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무려 9일이 걸려 첫 번째 방을 통과한 승현은 다음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갑자기 착용하고 있던 권갑과 단검이 모두 창고로 들어갔다.
[이 던전은 무기를 착용할 수 없는 특수 던전입니다]
[무기가 일시적으로 해제됩니다]
“아니 무슨 던전이 마력도 봉인하고 무기도 못 쓰게 하지?”
승현은 엄습하는 불안감으로 주위를 바라봤다.
이번 방에는 예전에 봤던 목각인형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놈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 거란 건 잘 알 수 있었다.
발을 내딛자 첫 번째 줄에 있던 목각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패턴으로 공격하는 목각 인형들에게 밀려 일정 거리까지 뒤로 물러나자 목각 인형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이놈들은 관절기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겠군.”
관절이 약점인 건 잘 알고 있으니 관절을 꺾어 부러트리는 수밖에 없다.
무극권법만 믿고 주먹을 뻗기엔 마력이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견적을 잡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다가오는 인형의 팔을 꺾어 부러트리고 그대로 머리를 잡아 강하게 돌려 목 관절을 부러트렸다. 한 개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공격은 연속해서 날아들었기에 승현은 빠르게 동작을 마치고 다른 인형을 상대해야 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건 내 특기라고!”
승현은 절제된 동작으로 관절을 아작 내며 앞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많은 인형이 깨어나도 결국 최대로 자신에게 유효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건 8개 정도가 한계다.
그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며 관절을 부러트렸다.
공격을 막고 피하는데 첫 번째 방에서의 경험이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신들린 듯 인형들의 관절을 부러트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저 멀리 길이 보였다.
다행이도 두 번째 방은 그의 특기 중 하나가 걸려서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많은 인형을 부수며 나아간 승현은 곧 다음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긴 또 왜 이리 어둡냐.”
빛이라곤 저 멀리 보이는 작고 희미한 촛불이 전부였다.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만이 귓가에 들렸다.
어딘가 익숙한 소리.
“이거 또 허수아비야?”
승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또 다시 허수아비가 이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조금 더 난이도가 상승해 보지 않고서 피하고 막아야 했다.
“난이도가 너무 올라갔잖아.”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발을 떼는 승현이었다.
그 방을 통과하고 나니 이번에도 암실이 나왔는데 두 번째 방과 같이 목각인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방도 통과를 하자 계속해서 암실이 이어졌다.
다양한 시련이 승현을 찾아왔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앞으로 향했다.
열 번째 방을 통과하고 나니 드디어 끝을 알리기라도 하듯 밝은 방이 나왔다.
“한 달 하고도 팔 일이 걸렸군.”
이렇게 길게 한 던전에 있던 건 또 거의 없는 일이다.
확실한 건 승현의 전투감각이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는 거다.
“이제 남은 건 뭐냐.”
승현은 일지에 적힌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렸다.
‘구도자는 끝내 종착지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마라. 너의 심장에 그림자를 꽂아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종착지가 여기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림자를 심장에 꽂는 일만 남았는데 이건 해석이 안 됐다.
방 중앙으로 가자 혼자서 빛을 받고 있는 검은색 일체의 단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이템]
그림자
-등급: 전설적인
-어떤 힘으로 인해 그림자를 유형화한 것입니다.
아이템을 확인한 승현은 문뜩 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기연은 기연인데 하나같이 고통스러웠던 그때가 떠오른 것이다.
“설마 이걸로 진짜 심장을 찌르라는 거야? 아니지?”
척 보기에도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단검이었다.
이런 걸로 찔린다면 분명 죽을 거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영약과 심장은 먹을 때 고통 완화 기능이 작용했음에도 정말 죽을 듯 아팠단 점을 떠올리면 이건 진짜다.
“여기는 고통 완화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울상이 된 승현은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들었다.
분명 단검을 들어 올렸음에도 아무런 무게나 감촉이 전해지지 않았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승현은 단검으로 심장이 있는 부위를 과감히 찔렀다.
푸욱.
“커억. 끅!”
심장을 찌르고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생살을 찢고 파고든 단검은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심장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박힌 느낌은 소름이 돋게 했다.
심장에 박힌 단검은 이내 서서히 승현의 몸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승현의 그림자가 발을 타고 올라와 승현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악!!”
천천히 몰라오는 그림자는 마치 승현을 먹어치우는 듯 보였다. 승현은 심장에서부터 퍼지는 고통에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허나 나중에 가니 비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졌다.
완전히 그림자에 덮어진 승현은 정신을 잃었다.
‘여긴······.’
그날의 그 장소였다.
살면서 가장 큰 절망을 느낀 그때였다.
검붉은 먹구름이 스멀스멀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수고 했다. 최승현. 넌 아주 잘 해주었어.”
“······.”
“후후, 노려봐도 소용없어. 이 세계는 이제 그분의 것이 될 거야. 남은 이들도 널 따라갈 테니 너무 외로워하지 마라.”
승현은 미친 듯이 입을 열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남자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검을 빼들었다.
“스파이 짓을 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상으로 편한 죽음을 선사해주마. 잘 가라.”
남자의 검이 그대로 승현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 순간이 너무나 느리게 느껴져 승현을 괴롭게 했다.
인류를 배신한 대가는 차디찬 시선과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이 순간을 저주한다! 잠시나마 놈들을 믿었던 날 저주한다!’
승현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때 창고 안에 있던 돌 하나가 눈앞에 생겨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최승현!”
남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외쳤다.
시작의 돌.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얻은 불가해 등급 아이템.
그것이 지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승현은 눈을 떴다.
눈앞에 메시지가 잔뜩 떠 있었지만 우선은 정신을 차리는 게 먼저였다.
명상을 하며 찰나에 꾸었던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아주 어리석었다. 이번엔 그런 선택을 절대 하지 않아.’
꾸역꾸역 명상을 하며 마음을 비우니 조금씩 정신이 또렷해졌다.
정신을 차린 후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했다.
[전직에 성공하셨습니다]
[전직, 암왕의 후예가 되셨습니다]
[직업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림자를 받아들입니다]
[그림자가 당신과 함께합니다]
[기술, 동화를 습득하셨습니다]
메시지를 하나씩 살핀 끝에 승현은 자신이 무사히 전직을 마쳤음을 알 수 있었다.
승현은 우선 암왕의 후예가 어떤 직업인지 살폈다.
암왕의 후예
-모든 어둠과 그림자들의 왕이란 암왕의 진전을 이은 유일한 계승자입니다. 대대로 암왕은 그림자와 수백 자루의 무기를 자신의 몸처럼 다뤘습니다. 어둠 속의 암왕은 적수가 없다고 전해집니다.
설명만 보자면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음으로 살펴볼 건 역시 새로 얻은 기술들이다.
[기술]
동화
-등급: 전설적인. 0레벨
-어둠과 그림자에 동화되어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림자밟기
-등급: 유일함. 1레벨
-‘동화’ 사용 중일 때 발동 가능하며 대상의 그림자로 이동합니다.
이면 지배
-등급: 유일함. 1레벨
-‘동화’ 사용 중일 때 발동 가능하며 대상의 그림자를 조종해 물리력을 발휘합니다.
물체 고정
-등급: 유일함. 1레벨
-물체와 자신을 고정시킵니다. 고정된 물체는 일정 거리에 한해서 조종이 가능합니다. 현재 고정 가능한 물체는 2개입니다.
은밀 기동
-등급: 특별함. 1레벨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감춥니다.
직업을 가짐으로서 얻은 기술은 총 4개였는데 그중 두 개가 그림자와 관련이 있으면서 동화를 사용해야지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은밀 기동, 이건 패시브 기술이고. 평소에도 쓸 수 있는 건 물체 고정 뿐인가.”
승현은 바로 창고를 열어 페른의 독니를 꺼내 물체 고정을 사용했다.
그러자 마치 팔이 하나 더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신기하네.”
이리저리 단검을 살피다가 이내 저 멀리로 단검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가 바닥에 박힌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박혀있던 단검이 날린 속도보다 빠르게 손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단검을 날리다가 도중에 회수해보고 단검을 손바닥 위에 띄워 이리저리 조종해보자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정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 기술의 장점이다.
하지만 조종할 수 있는 물체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당히 힘들어질 것 같다.
“이 상태로 마력을 주입할 수 있나?”
둥둥 떠 있는 상태로 무극검법에 따라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떠 있는 단검에 무형의 마력이 둘러졌다.
100이 넘어가는 완력으로 던진 것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마력까지 둘러지는 걸 보면 엄청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단검을 던져 조종 가능한 거리를 확인해봤다.
“대략 30미터 정도군.”
승현은 바로 장검에도 물체 고정을 시켰다.
두 개 정도 까지는 아직 그리 어렵 않게 조종이 가능했다.
이어서 승현은 창고에서 이번에 얻은 보상을 확인했다.
[아이템]
암살자의 결의
-등급: 유일함
-내구도: 300/300
-하얀색이 톡 튀는 반가면. 빛 한 점 들어오진 않는 암실에도 시야를 확보해줍니다.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이 없는 하얀색 반가면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가면을 쓰자 살짝 어두운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얼굴을 가려주면서도 어두운 곳을 밝게 볼 수 있으니 승현으로서는 상당히 쓸 만한 아이템이었다.
더욱이 따로 끈이 없고 대신에 얼굴에 쓰면 저절로 고정되어서 편리했다.
“직업도 얻었겠다 이젠 미궁이 열리는 1년 동안 전설적인 아이템과 기술들을 독식하러 가볼까.”
가면을 쓴 채로 유유히 반대편에 열린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지하도시 헤이프에는 여러 길드가 들어서 있다. 그중 전사 길드와 궁수 길드 그리고 도적 길드와 머스킷 길드에 들르기로 했다.
각 길드에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인데 머스킷 길드의 경우 나중에 기어가 현실로 등장할 때를 위한 안배다.
머스킷은 장전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파괴력만은 아주 강한 무기다.
특히 기술이 더해진 총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데 나중에 현실에서 이 기술이 현대 화기에도 적용되어서 머스킷 유저의 경우에는 꽤나 큰 환영을 받았다.
물론 기어 안에서는 비주류 직업이라 그리 많지 않아서 랭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던전을 나와 헤이프에 도착한 승현은 가장 먼저 도적 길드에 들어섰다.
“흠? 이거, 거물이 등장했군.”
“반갑습니다.”
“나야말로 반갑네. 암왕의 전설이 재림했군.”
NPC는 기본적으로 유저의 레벨과 직업을 알아볼 수 있다.
도적 길드의 지부장이 바로 승현의 직업을 알아본 이유이다.
“그래 어쩐 일로 찾아왔나?”
“기술를 배우고자 왔습니다.”
“암왕의 기술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흠, 그 말도 맞지만 너무 많은 기술을 익히면 기술의 숙련도가 떨어져서 한 가지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만 못해.”
“충분히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모험가들은 기술서를 보면 바로 익힐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겠나?”
“아니요. 직접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올바른 선택이야. 그럼 날 따라와. 그런데 뭘 배우고 싶나?”
“은신과 단검 마스터리, 치명적 일격, 단검 투척, 암살, 윈드 워커를 배우겠습니다.”
“나머진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암살과 윈드 워커는 희귀함 등급의 기술이야. 가격이 꽤 나갈 텐데.”
“가격은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여기가 수련장이야. 그럼 먼저 은신을 배우지.”
승현은 돈을 내고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은신은 이름 그대로의 기술이고 차례로 패시브 기술 세 개와 두 개의 버프 기술이다.
승현의 예전 직업은 레인저였는데 궁수 길드와 도적 길드에서 각각 기술을 배우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이다.
그래서 궁수와 도적 기술에 대해선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다.
“좀 더 상위의 기술은 못 배우겠죠?”
“아, 그건 길드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쪽은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아쉽군요.”
“모험가들은 기술서만 있으면 배울 수 있으니 몬스터에게서 나오길 비는 수밖에 없지. 그럼 잘 가게.”
승현은 배울 것만 모두 배우고 도적 길드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