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날아드는 단검에 승현은 얼른 몸을 뒤로 뺐다.
뒤로 몸을 빼기 무섭게 다시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단검들.
단검의 그림자에서부터 다시 단검이 튀어나오고 바닥에 지는 단검의 그림자에 단검이 빨려 들어갔다.
촘촘하게 짜여진 비단처럼 공간 자체에 틈을 허용하지 않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단검들에 승현은 잠시 자리에 멈칫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단검은 다시 승현을 압박했다.
그림자가 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단검이 튀어나왔고 또 사라졌다.
사방에 켜진 촛불 때문에 곳곳에 그림자가 생겨나 있는 상황.
승현은 피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무기를 들어 단검을 쳐내고자 했다.
쑤욱.
“젠장······!”
하지만 단검이 무기와 부딪치기 직전 승현의 무기 표면에 생긴 그림자 때문에 단검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쳐낼 수 없다면······.’
승현은 이번에 얻은 룬을 전신에 감싸기 시작했다.
룬은 빠르게 온몸을 감쌌는데 마치 은색 전신갑옷을 입은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캉캉캉캉―!!
몸을 때리는 단검들의 충격이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거의 총알에 비견되는 속도로 날아드니 당연한 걸 수도.
‘큭, 충격이 너무 강해.’
그 충격에 승현은 속으로 신음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광경을 저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있던 여인은 팔을 들어보였다.
그에 승현 앞에 진 그림자가 갑자기 일어나며 승현의 턱을 가격했다.
“컥!”단검에 이어서 이번엔 그림자가 움직이며 승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로 치솟는 그림자에 내딛는 땅이 부룩 올라오기도 하고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잠시 자리에 멈추면 그대로 수십 개의 단검이 몸을 때리고 지나갔다.
승현은 이대로 가다간 룬의 내구도가 다 달아 없어질 거라 생각하며 방법을 모색했다.
‘저쪽이 그림자를 이용하면 이쪽도 같은 방법으로 응수해야겠지.’
결정을 내린 승현은 그대로 날아드는 단검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기술을 사용했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단검 때문에 이동 거리는 극히 짧았지만 잠시나마 단검과 그림자의 파상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몇 차례 그 방법을 사용해본 승현은 적응을 하고 자리에 서서 멸마의 창을 들어 여인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가며 가속을 시작하는 창의 그림자로 연이어 이동하니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러나 여인의 손짓에 창이 허공에 막혔다.
승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며 여인에게 달려갔다.
여인은 앉은 자리에서 그저 손짓 하나로 승현은 가지고 놀았는데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모든 게 살아 움직이며 승현을 압박했다.
그렇게 여인에게 거의 접근했을 때.
순간 그림자에서 수천 개의 검은색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승현은 그걸 알아차리고 기어스를 사용해 전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았다.
꽈가가강!!
“윽······.”
방패를 때리는 그것의 힘이 상당했다.
절로 뒤로 밀리려는 걸 억누르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억지로 앞으로 걸음을 옮긴 승현은 기어코 여인의 앞에 섰다.
“허억, 허억······.”
“수고했어. 이물을 이용해 잘도 여기까지 왔네.”
“후우, 그래도 시험은 통과 아닙니까?”
“물론. 이물을 얻은 것도 네 실력 중 하나지. 그런 이물들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승현은 잔뜩 지친 얼굴로 기어스를 작게 줄이고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이 가진 힘은 정말 엄청났다.
앉은 자리에서 사용 가능한 전설적인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그저 여인의 앞에 도착한 것이 전부일 정도.
“나 8대 암왕은 정식으로 어둠을 넘겨주는 바이다. 가까이 와봐.”
“······읍?!”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간 승현은 그녀의 기습적인 입맞춤에 몸을 움찔 떨었다.
달콤하면서도 아찔한 입맞춤과 함께 무언가가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몸에 넘어오면서 알지 못했던 여러 힘들을 깨달았다.
그림자를 조종하는 진짜 방법부터 어둠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암왕의 진정한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르고 여인이 살짝 승현을 밀어 떨어트렸다.
“난 실패했지만 부디 넌 너의 세계를 구하도록 해.”
“그 말은······.”
“그럼 안녕.”
승현은 그녀의 인사와 함께 공간에서 추방되었다.
승현이 정신을 차리자 그 앞에서는 두 개의 석상이 서 있었다.
“암왕이 탄생하였다.”
“우리의 역할도 이로서 끝났다.”
“침입자를 처단할 뿐.”
석상들은 승현을 보며 떠들었다.
이윽고 승현은 여러 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둠을 받아들입니다]
[그림자가 깃듭니다]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전직을 완료하였습니다]
승현은 각 메시지를 보고 상태와 기술을 확인했다.
[상태]
이름: 최승현.
레벨: 600.
직업: 암왕.
근력: 515. 체력: 526. 지력: 441. 정신력: 442. 마력: 503
추가 능력: 0.
동화율: 11.83%
-신수, 알타의 힘을 받아들여 화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화상을 입지 않습니다.
-신수 알타의 힘을 받아들여 화염에 대한 친화력이 생깁니다.
-어둠을 받아들여 어둠과 친숙해집니다.
-그림자가 깃들며 항상 그림자와 동화되어 있습니다.
[기술]
고유결계 : 그림자 신전
-전설적인. 0레벨
-지정 구역 혹은 대상을 고유결계로 이동시킵니다.
소환 : 암검, 타르샤
-전설적인. 1레벨
-어둠의 검 타르샤를 소환합니다.
잠식
-유일함. 1레벨
-물체를 그림자 안으로 보낼 수 있으며 자신 또한 그림자 안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밟기
-등급: 유일함. 6레벨
-대상의 그림자로 이동합니다.
이면 지배
-등급: 유일함. 5레벨
-대상의 그림자를 조종해 물리력을 발휘합니다. 한 번 물리력을 부여받은 그림자는 하나의 객체가 됩니다.
물체 고정
-등급: 유일함. 6레벨
-물체와 자신을 고정시킵니다. 고정된 물체는 일정 거리에 한해서 조종이 가능합니다. 현재 고정 가능한 물체는 32개입니다.
배신
-등급: 유일함. 4레벨
-상대방의 그림자가 상대방을 제약합니다.
상태에 두 줄의 설명이 추가되고 세 개의 기술이 추가되었다.
또 동화가 사라지면서 동화를 사용해야 사용이 가능하던 기술들의 제약이 사라졌다.
그밖에도 몇 개의 기술에 설명이 변경되었다.
각 능력 모두 50씩 올랐는데 이건 아무래도 어둠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 같다.
안 그래도 한 쪽에 몰아서 능력을 찍는 다른 이들과 달리 골고루 능력을 올리는 승현에게는 좋은 일이다.
“흠, 고유결계라면 첸과 아이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 같고.”
승현은 암검 타르샤를 소환해봤다.
승현의 그림자에서 불쑥 쏟아난 두 개의 검이 승현의 손에 감겼다.
단검이라기엔 길고 장검이라기엔 짧은 그런 검이었는데 일체가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에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살짝 그어보니 단단한 대리석임에도 상처가 남았다.
“좋은 검이네. 다음은 잠식인가.”
승현은 소환한 타르샤를 해제하고 물체 고정으로 허공에 띄워둔 무기 중 하나를 그림자 안에 넣었다.
그러자 무기가 안으로 쑥 들어갔다.
일일이 창고를 열어 무기를 꺼내거나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도록 주변에 무기를 띄워둘 필요가 없어졌다.
승현은 바로 무기들은 모조리 그림자 속에 넣었다.
“그보다 물체 고정의 숫자가 배로 늘었군. 이걸 언제 다 채우지?”
32개나 되는 물체를 채워야 하는데 암왕의 무덤에서 본 여인처럼 수백 개의 단검으로 채우기엔 무리가 따랐다.
좋은 단검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모두를 한꺼번에 조종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그녀의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지 알 수 있다.
수백 개의 단검과 그림자를 조종하면서 능동적으로 자신을 공격했으니까.
“재밌는 생각이 났다.”
승현은 문뜩 떠오른 재밌는 생각에 멸마의 창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림자를 향해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승현은 점점 멀어져 물체 고정의 범위를 넘어간 창을 감지했다.
과연 그림자 안은 얼마나 넓고 멀까란 생각에서 시작된 실험.
무한히 가속하는 멸마의 창 특성상 과연 어디까지 가속될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약 4분 쯤 흘렀을까.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찰나의 순간 멸마의 창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걸 깨닫기도 전에 그림자를 뚫고 튀어나온 창은 그대로 천장을 부수며 위로 날아갔다.
쾅, 쾅, 콰앙!
“와······.”
순식간에 몇 개의 층을 부순 창은 저 멀리 박혔다.
100미터까지 확장된 조종 범위에 든 걸 보면 약 14개의 층을 부순 것 같았다.
“미궁을 부수지 말라, 암왕.”
“우리는 미궁을 수호한다.”
“아, 미안.”창을 회수하며 승현은 자신을 나무라는 석상에게 사과했다.
무한히 가속한 창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몇 미터는 되는 두꺼운 천장을 그대로 뚫었다.
이 위력이면 어지간한 건 다 뚫어버릴 것이다.
“인지하기도 전에 날아간 걸 보면 대단한데?”
이걸 잘만 활용하면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나 장해물은 우습게 부술 것이다.
그림자 안의 공간이 생각 이상으로 광활하다는 걸 알게 된 승현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미궁을 벗어났다.
미궁 위로 올라가자 유저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소문을 듣고 모인 것 같은데 다들 미궁의 끝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달려들고 있었다.
미궁 끝에는 확실한 보상이 있다.
승현이야 이곳에서 전직을 함으로서 얻을 수 없게 되었지만.
미궁을 벗어난 승현은 다음으로 이번에 새롭게 생겨난 두 미궁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두 미궁도 다 직업 관련이라 들어갈 순 없겠지만 지금 시간이라면 아무래도 아직 누구도 미궁 끝에 다다르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면 미궁의 주인공을 미리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포탈을 타고 북부에서 중부로 이동한 승현은 곧 발견된 미궁으로 향했다.
중부의 미궁은 높은 탑인데 밖에서 센 층수로는 약 50층이라고 한다.
“도착했는데, 뭐지?”
입구가 상당히 한산했다.
원래라면 잔뜩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정상인데 아무도 없었다.
미궁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 앞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승현이 등장하니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현에게 말했다.
“여긴 엠페러 길드가 공략 중이다. 돌아가도록 해.”
“엠페러 길드?”
기어 최고의 길드이자 영웅이라 불리며 영웅 중 최고란 영웅왕 게일 프리스가 길드장으로 있는 곳이다.
영웅 중 최강을 꼽으면 당연 마력으론 아이실을 물리력으론 링첸을 뽑는다.
하지만 최고를 뽑으라고 하면 모두가 게일을 뽑는데 그의 리더십과 지휘능력 그리고 그가 가진 여러 기술들 때문에 그를 최고로 뽑는다.
그의 무력 자체는 랭커들과 비교하면 상위권이긴 하다.
그러나 그의 진면모는 누군가를 지휘하는데 발휘한다.
그가 가진 수많은 버프 기술은 자신을 강화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그의 친위대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사용된다.
게일의 친위대에는 영웅이라 불리는 최상위 랭커 100인 중에서 무려 21인이나 참여해 있다. 또 상위 랭커들도 다수 참여해 있어서 사실상 게일에게 다가가기 전에 그들과 먼저 싸워야 했다.
인류의 희망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게일의 엠페러 길드는 거대한 축을 이뤘다.
지금도 굵직한 여러 길드가 존재하지만 아마 독보적인 길드는 엠페러 길드일 것이다.
하지만······.
“엠페러 길드라고 이렇게 길을 막는 건 아니지.”
“레벨 좀 높은 것 같은데 오늘 막 랭킹 시스템이 도입됐다. 거기에 유승우을 검색해. 대충 너랑 나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거다.”
“그래? 미안하지만 우리 사이의 차이는. 흠.”
승현은 말을 아꼈다.
600레벨은 그냥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도 승현이 확인한 랭킹에 600레벨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최승현 그 혼자뿐이었다.
나머진 다 500레벨 중반에 멈춰 있었다.
랭킹 1위인 승현과 레벨 차이가 약 60레벨 정도 차이가 난다.
60레벨이면 능력치만 해도 180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승현은 영약과 알타의 심장 그리고 이번에 어둠을 받으면서 얻은 추가 능력들 덕분에 그 차이가 더욱더 크다.
100의 힘 차이는 어린아이와 성인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걸 잘 아는 승현이기에 그저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대충 차이를 알았으면 물러가라. 어차피 이 미궁은 우리 길마님의 거니까.”
“어째서?”
“후, 하여간. 우리는 신사니까 설명해주지. 각 이 미궁은 길마님의 임무와 관련 있는 장소다. 아무리 그쪽이 미궁을 끝까지 올라도 보상은 받을 수 없다 이거야. 알아들었으면 다른 미궁으로 가봐.”
“그래? 그래도 미궁 클리어 보상은 있을 것 같은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우리 길드가 모범 길드라고는 해도 유저를 공격 안 하는 건 아니야. 이쯤 말하면 알아들어.”
“승우, 같은 동양인이라고 너무 봐주는 거 아니야?”
“데이빗. 이놈은 내가 알아서 할게.”
그들을 보며 승현은 가볍게 일행들의 그림자 뒤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미궁 입구로 이동한 승현에 다들 놀란 눈으로 승현을 바라봤다.
“그럼 실례.”
“이봐! 칫, 공격해!”
순간 반응한 한 일행이 그대로 커다란 도끼로 승현을 찍었다.
승현은 룬이 둘러진 왼팔로 도끼를 잡았다.
쿵!
“어, 어어?!”
“흠, 도끼 좋아 보이는데.”
우드득, 캉!
“미안하게 됐어.”
승현은 힘을 주어 도끼를 그대로 부숴버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당황한 엠페러 길드원들은 급하게 귓속말로 이 사실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