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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19화 (19/111)

19화

결론만 짧게 말하자면 총 아홉 번 사망했다.

승현에게 시작의 팔찌가 없었다면 정말로 스무 번은 족히 죽었을 거다.

덕분에 시작의 팔찌의 내구도가 어느새 60밖에 남지 않았는데 앞으로 아주 중요할 때 말고는 쓰지 않기로 했다.

사망 페널티로 떨어진 레벨은 무려 40레벨이나 되었다.

그래도 이로서 룬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으니 크게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레벨을 복구하기 위해 사냥터를 돌아다닌 승현은 미궁이 열리기 하루 전에 다시 6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승현은 암왕과 연관된 미궁이 열릴 장소에 미리 도착했다.

북부에 위치한 고요의 숲이란 곳인데 이 숲 자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하 미궁이 생긴다. 40층으로 된 미궁으로 최고 레벨은 550레벨이다.

인근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며 승현은 다음 날을 기다렸다.

자정이 넘어가자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진을 감지했다.

그와 동시에 승현에게 임무가 떨어졌다.

[임무 : 계승]

-북부, 고요의 숲에 숨겨졌던 미궁에 입장해 암왕을 계승하세요.

“암왕의 후예라서 그런지 임무가 뜨는구나.”

임무를 확인한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유저 전체에게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섯 개의 미궁이 열렸습니다. 미궁에 입장하여 보상을 획득하세요]

그 메시지를 본 승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세 개가 아니고 다섯 개지?”

승현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 세 개의 미궁이었다.

그런데 메시지에는 다섯 개의 미궁이 열렸다고 알려왔다.

두 개나 되는 미궁이 더 열린 셈인데 이 미궁이 모두 전직과 관련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떤 이들이 승현처럼 특수한 직업을 얻었다는 말이 된다.

“뭐가 바뀐 거지? 내가 회귀하면서 뭔가 크게 바꾼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에 잠긴 승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크게 비튼 것이 없단 걸 떠올리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두 개의 미궁. 이건 기존의 세 곳이 모두 주인이 생기면서 추가로 열린 걸 수도 있어. 크게 변한 건 내가 암왕의 후예가 되었다는 것뿐이니까.’

우선은 임무를 해결한 후에 새롭게 열린 두 미궁에 방문하기로 하고 여관을 나섰다.

고요의 숲 쪽으로 다가가자 그 자리에는 숲 대신에 거대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뚫린 입구 중 한 곳을 골라 안으로 들어간 승현은 가장 처음 등장하는 미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미궁은 과거 승현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때문에 미궁 1층에 있는 미로의 길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신이 없네.”

이리저리 미로 안을 돌아다니며 길을 찾았다.

이틀을 소모해 미로를 통과한 승현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적어도 20층까지는 무난하게 지나칠 수 있었는데 2층에는 100레벨 몬스터가 등장하고 그 후 차차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승현은 등장하는 몬스터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기술을 이용해 빠르게 미궁을 돌파했다.

각 층마다 있는 보스 몬스터만 정리해 길을 열었다.

미궁이 열리고 단 일주일 만에 30층에 도착한 승현은 등장하는 몬스터를 한 마리씩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미궁이 등장한 지역의 정보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승현은 첸에게도 미궁과 임무에 대해 물었는데 그녀 또한 미궁과 관련된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확인은 안 했지만 대마법사 아이실 또한 관련 임무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셋의 공통점은 모두 베타테스터 때 전직의 실마리를 얻었다는 거니까.

[보스가 등장합니다]

30층 끝에 도착한 승현은 마지막 보스와 조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서오라, 후인이여.”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개의 석상으로 된 마지막 보스는 승현에게 말을 걸었다.

전투 준비를 하던 승현은 그런 보스의 반응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말했다.

“나는 계승을 하러 왔다. 길을 열어라.”

“자격을 갖춘 네게 길을 연다.”

두 개의 석상은 뒤에 있는 거대한 철문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과거엔 꿈쩍도 하지 않던 문이 열렸는데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가면의 효과로 어두운 곳을 훤히 볼 수 있는 승현임에도 저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경고한다. 이곳은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불가해의 장소.”

“어둠의 왕이라 불린 자의 엄숙한 무덤.”

“속지 마라.”

“너를 믿지 마라.”

말을 마친 두 석상은 활짝 열린 문의 좌우에 섰다.

석상의 말을 귀담아들은 승현은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특수 던전, 암왕의 무덤에 입장합니다]

[모든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던전 내에서 접속을 종료할 경우 다시는 던전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자 메시지가 울렸다.

한 발자국 더 안으로 들어가니 메시지가 저절로 사라졌다.

승현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은 인간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다. 또 어둠은 상상력이란 양분을 먹고 자라 공포를 키운다.

승현도 인간이기에 미지와 어둠에 대한 공포가 무의식 속에서 자라났다.

한참을 걸었지만 승현은 어느 곳에도 다다를 수 없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저 무언가 변화가 찾아올 때까지 걸을 뿐이었다.

체감 상 하루는 걸은 것 같았다.

불의 정령을 소환해 주위를 밝혀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둠은 가시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보고 방향을 틀어보기도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혹시 몰라 시작의 팔찌를 사용해보기도 했다.

모든 디버프를 해제하는 이 능력이라면.

하지만 아까운 내구도만 떨어질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났지만 승현은 아직 자신이 있었다.

이런 건 테스트 서버 때에도 겪어봤다.

그때도 며칠은 똑같은 풍경만 보며 걷지 않았던가.

시간 감각이 사라졌지만 접속을 끊을 순 없었다.

처음 발을 들일 때 떠올랐던 메시지가 발목을 잡았다. 다시는 던전에 입장할 수 없다는 건 임무는 물론 암왕의 진정한 힘을 계승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과연 이 던전은 뭘까?”

승현은 일부러 소리를 내 생각을 말했다.

던전에 상당히 오랜 시간을 머무른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쭉 걷기만 하다가 지쳐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석상들의 말을 떠올려보자. 속지 말고, 날 믿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무작정 걷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자리에 앉은 승현은 석상의 경고를 떠올렸다.

그 경고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승현은 생각에 잠겼다.

당장 떠오르는 건 이 공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었다.

이 공간 자체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

하지만 어떻게 속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고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속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만이 들 뿐이다.

생각이 더해갈수록 그런 의문을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왜 확신으로 변했냐면 이런 종류의 던전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악명도 자자한 도플갱어의 서식처란 곳인데 이 던전은 던전이라기엔 너무한 곳이다.

몬스터는 나오지 않고 오직 시시각각 변화하는 던전의 지형을 넘어서야 한다.

랜덤하게 변하는 지형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이 그 던전의 특징이다.

이 암왕의 무덤도 그것과 같지 않을까?

“하지만······.”

그걸 알아도 파훼법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하던 승현은 무모한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이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의 불꽃을 손에 든 승현은 모든 마력을 쏟아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방에 날리기 시작했다. 불꽃은 사방으로 날아가며 뜨거운 열기를 퍼트렸다.

승현이 택한 방법은 다른 게 아니라 지형을 파괴하는 것이다. 실제로 도플갱어의 안식처 또한 일정 지역을 파괴하면 환각과 같은 던전 내부가 원래 형태로 돌아온다.

승현의 생각이 맞아들었을까.

검은 불길은 빠르게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후우,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썼더니 머리가 핑핑 도네.”생각이 너무 잘 들어맞은 건지 어느새 눈에 보이는 거라곤 모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뿐이었다.

그나마 이 불꽃이 소유주에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아니었다면 열기에 타죽었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빛이 보인다.”

저 멀리서부터 서서히 한두 개씩 어둠에 구멍이 생겼다.

승현은 그곳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처음과 달리 벽처럼 단단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꺼내놓았던 팔콘을 손에 들고 강하게 내리치자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벽 같은 것이 무너져 내렸다.

어둠이 조각조각 떨어지며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을 싸고 있는 돔에는 빽빽하게 불이 켜진 양초들이 걸려 있었다.

잠시 뒤로 돌아보니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막고 있었다.

승현은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지간한 축구장보다도 넓은 광장을 걷던 승현은 광장 중앙에 있는 등받이가 긴 황금색 의자와 그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고혹적인 미모의 여인은 오만한 자세로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여인에게 한눈을 팔고 있을 때였다.

여인의 손가락이 까딱하는가 싶더니 순간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목걸이가 빛을 내며 승현의 몸을 감쌌다.

여태까지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던 시작의 목걸이가 발동한 것이다.

“······!”

“쯧쯧, 이번 대의 후예는 너무 무르군.”

시작의 목걸이 효과로 인해 목숨을 구한 승현은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잠시 뒤를 돌아보자 수백여 개의 단검이 빳빳하게 선 채 빛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만약 시작의 목걸이 효과인 치명적 공격 방어라는 효과가 없었다면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죽었을 것이다.

수백 개의 단검은 승현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어서 다시 여인을 보자 어느새 눈을 뜬 여인이 승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서 와라. 후예여. 이곳은 암왕의 무덤. 역대 모든 암왕이 잠든 초월적인 공간이다.”

“당신이, 암왕입니까?”

“건방지구나. 꼬마야. 한 번 던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니?”

“······아닙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감당하기 힘든 살기에 승현은 얼른 고개를 저어보였다.

감히 추정하는데 살기로 이런 압박감을 줄 수 있다면 2,000레벨은 넘어야 할 거다.

“말과 행동은 공손히. 예의를 갖추어라.”“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씩이나.”

여인은 피식 웃은 후 다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무언가 대항하기 힘든 강한 힘이 승현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여인 앞에 도착한 승현은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 다시 여인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니 절로 양 무릎이 꿇려졌다.

여인을 올려다보게 된 승현은 이 공간에서 그녀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허례허식을 싫어해. 하지만 실리는 꼼꼼히 챙기는 편이지.”

“······.”

“간단한 시험을 주지. 이 시험에 통과하면 널 암왕으로 인정하며 어둠을 넘겨줄 거야. 하지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자격을 박탈할 거다. 자, 그럼 다시 내 앞으로 걸어오렴.”

승현은 그 말을 듣는 즉시 다시 저 멀리로 날아갔다.

다시 처음 광장을 보게 된 시점으로 온 승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좋아.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해내고 본다.”

승현은 이 시험을 빠르게 끝낼 생각을 해다.

그와 함께 바로 동화와 신수화를 활성화시키고 각종 버프를 걸었다.

급증한 근력을 느끼며 승현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쿵.

강하게 땅을 찬 승현은 총알처럼 암으로 뛰었다. 그 속도는 어떤 육상 동물보다도 빨랐다.

하지만 승현은 이것이 왜 시험인지 다음에서야 알 수 있었다.

슉슉슉!

“······ 이런!”

날듯이 뛰는 승현은 곳 사방에서 쏟아지는 단검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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