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281화 (28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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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거대 켈베로스는 이제 소용없겠어.”

거대 켈베로스를 꺼내놓는 대로 에스파냐의 신화급 초인이 찾아와 처리했다. 신화급 초인이 어디에서 머무는지 알아낸 다음 거기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배에 소환하기도 했는데 그 초인은 약 3km정도 되는 거리를 선박들을 징검다리처럼 이용해서 점프로 순식간에 이동해 왔다.

“정말 엄청난 신체능력이야. 신체능력만 따지면 나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힘만 강한 것이 아니다. 빠르고 단단하다. 거기에 검술 실력도 최상위급이다. 11살 때 시작하여 13살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그 후로도 꾸준히 단련을 계속하여 현재 27살이 된 아론. 이미 그의 몸은 인간의 한계를 논할 단계가 아니었다. 지구상 생물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 그런 아론보다도 뛰어난 신체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플로라의 강화까지 받으면 얼추 비슷하게 갈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정말 엄청나군. 세상 그 누구도 나보다 단련된 신체를 가진 자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있을 줄이야. 역시 신화급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군.”

신화급이라고 해서 전부 같은 급은 아니다. 감히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유물들에 붙여지는 등급 신화.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모든 유물을 신화급이라 부르기 때문에 같은 신화급 중에서도 상당한 능력 차이가 있다.

로레나가 가진 광휘는 신화급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한다. 유물의 주인은 별 능력이 없고 대상의 수명을 제한하며 일반인을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나 초인들에게 한 단계 높은 힘을 부여해주는 것은 등급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에 수십 명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등급이 높게 책정되었다.

수십 명의 새로운 초인이나 한 단계 등급이 오른 초인들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만 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최소 몇 년은 살 수 있고 몇 년이면 한 나라의 운명이 바뀔만한 시간이다. 실제로 이사벨라가 광휘를 얻은 후로 100년. 에스파냐는 쭉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올라있지 않은가.

“저게 다라면.... 무서워 할 건 없겠지.”

지금 당장 죽이는 것은 무리다. 1:1로 싸우도록 에스파냐의 병사나 초인들이 가만 있을리 없으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국과 에스파냐가 싸우기 시작하고 1:1로 붙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필승. 절대지지 않는다.”

저정도 신체능력이라면 공간이동 암살도 막거나 피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공간이동 암살에 래빗으로 몸을 공중에 고정시킨다면?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못할 것이고 자세를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여하튼 거대 켈베로스는 이제 그만 소환해야겠어. 무리 소환에 집중해야지.”

거대 켈베로스도 꽤 많은 체력을 잡아먹는다. 겨우 한 개체일 뿐이지만 별다른 능력을 쓸 것도 없이 스스로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니까. 그 위력에 걸 맞는 체력을 갉아먹는다. 그 체력소모가 적 선박 파손이라는 결과로 다가온다면 아무리 많은 체력이 소모되더라도 소환할 만하지만 지금처럼 얼마 피해를 주지 못하고 금세 죽음을 당한다면 체력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론은 이제 거대 돌고래의 능력 ‘무리 소환’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소환만 해대서 선박에 피해도 주지 못하고 속도를 줄이는 것에 그쳤지만 이틀째에 경로를 이탈한 환영 돌고래 중 하나가 선박 측면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을 공간 파악으로 보고 그곳에 환영 돌고래를 집중해 보았더니 작게나마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선박은 그 자리에 멈추곤 모든 선원과 병사를 동원해 배의 침수를 막는데 집중했다.

그때 그냥 선수에 박아서 속도를 줄이는 것보다 선측이나 선미에 박아서 선박에 피해를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소환’은 체력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빠르기에 1~2시간 정도 ‘무리소환’을 사용해 적에게 피해를 주고 영국 남부 해협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코그에 돌아가 1시간 정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한 후에 다시 돌아와 ‘무리소환’을 하고 있었다.

처음 선수에만 ‘무리 소환’을 집중했을 때는 아르마다가 아론이 쉬는 동안 최대한 속도를 내어 많은 거리를 이동했지만 선측이나 선미를 공략해 키를 부수거나 구멍을 내어놓으면 그것을 수리하느라 아론이 쉬는 동안에도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다. 거기에 필사적으로 탄환, 볼트, 포탄 등을 환영 돌고래에 소모한다는 덤까지 있었다.

아론이 거대 돌고래의 ‘무리소환’에 집중하자 아르마다는 더욱 거센 환영 돌고래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강력해진데다가 요령이 늘어 더욱 많은 피해를 강요하는 환영 돌고래의 습격에 아르마다는 거의 1주일동안 5km도 움직이지 못했을 정도였다. 1주일간 5km면 그냥 해상에 닻을 내리고 멈춰 있었다고 해도 믿을 거리였다.

시도니아와 참모진도 수를 내기 시작했다. 군선에 비해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 만들어진 상선과 보조선은 상대적으로 내구력이 약했기에 환영 돌고래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아론이 상선과 보조선의 내구력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쪽에 공격을 집중한 것도 큰 피해에 한몫했다.

시도니아는 이 상선과 보조선들을 크고 단단한 군선 사이에 숨겼다. 간단한 조치였지만 이것만으로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환영 돌고래의 공격을 대부분 받아내는 군선들의 피해가 늘어나긴 했지만 상선과 보조선들이 피해를 입던 시기에 비하면 확실히 피해가 크게 줄었다. 군선을 만들 때 쓰는 목재는 무겁지만 상당히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속도는 좀체 나지 않았다. 피해가 크게 줄기는 했으나 많은 수의 배가 피해를 입으나 적은 수의 배가 피해를 입으나 이동 거리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몇 척이라도 문제가 생겨서 멈추면 함대 전체가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따로 떼어놓고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처음 몇 척의 속도가 느려졌어도 신경 쓰지 않고 항해했다가 도와주러 가기 힘든 거리까지 벌어지자 거대 켈베로스가 소환되어 선박을 잡아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함대에서 떨어지면 거대 켈베로스의 먹이가 된다. 그 때문에 함대는 멈추거나 움직일 때나 항상 함께했다.

그래도 피해를 입는 선박의 수가 줄어드니 그만큼 빠르게 고치고 움직일 수 있어 조치를 취하기 전보단 확실히 많이 움직일 수 있었다. 일주일간 약 50km. 조치를 취하기 전보다 10배정도 늘어난 이동거리지만 이 속도를 유지하다간 영국에 도달하기까지 3~4달은 걸릴 것이다. 그만큼 항해할 식량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걸려서 도착했다간 전쟁은 시작도 못해볼 것이다.

“빌어먹을.... 별수 없군.”

시도니아가 드디어 능력을 발휘했다. 아르마다 함대 전체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시도니아의 유물은 선체의 내구력을 올려준다. 능력이 사용되자 더 이상 환영 돌고래의 돌격으로 피해를 입는 선박은 나오지 않았다. 시도니아가 바다에서는 최강이라 자부하는 능력다웠다.

그래도 속도가 저하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시도니아의 능력은 선체를 강화해주는 것이지 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상쇄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무리소환’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속도가 좀체 나지 않았지만 선체에 파손이 없었기에 ‘무리소환’이 끝나고 아론이 쉬는 동안에 방해없이 이동할 수 있기에 항해 거리가 대폭 늘어났다. 그러자 아론도 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선박으로 돌아가 쉬는 것도 멈추고 거대 돌고래 위에서 휴식을 가지며 체력의 한계까지 쥐어짜서 ‘무리소환’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효율이 달랐다. ‘무리소환’은 시도니아의 능력보다 활용도가 높아서 그런지 체력 소모가 훨씬 컸다. 아론이 무리를 하며 환영 돌고래를 만들어내자 확실히 아르마다의 항해거리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효율이 좋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론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이러다가 변수라도 생기면 대처하기 힘들 것 같았다.

아론은 고민하기 시작했고 고민 끝에 ‘무리소환’을 한번 사용할 때 지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 동안만 사용한 후 휴식 역시 절반만 가진 후 다시 무리소환을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방식은 아론이 휴식을 길게 가질 경우 아르마다의 선박이 꽤 가속도가 붙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하던 것을 짧게 자주 멈추게 해서 가속도가 붙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효과적이었고 아르마다의 항해 속도를 상당히 늦추었다. 거기에 하루에 6시간 정도 시도니아가 잠들었을 때 아론은 틈틈이 휴식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으로 잠을 대체한 덕분에 시도니아가 자는 동안의 아르마다는 거의 멈춰있다시피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된 후 아르마다의 일주일간 이동거리는 약 100km. 전보다 2배 늘어난 것에 그쳤다.

이때 날짜는 88년 8월 8일. 아론이 나타나 아르마다의 이동을 방해하기 시작한지 한 달. 아르마다는 한 달 동안 단 160km만을 이동했을 뿐이었다.

***

한편 파르마 대공은 칼레 항에서 거룻배 200척을 모아놓고 아르마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도니아 이 작자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지 모르겠군.”

파르마 대공이 시도니아를 욕했다. 약속한 전략대로라면 7월 중순 경 칼레 앞바다에 아르마다가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20일 이상이 지난 지금도 아르마다는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런던을 포위하고 있거나 이미 함락했을 시간이다.

그런데 출발은커녕 네덜란드 초인들에게서 거룻배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어야한다니. 원래 거룻배는 300척 가량 있었지만 네덜란드 초인들의 습격으로 100척이 불타버렸다.

네덜란드 초인이 나타난 것은 7월 10일의 일이었다. 그들은 작은 어선을 타고 칼레 앞바다에 갑자기 나타나 항구 앞에 정박하고 있던 거룻배를 습격했다. 그 습격으로 거룻배 50척이 불타버렸다.

그러곤 항구에서 멀지 않은, 하지만 대포의 사거리가 닿지 않을 만한 곳에 어선을 정박한 채 대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거룻배에 병력을 태워 보냈다. 큰 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네덜란드 초인들이 위치한 바다는 수심이 얕기에 큰 배가 갈 수 없었다. 그 때 다시 50척의 거룻배를 잃었다. 네덜란드의 초인들은 강했다. 거룻배에 탄 일반 병사들은 감히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고 초인들 역시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파르마 대공은 병력을 물리고 거룻배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항구 안쪽으로 배들을 들였다. 대포 사거리 안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영국에 상륙해 쓰기 위해 거룻배에 실어두었던 대포들을 다시 내려 항구에 배치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초인들도 낮에는 공격해오지 못했다. 공격하다가 눈먼 포탄에라도 맞으면 죽거나 죽을 부상을 입게 될 테니까.

하지만 밤에는 달랐다. 몰래 들어와 거룻배를 태우고 가거나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는 멀리서 불꽃을 일으켜 배를 태우기도 했다.

“크으.... 빌어먹을 푸른 악마...”

파르마 대공은 루이웨만 생각하면 이를 갈며 분노했다. 그의 불꽃에 전소한 거룻배만 전체의 반인 50척이 넘어서는 것이다. 만약 그만 없었다면 네덜란드 초인들도 진즉에 쫓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웨의 능력은 해전에서는 사기였다.

바다 위에서 싸우긴 하나 선박은 불에 타는 목재로 만든다. 그리고 방수와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체에 역청과 타르를 바르는데 이 역청과 타르가 불에 잘 타는 연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선박이든 가장 엄수해야할 규칙이 바로 불조심이다. 그런데 루이웨는 언제 어디서든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도 일반 불꽃보다도 고온의 불꽃을 말이다.

아무리 바다라고 하더라도 선박에 한번 불이 붙으면 전부 타버릴 때까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루이웨는 여기저기 불을 붙이고 다녔고 크기가 작은 거룻배는 한 번 불이 붙으면 소화 작업을 할 겨를도 없이 전소해버렸다. 해전에서 루이웨는 상대편에게 그냥 악마가 아니라 대악마처럼 보였다.

“전부 시도니아 때문이다. 큰소리를 그렇게 치더니 함대를 이끌고 이동하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하다니.”

파르마 대공은 자신이 칼레항구에 묶여있는 것과 네덜란드 초인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이 상황 모두가 시도니아의 탓으로 여겨졌다. 그가 만약 약속한 날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이미 네덜란드 초인들을 쫓아냈을 것이고 영국 침공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배를 이끌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데 도대체 이렇게나 지연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음... 혹시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함인가?”

시도니아의 현재 상황을 모르는 파르마 대공으로선 아르마다가 약속한 시일 내에 도착하지 못한 이유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무적함대인 아르마다의 항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고 파르마 대공은 결국 시도니아가 자신을 골탕먹이기 위해 일부러 늦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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