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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27화 (27/111)

27화

승현은 가만히 서서 앞뒤로 빽빽하게 들어찬 유저들을 둘러봤다.

다들 500레벨 이상의 나름 어깨에 힘 좀 주는 이들이다.

일명 고레벨이라 불리는 유저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이들이 무려 11만 명.

하지만 왜일까.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많이도 모였군. 이런 환영 인파면 나도 본심으로 상대해야겠지?”

승현은 그림자에서 아우성치는 탐식을 꺼냈다.

마의 불꽃은 대인에게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범위로 쓰기엔 마력 소모가 너무 컸다.

“임팩트는 있겠네. 그렇지만 효율이 안 좋아.”

탐식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그런 점에서 아우성치는 탐식은 군중을 상대하기 적합했다.

그 이유는 대검이라는 것과 이놈이 먹어치운 중력검의 능력 때문이다.

각종 검을 먹어치운 탐식에 덕지덕지 붙은 능력만 해도 13가지.

충분히 마의 불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검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랭킹 3위가 기사였지? 거기다 검이 전설적인 등급이고.”

승현은 문뜩 떠오른 기억에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긴장한 채 대기하는 모습이 참 볼만 했는데 과연 자신이라고 해도 30만 명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지 살짝 회의가 들긴 했다.

처음 수호 길드의 3만 명이야 진짜 전력은 만 명도 안 되니까 충분히 상대했다.

그러나 이번엔 고레벨 유저 11만이다.

있는 모든 걸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밑천 드러내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한 번 짓밟아둘 필요는 있어.”

그때였다.

[엠페러 길드가 연합에 가입하길 요청합니다]

[검림 길드가 연합에 가입하길 요청합니다]

[파라곤 길드가 연합에 가입하길 요청합니다]

주르륵 떠오른 연합 가입 요청에 승현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와 함께 세 명에게서 동시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승현 씨. 조금만 시간을 벌어주세요. 정예를 이끌고 참가하겠습니다.”

“승현아. 우리 쪽은 준비 완료야. 바로 수락해줘.”

“최승현 님. 이번 일에 개입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은원을 쌓고 싶기도 하고. 수락해주시겠습니까?”

각각 게일과 첸 그리고 아이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엠페러 길드야 설명할 것도 없고 검림 길드는 첸이 만든 길드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그리고 아이실의 파라곤 길드 또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길드이다.

이들의 참전이라면 승기는 이쪽에게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승현은 기꺼운 마음으로 세 길드의 연합 요청을 수락했다.

길드전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기하고 있던 유저들이 크게 술렁이는 게 보였다.

최정상 길드인 엠페러 길드만 해도 길드원의 숫자만 해도 40만 명에 이른다.

최대 규모이자 최강, 최고의 길드로서 명실상부 자리한 엠페러 길드다.

다음으로 위명이 자자한 파라곤 길드에 요즘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검림 길드까지.

실상 셋 중 하나의 길드만 난입을 해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데 세 길드 모두 참여했다.

술렁임이 멈추고 곧 저 멀리서 두꺼운 판금 갑옷에 방패와 검을 든 기사 유저 한 명이 다가왔다.

“최승현! 나랑 결투를 하자.”

“이름이 그러니까······.”

“큭, 이지원이다. 같은 한국인인!”“그렇군. 랭킹 3위면 사망 페널티가 뼈아플 텐데 용케 나섰습니다?”

“널 꺾고 최고의 유저 자리를 차지하겠다!”

“한 번 죽는다고 100레벨 차이가 바로 좁혀지진 않습니다만.”

“원래는 몇 번이고 결투를 통해 꺾으려고 했지만. 적어도 널 이기고 내가 더 우위에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겠어.”

“그 검. 제가 알고 있는 게 맞으면 전설적인 등급이죠?”

“아주 어렵게 얻은 무기지.”

“그거 유감입니다.”

승현은 고개를 슬쩍 저어보였다.

어렵게 얻었는데 탐식의 식사거리가 되게 생겼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리라.

“먼저 들어오세요. 전 이 검만으로 상대해드리겠습니다.”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걸? 차핫!”

기사답게 자체 버프 기술을 발동한 이지원은 그대로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은 그런 이지원을 향해 중력으로 무게를 수십 배 높인 탐식으로 찍어버렸다.

콰아앙!

이지원은 방패로 탐식을 막았다.

하지만 그 수는 최악의 수였다.

한 번에 방패를 찬 왼팔이 부러지며 기이하게 꺾였다.

돌진하던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은 이지원이 디딘 땅도 탐식의 충격에 의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자,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요.”

탐식이 가진 능력은 승현에게도 적용되지만 다른 대상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 말은 마력을 태우는 능력과 무기력과 절망감을 주는 디버프도 그대로 이지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승현은 탐식을 옆으로 그어 이지원의 검에 딱 붙였다.

그에 맞닿은 곳이 조금씩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잠식인 것 같았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식사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검의 변화를 눈치챈 이지원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승현은 급히 탐식에서 떨어지려는 그의 검을 따라 팔을 움직였다.

잠식되는 속도로 보아서 짧으면 2분, 길면 4분이면 모두 잠식될 것 같았다.

승현은 중력의 범위를 넓혀 이지원을 압박했다.

“크으으, 당하기 전에 죽인다!”

양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도 이지원은 뭔가 방법이 있는 건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부러진 팔이 바르게 붙었다.

그리고 서서히 높아진 중력과 탐식을 밀어내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가강.

놀라운 힘으로 탐식을 밀어낸 이지원은 괜히 랭킹 3위가 아니라는 듯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방패술과 섞인 검술은 근접 딜러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승현은 주로 이지원의 검과 부딪치는 횟수를 늘렸다.

‘조금만 놀아볼까?’

역시 100레벨 차이가 나기에 이지원은 승현의 상대가 못되었다.

승현은 탐식이 그의 검을 먹어치울 때까지 상대하기로 했다.

딱 4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완전히 부식되다시피 한 이지원의 검은 한 번의 부딪침으로 맥없이 부러졌다.

“······!”

“그럼 잘 가요.”

승현은 대검을 휘둘러 비어버린 이지원의 오른쪽 옆구리를 베었다.

무극검법에 의해 마력이 둘러진 탐식은 이지원의 판금 갑옷을 두부 썰듯 썰어버렸다.

이지원이 패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 등의 원거리 공격이 쏟아졌다.

아무리 룬으로 전신을 덮고 있어도 수만 개의 마법에 누적 데미지를 입으면 이쪽도 아슬아슬하기에 기어스의 내장 기술인 절대방어를 사용했다.

투명한 막이 승현의 주위를 감싸고 폭격이 이어졌다.

여러 분석가들이 분석하기에 이번에 모인 화력이라면 1,000레벨대의 보스 몬스터도 레이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만큼 여기 모인 고레벨 유저들은 상당했다.

하지만 모든지 한 번의 공격을 막아주는 절대방어 덕분에 오히려 동시에 쏜 마법의 위력이 절감되었다.

기술이 사라지고 승현은 준비했던 대로 기어스의 크기를 키워 하늘을 가렸다.

기어스를 때리는 장대비 같은 공격들이 끝이 나자 승현은 연기가 사라지기 전에 기어스를 축소시켜 그림자에 수납하고 탐식을 들어 유저들이 모인 방향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접근하는 승현 때문에 원거리 딜러들은 공격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난전.

500레벨 이상이라고는 해도 그들 역시 썩은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휘두르는 족족 베어 넘어가는 유저들은 고함을 치며 승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승현의 주위 40미터는 탐식의 능력으로 중력이 올라갔다.

그로 인해 행동이 느려지며 근접 딜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휘권을 가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아군을 희생하는 작전을 시행한다.

바로 근접 딜러가 시간을 끄는 사이 원거리 딜러가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허나 다들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나는 도적 클래스인데.’

승현은 그림자밟기를 이용해 위치를 바꿔가며 낙엽을 쓸 듯 유저들을 쓸어버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 때 대형이 잔뜩 흐트러진 수호 길드 측 유저들 뒤로 세 그룹의 유저들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황금빛을 일렁이며 달려드는 엠페러 길드의 정예들이었다.

세 길드의 합류와 함께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죽은 유저들은 다시 접속해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2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수호 길드의 연합 모두가 전멸했다.

“와, 나 말고 지원군이 대단하네.”

“트라이센 님과도 연이 있으십니까?”

“그때 이후로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추후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영웅 삼인방이 한 자리에 모였다.

승현을 포함한 넷은 방칼 앞에서 진형을 꾸리고 대기했다.

승현의 목적이 수호 길드의 해산이었기에 그 뜻을 함께하고자 한 것이다.

조금은 어색한 침묵이 간이 네 사람 사이에서 감돌았다.

모두 승현을 중심으로 모이긴 했지만 셋 다 친분은 없기 때문이다.

“저기 두 분 다 반가워요. 링첸이라고 해요.”

“엠페러 길드의 마스터인 게일 프리스입니다.”

“아이실 트라이센입니다.”

우선 통성명을 나눈 세 사람이었다.

“다들 절위해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이건 내 책임도 있잖아.”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드린 게 아니니 감사하실 것 없습니다.”서로 승현의 말에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게일은 궁금하다는 듯 승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수호 길드와는 어째서 충돌을 일으키신 겁니까?”

“아, 그건 제 책임이에요. 수호 길드와 마찰이 있었는데 그걸 승현이 해결해주겠다고 나선 거여서요.”

“링첸 님을 돕기 위해서였다?”

“아닙니다. 수호 길드와 그 마스터인 김수호와는 예전에 악연이 있어서요. 그걸 정리하고자 나선 겁니다.”

승현은 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대략 상황을 파악한 게일과 아이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은원을 푸는 방식이 남다르시군요.”

“아하하, 다 사정이 있어서요.”

아이실의 말에 차마 미래에 김수호와 그의 길드가 한국을 좀먹을 거여서 정리한다고 말해줄 순 없었다.

아이실은 다소곳이 앉은 채 말했다.

“전 최승현 님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조금 일방적이었지만 반드시 절 도와줄 의무는 없습니다.”

“이렇게 오셨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럼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실은 말이 말을 마치고 소소한 잡담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메시지가 몇 개 떠올랐는데.

수호 길드의 연합이 속속 탈퇴를 한다는 메시지였다.

30만 명가량이 크지 않은 도시인 방칼에 묶이게 되었으니 다들 벗어나고자 연합에서 탈퇴한 것이다.

그들도 사실상 가망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이탈은 빠르게 이뤄졌다.

몇십 억 원이 투입한 수호 길드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 길드전을 세간에선 방칼 대전이라 부르고 있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여러 영상이 편집되며 이번 길드전을 화려하게 비추었다.

첫 전투인 수호 길드와 승현의 전투만 해도 이미 수백 개의 동영상이 올라왔고 그에 비례한 숫자의 전투 동영상이 다시 올라왔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고레벨 유저는 전체에 30%에 달한다.

그만큼 전투는 화려했지만 다소 일방적이었다.

누군가 방칼 대전으로 발생한 비용을 계산해봤는데.

각 고레벨 유저들의 장비와 아이템 그리고 수호 길드가 뿌린 돈과 길드들이 대거 이동한 것 등을 합산하면 약 현금으로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했다고 한다.

게임 사상 최고액의 비용이 소모된 이번 길드전은 수도 없이 유저들 입에서 올랐다.

이 사건은 계기로 기어에 흥미가 없던 이들도 기어의 계정을 만들 정도로 파급력은 상당했다.

이미 가상현실 게임 시장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운 기어는 이로서 점유율을 70%까지 올리게 된다.

랭킹에 기록된 유저의 수 억 단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게임이자 대세 게임이 되었다.

2차 방칼 대전 이후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한국 국내에서도 직접적인 소요가 일어났는데 김수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온 그룹의 주가가 하락하고 주주들이 회장에게 항의를 하였다.

김 회장이 기어에 투입한 회사 자금만 40억.

이번에 타 길드 섭외로 56억을 지출해서 총 96억을 사용했다.

그룹 내에서 김수호에게 게임사업부 총괄이사 자리까지 주며 야심차게 준비했건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가온 그룹과 같이 손을 잡고 기어에 투자를 하던 여러 대기업들도 가온 그룹의 요청에 따라 연합에 가입했다가 피를 보곤 책임을 묻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김수호에 대한 책임론이 일어나고 결국 게임사업부 폐지와 총괄이사직 박탈 등 징계를 면치 못하게 된 김수호였다.

그룹 홍보와 게임을 통한 이익 창출을 목표로 야심차게 시작한 가온 그룹이 한 사람에게 무너지자 한국은 물론 기어에 투자한 각국의 기업들도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승현이 던진 작은 돌은 이렇듯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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