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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아르마다가 남부 해협에 도착하기 보름 전. 당시 네덜란드와 파르마 대공 사이에 지루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거룻배를 파괴하려는 네덜란드와 거룻배를 지키려는 파르마 대공. 처음에는 네덜란드가 크게 이득을 보는가 싶었지만 점점 갈수록 파르마 대공의 대처가 좋아지며 파괴되는 거룻배의 수가 줄어들고 계속해서 거룻배가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발터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대로 별다른 성과 없는 날이 이어지다가 아르마다가 도착하게 된다면 아르마다의 호위를 받으며 파르마 대공이 유유히 영국에 도하를 시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네덜란드의 초인들이라 하더라도 아르마다의 호위를 받는 거룻배를 건들 수는 없을 터.
“영국이 아르마다를 막겠다고는 했지만....”
“막는다고 막아지면 무적함대가 아니겠지.”
영국에서 아르마다는 자신들이 맡을 테니 파르마 대공을 견제해달라는 이야기는 했지만 영국이 아르마다를 막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아르마다는 전세계 바다를 아우르는 최강의 함대다. 그런 함대를 아직 별다른 성과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영국의 함대가 막는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자신이 있으니 막겠다고 하기는 했겠지만 호언장담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잘해야 30%?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 테니.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최대한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봐야 파르마 대공의 반도 모으기 힘듭니다.”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다. 예전 무리해서 안트워프를 공략하다가 입은 피해는 아직까지도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 직접 파르마 대공의 군대를 치기엔 너무 전력차가 컸다. 거룻배를 항구 안쪽에 들여놔 거룻배만 공격하기도 힘들다.
칼레항구에는 내륙으로 이어지는 강이 있었기에 크기가 작고 바닥도 평평한 거룻배는 도시 내에 흐르는 강으로 옮겨두면 된다. 그렇게 옮겨둔 거룻배를 공격하려면 도시 내에 들어가던가 해야 하는데 경계가 워낙 삼엄하여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파르마 대공의 군대를 물릴 뚜렷한 방법이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솔코가 날아왔다.솔코의 발목에는 아론이 적어 보낸 편지가 있었다.
“아르마다가 영국 남부 해협 입구에 거의 도착했다는군. 오래 끌어봐야 10일이라고 하니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실제론 보름을 더 끌었지만 당시 아론은 10일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아르마다에서 파르마 대공에게 보내는 연락선이 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자신이 어떻게든 잡아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구려.”
“대단합니다. 역시 그 사부에 그 제자입니다. 홀로 아르마다를 그렇게나 지연시키다니 바른 자작의 능력은 도대체....”
요한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런 요한의 칭찬에 루이웨의 기분이 좋아졌다. 제자이자 손자인 아론을 칭찬하는데 싫어할 수가 없다.
“잠깐... 연락선?”
그때 빌럼이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발터가 왜 그러는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연락선에 귀족이나 장교가 직접 타지는 않았을 테지... 아마 일반 병사나 기사가 탔을 것이고 당연히 파르마 대공은 얼굴을 모를 것이야.”
“그...렇겠죠.”
“아르마다에서 보내는 연락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을 테니 우리가 그걸 가로챈다면...”
“가짜 연락을 파르마 대공에게 보낼 수 있겠군요. 대단한 생각입니다. 공작각하.”
“후후. 대단하긴.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이네. 그리고 이젠 공작이 아니야. 빌럼이라 부르게.”
사실 가짜 정보를 보내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고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짜 정보를 흘리는 것은 파르마 대공이나 네덜란드 측이나 꾸준히 많이 사용하고 있는 수였다. 파르마 대공은 곧 네덜란드 본토에 대규모 침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네덜란드는 프랑크와 네덜란드가 연합하여 파르마 대공을 칠 것이라는 소문을 흘렸다.
물론 각자 고유의 연락 방식이 있고 그것을 뚫지 못했기에 직접적으로 정보를 주거나 하지는 못하고 소문을 흘리거나 하는 방식으로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파르마 대공이나 네덜란드나 소문에 흔들릴 자들은 아니었다.
“아르마다에서 보낸 연락선에는 파르마 대공이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겠지요. 아론에게 그냥 연락선을 파괴하지 말고 생포하라 해야겠습니다.
모두 동의 했고 발터는 연락선을 생포하라는 내용을 적어 솔코의 다리에 매달아 보내는 한 편 배를 한 척 구해서 아론이 생포했을 연락선을 끌고 올 인력을 아론에게 보냈다.
10일 후. 아르마다가 영국 남부 해협에 진입하기 5일 전. 아론이 생포한 연락선이 도착했다. 네덜란드 초인들은 연락선에 타고 있던 기사와 병사, 선원들을 고문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짜냈고 그들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미리 준비했던 에스파냐어가 가능한 자들에게 숙지하게 한 후 거짓 정보를 적어 파르마 대공에게 보냈다.
2일 후 파르마 대공은 아르마다에서 온 연락을 받게 되었다. 시도니아의 인장이 찍혀 봉인된 편지를 열어 그 안의 내용을 읽던 파르마 대공은 곧 코웃음을 쳤다.
“큭. 그럴 줄 알았다. 아무리 좋은 유물을 얻었다 하더라도 해전 경험이라고는 한두 번이 전부인 늙은이에게 아르마다를 맡길 때부터 불안했어. 내가 어떻게든 폐하를 말렸어야 했는데 말이야.”
“왜 그러십니까. 안 좋은 소식이라도...”
파르마 대공의 반응에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궁금했던 측근이 물었다.
“비스케이만에서 영국, 네덜란드 연합군과 교전이 있었다는군. 전투에서 승리는 했지만 큰 피해를 입어 본국으로 돌아가 재정비한 후 돌아오겠다고 한다. 뻔한 거짓말이지. 전투에서 승리를 했으면 피해를 입었어도 왔겠지. 졌으니 돌아간 거다.”
“그렇군요. 아무리 피해를 입었어도 이겼다면 이곳으로 왔겠죠. 아르마다의 목적은 대공의 군대가 도하하는 동안 호위하는 것이 다이니 말입니다.”
“멍청한 늙은이. 내가 루이웨를 잡아두고 있는데도 지다니. 그것도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인 폐하의 아르마다를 이끌고 말이야.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선 돌아가서 다시 네덜란드를 압박한다. 아르마다가 다시 정비하고 이곳에 오려면 4~5달은 걸릴 테니까. 돌아가서 바로 편지를 작성해 폐하께 보내야겠다. 멍청한 시도니아를 실각시키고 새로운 사령관을 아르마다에 앉히라고 말이다.”
그렇게 파르마 대공은 이틀의 준비 후 칼레 항구에서 철수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다. 시도니아에 대한 불신과 네덜란드 초인들과의 오랜 신경전으로 하루라도 빨리 칼레 항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르마 대공의 군대는 아르마다가 막 영국 남부 해협에 진입한 그 시각. 칼레 항구를 떠났다.
그리고 5일 후. 시도니아가 아르마다를 이끌고 칼레 앞바다에 도착했다. 당연히 파르마 대공의 군대는 없었고 시도니아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칼레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후 파르마 대공을 찾아 일부 병력을 상륙시켰다. 시도니아는 육지에 상륙시킨 병력이 파르마 대공을 찾아 그의 군대를 이끌고 다시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혼자 영국을 치는 것은 무리였고 이대로 성과 없이 에스파냐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었으니까.
***
한편 아르마다가 칼레 앞바다에 진을 친 그 시간. 죽은 것으로 알려진 빌럼을 제외한 파르마 대공을 견제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초인들도 영국 함대에 합류하여 기함에서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회의의 주제는 아르마다를 어떻게 해야 하나였다.
“무조건 공격해야 하오. 우리가 거짓 정보를 흘려 파르마 대공의 군대를 철수시키긴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오.”
네덜란드의 대표로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대영주의 1인으로서 가장 직급과 작위가 높은 발터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소. 부끄럽지만 무방비로 이동하기만 하는 아르마다에 며칠간 포탄을 쏟아 부었음에도 이동을 막는 것은커녕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소. 지금에 와서 항구 앞에 진치고 있는 아르마다를 공격한다고 해서 별다른 피해를 입힐 것 같지는 않구려.”
“그렇다고 우리가 아르마다에 갑판전을 걸 수는 없는 일이고 말이오. 에스파냐의 보병 전투력은 세계 제일인데다가 초인들도 상당히 많소. 신화급 초인인 아메솔라 후작까지 있을 정도니...”
하워드와 드레이크가 발터의 말을 받아 이야기했다. 그들은 꽤 의기소침해 있었다. 당연히 큰 성과를 올릴 거라 생각했던 작전이었는데 아르마다의 단단함 앞에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그에 반해 단순히 파르마 대공이 항구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견제해달라고만 했던 네덜란드가 칼레 항구에서 파르마 대공을 철수시키는 공을 세웠다. 당연히 기가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신화급 초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영국과 네덜란드의 초인들이 모였소. 아르마다에 에스파냐의 모든 초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들이 힘을 합치면 그들에 대항할 수 있지 않겠소.”
“그건 에흐몬트 백작의 말이 맞소. 하지만 전투는 초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소. 아르마다에는 적어도 2만에 달하는 보병이 탑승하고 있소. 다른 나라가 아니라 에스파냐의 보병 2만이오. 우리보다도 네덜란드가 더 그들의 위력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만...”
확실히 그렇다. 지금 유럽에서 에스파냐 보병의 위력을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는 곳이 바로 네덜란드다 벌써 20년 가까이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초반에는 비슷한 전력을 가졌음에도 연전연패했을 정도로 에스파냐의 보병은 강했다. 지금이야 네덜란드 병사들도 단련되어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병력이 없소. 그렇다고 병력을 태울 공간도 없소. 전쟁을 갑판전으로 끌고 갔다간 괴멸당할 것이오.”
“그래서 제안할 것이 있소이다. 우리가 에스파냐를 상대로 해전에서 우위를 점한 것을 알고 계실 것이오.”
발터가 이미 빌럼까지 함께 한 네덜란드 회의에서 정리한 내용을 영국 장교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가 약간의 땅이라도 남겨두고 영국이 지원해줄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해전에서의 우위였다.
“우리에겐 영국의 뛰어난 속도와 함포도 없었고 에스파냐와 같은 정예 보병도 없었소. 그럼에도 우리가 에스파냐를 상대로 해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불을 이용했기 때문이지. 여기 계신 보어 자작님의 불꽃 덕분에 가능한 전략이었습니다만 보어 자작님이 계시지 않았던 전투에서도 불을 이용해 우위를 점한 일이 있소. 바로 레이덴시의 강에서 있었던 전투 말이오.”
레이덴은 내륙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바다까지 강이 이어져 있기에 배를 통해서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과거 에스파냐는 배를 타고 레이덴시를 공격해온 일이 있었다. 레이덴시를 방어하고 있는 병력이 많지 않았기에 에스파냐의 보병들이 배에서 내리기만 하면 레이덴은 포위당한채 고립될 터였다.
그때 레이덴시의 방어사령관은 루이웨가 암스테르담 앞바다에서 에스파냐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일을 떠올렸다. 루이웨의 불꽃이 배를 태워버리지 않았던가. 그것을 떠올린 사령관은 바로 선박 몇 척을 징발해 화약을 선창에 집어넣은 채 갑판에 기름을 뿌려 불을 붙인 채 에스파냐 선박을 향해 출발시켰다.
강은 폭이 좁기에 강을 가득 메울 정도로 몰려왔던 에스파냐 배들은 불이 붙은 배를 피할 공간이 없었고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불은 좁은 강가에 몰려있던 에스파냐 배에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에스파냐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나야했다.
발터는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영국 장교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오. 바다에서는 그저 피하기만 하면 되는 일. 별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오.”
하워드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도 지난 몇 달간 해전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 강과 바다의 차이점은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의 생각으로 배에 화약을 실은 채 불을 붙여 흘려보내는 것은 넓은 바다에서는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없는 전략이었다.
“아니. 잠깐... 불붙은 배를 보낸다면... 아르마다는 당연히 그것을 피하기 위해 흩어지겠지. 그거면, 그거면 충분할 것 같군. 아르마다를 흩어지게 만들 수 있다면... 아르마다에게 충분히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드레이크는 부정적인 하워드와 달리 뭔가 생각난 것이 있는 듯 했다. 하워드는 드레이크에게 어떻게 아르마다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유물의 능력 때문이오. 선체가 단단해지는 능력. 우리의 공격이 별 피해를 주지 못한 이유는 아르마다가 뭉친 채 유물의 가호를 받았기 때문이오. 하지만 흩어지게 만들 수 있다면... 아무리 유물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유물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선박이 나올 터. 우리는 그 선박을 공격하면 되오.”
“거기에 보어 자작의 불꽃도 추가 될 것이오. 적들은 혼란에 빠지겠지.”
발터가 드레이크의 말에 덧붙였다. 어두웠던 하워드를 비롯한 영국 장교들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전략의 큰 틀이 세워지자 회의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곧 세부적인 전략까지 세워졌다.
============================ 작품 후기 ============================
으음... 자꾸 늦어지네요.
내일 연재도 아마 좀 늦어질 겁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오세요.
아. 그리고 1부완까지 몇 편 안남았습니다.
월요일 휴재 없이 완결까지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