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276화 (276/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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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1588년 4월 20일 수요일

-전리품 분석이 완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전리품의 보조 아이템 등록이 가능해집니다.

알바 공작을 암살할 때 얻은 3개의 전승급 유물. 그 중 세 번째 유물인 귀걸이의 분석이 완료됐다. 3개의 유물 분석을 마쳤는데도 아직 4개의 유물에 대한 분석이 밀려있다. 어머니를 습격했던 명품급 유물 2개와 영국 요크에서 에스파냐 초인을 암살해 얻은 전설급 유물 2개. 유물 하나 당 100일의 시간이 걸리니 앞으로 1년하고도 1달은 지나야 분석이 완료 될 것이다.

또 모르지. 전쟁이 계속되면 새로운 유물을 얻게 될지도. 다음에 분석할 유물은 정해뒀다. 암살하기 전 여왕에게 들었던 전설급 초인의 능력에서 어머니에게 어울릴만한 유물을 찾았었다. 이번엔 그걸 분석해서 어머니께 드려야겠다. 아무래도 명품급만으로는 불안해서 말이지.

‘유물의 능력에 대해서 말해줘.’

-네. 넘버 4,723 스스로 ‘모션 파이어’라 이름 붙였습니다.

출력 34,000k이며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춰 불꽃을 생성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이사항으로 사용자의 움직임에 담긴 힘이 강할수록 더 강력한 불꽃을 생성합니다.

불꽃 생성? 매력적인 능력이다. 귀걸이 전에 분석이 완료 되었던 허벅지 보호대와 팔찌는 각각 ‘대기의 흐름을 읽고 자극할 수 있는 능력’과 ‘강철 방울을 만들어내 무엇이든 의지대로 안에 집어넣거나 꺼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둘 다 당장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능력이었다. 상당히 훈련을 한 후에나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불꽃은.... 어릴 적부터 사부님의 능력에 대해 동경해왔다. 사부님의 감각과 그나마 비슷한 공간파악이라는 능력을 얻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거기에 더해 불꽃까지 얻는다면... 이 불꽃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시간이 없어 훈련할 시간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괜찮다 싶으면 바로 보조 아이템으로 등록해서 사용해야겠다.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춰 불꽃을 생성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 불꽃이 생성되지만 불꽃을 생성하는 전제조건이 사용자의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팔을 뻗으며 불꽃을 생성하신다면 불꽃이 생성되는 순간 팔의 움직임에 맞춰 불꽃의 방향이 결정되고 팔에 담긴 에너지에 의해 불꽃의 강도가 결정됩니다. 팔을 약하게 휘두르면 작고 낮은 온도의 불꽃이, 강하게 휘두르면 크고 높은 온도의 불꽃이 생성됩니다.

대충 이해는 됐다. 마음에 든다. 딱 나에게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이 유물의 전 주인이 몸을 얼마나 단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신체능력을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이 유물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낼 주인으로서 어울린다.

‘보조 아이템에서 밴 소드를 제외하고 모션 파이어를 새로 보조 아이템으로 등록해줘.’

-‘밴 소드’를 보조 아이템에서 제외, ‘모션 파이어’를 보조 아이템으로 등록. 맞습니까?

보조 아이템 등록과 해제는 하루 한 번만 가능합니다.

‘응. 맞아. 그렇게 해줘.’

-‘밴 소드’를 보조 아이템에서 제외하고 ‘모션 파이어’를 보조 아이템으로 등록합니다.

넘버127의 목소리와 동시에 ‘밴 소드’와의 교감이 끊기고 ‘모션 파이어’와의 새로운 교감이 시작되었다. ‘모션 파이어’와 내가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 새로운 신체 부위가 생긴 것 같은 감각이다.

‘그렇군.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어.’

역시 설명을 듣는 것 보다는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이 훨씬 좋다. 보조 아이템으로 등록한 것뿐인데 설명을 들었을 때보다 능력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실제로 한 번 사용해봐야지.

“수련실로 가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곁에 있던 토마스에게 이야기하고 지하의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실에 딱히 준비할 것은 없지만 수련을 끝내고 나올 때 문 앞에 있는 토마스가 수건과 새로운 옷, 수련실 옆에 있는 목욕탕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는 등의 준비를 해놓을 것이다.

“후우.”

수련실 한 가운데에 섰다. 일단 맛보기로 팔을 약하게 휘두르며 불꽃을 일으켰다.

화르륵.

불꽃이 반원을 그리며 일어났다. 이런 식이구만. 흐음.... 그럼 이번엔.

“전력으로 간다.”

왼발을 들어 올려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가 활시위처럼 반동을 이용해 크게 한발 딛고 몸을 내밀며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뻗는다. 그리고 그 주먹 끝에 불꽃을 생성했다.

***

화화확!

“음?!”

수련실 밖에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토마스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수련실 문 사이로 정체모를 불꽃이 새어 나온 것이다. 그가 알기로 그의 주인인 아론은 불꽃을 생성하는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적의 침입일 수도 있다는 뜻.

토마스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야수화를 하며 수련실 문으로 달려갔다. 수련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는데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야수화를 했기에 견딜 수 있지만 인간의 몸으로 잡았다면 단연 화상을 입었을 정도의 열기.

쾅.

강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수련실 내부를 훑었지만 워리어로 몸을 감싸고 있는 아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대체....”

수련실 내부를 살피던 토마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수련실 내부는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 아론의 힘을 조금이라도 더 견뎌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부의 공기가 후끈했고 토마스가 서 있는 곳의 강철이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마치 열이 가해진 냄비처럼 말이다. 심지어 아론 주변의 강철들은 녹아있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하. 새로 얻은 유물을 실험해봤는데 예상외로 위력이 강하네.”

“... 강한 정도가 아닌데요.”

주인이 강해졌다는 것이 기쁜 토마스였지만 녹아내린 아론 주변의 바닥과 천장을 보니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저것들을 고치려면 거액이 들어갈 것이다.

“꼭 수련실을 녹일 필요는 없었지 않습니까?”

“하하. 미안.”

아론은 실없이 웃으며 멋쩍어했다. 그 자신도 새로운 유물의 위력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전력으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적당히 휘둘렀을 것이다. 전력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불꽃을 일으키는데 거대한 불꽃이 나와 수련실 내부를 가득 채우며 자신에게까지 달려오는 것에 놀라 워리어를 컴뱃아머 형태로까지 만든 그다. 워리어가 없었다면 아무리 그의 몸이 내구력이 좋아도 몇 군데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을 전부 태워먹었을 것이다.

“일단 수련실 수리는 나중에 하자. 새로운 유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으니까.”

“......”

‘여기서 더 부수시려고 하는 겁니까? 적당히 하십시오.’라고 하고 싶은 토마스였지만 아론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새로운 유물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주인을 보니 잠깐 올랐던 화가 가라앉았다.

“네. 부디 몸은 상하지 않는 선에서 해주십시오.”

“응. 걱정마. 당분간 워리어를 입고 수련할 테니까.”

아론도 다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자신이 제대로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는 워리어를 컴뱃 아머의 형태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

1588년 5월 8일 일요일

신이 주신 휴일. 당연히 모든 이가 쉬어야 하는 날이지만 영국 왕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90%입니다. 총 100척 가량의 배가 리스본에 정박 중이며 선장은 물론 대부분의 선원이 목적지가 영국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장 1명, 간부 4명, 선원 58명에게서 알아낸 정보입니다. 이 중 영국을 목적지로 알고 있는 자가 40명, 19명이 칼레, 4명이 북해로 알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영국이군. 그럼 90%라고 하지 말고 100%라고 해야지 않소.”

월싱엄의 보고에 여왕이 답했다.

“그래도 희망을...”

“희망은 무슨. 내가 어릴 적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희망은 바란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가만히 있는데 찾아오는 것은 신께서 주신 구원이지. 구원은 그리 많지 않아. 내가 준비하고 실행해야 찾아오는 것이 희망이오. 희망은.... 준비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찾아오지.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준비할 것이고. 그렇지 않소. 하워드 제독?”

“물론입니다. 가만히 앉아 기도만하는 것은 사제와 일반 백성들만 하는 것이지요. 귀족은 가만있지 않습니다.”

하워드. 에스파냐의 침략에 대비해 조직하기 시작한 함대의 총사령관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내심 드레이크를 총사령관에 앉히고 싶었지만 드레이크는 평민출신으로 신분이 미천하다. 의회에서는 신분이 미천한 드레이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를 절대 총사령관에 앉힐 수 없다하였고 여왕과 의회의 긴 줄다리기 끝에 결국 하워드를 총사령관에 드레이크를 부사령관에 앉히게 되었다.

드레이크를 부사령관에 앉힌 것도 최근 일어났던 노퍽 공작의 반란사건을 제압하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입지가 크게 올라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 전이었다면 드레이크를 한 배의 선장으로서 전쟁에 참여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비록 드레이크를 총사령관에 앉히는 것은 실패했지만 하워드란 존재가 총사령관이 된 것에 대해 여왕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흠.. 에스파냐의 침략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나쁘지 않습니다. 부사령관인 드레이크가 신분이 미천하긴 하지만 그의 전략이 나쁘지는 않더군요. 역시 아무리 미천한 자라하여도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다보면 제법 능력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고귀한 귀족들은 워낙 바쁘고 할 일이 많은지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요.”

“후후. 그렇소?”

이게 여왕이 하워드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다. 그는 전형적인 귀족으로서 귀족이 아닌 자들의 능력은 귀족에 절대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다. 하지만 눈이 좋고 귀가 열려있었다. 하워드는 귀족은 다스려야하는 존재로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니 뭔가 일을 함에 있어서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아래에 있는 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잘 반영하는 편이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납득해야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고민한다. 오만하지만 평민의 의견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여왕은 하워드야말로 귀족으로서 모범적인 인물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왕족이었다면 어떻게 하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을 것이고 자신이 20년만 젊었다면 그와 결혼했을 것이다.

“드레이크가 선제공격을 제안했습니다.”

“선제공격을? 아르마다는 무적함대라 불리고 있소. 그런 함대에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무리한 선택 아니오?”

하워드의 말에 여왕이 의문을 표시했다. 순전히 방어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리어 공격을 한다니. 무적함대를 상대로 말이다.

“흠.. 저도 잠깐 의아했으나 아무리 미천하다고 해도 바다에서 수십 년을 활동한 자.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고민해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 싶었습니다.”

“나쁘지 않다?”

“네. 그가 가지고 있는 에스파냐 선박을 상대로 한 수십 번의 전투 경험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영국의 대포가 에스파냐의 대포보다 사거리가 짧은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위력 또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오. 그렇소? 아버지께서 대포 제조에 공을 들인 보람이 있구려.”

영국이 본격적으로 공을 들여 대포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인 헨리 8세 때부터였다. 유럽 대포의 대세인 청동 대포가 아니라 영국에서 많이 나는 주철로 만든 대포였는데 초기에는 몇 번 쏘지 못하고 부서졌지만 수십 년에 걸친 연이은 개량을 통해 상당히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상당한 성능 개선이 이루어져 싸게 많이 만들 수 있기에 좁고 길어서 대포를 많이 실을 수 있는 영국 선박에 제격이었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지금 모이고 있는 에스파냐 선박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들만으로 영국을 침략할 생각은 아닐 것이라 했습니다. 아마도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파르마 대공의 병력도 함께 쳐들어올 것이라 하더군요.”

“흠... 그럴 수도 있겠구려. 확실히 100척의 배에 아무리 많은 보병을 태운다 하더라도 2~3만에 그치겠지. 그 정도면 우리 영국으로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병력이오.”

하지만 파르마 대공의 병력이 함께 넘어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만에 3만이 더해져 5만. 5만이라면 영국도 비슷한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질에서 차원이 달랐다. 에스파냐는 직업 군인, 영국은 징병군인으로 구성될 테니 말이다.

“드레이크의 말이 맞다면... 정말 큰일이군.”

“드레이크는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기회가 된다?”

“네. 아르마다는 파르마 대공과 함께 움직이기 위해 칼레로 향할 터. 좁고 긴 남부 해협을 지나는 동안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면 파르마 대공의 병력이 아예 바다로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아르마다는 단단하고 강하지만 느립니다. 우리는 빠르죠. 그리고 좁고 길기 때문에 에스파냐 선박에 비해 많은 수의 대포를 설치할 수 있고 대포의 사거리도 깁니다. 치고 빠지는 방법으로 우리 함대를 네 개 조로 나누어 한 조씩 번갈아가며 포를 쏘고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남부 해협에서 내내 할 수 있다면 아르마다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흠...”

여왕은 그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르마다가 칼레로 간다는 전제하에 짜여 진 전략이지만 만약 칼레로 향하지 않을 경우에는 기존의 방법대로 방어전으로 바꾸면 될 터. 영국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었다.

“괜찮구려. 그대로 실행할 생각이오?”

“조금 더 다듬어야 하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이 수를 쓰고 싶습니다.”

“허락하오. 영국을 부탁하오. 하워드 제독.”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월싱엄.”

“네. 폐하.”

“파르마 대공의 부대가 영국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면 뭔가 기미가 있을 터. 네덜란드에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혹시 정말 영국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면 견제도 해달라고 하시오. 에스파냐를 우리 힘만으로 막으려 하는 것은 미련한 짓. 지금은 네덜란드와 힘을 합쳐야 할 때요.”

“알겠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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