은 헤이리아를 들고 빠르게 연사를 하기 시작했다.
신성력이 담긴 빛의 화살은 놈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놈들이 접근하자 승현은 바로 무기를 교체해 근접전에 돌입했다.
캉캉!
탐식이나 마의 불꽃같은 무기 대신 룬을 변형시켜 양손에 두른 채 전투에 임했다.
룬이 둘러진 주먹은 무극권법에 따라 마력이 둘러져 강력한 타격을 선사했다.
“조심!”
승현의 짧은 경고와 함께 승현을 지나친 스켈레톤 한 마리가 소혜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앞을 가로막은 다연이 철통같은 방어를 하며 소혜를 지켰다.
그러는 동안 주문을 완성한 소혜가 마법을 써서 스켈레톤을 공격했다.
호흡이 잘 맞는 두 사람은 승현에게서 벗어난 스켈레톤을 차근히 처리했다.
그걸 본 승현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승현의 전투 스타일을 생각하면 혼자서 다니는 편이 맞다.
원거리 공격과 근거리 공격이 모두 가능하고 방어나 회피 또한 발군인 승현이라 회복에 대한 아쉬움만 빼면 가히 전천후 캐릭터다.
시간이 좀 걸려도 승현이 이곳에서 위험에 처할 일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소혜와 다연과 파티를 맺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걸 혼자서 처리할 순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기어에서처럼 압도적인 강함을 얻는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고작 20레벨일 뿐이니 말이다. 저 둘이 성장해 영향력을 펼칠 때면 추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를 대비한 작은 보험 혹은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탱커랑 힐러 말고도 딜러진도 데려와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승현은 눈앞의 적을 상대했다.
호쾌하게 뼈다귀들을 때려 부수는 승현은 주위가 정리되자 잠깐 휴식을 취했다.
“후아, 생각보다 상대하기 힘드네요. 놈들의 힘이 상당해요.”
다연은 살짝 저릿한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두 배나 차이나는 몬스터의 공격을 계속 받아냈으니 무리가 갈 수도 있다.
소혜도 상당한 마력을 소비했는지 조금 지친 표정이었다.
기어에서 단련되었음에도 막상 현실에선 제대로 힘을 배분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기어에선 시스템 보정이나 여러 가지 편의 기능 때문에 정신력 부담도 많이 사라지고 육체적 부담도 잘 느끼지 못하니까.’
현실과 기어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자자, 힘내서 이 구간을 정복해 보자고.”
“네. 오빠.”
둘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승현은 슬쩍 부서진 해골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손톱 크기의 작은 보석 같은 게 들어 있었다.
해골 안에 손을 넣어 그 보석을 빼낸 승현은 바로 감정을 시도했다.
[아이템]
최하급 마력석
-등급: 평범함
-마력이 담긴 돌. 미약한 마력이 담겨 있다.
마력석.
인류를 새롭게 발전시켜줄 아이템.
이 최하급 마력석만 해도 도시 단위 전력을 하루 정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서울 같이 큰 도시는 무리더라도 이는 엄청난 일이다.
고작 30레벨에 나오는 몬스터가 주는 최하급 마력석이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최상급 마력석을 사용하면 이 지구 자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마력석을 이용한 군사무기가 개발되면서 인류는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는다.
동화로 인해 벌어진 대재앙에서 2년.
그동안 세상은 폭력으로 다스려지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강대국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국가가 제 기능을 되찾는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마력석이다.
승현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은 마력석을 잘 챙겨두었다.
마력석은 유저들의 주 수입원으로 안정화된 시대에도 최하급 마력석은 수백만 원에 거래가 된다. 초기엔 최하급만 하더라도 억 단위까지 팔렸다고 한다.
막 국가가 제 틀을 갖춘 상태라 화폐의 가치가 많이 하락해서 그렇다.
“거기서 뭐하세요?”
“응? 조금 신기한 걸 얻었어.”
승현은 씩 웃으며 마력석을 보여주었다.
마력석은 기어에서도 존재하던 물건이라 놀라진 않았다.
그저 기어에서 나오던 마력석이 여기에서도 나오는구나하고 감탄할 뿐.
다시 마력석을 넣은 승현은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진행 속도도 더뎌졌다.
그래도 착실히 앞으로 향했다.
역시 이번 층 끝에도 보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 층에는 어떤 언데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여기서 충분히 레벨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승현의 레벨이 34레벨이 되고 두 사람의 레벨이 25레벨을 넘어가자 4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4층의 난이도는 3층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유령 형태의 몬스터가 출현하고 몬스터의 평균 레벨이 좀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미궁에 들어오고 무려 2개월하고도 보름이 흘렀을 때.
승현은 4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100레벨의 보스 몬스터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소혜와 다연을 데리고 5층으로 내려갔다.
“슬슬 햇빛을 안 받으니까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이곳에 있을 순 없을 거야. 5층까지만 돌아다니고 위로 올라가자.”
“그래도 레벨은 많이 올라서 좋네요. 지금쯤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소혜의 질문에 승현은 잠시 회귀 전의 상황을 회상했다.
대재앙으로부터 대략 3개월이 지났을 때.
생존한 군과 그나마 살아있는 국가 지도부가 모여 신정부가 결성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의 몇몇 국가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및 몇 개의 국가가 이때 연락을 취하고 라디오로 상황을 방송하며 생존자를 한 각 지역에 집결시킨다.
여기서 유저와 길드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는데 초반이다 보니 꽤 많은 길드와 유저들이 신정부에 반발을 한다.
이에 신정부와 이어진 길드들이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사태가 진정되기까지 앞으로 2개월 정도 걸릴 거다.
그러니까 지금쯤 신정부의 발표가 나오고 있을 때이다.
승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슬슬 정부가 나오지 않을까? 시간이 좀 흘렀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빨리 편히 쉴 수 있는 마을이나 도시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좀 씻고 싶네요.”
“금방은 아니더라도 근시일 내에 이뤄지겠지.”
5층으로 내려간 일행을 반긴 건 1층의 보스로 나왔던 스켈레톤 나이트와 같은 50레벨의 강한 언데드였다.
보스로 등장한 몬스터가 이젠 일반 몬스터로 나오는 걸 보며 다연이 말했다.
“이 미궁이란 곳 상당히 클리어하기 어렵겠어요. 5층만 해도 50레벨인데 밖에서 봤을 때 족히 수십 층은 되어 보였잖아요.”
“그래도 뭔가 끝엔 좋은 보상이 있지 않을까?”
“으음, 게임이 아니니 보상이 있다고 보장할 순 없지.”
“그렇긴 하네.”
“둘 다 전투 준비.”소혜와 다연의 말을 끊은 승현이 지시를 내렸다.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며 진행 속도를 높인 승현은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
“다들 잠시 여기서 대기해. 앞에 보스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올게.”
“조심하세요.”
정령을 그녀들에게 붙여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승현은 각종 은신 기술을 사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기술이 중첩되면서 바로 앞에서도 몬스터가 감지하지 못했다.
아직 레벨이 낮기에 감지를 못하는 건데 고레벨에 접어들면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쭉 앞으로 향하던 승현은 저 멀리 밝은 빛에 시력을 올려 앞을 바라봤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한 철문과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한 명의······.
‘문지기? 일단 언데드 같아보이진 않는데. 이상하군. 미궁에 문지기가 있단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다행인지 언데드로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승현은 조심히 앞으로 다가가 일정 거리에서 멈췄다.
놀랍게도 문지기로 보이는 인물은 승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기술을 간파하고 있는 것 같군.’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기술의 레벨은 기어 때와 같기에 300레벨까지는 발각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문지기는 그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승현은 그런 문지기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당신은 누구신지요?”
“······.”
“이 문을 지키는 분입니까?”
“······.”
“잠시 대화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승현은 조금 더 앞으로 나가며 말을 걸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말이 없던 문지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돌아가라. 애송이.”
“잠시만 대화를 하죠.”
“애송이와 나눌 대화는 없다.”
단호한 말에 승현은 그의 자존심을 조금 긁어 대화를 유도하기로 했다.
“미궁 5층을 지키시는 분이 절 애송이라 평가하는 건 좀 우습군요.”
“······!”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너 같은 애송이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불쾌하군.”
“저는 충분히 그 문 너머로 갈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만.”
“애송아. 오만은 명을 재촉할 뿐이다.”
“이 미궁 끝에 무엇이 있다고 그럽니까? 단순히 언데드가 기어 나오는 미궁이요.”
“네가 온 곳은 미궁이 이 문 너머에서부터 미궁의 시작이지. 애송이인 너는 미궁에 보관된 물건의 존재감에 짓눌려 죽겠지.”
“호오,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미궁이란 말이군요? 당신은 미궁을 지키는 문지기이고요.”
“알았으면 주제를 알고 떠나라. 나중에 초심자에서 벗어나고서 다시 온다면 상대해주지.”
“확실히. 그러면 몇 레벨이 되어야 초심자에서 벗어난 겁니까?”
“레벨? 그렇군. 특별히 알려주지. 500레벨. 적어도 이 너머로 들어가려면 그 정도는 돼야지. 물론 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내 인정을 받아야 해.”
“당신은 500레벨 이상이란 말이군요.”
“초심자 딱지를 땐 놈들보단 높다. 주제를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라.”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이 미궁 안을 잘 지켜주세요.”
말을 마친 승현은 몸을 돌렸다.
문지기와의 대화로 상당히 많은 걸 알아낸 승현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