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김수호가 글을 작성하고 다음 날.
길드전이 수락되고 수호 길드의 모든 길드원이 길드 하우스가 설치된 중소 도시인 방칼에 집결했다.
길드 하우스는 기본적으로 도시 밖에 지어야 한다.
유저들이 모이면서 일어날 혼잡함을 방지하고자 NPC들이 그리 정했다.
방칼의 외벽 너머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다들 수호 길드 소속임을 알리는 마크를 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번 길드전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유저들이 방칼에 모였다.
“그 또라이가 과연 나타날까?”
“길드전 신청하면 위치가 자동으로 뜬다잖아. 도망가도 수호 길드가 추격해서 죽일 걸?”
“와, 거의 4만 명은 되는 것 같은데 간도 크다. 누굴까?”
다들 멀찍이 떨어져서 집결한 수호 길드를 구경했다.
한편 김수호는 모두 앞에 서서 연설을 했다.
“이건 우리 수호 길드를 무시하는 걸 넘어서 한국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길드원분들을 집결시킨 건 그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입니다. 어디로 도망쳐도 그곳에 수호 길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요!”
김수호의 말에 다들 열성적으로 공감했다.
그런 광경을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는 이들도 상당했다.
김수호의 열띤 연설은 꽤나 효과적으로 전해졌다.
그때였다.
한 궁수 랭커가 저 멀리 방칼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저거 천살 길드 마크 아니야? 와, 미친놈이네. 깃발을 만들어서 들고 와?”
그의 시야에 잡힌 그림자는 커다란 깃발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천살이 길드의 마크가 박혀 있었다.
깃발을 든 유저는 은색 일체의 전신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를 발견했을 쯤이 되자 의문의 은색 갑옷 유저는 자리에 멈춰서 깃발을 강하게 땅에 박았다.
단단하게 다져진 땅에 깃발이 박히는 걸 보아 그의 레벨이 상당해 보였다.
그러나 그뿐.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는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김수호도 그런 은색 갑옷 유저를 주시했다.
“자! 저기 우릴 모욕한 이가 서 있군요. 똑똑히 지켜보십시오. 수호 길드의 저력을!”
김수호는 매번 함께 합을 맞추며 다니는 간부들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김수호는 짜릿한 쾌감을 맛봤다.
‘모두가 날 지켜보고 있다!’
거리를 좁힌 김수호는 입을 열었다.
“얼굴도 꽁꽁 가리고. 창피한 겁니까?”
“······.”
“하, 말도 안 하고 대단하군요. 이렇게 일을 벌였으니 만족하시죠?”
“김수호. 날 기억하겠나?”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무슨 말인지?”
“내 목소리를 잊은 건가? 내가 경고했을 텐데.”
“하! 경고라. 곧 죽을 사람이 오만하군요.”
은색 갑옷 유저는 어디선가 붉은빛이 감도는 검을 꺼냈다.
그에 모두가 비웃음을 날리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때 은색 갑옷 유저가 엄청난 발성으로 외쳤다.
“보라! 나는 지금 여기서 수호 길드에게 단죄를 내리겠다! 이건 단순히 수호 길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여태까지 길드라는 이름하에 필드를 장악하고 유저를 괴롭히던 악덕 길드 모두에게 하는 경고다!”
은색 갑옷 유저의 외침은 모두에게 똑똑히 전해졌다.
당연히 모든 이들이 은색 갑옷 유저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개인이 집단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니 그의 외침은 그저 광대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크으, 멋있는 척 하기는. 모두 화려하게. 알지?”
“물론이지.”
김수호와 간부들은 각자 위치를 잡고 공격을 시작했다.
탱커인 김수호는 마법사와 사제 그리고 궁수를 보호했고 검사와 도적은 일제히 은색 갑옷 유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컥······.”
단칼에 도적 유저의 목이 날아갔다.
그의 검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이어서 검사의 팔이 절단되고 그 팔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목이 달아났다. 은색 갑옷 유저의 주위로 불길이 얼어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가 등장한 곳은 김수호와 일행 뒤.
“켁!”
“뭐, 뭐야?!”
사제 유저가 심장이 꿰뚫렸다.
연이어 마법사 유저도 죽음을 피하진 못했다.
순식간에 진형이 붕괴되고 김수호 혼자 남게 되었다.
이들 모두 600대 레벨의 고레벨 유저들이다.
그들이 걸친 방어구며 마력과 물리력 저항은 무시할 게 못 된다.
그럼에도 일검에 죽었다.
김수호는 다급히 길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공격!”
길드 마스터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바로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다들 지금 상황에 그저 입을 벌리고 지켜봤다. 그러나 이내 남은 간부들의 독려로 수호 길드의 길드원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3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달려오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은색 갑옷 유저는 고고하게 서서 김수호를 바라봤다.
“게임 접자. 김수호.”
“이런 미친······!”
순간 김수호의 넓은 방패에 주먹이 꽂혔다.
찌그러지다 못해 구멍이 난 방패는 더 이상 방패가 아니었다. 그리고 뚫린 구멍으로 갑옷과 함께 가슴이 함몰된 김수호는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럼 다음에 봐.”
그렇게 김수호도 한 방에 보내버린 그는 지척까지 달려온 수호 길드의 길드원을 바라봤다.
앞쪽에 선 탱커들과 전사 클래스 유저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은색 갑옷 유저는 그대로 사람의 파도에 덮쳐졌다.
그러나 청색으로 빛나는 선이 그어지며 수십 명의 몸이 둘로 나눠졌다.
“으아아악!!”
“죽여, 죽여!!”
은색 갑옷 유저의 검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지며 매초에 수십 명의 유저를 도륙했다. 피바람이 일어나고 그 위로 수많은 화살과 마법이 떨어졌다.
아군을 도외시한 공격이었지만 그 효과는 굉장했다.
그가 서 있던 곳부터 약 10미터가 초토화되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에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던 수호 길드 유저가 인지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아, 아직 살아 있어!”
“뭐하는 놈이야?!”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에도 은색 갑옷 유저는 양떼에 뛰어든 늑대마냥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수호 길드 유저들을 절단했다.
광범위하게 그어지는 참격에 당한 유저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오직 검 하나로 3만 명을 압도하는데 10분이면 충분했다.
10분.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사망한 유저의 수만 4천 명에 달했다.
100레벨이 조금 넘는 저레벨 유저부터 고레벨 유저까지 가리지 않고 죽었다.
은색 갑옷 유저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모두가 전율했다.
이 광경은 생중계로 지켜보는 이들과 현장에서 보는 이들 모두 어느새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일검에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인의 장벽을 보며 모두가 생각했다.
불가능할 걸로 여겨졌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의 힘이 집단의 힘을 압도한다.
30분이 지났다.
엄청난 수를 자랑하던 수호 길드의 유저들은 이제 만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쉼 없이 검을 휘두르는 은색 갑옷 유저는 괴물 같은 체력을 보여주었다.
지치지도 않고 휘두르는 검은 아직 만 명이란 압도적인 숫자를 가진 수호 길드 유저들의 전의를 꺾었다.
저 뒤에서부터 이탈자가 생겨났다.
하나둘 도주하는 이들이 생겨나자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마땅치 않았고 은색 갑옷 유저는 묵묵히 검을 휘두르며 수를 줄여갔다.
48분.
3만 명의 유저 중 멀리 도망친 이들을 제외한 수호 길드 전원이 한 사람에게 몰살당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거의 모든 길드원을 섬멸하고 은색 갑옷 유저는 침묵만이 감도는 공간을 가로질러 천살 길드 마크가 박힌 깃발 앞에 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수호 길드가 해산할 때까지 이 결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는 즉시 탈퇴하라. 나는 이 자리에서 수호 길드가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싸울 것이다!”
깃발 앞에서 당당히 선 그를 보며 한 유저가 박수를 쳤다.
짝, 짝짝.
짝짝짝!!
그 박수는 전염이 되어 구경을 나선 모든 이들에게로 옮겨졌다.
방칼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모두가 두 눈으로 목격했다.
1대 3만!
말도 안 되는 전투의 끝을 말이다.
죽었던 수호 길드원들이 속속 재접속을 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방칼에서 부활한 그들은 유일한 출입구인 방칼의 길목 앞에 버티고 선 은색 갑옷 유저를 보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개인 채널마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시청했다.
다들 이 말도 안 되는 일의 결말을 지켜보고자 눈을 빛냈다.
어떤 이들은 직접 방칼로 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방칼에서 부활한 수호 길드원들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 난 탈퇴할 거야.”
“젠장. 저런 걸 어떻게 죽여. 불가능해.”
우선 저레벨 유저들의 이탈이 먼저 시작됐다.
그들로선 아무리 뭉쳐도 모래성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반나절 만에 1만 2천 명이 수호 길드를 탈퇴했다.
다들 300레벨 미만의 저레벨이라서 전력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처음보다 규모가 확 줄어든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남은 1만 8천여 명은 다시 한 번 모이고 대형을 짰다.
모든 화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근접 딜러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방법.
몸을 추스른 수호 길드는 작전대로 공격을 시도했다.
전멸당한지 거의 17시간만의 일이었다.
수차례 마법과 화살 그리고 총알 세례가 은색 갑옷 유저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의 갑옷 어디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너무나 멀쩡한 모습에 달려들던 근접 딜러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시 일어난 일방적인 학살.
두 번째 전투로 다시 5천 명이 빠져나갔다.
이미 두 차례 사망으로 인해 레벨도 하락함은 물론 아이템도 상당부분 잃어버렸다. 무제한 결투가 걸린 상태라 전리품은 임의의 공간에 보관되기에 회수할 수도 없었다.
주력 무기나 방어구를 잃은 이들은 바로 탈퇴를 해버렸다.
“더 이상 매달리는 건 의미 없는 짓이야.”
“젠장. 장비만 다 잃었잖아.”
하나둘 탈퇴 행렬이 이어져서 하루가 지나니 수호 길드는 만 명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이쯤 되자 김수호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회장의 아들인 김수호다.
자금을 동원한다면 몇 억은 충분히 동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호 길드는 그만이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전문 경영인들이 붙어 길드를 운영할 정도로 그의 아버지도 기어에는 상당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길드 해체 위기에 김수호의 아버지도 큰돈을 움직이는 과감한 베팅을 시도했다.
그렇게 한국의 몇몇 규모가 큰 길드와 일본 중국 등 돈을 받고 움직이는 이들 모두가 연맹으로 가입해 길드전에 참여했다.
그렇게 모인 숫자만 30만 명!
숫자에 불과한 수치이고 그중 전력만 걸러낸다면 11만 명 정도이다.
500레벨 이상의 유저 11만 명이 다시 한 번 집결했다.
여기에 랭커들도 다수 매수되어 참여하였다.
그중에는 랭킹 3위가 끼어 있어 더욱 화재를 모았다.
이 소식으로 다시 한 번 공식 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가 폭주했다.
의문의 유저와 랭킹 3위의 대결은 어느 스포츠 경기보다 뜨거운 주제였다.
이미 대부분의 유저들은 저 압도적인 무력의 소유자로 랭킹 1위인 최승현을 꼽았다.
2위와는 100레벨 이상의 차이를 벌린 최강의 유저.
정확히 137레벨의 격차가 있다.
100레벨 차이면 맨몸으로 검을 받아도 저항력으로 인해 검이 박히다 만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실험으로 증명된 것인데 고레벨로 갈수록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걸 감안하면 은색 갑옷 유저는 최승현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압도적인 마력 저항력으로 마법을 모두 받아내는 걸로 모두에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어 그가 착용한 갑옷이 전설적인 등급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
무엇 때문에 최승현이 수호 길드와 길드전을 벌이는지는 무수한 추측만이 난무했다.
김수호가 시비를 건 것이다, 그냥 강함을 보이고 싶어서 길드 하나를 고른 것이다 등등.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방칼과 그 길목으로 수호 길드 연합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