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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자. 가자.”
드레이크가 말하자 선수루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수가 깃발을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국 함대가 둘로 갈라지며 아르마다의 양 끝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것을 보며 아론은 이렇게 생각했다.
‘실제 지휘는 드레이크가 담당하는 모양이군.’
드레이크가 명령을 내리자 그대로 움직이는 함대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워드는 자신이 제독으로 임명되기는 했으나 자신의 해전 경험이 미천함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드레이크나 다른 일선에서 해전을 치러온 장교들의 제안을 듣고 나름 생각해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아르마다를 상대하는 전체적인 전략이 짜인 것이다. 거기에 하워드는 자신의 지휘능력 부족을 인정했다. 그는 장교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지휘관을 추천하라 했고 드레이크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하워드는 그 추천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직접 드레이크를 살폈고 신분은 미천하나 제법 실력을 갖춘 자라는 판단이 선 후에야 그에게 해상 지휘권을 맡겼다.
“우습군. 저딴 비루한 배로 아르마다에 대항하려 하다니.”
시도니아는 코웃음 치며 둘로 나뉘어 다가오는 영국 함대를 바라보았다. 시도니아는 육지 전투이긴 하나 나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지휘관이다. 둘로 나뉘어져 진격해오는 영국함대를 보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뭐. 나쁘지 않은 전략이야. 만약 아르마다의 사령관이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차라리 고맙군.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돌고래떼 덕분에 필요이상으로 체력을 소모하고 와서 아주 약간 걱정했는데. 체력을 아끼게 해줘서.”
시도니아도 영국 함대의 움직임을 보며 꽤 괜찮은 전략을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불리한 전황을 순간적으로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시도니아로선 이게 차라리 나았다. 괜히 난전이 일어난다면 보급선이나 보조선의 피해가 클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양날개에 있는 갤리온만 노려준다면....
“적의 공격을 무시하고 전진한다.”
이쪽은 무시하고 움직이면 된다. 굳이 지금 해전으로 뭔가 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 칼레에 도착해 파르마 대공의 도하 작전을 도운 뒤 적이 파르마 대공의 공격에 혼란스러워 할 때 빙 돌아가 영국 북부를 치는거다.
적의 전력은 파르마 대공을 막기 위해 남부에 모여 있을 터. 그들이 치고 박는 동안 자신이 비어있는 북부에 내려 진격한다면 파르마 대공보다 먼저 런던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시도니아는 펠리페2세와 파르마 대공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이번 전쟁의 들러리로 만들 생각일 터다. 하지만 시도니아는 그렇게 하도록 두고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파르마 대공의 도하를 돕는 것까지만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그 뒤에 독자적으로 움직여 공을 쟁취한다. 아메솔라 후작과 초인들도 파르마 대공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신이 공격할 북부로 데려가 쓸 생각이다.
19,000명의 보병과 아메솔라 후작을 비롯한 왕의 초인들. 그들이라면 비어있는 북부를 유린하고 런던을 점령할 수 있을 터. 시도니아는 최후의 웃는 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상하군. 반응이 없어.”
드레이크는 자신들이 둘로 나뉘어 양날개로 접근하는데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는 아르마다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아르마다의 지휘관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무리 지휘를 못하는 자라 하더라도 이렇게 양날개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함대를 둘로 나눠야 한다.
그래야 수적인 우위를 계속해서 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드레이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함대를 4개로 쪼개놓은 상태다. 지금 2개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각자 다시 2개로 나눈다. 그렇게 해서 수적인 우위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적 함대를 한 함대가 유인하고 남은 함대가 취약점을 찾아 공격할 예정이었다.
영국 선박의 빠른 속도와 긴 사거리를 가진 함포 덕분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적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시 우리 생각을 눈치 챈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있으면 눈치 챘든 어쨌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드레이크가 해적으로 나섰을 때부터 함께한 부장 린튼 호프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저대로 가만있으면 이쪽도 4개조로 나누지 않고 기존의 2개조로 양날개를 계속 두들길 것이다. 양날개가 튼튼하니 괜히 초승달 진영을 깨고 움직여서 보급선과 보조선들이 당하는 것보다는 적은 피해를 입겠지만 어쨌든 불리한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이쪽의 전략을 눈치 챈 것이라면 보급선과 보조선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이쪽의 전략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이쪽의 전략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초승달 진영을 깨고 둘로 나눠 싸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초인을 이용하려는 것인가?”
“아. 그러고 보니 아르마다에 신화급 초인이 한 명 있었소. 신체강화계열이었는데 배와 배사이를 뛰어다닐 정도로 강력한 신체능력을 발휘했소.”
“아메솔라 후작.”
“아메솔라!”
“펠리페의 철퇴!”
드레이크, 린튼 호프, 존 호킨스가 아론의 말을 듣고 감짝 놀라 이야기했다. 에스파냐에 신화급 초인이 한 명밖에 없기도 하지만 아론의 설명대로라면 아메솔라 후작이 정확했다. 펠리페2세가 명령을 내릴 때만 움직이며 그의 파괴적인 움직임이 마치 철퇴같다 하여 ‘펠리페의 철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으음... 펠리페2세가 아주 작정을 했군. 전군에 초인의 공격을 조심하라고 알려.”
강력한 초인은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육지라면 많은 수의 병사를 동원해 포위 공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선박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병사를 이용해 싸워야 한다. 당연히 약한 다수보다 강한 소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강한 소수가 신화급 초인이라면 당하는 입장에선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미 영국 함대의 기본 전략이 절대 아르마다에 접근하지 않는다였지만 그것은 갈고리가 걸리지 않을만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초인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긴 거리를 유지해야했다. 목숨을 걸고 말이다.
“혹시 그자가 넘어온다면... 상대할 수 있으시겠소?”
드레이크가 혹시 몰라 아론에게 물었다. 전설급 초인을 암살할 수 있다고 여왕이 자신있게 이야기한 실력자다. 상대가 신화급 초인이니 원래는 물을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 보았다.
“흠... 상대하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선박이 부서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할 것 같소.”
상대할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길 자신도 있는 아론이었다. 하지만 공간이동능력을 무조건 숨겨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놓고 생각하면 이길 수는 있어도 선박이 부서지는 것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나 자신이나 육체파다. 서로에게 강한 공격을 가할 때 돌로 만들어진 땅도 아니고 목재로 만들어진 선박이 버텨내지는 못할 듯싶었다.
그리고 정면 대결을 한다면 아마 불꽃도 사용해야 할 터. 오히려 아메솔라보다는 아론 자신의 공격으로 선박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아론의 속내를 모르는 드레이크로서는 아론의 대답을 ‘정면대결을 피하며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만 다른 이들을 지키는 것은 무리다.’라는 것으로 해석했다. 드레이크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정말 저들이 초인을 동원할 생각이라면 아메솔라가 이곳으로 오길 바라야 하겠소.”
아론이 아메솔라를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의 곁에 있는 린튼 호프가 가세한다면 이기는 것은 무리라도 비등하게나마 싸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드레이크는 생각했다. 그가 아는 가장 강력한 초인이 자신의 부관인 린튼 호프였다. 전설급 초인인 그는 영국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다 자부하는 자였다.
그런 그와 전설급 초인을 암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론이 함께 하고 드레이크 자신과 존 호킨스까지 가세한다면... 신화급 초인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비등한 싸움은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쪽은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저쪽은.... 하워드 제독이 제법 강한 초인이고 그와 함께하는 메이어르 백작도 있다곤 하지만 그들만으로 아메솔라를 상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메솔라가 저쪽 함대에 뛰어들 수 있다면 양떼에 뛰어든 늑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터.
“다시 신호를 보내라. 절대... 절대 안전거리를 유지하라고.”
드레이크로서는 초인이라도 건너오지 못할 거리를 유지하라고 다시 신호를 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걱정과 달리 아르마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라 몇 번이나 지시를 내린 드레이크가 무색해질 만큼 아르마다는 갤리온이 따로 움직여 영국 함대에 다가 간다거나 초인별동대를 태운 배를 움직인다든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초승달 진영을 유지한 채 항해를 지속할 뿐이었다.
“.... 도대체 모르겠군. 정말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기만 하는 건가?”
“얼마 전 산타 크루즈가 죽고 새로운 지휘관이 왔다고 하던데 그가 정말 멍청한 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드레이크는 린튼의 말대로 아르마다의 지휘관이 멍청한 자이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공격해라.”
드레이크가 공격을 지시했다. 그러자 영국 함대의 함포가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르마다의 함포 사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가해지는 영국 함대의 함포 사격. 사실 그 정도면 영국 함대의 함포도 거의 최고 사거리이기에 큰 피해를 주기는 어려운 거리였다. 하지만 드레이크에게는 함포의 위력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후우..... 불어라!”
숨을 한차례 가다듬은 드레이크가 팔을 하늘로 뻗친 채 소리 질렀다. 그러자 비스듬히 영국 함대를 향하던 바람의 방향이 아르마다를 향해 불기 시작했다.
‘허. 바람의 방향을 바꾼다?’
이번 전투에서 두 번째로 놀라는 아론이었다. 첫 번째는 신화급 초인의 등장에 놀랐고 두 번째는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주는 드레이크의 능력에 놀랐다. 아론은 즉시 솔코를 움직여 드레이크의 능력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을 확인했다.
‘대략 드레이크를 중심으로 2km정도의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군.’
드레이크를 중심으로 반지름 2km의 원 모양이 능력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반대로 불고 있었다. 바람은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말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곳에서 영향을 끼치지만 지금 상황에서 크게 꼽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1. 접근전에 능한 아르마다가 역풍으로 인해 드레이크의 함대에 접근할 수 없다.
2. 드레이크의 함대에서 쏜 포탄이 바람의 영향을 받아 더 강하고 더 멀리 나간다.
접근전을 피하고 포격전을 이어나가야 하는 영국 함대의 특징상 드레이크의 능력은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래서 여왕이 드레이크를 말하며 바다의 최강자라고 했는지 알 수 있겠군. 하지만....’
드레이크의 능력이 정말 괜찮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성능이 좋은 영국의 함포라 할지라도 아르마다의 두꺼운 선체를 뚫을 수 없겠지만 드레이크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아.’
상대가 나빴다. 다른 그 누가 상대였더라도 지금 영국 함대의 전술은 상당한 전과를 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시도니아다. 영국 함대의 함포가 불을 뿜고 포탄이 하늘을 날아 아르마다 초승달 진영의 양날개를 타격하기 직전. 양날개에 위치한 갤리온들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얀빛이 일어남과 동시에 영국 함대에서 발사된 포탄이 아르마다를 타격했다. 둘로 나눠진 영국 함대 중 하워드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포격은 당연히 거리가 멀어 타격을 입히기 힘들겠지만 드레이크 함대는 바람의 힘이 더해져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혔어야 했다. 하지만 시도니아의 능력은 아론의 돌고래도 어떤 타격도 가하지 못한 단단함을 자랑했다. 바람의 힘이 더해진 포탄 역시 시도니아의 하얀 빛을 뚫지는 못했다.
드레이크는 당황하며 계속해서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역시나 아르마다에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고 아르마다는 유유히 항해를 계속했다.
영국 함대가 포격하고 아르마다는 버틴다. 이 일방적인 공격이 며칠간 계속해서 이어졌다. 영국 함대는 중간에 항구로 돌아가 포탄을 다시 싣고 와야 했을 정도로 공격을 퍼부었다.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도니아의 능력으로 강화된 선체를 뚫지 못했지만 돛을 부수거나 선원과 보병들이 포탄에 맞는 등의 피해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르마다의 항해를 막지 못했고 시도니아는 칼레 항구 앞바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도니아는 당황했다. 이미 칼레 근처 육지를 장악한 채 아르마다가 오기를 기다렸어야 할 파르마 대공의 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르마 대공의 군대가 칼레항구에 없는 이유. 그것은 시간을 보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론은 자신을 따라온 코그를 통해 플리머스에 아르마다의 위치를 알리는 한편 솔코를 이용해 칼레항 앞바다에 있는 네덜란드 초인들에게도 아르마다의 위치를 알렸다.
============================ 작품 후기 ============================
원래 예상대로라면 이미 2주전에 1부가 끝났어야 했는데....
왜이리 안 끝나니. 우리 질척질척하게 이러지 말자.
ps. 도서관에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꽤 있네요.
ps2. 오타 지적, 잘못된 문법지적. 감사합니다. 항상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따로 글을 배운 적이 없어 기초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지적 덕분에 꽤 발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귀찮으시겠지만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