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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29화 (29/111)

29화

이야기를 모두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죠.”

“예. 불가해 아이템은 입수 난이도가 높아서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직업 관련 아이템이라 빠르게 얻어두고 싶어서 친분이 없음에도 부탁을 드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 그건 정확히 무엇입니까?”

승현은 그녀의 설명 중 가장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계약이라는 건데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이것이 필수라고 한다.

이어서 아이실의 설명이 이어졌다.

“계약은 제 직업인 마도사의 기술입니다. 특이하게 레벨은 0레벨인데 계약 상대가 사망하기 전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죠. 이름 그대로 저와 계약으로 맺어지는 겁니다.”

“흠, 그에 따른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단점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장점은 알고 있습니다. 마력 공유와 의식 전송 그리고 능력치 향상입니다.”

“마력 공유에 의식 전송 그리고 능력치 향상이라. 단점을 모른다는 게 걸리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기술이군요.”

“단점이 없다면 이 계약을 통해 승현 님이 손해를 볼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제는 단점이 없다는 것이군요.”

“결정은 승현 님께 맡길게요. 받아들이신다면 추후에 단점이 있을 시에 물질적인 형태라도 충분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흐음······.”

승현은 고민을 했다.

사실 승현은 계약에 대해 듣고 어느 정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대마법사로 불리던 그녀 옆에는 항상 든든한 성기사가 따라다녔다.

그녀가 마법을 발동할 동안 그는 매번 앞을 막고 그녀를 도왔는데 그가 아마 그녀와 계약을 맺은 상대가 아닐까 한다.

마력이 적다는 점이 문제였던 성기사였음에도 그녀를 지키던 그는 줄지 않는 마력을 자랑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회복 기술과 방어 기술로 하여금 그는 아이실을 든든하게 보좌했다.

그땐 의문이었는데 아마도 이 계약을 통해 아이실의 마력을 가져다 쓴 게 아닐까 한다.

‘내가 이걸 수락하면 그녀는 방패를 잃게 된다.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마법사에게 있어서 시간을 벌어줄 방패는 아주 중요했다.

직업 특성도 그렇고 혼자 다니는 자신이 매번 그녀의 방패가 되어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 결정은 신중해야 했다.

“트라이센 님. 이 계약은 트라이센 님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건 아시죠?”

“예. 마법 시전에는 약간의 틈이 있고 아마 계약 상대는 그 틈을 메꿔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트라이센 님과 매번 함께 할 수 없죠. 나중에 괜찮은 탱커와 계약을 할 생각을 안 해보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 불가해 아이템은 습득 조건과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불가해 등급의 아이템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꼭 얻고 싶습니다.”

“지금 수준에서는 원하시는 분이 없는 겁니까?”

“알고 게신 분 중에서 확실하게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면서 차후에 큰 전투에서 가장 효율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전 도적 계열입니다.”

“수만 명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능력을 가진 도적이죠.”

“나중에 일이 있어도 제가 도움을 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단지 이 기술을 버프 기술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테니까요.”

“정 그러시다면 계약을 맺도록 하죠.”

본인의 의사가 이렇게 뚜렷한데 그가 거절할 이유가 이젠 없다.

승현의 허락에 아이실은 웃으며 기술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와 승현의 발아래 마법진이 생기면서 빛이 일어났다.

[마도사 아이실 트라이센과 계약을 맺으시겠습니까?]

승현은 바로 승낙했고 그와 함께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마도사와 계약으로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0% 상승합니다]

[계약에 따라 의식과 마력을 교류할 수 있게 됩니다]

상승폭이 상당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그냥 버프 기술로 처도 상급이었다.

‘들리나요?’

머리에서 아이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메시지에서 그녀에게 시선을 주자 아이실이 다시 한 번 생각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전해지나 보네요. 그럼 장소를 옮길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실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온 승현은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아이실은 승현에게 의식으로 계속 말을 걸었는데 이미지를 보내기도 하고 상상한 것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의식이 전달된 것이다.

끝에 가서는 보고 있는 시야를 의식으로 보내기까지 했다.

이해력과 응용력이 탁월했다.

그렇게 산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니 은은한 빛이 일렁이는 땅이 보였다.

“저곳입니다. 그러면 준비 되셨나요?”

“이번엔 의식으로 말하지 않네요.”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 거죠. 직접 말로 하는 편이 더 좋다고 봐서요.”

“그렇군요. 준비되었으니 안으로 들어가죠.”

아이실이 빛이 일렁이는 땅에 발을 디디자 순식간에 공간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듯 이동한 두 사람은 높은 천장에 운동장만큼 넓은 길에 서 있었다.

[마도사의 공방에 입장합니다]

공방이라 부르기엔 워낙 넓은 곳이었다.

승현은 먼저 앞장서서 앞으로 걸었다.

그때 저 멀리서 투박한 모양의 골렘이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골렘 같은 비생물 몬스터는 물리력 계열이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딱히 약점이라는 게 없어 마력 기술로 부숴야 했다.

“시간만 끌어주세요. 빠르게 처리하죠.”

승현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지만 그녀의 뜻에 따라주기로 했다.

이제는 기어스보다 높은 내구도를 자랑하는 탐식을 꺼내들고 골렘의 시선을 끌었다.

어느 정도 골렘과 맞서 싸우고 있자 그의 의식에서 마법이 날아올 타이밍이 떠올랐다.

그때를 맞춰 몸을 피하자 바로 골렘에게서 거대한 화염포가 쏟아졌다.

콰아아아!

고열을 받아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 골렘은 곧 무너져 내렸다.

역시 보통의 마법사 클래스와는 다른 위력의 마법이었다.

“마도사와 마법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글쎄요. 보유한 마력과 회복속도가 높고 마력 소모가 보다 적습니다. 또 마법의 위력도 더 뛰어납니다.”

“확실히 방금 마법은 상당히 위력적이었습니다.”

“칭찬 고마워요. 그럼 앞으로 가죠.”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 때마다 길을 가로막는 골렘들이었는데 다들 추정 레벨이 700레벨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었다. 어느 정도 전진했을 땐 리치와 같은 몬스터도 출현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력 공격만 통하는 몬스터로 깔려 있었다.

그것도 승현 정도의 레벨을 찍어야 감당이 가능한 수준으로 말이다.

그쯤 되어선 승현도 적극적인 공격에 가담했다.

물리력 딜러이지만 승현에겐 무극심법과 그에 따른 기술들이 있다.

때론 검으로 베고 때론 주먹으로 두들기며 공격에 가담하자 무난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거대한 히드라 한 마리를 쓰러트리고 나자 저 앞에 초로의 노인이 서 있었다.

“아,당신은······.”

“또 만났군. 하지만 이번엔 그저 사념의 잔재일 뿐이야. 그래도 다시 보니 반가워.”

노인과 아이실은 아는 사이로 보였다.

대충 눈짐작으로 보면 저 노인이 전대 마도사가 아닐까?

“호오, 계약자로 암왕을 선택할 줄이야. 같은 수준이면 차라리 검제가 나았을 텐데 조금 아쉽군 그래.”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당사자인 승현 앞에서 하기엔 실례되는 말이었지만 노인이나 승현 둘 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썩 괜찮은 계약자를 데려온 점은 충분한 자격 조건이 된다. 이 뒤로 들어가 나의 로브를 계승 받아보아라. 작은 충고를 주자면 계약자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말을 남긴 노인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노인이 사라지고 둘이 남게 되자 잠시 눈을 마주쳤다.

둘은 말없이 앞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유리관 안에 황금색 로브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은색의 실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수놓아진 로브는 그 하나라도 예술작품이었다.

“예전에 불가해 등급의 아이템을 얻으셨다고 하셨죠?”

“예. 이 지팡이가 그것입니다.”

만났을 때부터 들고 있던 하얀색의 나무 재질을 한 수수한 지팡이였다.

“그러면 모든 불가해 아이템은 아이템 자체가 얻을 때 시련이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예. 이 지팡이를 얻는 건도 상당히 힘들었죠. 이번에도 각오하고 있습니다만 전대 마도사께서 하신 말씀이 걸리네요.”

“계약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일단은 위에 걸쳐볼까요?”

아이실은 유리관을 열고 안에 걸린 황금색 로브를 걸쳤다.

로브를 입자 그대로 그녀가 쓰러졌다.

승현은 그런 아이실의 뒤로 이동해 그녀를 받아들었다.

그와 함께 그녀로부터 강한 의식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그녀의 일생인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삶을 보았다.

재벌의 손녀인 것과 달리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그녀의 부모님에게 가족애는 찾을 수 없었고 어려서부터 큰 외로움에 시달렸다.

또 배경을 노리고 다가오는 사람들과 엄한 할아버지의 교육 때문에 일찍 철이 들었다.

마음 놓고 친해질 친구 하나 없는 그녀는 늘 평가 받는 존재였다.

가면을 쓰는 게 늘 당연했고 가식은 일상이었다.

그런 아이실의 마음은 서서히 죽어갔다.

마냥 풍족하고 행복할 것만 같던 그녀의 어두운 삶을 보게 되니 그녀에게 동정심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저 로브가 마의 불꽃과 같이 마음 속 어둠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승현은 끝없이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의식을 보냈다.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옆에 있어주겠습니다. 조건 없이 당신의 편에 서겠습니다.’

승현의 생각이 전해졌을까.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승현은 그녀의 삶을 엿본 것에 대해서 자신의 삶도 어느 정도 보여주기로 했다.

지난날의 고통스럽던 가정과 쓰라린 배신들. 그것과 대조되는 변화한 심경과 강해진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

승현은 다시 돌아와 기어를 하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악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고 예전에는 몰랐던 사람간의 온정과 감정교류를 깨달았다.

또 강함을 손에 넣으며 생긴 여유와 뚜렷한 목표의식은 그를 더욱 성장시켰다.

승현의 삶과 지금 승현이 품은 생각들을 보게 된 아이실은 크게 흔들렸다.

승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열심히 그녀를 설득했다.

‘무기력함에 빠지지 마세요. 절망에서 벗어나세요. 앞으로 나아가세요.’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하지만 겨울이 왔다는 것 곧 봄도 찾아온다는 거다.

시련에서 무너져 멈춘다면 우린 따스한 봄바람을, 향긋한 꽃내음을, 피부를 감싸는 햇빛을 느낄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칼바람과 눈보라에 살이 에이더라도.

승현의 강한 의지가 그녀에게 전해지면서 그녀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그때까지도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승현은 곧 품 안의 그녀가 눈을 뜨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일어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승현 님······.”

승현은 눈물이 맺힌 아이실을 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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