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승현의 현란한 검무가 펼쳐지고 리자드 워리어가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리자드 킹을 살펴보니 링첸을 선두로 해서 잘 버티고 있었다.
과연 검제라 불린 여자답게 그녀 또한 위력적인 검술과 기술을 사용하며 리자드 킹을 압박했다.
그녀의 기술이 뭔지는 몰라도 그 강력한 리자드 킹의 검과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공사장에서 날 법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암왕의 후예와 같은 급의 직업이니 어지간히 강력한 기술이 있을 터.
“하아아!!”
콰앙!
링첸의 검과 리자드 킹의 검이 부딪쳤다.
그렇게 잠깐의 틈이 나올 때 파티원들은 일제히 화력을 집중해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아직 다들 200레벨대의 능력을 갖추지 않아서 그런지 공격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링첸의 공격이 먹혀들겠지만 그녀는 리자드 킹의 공격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모든 리자드맨들을 정리한 승현은 바로 보스 레이드에 합류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쥐어 짜 동화를 사용한 승현은 장검을 잡은 채 단검을 던져 리자드 킹의 등 위로 이동했다.
그걸 또 알아차린 리자드 킹이 몸을 회전할 때를 맞춰 일격필살을 발동시킨 장검을 왼쪽 어깨에 박았다.
“키에에엑―!!”
반 이상 박힌 장검에서 마력폭발이 일어나며 큰 데미지를 선사했다.
승현은 그대로 검에 매달려 늘어졌다.
“지금이야!”
점점 벌어지는 상처에 승현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쓰는 리자드 킹을 보며 승현이 외쳤다.
그러자 링첸은 잠시 검을 양손으로 잡고 정자세를 취하더니 그대로 허공을 쾌속한 속도로 베었다.
촤아아악.
“캬아아악!”
기술을 발휘한 것인지 그에 따라 성인키에 두 배가 넘는 장신인 리자드 킹의 목에 가까운 어깨 부분부터 사타구니까지 긴 선이 생겼다.
그 선을 따라 피분수가 일어나며 리자드 킹이 양 무릎을 꿇었다.
승현은 단검을 무릎 쪽으로 이동시켜 무릎으로 강하게 찍어 단검을 등에 박은 후 그를 발판삼아 올라서서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았다.
“마무리다!”
그리고 무극검법을 이용해 그대로 리자드 킹의 목을 깊게 베었다.
“크륵······.”
쿵.
목이 깊게 베인 리자드 킹은 그대로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자드 킹이 쓰러지면서 레벨이 세 개나 올랐다.
아직 100레벨 초중반에 불과한 승현의 레벨을 생각하면 더 올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리자드 킹이 쓰러진 후 저 멀리 위로 치솟은 수직 절벽에 입구가 생겨났다.
아마 저 안으로 들어가면 용살검을 얻을 수 있으리라.
“후, 정말. 승현 님이 아니었다면 시도 자체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아아, 저도 이렇게 유명한 분들을 만나고 레벨도 올렸으니 됐습니다. 또 보상도 좋아 보이고요.”
승현은 슬쩍 리자드 킹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보스에게 데미지를 넣은 만큼 인원수에 맞을 정도로 풍족한 보상이 떨어져 있었다.
방패며 검이며 여러 가지 아이템이 떨어져 있었는데 적어도 희귀함 등급 이상의 물건들이다.
승현은 그중에서 기술서 두 권을 챙겼다.
다행이 기술서들은 다 승현이 익힐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저는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기술서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분배하세요.”
“저도 이번 임무를 위해서 여러분의 도움을 얻은 거니 제 몫도 여러분이 가지세요. 그럼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링첸은 양해를 구한 후 절벽에 열린 입구로 향했다.
남은 9명의 파티원들은 드랍된 아이템을 각자의 클래스에 맞춰서 나누기 시작했다.
하나 둘 파티원끼리 아이템을 나눈 후 링첸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다들 자신들이 얼마나 활약을 했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는데 승현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에 얻은 기술서를 살폈다.
[기술]
유도 사격
-등급: 특별함
-활과 총기에 한해 지정한 대상에게 유도됩니다. 유도된 화살과 총탄은 배로 가속합니다.
전투의 함성
-등급: 희귀함
-전투를 치르기 전 전사들이 의식처럼 행해지는 함성. 체력과 근력의 일시적인 상승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는 궁수 클래스의 기술이고 하나는 전사 클래스의 기술이다.
유도 사격은 궁수 클래스라면 모두가 배우고 싶어 하는 기술이다.
조금만 목표물을 빗겨 쏴도 유도되어 날아가니 속사를 펼칠 때 아주 유용한 기술이다.전투의 함성의 경우에는 전사 클래스로 전직하고 전사 길드에 가입하면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전사와 궁수 그리고 도적 클래스 기술은 어지간하면 익힐 생각인 승현에게는 알맞게 기술서가 떨어진 것인 셈이다.
그 자리에서 기술을 익혀버린 승현은 다시 대화에 참여했다.
후로 얼마 있지 않아서 링첸이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허리춤에는 원래 사용하던 금색 손잡이의 검 대신 낡은 가죽이 둘러진 볼품없는 검이 걸려 있었다.
“오래 기다렸나요?”
“대화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네요. 그럼 이제 다시 올리빈으로 돌아가죠.”
“그럽시다. 아이고, 오늘 하루는 숙면하겠어요. 정말 피곤하네요.”
다들 돌아온 그녀를 반기고는 숲을 벗어나기로 했다.
리자드맨이 출몰하는 지역을 벗어나자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나중에 또 봬요.”
“필요하면 언제든 귓속말 주세요.”
“예. 그럼.”마지막 한 명까지 사라지고 승현과 링첸만이 남았다.
“링첸 님은 안 가세요?”
“그게, 저희 친구 맺는 거 어때요?”
“저야 좋지요.”
사실 먼저 말을 꺼내려고 했던 승현은 링첸이 먼저 친구 요청을 하자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래에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들 중 한 명인 그녀와 인연을 이어가는 것.
용살검을 포기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시스템으로 친구를 요청을 보낸 승현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전사 같던 전과는 다르게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 이 친구도 하고 실제 친구도 해요.”
“아, 네?”
“안, 되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좀 갑작스러워서요. 좋습니다. 친구하죠.”
“헤헤, 그럼 우리 서로 말 놔요. 친구 사이에서 존대하는 건 어색하잖아요.”
“그러지 뭐.”
“그럼. 승현아. 나중에 봐.”
“첸도 나중에 보자.”
“그래!”
손을 흔들어 보인 링첸은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을 한 모양이었다.
승현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올리빈으로 향했다.
역시 아직도 유저들로 북적이는 올리빈에 입성한 승현은 쫓아오는 유저들을 데리고 포탈로 이동해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철벽 요새, 칼타로스로 이동했다.
“여기서 먹을 전설적인 아이템은 내겐 필요가 없는 거긴 한데.”
철벽 요새라 불리는 칼타로스인 만큼 이곳에 잠든 아이템은 방패였다.
그것도 사람 키에 가까운 거대한 방패.
움직이는 성벽이라고도 칭해지는 기어스라는 이름의 방패로서 성능은 마력과 물리력에 대한 피해를 반으로 줄여서 받아내는 아이템이다.
내구도부터가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 중 가장 높은 10만이다.
이 방패를 소유한 랭커는 살아있는 성벽으로 불리며 여러 고레벨 몬스터의 레이드에 모셔가려고 하는 1순위의 탱커가 된다.
오직 이 아이템 하나로 말이다.
그 랭커의 직업은 무려 궁수이다.
방패를 땅에 박아두고 활을 쏘는 모습이 그리 멋이 있지는 않았지만 궁수를 1순위 탱커로 만드는 사기적인 아이템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용살검을 포함해 정확한 정보와 위치를 아는 5개의 아이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용살검은 포기했지만 이것도 포기할 순 없지. 암, 무려 전설적인 아이템인데.”
당장에라도 기어스를 획득하러 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레벨이 걸렸다.
다른 지역을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이 아는 선에선 400레벨을 달성해야지 획득이 가능하다.
스텟 상으로 거의 100레벨 가까운 우위를 보이더라도 아직 승현의 레벨은 이제 137이다.
신수화를 사용하면 얼추 상대가 가능하겠지만.
“내가 못 얻으면 당분간은 다른 이들도 얻기는 힘들 테니 레벨 업에 집중하자.”승현은 당분간은 레벨을 올리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레벨을 올리는 건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루한 작업이기도 하다.
승현의 경우 자신보다 50레벨 정도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빠르게 레벨을 올렸지만 그럼에도 고레벨에서는 레벨을 올리는 시간이 길다.
기어가 종료되기 전까지 최고 레벨이 1,300레벨 정도였다.
그는 아이템이나 기술을 최소한으로 익히면서 오직 레벨에만 집중해 그렇게 레벨을 올렸다.
기어의 종료일은 앞으로 3년 뒤이다.
세 달 동안 칼타로스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레벨을 올렸다.
종종 도서관에 들러 책을 확인하면서 던전을 찾기도 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덕분에 유일함 등급과 특별함 등급의 아이템 여러 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쓸 건 쓰고 팔 건 팔면서 레벨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300레벨 중반에 진입했다.
각 기술의 레벨도 상당히 올릴 수 있었는데 던전과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얻은 기술서를 통해 여러 가지 유용한 기술을 습득했다.
300레벨이 되고 나자 드디어 기어스를 얻기 위한 준비를 했다.
승현은 인기 절정을 구가하는 기어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기어스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전설적인 등급의 아이템에 대한 단서가 나왔다. 그 위치는 철벽 요새 칼타로스 북쪽에 위치한 칼날 산맥의 열네 번째 봉우리이고 적정 레벨은 200레벨 후반이다.’
이 소문을 퍼트리자 며칠 만에 칼타로스로 수많은 베타테스터들과 랭커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진짜 있는 거 맞아?”
“베타테스터들도 온 걸 보면 맞겠지.”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칼날 산맥으로 향했다.
승현의 거짓 소문은 반만 맞는 정보다.
위치는 맞지만 적정 래벨을 속였다.
적정 레벨은 400대 초반인데 첫 던전 몬스터의 레벨은 200레벨 정도로 쉽게 속을 수 있다.
얼마 안 있어 던전의 상세 위치가 공개되고 더욱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자, 판은 깔렸고. 이제 들어가 볼까?”
승현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던전은 각각 200레벨, 300레벨, 400레벨로 구성된 대규모 던전이다.
그중 1층과 2층의 경우엔 몬스터의 숫자가 거의 공대 수준의 레이드를 해야지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몬스터가 밀집되어 있다.
그 많은 몬스터를 뚫고 혼자 들어갈 순 없어서 이렇게 판을 벌렸다.
3층으로 내려가면 던전의 규모가 확 줄어든다.
문제가 되는 2층까지는 랭커들이 알아서 길을 뚫어줄 것이다.
[던전. 철혈 군주의 안식처에 입장합니다]
“여기 탱커 모집합니다!”
“힐러 구합니다! 최우선으로 모셔요!”
“던전 전문 도적 클래스 있습니다. 데려가세요!”
던전 초입은 어느 도시의 광장처럼 유저들이 잔뜩 모려 있었다.
다만 이들 모두가 랭커 혹은 고레벨 유저라는 점이다.
안으로 들어오면서 승현은 이번에 새로 조합한 최상위 은신 기술이라 생각되는 고스트를 사용했다.
직업 기술이던 은밀 기동이 들어가 유일함 등급의 기술이 탄생했다.
몸이 반투명해진 승현은 여기에 동화를 사용해 그림자와 어둠 사이로 이동했다.
승현의 복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은빛 기사단의 갑옷을 팔고 검은색 일체의 가죽 슈트로 교체했다.
등급은 평범함 등급의 그냥 질긴 가죽 슈트였지만 어둠 속에서 은밀히 이동하기엔 이만큼 좋은 복장도 없다.
“응?”
“왜 그래?”
“아니, 뭔가 지나간 것 같아서. 육감이 그렇게 알려줬거든.”
“흠, 유령 타입의 몬스터라도 있나?”
“그런가 봐. 조심해야겠어.”
승현이 지나간 후 한 파티의 대화였다.
고스트 기술을 사용하면 전방 10미터 앞에 서 있어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희미해진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마력을 잡아먹지만.
그렇게 2층 끝까지 이동한 승현은 여유롭게 3층 안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