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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32화 (32/111)

32화

모두의 시선이 바로 승현에게 모였다.

“흠흠, 여태까진 대형이나 포지션 없이 싸웠지만 지금부터는 조를 나누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다행히도 힐러나 원딜러 분들도 상당수 계시니 조를 나누기 편할 것 같군요.”

정확힌 승현이 힐러와 원딜러를 주로 구한 거지만.

다들 고레벨 유저였던 만큼 승현의 복장을 알아봤다.

그래서 그런지 승현과 같은 조가 되길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허나 승현은 딱히 조를 짤 마음이 없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하기에 승현은 각자 조를 짜게 한 후 도움이 될 만한 유저를 찾아 다시 임시 거점인 이 편의점으로 모이기로 했다.

“자, 조를 짰으니 오늘은 그만 쉬고 내일부터 활동하겠습니다.”

불침번을 정하고 잠을 청한 사람들은 다음 날이 되자 흩어졌다.

승현도 방향을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랭커를 포섭하고 싶은데.”

만 명 뿐인 랭커가 과연 쉽게 나오겠느냐만.

그러던 중 일전에 따로 챙겨두었던 가방이 떠올라 그림자에서 가방을 꺼냈다.

그 캠핑 도구부터 시작해 여러 물건이 담긴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둔 전화기를 꺼냈다.

“역시.”

비밀 커뮤니티에 접속한 승현은 잔뜩 올라온 채팅을 확인했다.

총 700명 정도만 가입한 커뮤니티에는 각종 생존신고와 상황 보고가 쭉 이어졌다. 승현도 생존신고를 짧게 올리고 상황 보고를 읽었다.

“다들 난리가 났군. 그나마 게일과 아이실 쪽은 상황이 낫나 보네.”

게일의 엘페러 길드의 경우 엠페러 길드의 간부 대부분을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이를 통해서 빠르게 각 지역과 국가에 흩어진 길드원을 모으는 걸로 보였다.

아이실의 파라곤 길드는 아이실의 무리한 행동으로 주요 길드원을 모두 한 곳에 밀집시킨 덕에 가장 빠르게 집단을 이루었다.

더욱이 그녀가 2년 동안 건설한 지하 벙커가 무사해 벌써부터 길드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이실도 추진력이 대단하네.”

승현은 첸의 상황도 살폈는데 그녀도 무사한 것 같다.

생존신고 이후로 그녀도 빠르게 길드원과 유저들을 만나 몬스터와 싸우는 듯 보였다.

첸이야 워낙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니 사람들을 돕는데 전력을 쏟고 있을 거다.

그밖에도 비밀 커뮤티니에 속한 여러 국가의 길드장이나 랭커들도 활동을 시작했다.

지잉.

“메신저네. 아이실인가.”

생존신고를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실로부터 메신저가 날아왔다.

이윽고 첸과 친분이 있는 게일에게도 메신저가 날아왔다.

잠시 걱정이 담긴 글을 읽고 미소를 지은 승현은 답장을 남기고 다시 움직였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주변 상황은 더욱 참혹했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몬스터나 종종 눈에 밟히는 시체까지.

“이대로라면 생존자를 찾는 게 더 어렵겠어.”

승현은 한숨을 내쉬고 헤이리아를 들어 멀리서부터 몬스터를 저격했다.

그러던 중 예민한 청각이 저 멀리서 전투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승현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방패를 든 여자와 사제로 보이는 여자가 열 몇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었다.

승현은 두 여성의 복장에 주목했다.

‘교복이군. 그것도 둘 다 천 레벨의.’

척 보기에도 남자들 쪽이 무언가를 노리고 공격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두 여자 쪽이 먼저 공격을 했어도 승현은 우선 랭커인 두 여자 편에 서기로 했다.

마탄의 사수를 꺼내 한 막 빈틈을 보이는 사제 유저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유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었다.

퍼억.

“누구냐?!”

총알이 박힌 남자가 고꾸라지자 바로 같은 편의 남자들이 반응을 보였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다들 승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새끼가. 야, 저 저 놈부터 죽이자.”

무리에서 떨어진 몇 명의 남자들이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은 말없이 한 가지 기술과 머스킷의 내장 기술을 발동했다.

“퍼펙트 샷.”

유일함 등급의 기술인 퍼펙트 샷은 쏘거나 날리는 모든 행동에 높은 보정 효과를 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과 웨폰 마스터리의 힘이 더해지면 대충 날려도 대부분 급소에 적중한다.

펑펑펑!

승현은 주어진 3초 동안 방아쇠를 당겼다.

마력이 폭발하며 마탄이 날아갔다.

달려드는 남자들은 물론이고 점 멀리 있던 남자들까지 모두 머리나 심장에 총알이 박혔다.

피가 솟구치며 일제히 남자들이 고꾸라졌다. 내장 기술인 난사의 유효 시간인 3초가 지나고.

일대에 선 사람은 오직 두 여자와 승현 뿐이었다.

간단하게 사람들을 처리한 승현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더,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

“흠, 그러죠.”

방패를 든 여인의 말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췄다.

잠시 대치가 이루어지고 사제 유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한 행동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목적이 있습니까?”

“으음, 제 동료가 되어달라는 것?”

승현의 말에 방패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던 여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직까진 경계심이 엿보였지만 그래도 승현의 말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도적 클래스 같은데 방금 공격은 뭐였습니까?”

아무래도 승현의 복장과 달리 원거리 공격을 한 것이 신기했나 보다.

승현은 웃으며 머스킷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바로 다시 고개를 방패 안으로 숨기는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하하, 쏘지 않습니다. 뭐, 머스킷입니다만 상당히 성능이 좋습니다.”

“그, 그런가요?”

다시 고개를 들어 보이는 그녀에 승현은 머스킷을 내렸다.

잠시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꾹 눌러 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단 여러 사람들의 리더로 지금은 괜찮은 동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괜찮다면 함께하시겠습니까?”

승현의 제안에 두 여인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미안하게도 여러 패시브 기술 덕에 오감이 증폭되어서 다 들렸다.

“으음, 어떡하지, 소혜야?”

“나쁜 사람 같진 않아 보이는데.”

“그, 그래도 아깐 그놈들처럼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면······.”

“그것도 문제지만 우리만으로는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우린 구해주셨잖아.”

“그렇긴 한데. 아직 솔직히 사람을 못 믿게 됐어.”

“나도 그렇지만.”

방패 뒤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둘에 승현은 차근히 기다렸다.

5분 정도 지나자 결정이 났는데 승현을 따르기로 했다.

앞을 막던 방패를 치우자 드디어 두 사람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민소혜?”

“여, 역시 알아보시네요.”

“그거야 그쪽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니까요.”

승현은 뜻밖의 인물에 놀랐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이자 세계적인 모델인 민소혜가 바로 사제 유저였던 것이다.

그녀의 빛나는 외모에 잠시 가려졌지만 방패를 든 유저의 외모도 무척이나 빼어났다.

어디 미스코리아 출신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의 미인이었는데 민소혜가 옆에 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저기, 그렇게 바라보시면 좀 부담스러워요.”

“이런. 실례. 일단은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승현은 앞장서서 걸었다.

아직 모이기로 했던 시간까진 꽤 남아 있지만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느긋하게 걸으며 승현은 둘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서로 이름이나 알까요? 전 최승현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민소혜입니다.”

“이다연이라고 해요.”

“두 분은 전부터 친분이 있으셨나 봅니다.”

“예. 막역한 사이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친했어요. 그런데 가면은 무슨 이유에서 쓰신 건가요?”

“시야 확보용이랄까. 성능이 좋아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시구나. 그러고 보니. 최승현이라면 혹시······?”

다연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조심히 물었다.

그에 승현은 픽 웃으며 답했다.

“아마 그 최승현이 맞을 겁니다. 랭킹 1위의.”

“와! 저 방칼 대전 때부터 팬이었어요!”

두 사람은 승현에 대해 알게 되자 급격히 가까워졌다.

특히 다연은 눈을 빛내며 존경어린 시선으로 승현을 바라봐 오히려 승현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에 도착하니 승현 말고도 다른 조 하나가 먼저 와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좋아 보이지 않은 게 아무래도 그들 중심에 있는 남자 때문인 것 같았다.

승현을 발견한 조와 남자는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천 레벨 이상으로 추정되는 남자였는데 화려한 판금갑옷이 돋보였다.

“그쪽이 이쪽 파티의 대장이라면서요?”

“일단 리더로 있습니다만.”

“그 자리 내게 넘기세요. 그 편이 좋겠습니다.”

다짜고짜 하는 말에 승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자신감 넘치는 거 아니에요? 어떤 근거가 있겠죠?”

“거 천 레벨이라고 해도 활 쓰는 도적 클래스는 좀 아니죠. 뒤에서 활이나 쏘는 사람을 믿고 어디 다들 믿음을 주겠습니까?”

“그건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하,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미안하지만 당신은 나 못 이겨. 내가 랭커였다고. 또 도적 클래스가 전사 클래스를 이기지 못하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신 같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제 파티에 넣고 싶지 않군요. 그만 가시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패거리로 여겨지는 다른 사람들이 슬쩍 남자 곁으로 다가왔다.

조원들은 다들 머뭇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뜻 승현의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대신에 다연이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오려는 것에 손을 뻗어 막았다.

의기양양한 남자의 표정에 승현은 옅은 비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도적은 전사를 이기지 못하는 게 정설이다.

그중에서도 근접전을 버린 원거리 도적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대는 그냥 도적이 아니었다.

남자는 픽하니 웃으며 승현을 노려봤다.

“자신 있어?”

“자신? 이봐, 도적. 여기가 게임처럼 뒈지면 살아나는 줄 알고 착각하나 본데. 여기 현실이야. 진짜 죽고 싶어?”

승현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남자를 살려둘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말이야. 이제 힘 있는 놈의 거라고. 돈도 권력도 여자도 다! 그러니까 뒤에 여자나 두고 꺼져라.”

승현은 가만히 남자를 주시했다.

저렇게 힘에 취한 놈들은 결국은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

특히 레벨도 높고 장비도 좋은 이들이라면 악성 종양이다.

판단은 끝났다.

결과는 죽음이다.

승현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선 남자의 그림자에서 멸마의 창을 뽑아내 찔렀다.

전설적인 등급의 창은 질 좋은 장비를 어렵지 않게 뚫어버렸다.

“커억! 무, 무슨······?!”

그대로 몸을 꿰뚫은 창을 허망한 눈으로 보는 남자에 승현은 냉랭하게 바라봤다.

방어구를 빼면 지금은 능력치나 레벨이 낮아 물리력과 마력의 방어가 현저히 떨어진다.

같은 장비라면 당연히 전설적인 등급의 멸마의 창이 높았고 물체 고정을 통해 날아간 창은 그대로 놈을 관통해버린 거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체 고정의 힘을 받은 덕에 가능했다.

남자는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그 광경에 놀라 멈춰있자 승현은 창을 다시 그림자 속에 넣으며 잔챙이들에게 말했다.

“그만 꺼지시죠?”

승현의 말에 남자의 패거리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서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를 무시하며 승현은 조원들에게 다가갔다.

“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 다 생존을 위한 거고 무엇보다 중립이셨잖아요?”

말은 고왔지만 표정에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어 조원들은 침묵했다.

설마하니 남자를 상대로 이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승현은 조원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에 딱히 문제 삼지 않은 것뿐이다.

대신에 남자의 시체를 치워줄 것을 부탁하고는 소혜와 다연과 함께 임시 거점으로 삼은 공터로 왔다.

“뭐 드신 것 없으면 저기 편의점 안에 들어가셔서 아무거나 드세요. 금방 무너질 것 같아도 크게 건드리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승현은 잔뜩 금이 간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름이라서 도시락 같은 건 상했겠지만 인스턴트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곳을 임시 거점으로 정한 것도 다 편의점에 있는 식량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굶었다는 걸 들어서 식사를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둘이 허기진 배를 채울 동안 시간이 흐르고 속속 남은 조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조는 빈손으로 오기도 하고 어느 조는 많은 사람을 끌고 오기도 했다.

승현은 그들 모두를 받아주었다.

물론 그의 파티에 받아주었다는 건 아니다.

함께 온 이들 중에는 일반인도 더러 섞여 있다.

승현은 각 유저들을 모아두고 회의를 벌였는데 그 결과 처음 모였던 20명의 유저 중 절반이 떨어지기로 했다.

다들 뜻은 달랐다.

어느 이는 사람을 구하고자 떠났고. 어떤 이는 자신이 대장이 되고자 떠났다.

역시 승현은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그들을 붙잡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아이템이 좋고 레벨이 약간 높다는 정도?

그렇게 갈 길을 정하자 승현은 편의점에서 물과 식량을 챙겨 남은 이들과 함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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