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272화 (27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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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1588년 1월 1일 목요일

여왕의 군대가 요크를 포위했다.

“상당히 당황하고 있네.”

“그럴 수밖에요. 싸우자니 믿고 있던 에스파냐의 초인 둘이 죽었고 항복하자니 노퍽 공작 등 최상위층은 사형이 확정되어 있으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당황할 수밖에요.”

도시 요크에서는 노퍽 공작과 그 주변의 인물들은 지금 무언가를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공간파악으로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어떤 내용일지는 뻔하다. 항복과 전쟁. 그 둘 중 하나를 결정하기 위한 말다툼일 것이다.

내가 전설급 초인을 암살한지 6일이 지났다. 음... 12시 지나서 암살했으니 정확히는 5일이 지났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

암살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기다리지 않고 26일 아침 바로 요크에 항복을 권고했다. 새해까지 기다려주겠다며 말이다. 다른 때였으면 코웃음 치며 절대 항복은 없다고 말했을 노퍽 공작이지만 전설급 초인 둘이 죽은 것을 알게 되며 한껏 부풀어 있던 배짱도 함께 죽어버렸다.

그는 여왕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을 비롯한 핵심 인물들에게 사면을 약속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물론 불가능했다. 반란이다. 반란을 한 자는 여왕이 살려주고 싶어도 의회에서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최종 결정은 여왕이 하겠지만 의회에서 강력히 주장하면 여왕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왕은 노퍽 공작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헨리 8세가 가톨릭과의 인연을 끊은 이후로 영국 내의 가톨릭 세력은 대대로 영국 왕실의 걸림돌과도 같았다. 종교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러다보니 영국 왕실이 그들과 상생하는 일을 진행해도 무작정 반대, 영국에 좋은 일을 해도 무작정 반대였다.

노퍽 공작을 뽑아낸다고 해도 영국 내 가톨릭 세력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조용하게 만들 수 있을 터. 당연히 살려줄 이유가 없지.

흠. 시간을 들여 계속해서 흔들어주면 피해없이 요크에 입성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여왕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뿌우~~~.

진군나팔 소리가 들리고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만큼 여왕의 준비는 철저했다. 투석기가 돌덩어리를 날리고 영국 특유의 장궁병들이 화살을 쏟아 부었다. 요크 측에서도 반격을 했지만 물량에서 차이가 났다. 화살이나 핸드캐넌과 같은 원거리 병기는 물량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요크측의 장궁병들은 이내 성벽 밖으로 고개도 내밀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보병들이 움직였다. 투석기와 장궁병덕분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저항은 미미했다. 거의 없다시피한 저항을 뚫고 성벽 밑에 도착한 그들. 하나 둘 사다리가 걸쳐졌다. 성벽에 있는 노퍽 공작의 병사들이 화살에 맞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떼어내려 했지만 보병들 사이에 섞여 있던 초인들이 먼저 성벽위에 올라서 사다리를 사수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노퍽 공작 측의 초인들이 나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압당하기 시작했다.

여왕측의 초인 슈루즈버리 백작과 프랜시스 월싱엄. 그리고 월싱엄 휘하의 초인부대. 그들은 노퍽 공작의 초인들을 압도했다. 슈루즈버리 백작이 하나 남은 노퍽 공작측의 전설급 초인을 상대하고 월싱엄이 휘하의 초인들과 함께하며 노퍽 공작의 초인들을 제압해 나갔다. 실력차가 크니 죽일 것까지도 없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단계가 높은 초인은 자신보다 낮은 단계의 초인을 참 쉽게 상대하는 것 같아. 실력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지금 슈루즈버리 백작이 노퍽 공작 측의 전설급 초인을 압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진즉 죽였을 것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고 슈루즈버리 백작이 사정을 봐주고 있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

그렇게 사정을 봐주고 있는데도 일방적이었다. 상대는 슈루즈버리 백작에게 상처하나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실력차가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도 제법 눈썰미가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슬쩍 저들의 실력을 한번 평가해보면 슈루즈버리 백작이 7~10%정도 더 강한 느낌? 그게 정확할거다. 공간파악을 얻은 후 내 안목은 상당히 괜찮아졌으니까.

“아무래도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초인은 초인을 상대하는 법을 알죠. 그러니 약간의 실력차가 실제 전투에서는 크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대도 초인을 상대하는 법을 알 텐데 말이야.”

“둘 다 알고 있겠죠.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똑같은 방법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전력이 위인 쪽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흠..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저들은 같은 나라의 초인들이니까. 서로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을 지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여왕의 초인들은 노퍽 공작측의 초인들을 죽이기보다는 생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전력차가 난다고 해도 초인간의 전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한 쪽을 봐준다는 게 가능할까? 솔직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초인을 상대하는 법을 안다고 해도 상대방이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일반 병사의 검에만 찔려도 죽는 것이 초인이다. 아무리 강해도 인간은 인간. 방심하면 죽는다. 그러니 나라면 아무리 실력차가 난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싸울 거다.

그리고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당하는 노퍽 공작측의 초인들. 혹시 지난 5일간 노퍽 공작에게 항복할 시간을 준 것은 초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살려서 중히 쓰도록 할 테니 적당히 싸우다가 제압당하라고 말이다.

사실 노퍽 공작을 살려줄 생각이 없는 여왕이 시간을 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자신이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노퍽 공작은 항복을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초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겠지. 그들도 에스파냐 초인이 죽은 이상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명분이 없었기에 죽음을 각오할 이유도 없었다. 노퍽 공작은 반란자니까. 이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봐야 반란자로서 죽는 것일 뿐. 충분히 여왕의 설득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 살려주고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준다고 하면 말이다.

생각할수록 그게 맞는 것 같다. 참.... 언제 그런 생각을 다했는지. 엘리자베스 여왕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군주로 있는 영국... 앞으로 큰 발전을 하겠지. 역시 여왕과는 앞으로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어.

잠깐 생각하는 사이 전설급 초인을 끝으로 모든 초인의 생포가 끝났다. 죽은 자들도 몇 있긴 하지만 아마 그들은 여왕의 설득에 응하지 않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겠지. 빛이 되어 날아가는 유물이 없는 것을 보면 전부 명품급. 명품급이라면 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죽여서 유물을 뺏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요크는 초인으로 버티고 있던 곳. 초인이 전부 무너지자 전황은 급속도로 여왕측에게 넘어왔다. 여왕의 초인들이 도시 내로 들어갔고 병사들이 성벽부터 차근차근 요충지를 점령해나갔다. 곧 도시 안에 있던 노퍽 공작과 핵심 귀족들이 잡혀왔고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1588년 1월 28일 수요일

메리 스튜어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번에 영국은 군주의 힘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약하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여왕은 메리 스튜어트의 사형을 계속 반대했다. 그녀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해도 튜더가의 피를 이은데다가 과거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자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의 자리는 신이 주신 것이기에 인간이 처벌할 수 없다며 한때 여왕이었던 메리 역시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의회는 끝까지 메리의 처벌을 요구했다. 영국의 분란을 계속해서 조장하는 그녀를 살려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여왕도 결국엔 의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스코틀랜드에서 프랑크로, 프랑크에서 스코틀랜드로,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으로 향했던 메리 스튜어트의 길었던 여정은 종지부를 찍었다.

노퍽 공작 등 이번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계획에 참가했던 귀족들은 이미 전부 처형당한 뒤였다. 이로 인해 영국 내 가톨릭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프로테스탄트와 여왕이 영국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메리 스튜어트의 사형 집행이 있던 날.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를 불렀다.

“지금 나를 위로해주는 건 네가 알려준 이 카카오차 뿐이구나.”

“그렇습니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있다고 해도 상당히 침울해 보이는 여왕 앞에서 하기는 힘들었다. 난 잠깐이나마 메리 스튜어트의 죽음을 거부했던 것이 여왕의 쇼는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냥 바로 죽이자니 남들의 눈치가 보여서 의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쇼. 하지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메리 스튜어트를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카카오차는 그냥 달기만 한 것이 아니야. 품위있게 달지. 설탕물은 천박한데 카카오차는 부드럽고 기품이 있어.”

“확실히 그렇습니다. 향 또한 마음을 안정시켜주지요.”

여왕이 카카오차를 즐겨서 그런지 최근 런던의 귀부인들 사이에는 카카오차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양모를 공급해주는 영국 상인 론 커리가 카카오를 구할 수 있는지 물으며 알려준 정보다.

“얼마 전 제임스 녀석이 신하를 보내 어머니를 살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제임스라면... 아마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일 것이다. 그는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지.

“아마 제임스 녀석이 정말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거야. 아무리 메리의 죽음을 주장하는 의회라고 해도 스코틀랜드에서 몇 가지 이권만 약속해준다면 그녀를 살려주었을 테니까. 메리의 목숨값은 그리 비싸지 않거든. 하지만 제임스의 신하는 몇 번 이야기해보더니 그냥 가만있더군. 흉내내기에 불과했던 게지. 그래도 어머니니까 걱정하는 시늉한번 해봤던 거야.”

그럴 수도 있다. 메리 스튜어트가 스코틀랜드에서 쫓겨난 것은 제임스가 아직 걷지도 못할 때였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리 없고 메리의 적만 가득한 스코틀랜드에서 좋은 이야기를 해줬을 리 없으니 좋은 감정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골치아픈 이름만 어머니인자. 차라리 죽었으면 싶다는 생각도 했겠지.

“나 죽으면 영국을 물려받을 녀석인데... 실망이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결혼해서 후계자를 낳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 아무리 그래도 자기 어머니인데 죽는 것을 방조하다니.”

“왜 그렇게 메리 스튜어트를 아끼시는 겁니까. 폐하를 몇 번이고 죽이려 했던 사람 아닙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물었다. 너무 궁금했다. 왜 그렇게 메리 스튜어트를 살리고 싶어 했던 걸까. 실제로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가족이 있나. 아론?”

“네. 어머니와 외숙조부, 이모가 있습니다. 그 외의 가족은 전염병 때문에 전부 신의 품으로 갔습니다.”

“그렇군. 그럼 만약 어머니와 외숙조부, 숙모가 전부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으냐.”

여왕이 뭐라고 하고 싶은지 알겠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경우는 다르다.

“메리 스튜어트는 폐하를 죽이려 했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를 죽이려 하지 않죠. 오히려 저를 위해 죽어줄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세상에 내 가족 한 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차이는 크다. 아무리 나를 미워하는 자라해도 나와 같은 튜더가의 피가 흐르는 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를 죽이려 해도 상관없다. 나도 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그녀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좋았다. 그래서 그녀를 레스터 백작과 결혼시키려고도 했었지. 레스터 백작과 그녀 사이에 나온 아이를 내 양자로 받아들여 영국을 물려줄 생각도 했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튜더가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아니겠느냐.”

“제임스 6세가 있지 않습니까.”

“그 녀석은 아니야.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녀석따위 튜더가의 사람이 아니다. 내 언니인 메리 튜더는 나를 증오한다고 할 정도로 싫어했지. 그럼에도 날 죽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 나 역시 튜더의 피를 잇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메리 스튜어트가 죽음으로서... 튜더가의 핏줄은 끊겼구나. 이제 세상에 튜더는 나 하나뿐이다. 그게 너무 힘들구나. 외로워.”

정말 외로워 보인다. 얼마나 말할 사람이 없으면 외국인인 나를 불러다가 그런 말을 할까. 나도 잠깐 생각해본다. 어머니도 없고 사부님도 없고 애니 이모도 없고 빌럼 주니어도 없고 세상에 렐리라곤 나 혼자다라고 생각해보자... 토마스와 마우리츠도 이제는 내 가족이니 그들도 없다고 생각해보자. 쓸쓸하겠구나.

마음을 터놓고 완벽하게 신뢰하며 지낼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플 것 같다. 내 목표인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상인이 되어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부를 쌓았다고 생각해보자. 그 부를 함께 누릴 가족이 없고 물려줄 후손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그 부를 나 혼자 다 쓰고 죽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순간적으로 여왕의 마음이 깊이 공감되었다. 그러자 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그녀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며 카카오차를 마실 뿐이었다.

***

1588년 2월 23일 화요일

“감히 영국 따위가......”

영국의 소식이 펠리페2세에게 전해졌다. 그가 후원하던 암살 계획이 무너진 것과 그가 파견한 전설급 초인 둘의 전사 소식, 그리고 메리 스튜어트를 비롯한 가톨릭계 세력의 사형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펠리페2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시도니아를 불러와라.”

시도니아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아르마다’의 총사령관이다. 에스파냐가 세계의 바다를 주무르고 있는 기반이 되어주는 절대 무력 ‘아르마다’ 펠리페2세가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칼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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