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3층에 도착하니 그나마 한두 명 있던 유저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가볍게 몸을 풀며 점검을 마친 승현의 주변에 다섯 자루의 무기가 떠다녔다.
도끼, 창, 검과 단 검 두 자루였는데 손만 뻗으면 언제든 손에 집을 수 있는 위치에 각각 떠있었다.
“이게 조종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승현은 허공에 있는 무기들을 바라봤다.
레벨이 오르면서 총 5개의 물체를 고정할 수 있게 된 승현이다.
하지만 그 모든 무기를 조종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다섯 개를 조종하는 게 능숙해졌지만 아직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건 힘들다.
여기에 동화를 써서 그림자까지 활용하면 정말 머리가 아찔하다,
잠시 이리저리 무기들을 조종해보곤 바로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걸으면서 정령을 소환하여 무기에 속성을 부여했다.
3층의 주요 몬스터는 유령기사이다.
유령이다 보니 마력을 이용한 공격만 통해서 무기에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유령이라서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3층에서는 동화를 쓸 일이 없을 듯하다.
“가볍게 몸 좀 풀어볼까?”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유령 기사를 본 승현은 단검 두 자루를 잡아들고 유령기사에게 날렸다.
승현은 전투스타일을 새롭게 바꾸었다.
날아간 무기가 유령기사에게 데미지를 주고 다시 돌아오고 승현은 검을 들어 유령기사를 베었다. 그와 동시에 도끼가 유령기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고 창이 가슴을 꿰뚫었다.
동시에 다섯 개의 무기가 유령기사를 공격했다.
직선으로 움직이긴 하나 그 속도가 빠르고 날카로워 유령기사는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
승현은 가장 가까운 무기를 잡아 무기를 바꿔가며 유령기사를 압박했다.
1분가량이 지났을까.
400레벨에 육박하는 유령기사는 곳곳에 상처를 입고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전투를 마친 승현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3층의 구조는 미로로 되어 있다.
허나 과거에 이곳에서 사냥하며 레벨을 올렸던 승현에겐 익숙한 장소다.
훤히 들여다보듯 길을 나서는 승현은 이틀 만에 보스룸에 도착했다.
넓은 석실에 도착하니 거대한 석관이 들썩이며 열렸다.
[보스가 등장합니다]
“안식을 방해하는 자 누구냐!”
“조용히 기어스나 내놓고 사라져라. 유령.”
승현은 석실에서 일어나 외치는 화려한 갑옷의 반투명한 유령기사에게 창을 날렸다.
그런 창을 무려 잡아챈 보스는 창을 옆으로 던지고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으니. 바로 승현이 던진 창은 그대로 일어나 방심한 유령기사의 등에 꽂혔다.
기술에 의해 마력폭발이 일어나 유령기사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불타올라라.”
“크아아!!”
창이 박히고 승현은 창에 깃든 정령에게 불길을 일으키길 명령했다.
그러자 창에서부터 불꽃이 피어오르며 유령기사를 삼켰다.
잠시 유령기사가 고통의 비명을 지를 때 승현은 마력을 잔뜩 머금은 불덩이를 연신 날리기 시작했다.
다가가지 않고 철저히 원거리에서만 공격을 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유령기사와 일정 거리까지 가까워지면 온갖 디버프를 받는다.
그래서 이 던전을 공략할 때에는 탱커 두 명과 사제 네 명 마법사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령들이 물리력이 안 통하는 대신에 마력에는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승현이 전투스타일을 고친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유령기사의 디버프는 중첩되기 때문에 근접 물리 딜러에게는 완전 쥐약이다.
때문에 승현은 정령과 원거리 타격으로 완전히 스타일을 전환한 것이다.
이렇게 거리를 벌리고 싸우면 유령기사는 그저 피통 많은 샌드백에 불가하기 때문이다.
“비열한 침입자. 당당히 나서서 싸워라!”
“싫다, 통나무야.”
유령기사는 승현에게 돌진하며 다가왔지만 그만큼 승현은 거리를 벌렸다.
권갑에 내장된 기술과 정령의 힘. 그리고 무극심법의 효과와 일격필살의 효과 등으로 데미지를 꾸준히 넣었다.
지루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보스의 추정 레벨은 대략 400대 후반인데 체력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놈의 별명은 통나무다.
공략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슈팅 게임 형태가 되다 보니 과녁처럼 맞추는 통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크오오―!”
보스의 색이 붉게 변했다.
2라운드의 시작이었다.
붉게 변하면 폭주 상태로 변하며 디버프의 효과가 더욱 강해지고 범위가 늘어난다.
대처법은 역시 원거리에서 계속 마력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
승현이 마법사나 사제처럼 광역에 높은 화력을 가진 기술은 없지만 꾸준히 피를 깎았다.
장장 6시간에 걸쳐 공격을 먹인 끝에 끝내 보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 드디어 쓰러지네.”
짝짝짝.
그때였다.
뒤에서부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서 있었다.
“이야, 대단하십니다. 인상적인 전투는 잘 봤습니다.”
“김수호.”
“절 아시네요? 매스컴에 별로 노출이 안 됐는데. 한국 분인가 보군요.”
한국 유저로서 김수호와 그의 길드를 모르는 이들은 없을 거다.
놈의 악행은 상당히 유명한데 기득권을 쥔 순간부터 벌어진 일련의 일들에 한국 헌터들은 둘로 양분된다.
한국의 전력을 깎아먹은 암적인 존재이다.
“뭐, 한국인 맞습니다.”
“여기서 한국인 베타테스터라니. 하하, 운이 좋네요. 길이 열려 있어서 들어온 건데 말이죠. 그런데 전설적인 아이템은 수거하셨나요?”
“아직.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건지?”
“후후, 글쎄요. 왜 일까요?”
김수호의 파티원들이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승현의 주변에 떠 있는 무기들을 견제하면서도 언제든 공격이 가능하게 포지션을 잡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승현은 한숨을 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천성이었군.”
“원망하진 마세요. 처음으로 최고 등급 아이템이란 건 그만큼 대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PK를 하시겠다? 날 상대로?”
“당신이 보스를 죽이는 건 아주 인상적이게 봤습니다. 어떤 기술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기술이더군요. 하지만 그에 따른 대처법을 이미 구해놨습니다. 뭐, 마력도 고갈되셨을 것 같은데 깔끔하게 죽으시죠?”
“허, 이거 순 도둑놈일세.”
“후후후, 그리 말해도 양심의 가책은 못 느끼겠군요. 그럼 죽으세요.”
김수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파티원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로 합을 맞춘 듯 승현의 무기를 무시하고 오직 승현에게만 공격이 집중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탱커 두 명에 근접 딜러 세 명, 원거리 딜러 세 명에 힐러 두 명인 풀파티였다.
승현이 몸을 움직일 때에는 공격이 단순해진다는 걸 캐치한 전략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정신없이 공격이 들어오면 무기를 조종하는 게 힘들다.
승현은 단검 두 자루를 손에 들고 공격을 막았다.
다들 고레벨 유저라서 그런지 기술의 조합이나 보유한 기술이 상당해서 막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마력도 거의 고갈되어 동화나 다른 기술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이대로라면 고스란히 기어스를 빼앗길 처지였다.
“니들은 잘못 선택한 거야.”
승현은 공격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다들 코웃음을 쳤지만 승현은 비장의 수가 있었다.
‘신수화.’
불가해 등급의 기술이 지금 이 자리에서 펼쳐졌다.
화르르―.
“물러나!”
승현의 주위로 강한 불길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김수호 파티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승현은 몸에서 주체하기 힘든 강한 힘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신체 능력은 물론 뇌의 활동도 올라갔으며 무극심법마저도 두 배는 더 활성화되었다.
신수화를 사용한 승현의 몸에는 붉은색 선들이 생겨났다. 눈동자와 털의 색 또한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불길이 걷히자 김수호는 변화한 승현에게 물었다.
넘쳐흐르는 힘에 승현은 씩 웃어보였다.
모든 능력이 한순간에 두 배가 된 승현은 땅을 박차고 뛰었다.
다른 기술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능력치만 따지면 거의 800레벨에 육박하는 승현의 근력은 어지간한 버프 기술을 건 것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해주었다.
순식간에 검사에게 근접한 승현은 명치에 주먹을 찔렀다.
“커억!”
가속한 상태에서 그대로 명치에 주먹이 꽂히자 오직 주먹에 담긴 힘만으로 검사의 발이 허공에 떴다.
단 한 방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사망한 검사를 보고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를 시작으로 김수호의 파티원들은 하나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무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다른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능력치의 차이만으로 찍어눌러버렸다.
이제 200레벨 후반에 불과한 그들이 어찌 막을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마법사 한 명이 승현에게 속박 마법을 걸었다. 그러나 높아진 정신력으로 인해 속박마법을 무시하고 움직여 그 마법사의 얼굴을 짓뭉개버렸다.
순식간에 아홉 명을 모두 정리해버린 승현은 충격에 굳어버린 김수호 앞에 섰다.
“이게 끝인 것 같지?”
“무, 무슨 소리지?”
“앞으로 나랑 마주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특히 나중엔 더더욱.”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집단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까?”
“몇 명이 오던 다 상대해주마. 마지막으로 그 인성 좀 고치도록 해.”
진심어린 충고를 끝으로 승현은 그대로 김수호의 목을 날려버렸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김수호의 표정을 눈에 담던 승현은 잠시 입구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전부터 있었던 유저들이 서 있었다.
“그쪽도 제 아이템을 노리고 온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유저들 뒤에서 들리는 청아한 목소리에 승현은 뒤쪽을 주시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등장한 금발의 미녀는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승현은 그녀를 보고 단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대마법사 아이실 트라이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의 등장이었다.
승현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이내 보스를 잡고 열린 또 다른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던전 보상과 함께 아주 거대한 방패가 하나 놓여 있었다.
“기어스를 얻게 될 줄이야.”
던전 보상보다 먼저 기어스에 손을 댄 승현은 기어스의 성능을 확인했다.
[아이템]
하늘의 방패 : 기어스
-등급: 전설적인
-내구도: 100,000/100,000
-하늘문을 지키는 수호자 기어스가 사용한 방패. 모든 충격을 반감시키며 방패를 들고 있는 한 신의 가호를 받습니다. 팔에 장착 가능한 라운드 실드의 형태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기술, 절대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절대방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니 한 번에 한해 어떤 공격이든 상쇄한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공격이든이란 부분이 중요했다.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긴 하지만 이보다 좋은 방패는 없을 거다.
승현은 기어스의 모양을 변경해 팔에 끼고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은 세 개였는데 특별함 등급의 전사 클래스 기술서 하나와 특별함 등급의 장검과 흉갑이 나왔다.
지금 쓰는 장검이 내구도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이니 교체하면 될 것 같다.
보상을 모두 창고에 담은 후 밖으로 나오자 아직 떠나지 않은 아이실이 있었다.
“제게 볼 일이라도?”
“아이실 트라이센이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흠, 최승현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혹시 파티가 없으신 건가요?”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 말이죠.”
승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런 승현의 말에 아이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희와 파티를 맺으실 생각은 없으시겠군요.”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러네요.”
“그 말씀은 필요로 얽힌다면 충분히 파티를 맺으실 생각이 있단 말이군요.”
“뭐, 그렇게 되죠.”
“그럼 우리 친구 등록하지 않을래요?”
아이실의 말에 승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를 알아두는 것도 나중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