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287화 (287/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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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화화확!

세 번째 선박에 화약통과 기름통이 떨어지자 루이웨가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화약, 기름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순식간에 배를 불태웠다. 어둠에 가려 아론들이 타고 있는 갤리온은 보이지 않았고 100m 안쪽으로만 접근하면 화약과 기름덕분에 불은 순식간에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선박에도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쉽군....”

왠지 허한 발터의 목소리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그 각오에 비해 일이 너무 쉬웠다. 하는 일 없이 불타는 선박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의외로 잘 풀리는군요. 초반에 적에게 들켜 포위당한 채 싸우는 것도 각오했는데 말입니다. 다섯 척이 전선에서 이탈했으니 포위당해도 포위망이 느슨해서 빠져 나갈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군요.”

“그런가?”

아론이 그렇다면 그런 거구나..하고 생각하게 된 발터다.

“화약과 기름도 거의 바닥났으니 2척 정도만 더 하고 빠져나가면 되겠습니다. 중간에 솔코로 확인해보니 아르마다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혼란에 빠진 듯합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영국 함대에 계속해서 공격당하며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고 날이 밝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영국 함대의 사냥이 시작될 것입니다. 솔직히 이 어둠은 영국 함대도 움직이기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오늘 밤은 달이 없어서 더 했다. 완전한 어둠이 펼쳐지니 선박에서 밝힌 불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불은 아무리 밝아봐야 몇 십 미터 정도 밝혀주는 것이 전부다. 그런 상태에서 아르마다를 공격할 수 있는 이유는 아르마다도 불을 밝히고 있기에 그것을 목표로 함포 사격을 하고 있어서인데 아무리 명포수라고 해도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불을 목표로 정확히 포를 쏘는 것은 힘들다. 거리감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영국 함대가 하고 있는 포격은 적을 침몰시키기 보다는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공격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포격을 가할 땐 무조건 맞추겠다고 쏘는 것이지만 너무 어두워 맞추질 못하기에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공격이 된 것이지 맞출 능력이 되는데도 일부러 안 맞추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뒤로 빠져서 영국 함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군.”

“음.. 저는 소환수들이 있으니 돌아다니면서 초인이 없는 선박을 골라 공격하겠지만... 발터님과 다른 분들은 이만 쉬셔도 될 겁니다.”

“그렇군.....”

아론의 말을 들으며 발터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아르마다의 기함과 그 주위에 모여 있는 선박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발터가 한 쪽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곳에는 불빛의 수가 상당히 많았고 모여 있었다. 바로 기함인 산타 크루즈호와 아르마다의 핵심 전력인 갤리온들이었다. 갤리온의 선장과 장교들은 시도니아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아르마다의 중심 전력은 자신이 믿는 자들에게 맡겼던 것이다. 덕분에 아르마다 전체가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갤리온들은 별 혼란 없이 기함 근처에 뭉쳐 있었다.

“음... 아마도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갈 겁니다. 유물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함포 공격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고 병력도 최소 8천은 있을 것이고 초인은 대부분 저곳에 있을 것입니다. 갑판전은 포기한 상태인 영국 함대로서는 감히 공격할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저 갤리온들이 이곳에 버티고 서서 파르마 대공의 거룻배들이 도하하는 것을 호위한다면 큰일 나는 것 아닌가.”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이번에 수송선을 대부분 잃어버릴 테니 보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보조선도 부족할 테니 다양한 작전 수행능력이 떨어지고 많은 수의 거룻배를 전부 호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하를 감행한다면 적어도 거룻배의 반 이상을 잃게 되겠지요. 저 갤리온들이 아르마다 전투력의 50%이상을 담당하고 있겠지만 전투력만 강할 뿐 그 외 다양한 작전 수행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감히 기존 전략을 고수하지는 못할 겁니다. 괜히 그 많은 수송선과 보조선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아론의 설명이 납득이 되지만 개운하지가 않았다. 빵을 먹는데 와인이 없어서 목이 메이는 느낌이랄까.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은 별 피해 없이 에스파냐로 돌아가겠군.”

“보호하고 있는 수송선도 몇 척 있으니 아마 에스파냐까지 문제없이 돌아갈 겁니다.”

수송선이 아예 없었다면 가다가 굶어 죽었겠지만 수송선을 8척이 저 거대한 갤리온의 성벽 안쪽에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2~300톤급의 수송선 8척에 들어 있는 물자라면 20여척의 갤리온이 에스파냐에 돌아갈 때까지 먹을 식량은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미 이곳으로 오며 아론의 방해 때문에 많은 양을 소모했지만 상품을 싣지 않은 상선에 얼마나 많은 물자를 실을 수 있는지는 아론이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식량이 모자랄 거라든가 하는 희망은 품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는 500톤급 선박인 나사우호만 해도 상품 없이 물자만 가득 채운다면 선박의 선원들이 3~4년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양의 물자를 채울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못쓰게 되겠지만 계산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르마다 전력의 50%이상을 차지하는 저 선박들이 에스파냐에 돌아간다면 구하기 쉬운 수송선이나 보조선들은 쉽게 보충하여 다시 공격해 올 수 있겠군.”

이쯤 되니 아론도 발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에흐몬트 백작님은 저 갤리온들을 공격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렇지. 지금 네덜란드는 아주 위태롭네. 이번엔 에스파냐가 영국을 치겠다는 생각을 갖고 왔으니 이렇게 막아냈지만 다음에도 영국을 칠까? 귀찮게 하는 에스파냐를 먼저 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아니지. 지금 당장 저 아르마다의 지휘관이 목표를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바꿔버린다면? 초인이 부족한 것일 뿐 병력에서 앞서고 있는 파르마 대공의 군대에 아르마다에 있는 초인들이 합세한다면? 우리가 견뎌낼 수 있겠나?”

발터가 뒤에 한 이야기는 말하다보니 생각난 것이었지만 듣던 사람들은 정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란에 빠뜨려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감히 건들 수 없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갤리온들이다. 만약 저 갤리온들의 목표가 네덜란드로 바뀐다면? 당장 네덜란드에서 발트해로 향하는 길목이 막힐 것이며 초인들이 파르마 대공의 군대에 새로 유입되어 네덜란드를 압박할 것이다.

바닷길까지 막히고 사방에서 압박당하는 네덜란드를 영국도 쉽게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저 무시무시한 갤리온들이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를 떡하니 가로 막는다면 쉽게 원군을 파견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고립된 상태에서 에스파냐는 추가로 원군을 계속 파견한다. 그렇게 되면.... 네덜란드는 결국 무너질 것이다.

아론의 등이 오싹해졌다. 정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시도니아로서는 파르마 대공에게만 좋을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론이나 발터등은 그런 시도니아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까 최악을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전투에서 아르마다를 괴멸 시켜야겠군요.”

지금 당장 아르마다가 네덜란드를 타겟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울해진다.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아르마다에 괴멸적인 타격을 줘야했다. 다시는 이곳에 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다음 기회는 없다. 아르마다가 똑같은 작전에 두 번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우리들만으로는 저 갤리온 성벽에 부딪히는 순간 먼지가 되어버릴 겁니다.”

아무리 아르마다의 함포가 영국 함대의 그것보다 약하다고 해도 갤리언 20여척의 함포다. 거의 3~400문의 함포가 이 갤리온의 집중될 것이고 수천 명 병사들의 사격도 이 선박에 집중될 것이다. 아무리 초인들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당할 터.

“하워드 제독에게 돌아가죠. 그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으음... 알겠네.”

계획대로 2척의 선박에 더 불을 지른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워드가 타고 있는 배에 연락을 취해 그를 만났고 발터는 자신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하워드에게 들려주었다.

“으음... 알겠소. 네덜란드가 무너진다면 영국도 버티지 못하겠지. 전력을 다해 돕겠소.”

하워드는 말이 통하는 자였다. 그는 발터의 말이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았고 그를 막기 위해선 제법 피해를 입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드레이크까지 합류했고 어떻게 아르마다 본진을 상대할지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이 아르마다 본진 공략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 영국의 다른 선박들은 아르마다 본진에서 떨어진 선박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

이틀 후. 영국 함대들이 여전히 흩어진 아르마다를 추격하며 공격하고 있을 때 네덜란드의 갤리온 3척이 아르마다 본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마다 본진은 그 사이에 선박을 꽤 수습했는지 약 40척 정도 되는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도니아는 더 이상 돌아올 선박들도 없을 것 같고 파르마 대공을 찾으러 간 전령에게서 소식도 없고 또 파르마 대공의 군대가 온다고 해서 겨우 40척의 배로 피해 없이 호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별 수 없이 곧 에스파냐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어떻게든 공을 세우고 싶었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 40척의 배로 영국을 어떻게 공략한단 말인가. 물론 전투력만 따지만 50~60%가 남아있지만 뭔가 하기엔 애매한 수였다. 수가 적어 해상봉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구를 공격하기엔 전력이 애매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갤리온 3척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뭐지 저것들은?”

시도니아는 자신들 앞에 나타난 갤리온 3척을 보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네덜란드 국기와 영국 국기가 함께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인 것은 확실한데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혔던 속도가 좋은 영국식 선박이 아니라 갑판전을 중시한 기존의 유럽식 선박이었다.

“설마 겨우 3척으로 공격해 오진 않을 거고... 혹시 또 무슨 비겁한 계책을 준비한 건가? 혹시 모르니 준비해둬야겠군. 닻을 올려 움직일 준비를 하라고 해라.”

혹시 또 화공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에 닻을 올려 움직일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정말 다시 화공을 걸어온다고 해도 쉽게 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은 밤이 아닌 낮이기도 하니 혼란에 빠져 길을 잃는 선박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감히 저들이 공격해오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닻을 올린 김에 에스파냐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긴장되는군.”

발터가 말했다. 그는 지금 아르마다 본진 앞에 나타난 3척의 갤리온 중 하나에 타고 있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아론, 루이웨, 요한 등 네덜란드 초인 40여명과 하워드, 드레이크, 슈르즈버리, 린튼 등의 영국 초인 30명도 함께하고 있었다. 영국 초인의 수가 적은 것은 영국은 갑판전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최소한의 초인만 선박에 태웠고 대부분의 초인은 파르마 대공의 도하에 대비해 도버항구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당연한 겁니다. 무적함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인데요. 세상 그 누가 여기에 있더라도 긴장할 겁니다.”

옆에 서 있던 요한이 그 말을 받았다.

“후후. 자네와 난 꽤 많은 전장을 함께 하는군. 그렇지 않나?”

“그러게 말입니다. 거의 에흐몬트가의 가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전투를 백작님 밑에서 수행했지요.”

“흠... 안트워프 포위전도 치열하긴 했지만 그 때는 우리 병력이 앞서고 있었지. 근데 지금은... 겨우 3척으로 40척을 공격하다니. 그것도 아르마다를 말이야. 누가 보면 우리를 미쳤다고 하겠어.”

“다른 나라 사람이 보면 그러겠지만 네덜란드인이라면 우리를 영웅이라 부를 것입니다.”

“영웅. 영웅이라... 그것 참 듣기 좋군. 요즘 보어 자작이 영웅이라 불리던데 우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전 이미 영웅이라 불리고 있습니다만. 로테르담의 영웅 요한. 아실 텐데요,”

“하하. 그렇군. 나만 영웅 소리 못 듣고 있었군. 이거 참 창피하군.”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이미 에흐몬트의 영웅이십니다. 그저 이번 전투로 네덜란드의 영웅으로 불리시게 될 뿐이지. 이미 영웅이셨습니다.”

헤르트의 아들 파울 로트세이가 나서서 이야기했다.

“에흐몬트의 영웅이라. 그거 참 좋군. 그래.”

발터가 왼쪽을 바라보았다. 왼쪽의 갤리온에는 아론과 루이웨가 타고 있었다. 발터는 고개를 돌려 이번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오른쪽의 갤리온에는 하워드와 드레이크를 비롯한 영국 초인들이 타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갤리온, 그리고 자신이 타고 있는 가운데에 위치한 갤리온. 이 세 척의 배에는 초인만이 아니라 병사들도 수백 명이 타고 있었다.

“로테르담의 영웅.”

“네. 백작님.”

요한이 대답했다. 요한의 대답에도 별 말 없이 발터는 천천히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둘러보았다. 모든 초인과 병사들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발터는 그들에게서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조국 네덜란드를 지켜내겠다는 의지.

“제군들!”

“네!”

발터는 소리쳤다. 초인과 병사들이 우렁찬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우리 모두! 네덜란드의 영웅이 되러 가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추후 칼레 해전이라 불리게 될 해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으으. 오늘 많이 늦었네요.

내일은 반드시 정오 전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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