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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22화 (22/111)

22화

중년인이 제안한 게임은 체스였다.

하지만 그냥 체스가 아니라 조금 특별한 체스였다.

체스 말은 9개. 룩, 비숍, 나이트, 퀸이 각각 하나이고 나머지는 폰으로 구성되었고 배치는 자유, 모든 말을 잡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 진행.

각 말이 잡힐 때마다 지정된 말의 파티원이 경기장으로 출정해 전투를 치른다.

게임에서 모든 말을 잃어도 출정한 파티원이 끝까지 살아남으면 승리. 대신에 중년인은 모든 말이 잡히면 게임은 게일의 승리.

“이 특별한 체스에서 날 이기는 것이 좋을 거야. 내 수하들은 모두가 맹장이거든.”

“배치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였죠?”

“그래. 그럼 각 말들에 맞는 인원을 정하도록.”

게일은 모두를 모아서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승현은 뜻밖의 역할에 살짝 놀랐다.

“제가 퀸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왜 절 퀸으로 생각하셨습니까?”

“우선은 손님이고. 또 히든카드는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죠.”

게일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역할이 정해지고 게일과 중년인의 특별한 체스가 시작되었다.

게일은 가장 체력이 약한 마법사와 전투력이 약한 탱커를 폰으로 삼았다.

아무래도 가장 빠르게 전투에 나서게 될 테니 먼저 출정을 시키려는 셈이다.

또 가장 강한 물리력 딜러도 폰으로 넣었는데 이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사제와 도적을 각각 룩과 비숍으로 정하고 궁수를 나이트로 마지막 승현을 퀸으로 정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일은 탱커가 지정된 폰을 미끼로 던졌다.

전장에 탱커를 포진시킬 생각인 것이다.

중년인은 그 미끼에 일부러 걸려준 듯 바로 비숍을 움직여 폰을 잡았다.

슈욱.

그러자 지정된 탱커가 연회장 옆쪽에 마련된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한 파티원은 방패와 검을 들고 상대를 기다렸다.

곧 비숍이 잡히고 상대편 선수도 입장했다.

“베틀 메이지인가.”

승현은 그 상대를 바로 알아봤다.

베틀 메이지.

근접 전투에 특화된 마법사 클래스로 근접 거리에서 쏘아대는 마력 공격은 어지간한 물리력 딜러는 우습게 여기는 직업이다.

역시 둘 사이의 전투는 베틀 메이지가 지배했다.

화르륵. 펑!

“크윽!”

강철 완드를 휘두르며 근거리에서 마법을 날리는 베틀 메이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탱커였다.

베틀 메이지의 마법은 주문이 극히 짧고 버프 기술이 많다는 것.

그로 인해 마법과 물리 공격이 적절히 섞여 상대하기 무척 까다롭다.

전장의 불리함을 확인한 게일은 빠르게 말들을 움직였다.

“수하를 챙기는 마음은 갸륵하나 군주는 신중해야 해.”

“이런.”

과감히 퀸을 움직여 나이트를 잡는 중년인의 행동에 게일은 낭패 어린 얼굴을 했다.

궁수가 경기장에 입장하고 바로 이대일의 전투가 이어졌지만 베틀 메이지를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베틀 메이지의 마력 공격은 같은 마법사의 방어 마법이 없으면 상대하기 까다롭다.

당연히 마법사를 출정시킬 생각이었던 게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구멍이 생기며 궁수가 출정하게 되었다.

“자, 천천히 판을 읽고 생각하라.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 게임을 끝내야하지 않겠나?”

“······그래야지요. 하지만 저쪽의 균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군요.”

자칫하면 이쪽의 파티원이 전멸하고 상대팀의 선수가 쌓여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빠르게 게임을 끝내야만 했다.

게일은 최대한 머리를 쓰며 게임을 이기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

‘체스에서 승리하면 되겠지만 만일의 사태도 염두에 두어야 해.’

게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 탱킹을 하던 탱커가 소환된 암살자에게 일격을 맞고 사망했다.

다시 일대이로 역전이 되며 궁수에게 불리해졌다.

궁수는 최대한 도망치며 활시위를 당겼지만 민첩한 암살자와 방어 마법과 버프를 두른 베틀 메이지를 혼자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체스는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전장은 게일 쪽에게 불리해졌다.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상대의 체스 말이 더 적다는 거겠지만 그만큼 경기장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슬슬 끝을 보지.”

“음······.”

게일은 작게 침음을 삼켰다.

방금 전 비숍이 잡힘으로써 상황이 대등해졌다.

퀸과 폰 둘만이 남은 체스판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게일은 상대편 퀸을 잡을 기회가 생겼지만 그렇게 하면 이쪽도 퀸이 잡힘으로 폰 둘이 남게 된다. 폰이 상대편 진형으로 가면 킹을 제외한 모든 말로 변하는 걸 감안하면 게임이 길어지는 양상이 된다.

그리고 중년인의 폰이 더 앞에 전진해 있는 걸 생각하면.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후, 이쯤에서 히든카드를 출정시켜야겠군.”

“호오, 숨겨둔 수가 있었나? 판을 뒤집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중년인은 잠시 옆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바라봤다.

중년인의 수하들은 모두 생존해 있었고 게일의 파티원들은 이제 셋밖에 남지 않았다.

육대삼의 대결은 무언가 변수가 없다면 그대로 싱겁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게일은 잠시 승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에 승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그럼 넘겨주신 퀸은 잘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천만에. 너의 퀸도 죽게 될 테니.”

중년인의 퀸이 잡히는 순간 경기장에 괴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

“버서커인가. 안 좋은데.”

승현은 붉게 물든 눈동자를 한 거구의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다.

베틀 메이지, 암살자, 기사, 레인저, 흑마법사, 머스킷 유저 그리고 버서커까지.

다양한 직업군에 조합도 없지만 다들 개인이 강력한 힘을 내는 직업이다.

특히 버서커는 일대일에 있어서는 최강이라 불리는 직업이다.

그런 개개인이 모여서 무척이나 강력한 조합이 되었다.

“잠시 내 퀸을 감상하지.”

“게임을 진행하시죠.”

“여유를 가지는 것도 전략. 이 게임의 제한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염두에 뒀어야지.”

“······후.”

게일은 중년인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게임에 제한시간이 없는 것도 전략에 들어갈 수 있다.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들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여태까진 게일에게 맞춰주던 중년인은 잠시 경기장을 바라봤다.

버서커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대결이 난장판이 되었다.

사제와 물리 딜러 둘만이 남은 상황에서 무작정 돌진하는 버서커를 막아선 두 딜러는 옆에서 버서커를 보좌하는 다른 이들에게 막혔다.

버서커의 대검이 그대로 사제의 심장을 관통해버리고.

다음 상대를 찾아나서는 버서커였다.

사제가 사라진 두 딜러는 누적되는 데미지를 버티지 못했다.

차례로 쓰러지는 두 명을 끝으로 경기장에는 오직 중년인의 선수만이 남게 되었다.

그마저도 선수가 소환되는 곳을 향해 활과 머스킷이 조준되어 있었고 흑마법사와 베틀 메이지도 각각 마법을 준비한 상태였다.

입장하는 순간 일제히 공격을 받을 건 불 보듯 훤했다.

“그럼 너의 히든카드를 확인해볼까?”

중년인의 말에 승현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저 준비된 전장에 입장하게 되면 바로 불리한 전투에 임해야 한다.

추정되는 상대방의 레벨은 모두 600레벨로 사실 게일 파티로서는 전투로 이기긴 어려운 구조였다.

‘600레벨 유저 일곱과 싸운다라······.’

승현은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과거라면 불리한 입장에 절망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 오히려 혈기가 끓어올랐다.

승현은 곳 경기장으로 소환되는 걸 느꼈다.

소환과 동시에 날아드는 살기에 승현은 준비했던 대로 기어스를 사용해 몸을 숨겼다.

성인 남성 키에 육박하는 커다란 기어스는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공격을 한 차례 받아낸 승현은 기어스를 세워둔 채 타르샤를 소환하고 머스킷 유저 뒤로 이동했다.

“흡!”

푹.

양손에 쥔 검은색 검신이 그대로 머스킷 유저의 목과 심장에 꽂혔다.

승현은 그대로 시체를 끌고 날아드는 베틀 메이지의 공격을 막은 후 흑마법사에게로 이동했다. 흑마법사의 뒤로 이동한 승현은 흑마법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검을 휘둘러 검상을 남겼다.

그리고는 흑마법사의 어깨를 짚고 그를 뛰어넘어 어느새 다가온 암살자와 레인저의 공격을 피했다.

둘의 공격이 빗나가자 바로 베틀 메이지의 완드가 승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승현은 착지와 동시에 그림자를 일으켜 완드를 막고 기사의 참격을 한쪽 검으로 막고 다른 한쪽으로 버서커의 대검을 받았다.

카앙!둘의 검을 한손으로 막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무게가 실린 장검과 대검이니 오죽하랴.

승현은 잠깐의 대치 이후로 다시 다른 이의 그림자로 이동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바로 마법과 화살이 꽂혔다.

기습으로 처리하는 건 머스킷 유저가 마지막일 것이다.

600레벨 정도가 되면 바로 뒤로 이동하는 기척 정도는 바로 잡아낼 테니까.

승현은 곧바로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무기들을 그림자에서 하나씩 꺼내어 조종하기 시작했다. 몇몇 개는 유일함 등급이고 나머진 다 특별함 등급의 무구들이다.

카가가강!!

각자에게 날아드는 무구에 합을 맞추며 공격해오던 이들이 주춤거렸다.

승현은 그를 놓치지 않고 흑마법사에게 집중해 멸마의 창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멸마의 창은 그대로 흑마법사의 복부를 관통했다.

승현은 바로 창의 그림자로 이동해 창을 들어 올려 휘둘렀다.

그에 창에 꿰뚫린 흑마법사의 상처가 크게 벌어지며 창에서 빠져나와 멀리 날아갔다.

아마도 이 공격으로 흑마법사는 당분간 전투에 참여하기 힘들 거다.

“후아, 가장 손쉬운 이들은 처리했고. 남은 직업이 좀 힘들겠는데?”

승현은 살기를 뿌리며 노려보는 이들의 면면을 보며 말했다.

그런 승현의 전투를 잠시 동안 감상한 게일과 중년인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과연 히든카드라 자랑할 만하군.”

“저 또한 이 정도일 줄은.”

“보아하니 아무래도 암왕 같은데 말이야. 암왕이라면 저런 전투력이 이해가 되지.”

“그렇습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이 이해가 되는 직업이라.”

“후후, 나 대군주 팔라이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인물이니 당연히.”

중년인은 승현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 중년인의 발언을 게일은 흘려듣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체스는 이어졌다.

각자 룩과 퀸, 두개의 퀸으로 폰을 변경하면서 게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승현이 남은 이들과 혈전을 벌이는 동안 체스판에서도 숨 막히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 폰을 퀸이 아닌 룩으로 변경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게일은 두 개의 퀸을 가지고 룩을 먼저 압박했다.

쉽게 끝나지 않는 게임만큼이나 전투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상대하면 승현이 압승을 거둘 수 있겠으나 합공을 받다 보니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200레벨은 더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일대오의 승부는 점점 승현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는 중년인은 가볍게 턱을 쓸었다.

“이거야. 조커를 가진 상대를 이기긴 힘들어 보이는군.”

“그의 도움을 받은 건 정말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그 또한 너의 수하인가?”

“아니요.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암왕은 홀로 독보하는 존재.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위인은 아니야.”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치열하게 전투를 펼치는 승현은 결국 한 명을 또 다시 쓰러트리며 숫자를 줄였다.

“이 게임은 나의 패배로 하지. 군주에게 강력한 동맹도 능력이니까.”

“후아, 즐거운 승부였습니다.”

게일은 진이 빠진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에 중년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차고 있던 검을 넘겨주었다.

“이 검은 나, 대군주 팔라이드가 내리는 증표이다. 이 검을 받으면 대군주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길은 결코 영광만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 길을 가겠는가?”

“가겠습니다.”

“좋다. 그러면 이 검을 받아라.”

게일은 검을 받았다.

그러자 검에서부터 그에게 강렬한 빛이 전이되듯 퍼져나갔다.

한편 승현은 갑자기 사라진 전투 상대에 김이 팍 빠지는 표정을 지었다.

“쩝, 이제 막 몸이 달아올랐는데 말이야.”

텅 빈 경기장에 혼자 남은 승현은 이내 어디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어느새 남은 두 명의 파티원과 게일이 옆에 서 있었다.

장소는 들어왔던 미궁 꼭대기였는데 석상의 잔재도 사라지고 없었다.

게일은 주위를 둘러보는 승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특별한 직업으로 전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속했던 일이니까요.”

“이 미궁에 오셔서 얻은 게 없으실 텐데 많이 서운하시겠습니다.”

“하하, 아무래도 조금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사례금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세요.”

게일은 창고에서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큰 돈주머니를 꺼내 승현에게 주었다.

거절할 이유가 하등 없는 승현으로서는 고맙게 돈을 받았다.

“마침 돈이 다 떨어져가던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잘 쓰겠습니다.”

“친구 신청하면 받아주시는지요?”

“아, 물론이죠.”

게임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 신청을 걸었다.

승현의 세 번째 친구가 된 게일은 다시 한 번 승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과 함께 미궁을 떠났다.

승현도 떠나는 그들과 합류해 인근 마을에 도착해 접속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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