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전투태세를 갖추기 무섭게 목각인형이 생겨났다.
잠시 목각인형을 바라보던 승현은 그대로 목각인형의 목 관절에 정확히 검을 꽂아 넣었다.
간단한 공격에 관절에서 부러져나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하나의 목각인형을 망가트리자 이번엔 두 개의 목각인형이 등장했다.
목각인형이 움직이기 전에 선공을 취했다.
우득.
‘관절이 생각보다 약해. 놈들의 약점은 관절이군.’
승현은 생각보다 쉬게 부러지는 관절에 금방 인형의 약점을 파악했다.
순식간에 두 개의 인형을 부수자 이번엔 세 개 다음은 네 개가 생겨났다.
점점 숫자가 불어나며 급기야 40여 개의 목각인형이 등장했다.
“후우, 좋아.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
승현은 목각인형에 둘러싸인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 시작된 화려한 검무.
판타지아에서 갈고 닦은 검술 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뻐억, 뻑!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인형의 팔이나 몸통이 하늘로 비상했다.
한 개를 상대하다 보면 뒤를 공격하는 인형이 꼭 생겼는데 그럴 때마다 유연한 동작으로 공격을 피했다.
가끔 공격을 피할 수 없을 땐 과감히 맞아주기도 했다.
“큭, 아프잖아!”
빠각!
등에 주먹을 꽂은 인형의 목을 통쾌하게 날려버린 승현은 거칠어진 숨을 쉬었다.
목각인형은 백 개까지 나왔는데 그것들을 모두 상대하고 있으니 레벨이 두개나 올랐다.
“하아, 하아. 일단 마력에 4를 투자하고 나머진 모두 체력에 투자한다.”
승현은 숨을 고르며 능력을 올렸다.
이로서 마력이 딱 10이 되었다.
기술을 익혀서 사용할 수 있는 최소 여건이 완성된 것이다.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목각인형들을 보며 벽 쪽으로 가 등을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한 번 생겨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그 사이 기술을 얻는다.’
승현은 등을 붙이고 앉은 상태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골랐다.
미약한 존재감을 가진 체내 마력을 조금씩 이동시키며 마치 무협지 속 무인처럼 마력을 몸 전신에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승현은 무협지의 무인과 같이 내공심법을 사용하고 있는 게 맞다.
예로부터 존재하던 이 단련법은 마력이 생겨나고 나서 공상이 현실로 바뀐다.
정말로 검으로 바위를 썰고 맨손으로 강철판을 뚫게 된다.
그런 능력은 아주 소수만이 가능했지만 그들의 능력은 기어에서 능력을 부여 받은 이들 못지않았다.
승현이 알고 있는 대로 마력이 움직이면서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마력을 움직였다.
소주천이라 부르는 단계를 무사히 넘기자 생각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술을 익히셨습니다. 특전을 제공합니다]
[최초로 기술을 익히셨습니다. 특전을 제공합니다]
[특전은 베타테스트 때 적용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창조하였습니다. 이름을 정해주세요]
다행이 인형이 생겨나기 전에 금세 소주천을 이룰 수 있었다.
아마 일전에 이걸 상당히 심도 있게 익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승현은 이 기술의 원래 이름을 말해주었다.
“무극심법.”
[무극심법을 습득하셨습니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특전이 제공됩니다.[
[최초의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특전이 제공됩니다]
[특전은 정식 오픈 때부터 적용됩니다]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승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전보다 더욱 가벼워진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무극심법은 패시브 판정인가 본데?”
승현은 계속해서 순환하는 마력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심법이란 게 직접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다 써야지 발동되는 건데 지금은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마력이 움직여서 전신에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바로 기술을 열람했다.
[기술]
무극심법
-등급: 불가해. 1레벨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아주 특수한 기술. 신체를 한계까지 활성화하며 때론 한계를 넘어선 힘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기술은 패시브와 액티브로 나뉜다.
패시브의 경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동되는 것이고 액티브는 직접 동작을 취하거나 마력을 움직여야 사용이 가능하다.
그중 패시브는 익히기도 어렵고 기술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뛰어나서 모두가 이 패시브 기술을 익히려고 들었다.
“그보다 등급이 미쳤는데?”
승현은 기술의 등급에 더 시선을 주었다.
아이템과 기술은 등급이 있다.
각각 평범함, 희귀함, 특별함, 유일함, 전설적인, 불가해로 나뉘어져 있다.
아무리 높아봤자 대부분 유일함 등급이고 그걸 초월해도 전설적인 등급이 끝이었다. 불가해 등급의 아이템은 몇 개 등장하긴 했지만 기술로서 등장한 건 처음 봤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등급이기도 했다.
무극심법은 무공을 익힌 이들이 모여서 과학자들과 함께 만든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심법이다.
여러 무공의 장점만 가져다 합친 무공이 바로 이 무극심법이다.
현대의 기술로 재정립된 신무공이란 소리다.
“그래도 불가해 등급이라니. 신기하네.”
잠시 마력을 한곳에 집중시켰다가 풀길 반복하고 있으니 곧이어 목각인형이 등장했다.
그런데 수많은 목각인형 대신에 검을 든 목각인형 하나가 생겨났다.
“다음 스테이지란 소리인가.”
씩 웃은 승현은 검과 방패를 잠시 집어넣었다.
“그러면 우선 권법부터 얻어 볼까?”
승현은 그대로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한층 빨라진 몸으로 인형의 지척까지 다가간 승현은 몸통에 정권을 날렸다.
정권을 찌르는 순간 잠시 주먹에 마력을 집중시키니 단단한 인형의 몸통 관절부위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일격에 인형을 정리한 승현은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인형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열 개까지는 쉼 없이 등장해서 빠르게 한 개씩 착실히 처리해나갔다.
그렇게 삼십 개가 소환 될 동안 신나게 때려 부수자 다시 한 번 기술이 생겨났다.
기술의 이름은 당연히 무극권법이었다.
기술이 생기자 마력을 주먹에 싣는 게 더 편해지고 주먹의 위력도 더 강해졌다.
잠시 쉬는 시간 때 등급을 확인하니 전설적인 등급이었다.
아마 다음에 얻을 무극검법도 이와 같을 것 같다.
기술을 얻고 나서 다음으로 창고에서 장검을 꺼냈다.
다시 생성된 인형들을 보며 승현은 검법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일전에 선보인 검무가 다시 한 번 펼쳐졌다.
검만 들었다 뿐이지 목각인형의 움직임이 빨라지거나 하진 않아서 상대함에 있어 어려움이 없었다.
한 단계씩 돌파해나가자 어느덧 검을 든 목각인형도 백 개를 해치웠다.
[기술]
무극권법
-전설적인. 2레벨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특별한 기술. ‘무극심법’의 영향을 받으며 주먹을 보다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무극검법
-전설적인. 3레벨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특별한 기술. ‘무극심법’의 영향을 받으며 검에 마력을 부여해준다.
무극보법
-전설적인. 3레벨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특별한 기술. ‘무극심법’의 영향을 받으며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게 해준다.
세 기술 다 간단한 설명만 쓰여 있지만 그 효과는 뛰어나다.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점검을 마친 승현은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이번엔 도끼를 든 목각인형이 등장했다.
가볍게 처리하고 나니 이번엔 무기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건지 단검과 검을 든 목각인형이 등장했다.
이어서 창을 든 목각인형이 추가되고 점점 가지각색의 무기를 든 인형이 생겨났다.
무기가 다르다는 건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거다.
거리도 다르고 공격 방법도 다르니 말이다.
뻐억!
“하아, 하아.”
마지막 한 개의 목각인형을 상대하자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지쳤다.
아무리 중간마다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무려 만여 개의 인형을 처부쉈다.
고레벨처럼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었다.
“후욱, 다음은 뭐냐.”
숨을 고른 승현은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은 정식 오픈 날, 창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어 기록이 저장됩니다. 8시간 12분 41초]
[테스트 서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현재 습득한 모든 게 저장되며 추후에도 적용됩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테스트 서버에서 나와졌다.
피곤해진 몸으로 캡슐을 나온 승현은 곧장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한편 기어의 비공개 사이트에는 빠르게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이트 메인에 걸린 ‘클리어 기록’ 때문이었다.
기록에는 최승현의 이름과 함께 클리어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이게 무엇을 클리어 한 건지부터 뭔가를 아는 이들은 그저 승현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의 머릿속에 프로게이머 최승현이란 이름이 박혔다는 거다.
그런 것도 모르고 단잠을 잔 승현은 다음 날이 되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주목 받게 됐군,”
머리를 긁적인 승현은 다시 테스트 서버에 접속을 시도해봤지만 접속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테스트 서버를 클리어해서인 것 같다.
남은 시간 동안은 운동과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번 돈과 상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적어도 1년은 돈 걱정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는 메일 주소로 클리어 기록에 대해 문의를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무극심법이 아니었다면 그도 클리어할 수 없었기에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명상에 잠기다 보니 아주 희미하지만 몸 안에 깃든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승인들이 말하던 마력을 알 수 있었다.
전승인은 전통무예를 극성으로 익힌 이들을 칭하는 말인데 그들은 기어를 플레이하면서 마력이 생겨나기 전부터 마력을 감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극미하긴 하지만 승현 또한 마력을 느낀 것이다.
‘기어와 현실의 비율은 100대 1이었다. 즉, 내가 기어에서 얻은 10의 마력은 0.1의 마력으로 지금 내 몸에 있을 수 있다. 비록 아직 전이 전이라고 해도 말이다.’
전이는 천천히 그러면서 급격히 찾아온다.
그 변화의 시작은 캡슐을 매개로 기어와 연결된 유저들에게서다.
그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어의 캐릭터와 동화되고 있었다.
현재 그 추론은 사실이라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꾸물꾸물 몸 안을 돌아다녔는데 딱 무극심법의 경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버 오픈까지 남은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자니 하나둘 테스트 서버를 클리어한 이들이 등장했다.
경과된 시간이 가장 빠른 이들도 20시간이 넘어갔다.
누구도 승현의 기록을 넘은 이들은 없었다.
얼마 안 있어 기다리던 베타테스트 기간이 시작되었다.
서버가 열리기 전 비공개 사이트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베타테스트 때 올린 레벨과 능력은 오픈 때 모두 적용된다고 한다.
단, 베타테스트 서버에선 100레벨이 최대 레벨이란다.
또한 아이템도 특별함 등급 이상의 것에 한해서 모두 유지된다고 한다.
베타테스트 맵에는 불가해 등급의 아이템이 1개, 전설적인 등급이 3개, 유일함 등급이 10개, 특별함 등급이 30개가 존재한다고 미리 쓰여 있었다.
베타테스트는 단 한 달만 진행되며 한 차례 사망 시 재접속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테스트 서버를 클리어한 이들에 한해서 특전이 주어진다는 것이 공지되었다.
“이러니까 베타테스터들이 랭킹을 다 해먹었지.”
시작부터가 일반 유저와 다른 거다.
고개를 가로저은 승현은 곧이어 기어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