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234화 (23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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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2년 8월 18일 수요일 아침

에스파냐는 간밤에 발터 일행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지점을 수많은 병력을 이용해 크게 에워싸고는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빠르게 포위망을 줄이기 시작했다.

에스파냐는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초인을 상대하는 것이니 뭉쳐서 대비해야 하건만 마치 10살 어린아이를 찾는 수색처럼 넓게 펼쳐서 최대한 많은 범위를 수색하는 것에 집중했다. 포위망 안에 있는 발터 일행이 공격해올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진형이었지만 지휘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발터 일행을 추적해온 에스파냐군이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라도 대략적인 위치는 항상 파악하고 있었기에 포위망 형성과 수색은 빠르게 진행됐다.

***

1582년 8월 18일 수요일 점심 무렵.

“없습니다. 토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에흐몬트 백작과 요한은 보이지 않습니다.”

초인들과 함께 발터 일행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알바 공작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발터 일행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 그 동안 에흐몬트 백작의 위치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냐?”

분명 에흐몬트 백작의 흔적이라 생각되는 것을 추적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하다시피 하며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포위망은 그 예상한 위치에서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범위 밖에서부터 조여왔다. 추적이 제대로 이루어졌었다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없다니. 당연히 알바 공작으로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추적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분명 발터 일행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지점 근처에서 그들의 얼마 되지 않은 흔적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에 제 목도 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터 일행의 추적을 담당했던 장교가 호언장담을 했다. 그는 초인은 아니나 오랜기간 알바 공작과 전쟁터를 전전하며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알바 공작은 그의 말을 신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이냐.”

“으음... 의심되는 부분은 있으나 그게 좀 황당해서 좀체 믿을 수가 없어서...”

“이 세상에 유물이 있는 한 믿을 수 없는 일은 없다. 이야기 해봐라.”

“아무래도 땅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듯 합니다.”

“땅속?”

장교의 말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

“이곳입니다.”

직접 봐야 할 것 같아 장교를 앞세우고 흔적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장교가 가리킨 곳에는 마치 쟁기로 갈아엎기라도 한 것처럼 고운 흙이 볼록 쌓여 있었다. 알바 공작은 그곳에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이 별 저항 없이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확실히 파낸지 얼마 되지 않은 흙이었다.

“파라.”

알바 공작의 명에 병사들이 달라붙었다. 한번 뒤집어엎었던 흙이기에 파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제법 파내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확실하군. 그냥 구덩이가 아니라 통로의 느낌이야.”

흙을 파내자 비스듬하게 일정한 크기로 뚫려있는 동굴과 같은 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굴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산맥으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하죠?”

마우리시오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땅속으로 이동하고 있다니 상상도 못한 방법이다. 많은 전쟁터를 다니며 많은 초인을 상대해봤던 그로서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땅속으로 이동하는 적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알바 공작은 달랐다.

“지금까지 그렇게 쫓기는 와중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아마 장점을 가리는 단점이 있기에 사용하지 않았겠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세 가지.”

“세 가지나 있습니까.”

“첫 번째는 이 능력을 사용하는 초인의 체력이다. 아무리 강력한 초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위력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체력을 소비해야 할 테지. 아마도 전투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체력을 사용하고 있을 터. 발견만 한다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다. 유물은 주인의 체력을 연료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땅을 판다는 것은 상당히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동인데 이렇게 넓은 굴을 지속적으로 파내기 위해선 아무리 강력한 유물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많은 체력을 소비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동 속도. 땅위를 걷는 것과 땅속을 파내며 이동하는 것이 같을 수가 없지. 그리고 세 번째는 소음이다.”

“소음이요?”

“그래. 이런 규모의 굴을 파내는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혹시 깊게 들어가서 소리는 내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동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꽤 큰 규모의 굴이다. 이런 굴을 파내는 데 소리까지는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진동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산맥 쪽으로 병사들을 산개해서 땅을 파는 소리와 진동을 찾아내라. 혹시 모르니 후방 쪽으로도 조금은 보내 돼 전방에 집중하도록, 후방으로 갔다면 갈 곳이 없으니 천천히 찾아도 된다.”

에스파냐 병사들은 넓게 산개했다. 그들은 땅에 귀를 기울이고 맨발로 걸으며 소리와 진동을 찾아나갔다. 몇 시간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소리치며 소리와 진동을 감지했다며 대기중인 병사들을 불렀다. 삽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자신들을 찾는 곳 어디든 달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

“위험하네요. 아직 에흐몬트 백작님이 있는 곳에서 거리는 멀지만... 저렇게 되면 머지않아 발견되겠어요.”

포위망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아론이 말했다. 에스파냐 병사들의 대처가 상당히 빨랐다. 발터 일행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파악해냈고 발터 일행을 찾기 위핸 최적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저런 식이라면 발터 일행은 산맥으로 가기 전 발견 될 것이다.

아론과 함께 상황을 살피던 루이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아론아. 만약의 경우에 말이다.”

“네.”

“만약의 경우에....”

루이웨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론은 루이웨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망설이는지 궁금했지만 루이웨가 말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말을 잇지 못하던 루이웨는 어두운 얼굴로 조금 더 망설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만약에 백작님 일행이 발견되어 싸우게 되면 말이다. 그리고 그 때가 밤이 아니라 낮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거다.”

“네. 사부님. 그건 이미 이야기 하셨잖아요.”

이미 충분히 의견을 나눈 대목이다. 만약 발터 일행이 낮에 발견된다면 미련없이 도망치고 밤에 발견된다면 한 번 정도는 싸워보자고. 밤은 아론, 루이웨, 토마스, 마리아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시간대니까.

“그래. 그러니까 만약에 낮에 백작님이 적에게 발견되어 싸운다면 말이다... 솔코로 백작님은 빼내도록 하거라.”

“에흐몬트 백작님 한분만요?”

“.... 그래.”

이래서 망설였던 것이다. 요한과 헤르트를 포기하고 발터를 살리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말이다. 요한과 헤르트 둘 다 네덜란드를 위해 수많은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요한은 부귀영화를 버리고 밑바닥에서 십여년간 에스파냐 해군의 발목을 잡아왔고 헤르트는 네덜란드 연합군의 참모로서 많은 공적을 쌓아왔다. 그에 반해 발터는 에흐몬트의 영주이기는 하나 아직 네덜란드를 위해 한 일은 얼마 없었다.

루이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과 헤르트를 포기하고 발터를 살리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네덜란드를 위해 해준 것을 버리고 앞으로 더 큰 도움이 될 사람을 살리라고 말하는 자신이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 부끄러워서 말이다.

“알겠습니다.”

아론은 자신의 사부가 얼마나 힘들게 이 결정을 내렸을지 알기에 여타의 말없이 승낙의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솔코를 이용해 발터 일행을 구하자는 생각은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어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에스파냐 병사가 사방에 없는 곳이 없었다. 에스파냐 병사들이 없는 안전한 곳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솔코라고 하더라도 사람 한 명을 매달고 있으면 반나절은 이동해야 할 것이다. 가는데 반나절, 오는데 1시간. 적어도 7~8시간은 솔코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지금 발터 일행을 돕는 일에는 대부분 솔코가 쓰인다. 하늘 높은 곳에서 정찰해 에스파냐 병사들의 위치를 알아내고 발터 일행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보내기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7시간이나 빠진다면 경계에 빈틈이 생긴다.

만약 그 사이에 남아 있는 둘이 위험에 빠진다면?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고 실행해서 성공해도 문제다. 최대한 안전한 곳에 내려주겠지만 여기는 이베리아 반도, 에스파냐의 땅인 것이다. 안전한 곳이라고 해서 계속 안전할 리는 없다. 낮에는 당연히 솔코로 사람들을 이동시키지 못할 것이고 야밤을 이용한다 했을 때 3일이 걸리는 일이다.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을까? 양쪽에 나눠져 있다가 한 곳이 위험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밤이라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달이 밝은 밤에는 낮에 비하면 좀 약하긴 해도 제법 밝아서 먼 곳까지도 볼 수 있다. 그러니 밤을 이용해 솔코로 사람들을 움직인다하더라도 들킬 위험이 있다. 에스파냐 병사들이 워낙 많으니까. 그냥 날아다니는 독수리정도야 사냥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을 매달고 다니는 매라도 발견한다면.... 이동시킨 방향도 들킬뿐더러 남아 있는 인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리고 아론의 체력문제도 있다. 아론이 아무리 강력한 체력을 갖고 있어도 이미 보름 넘는 시간동안 솔코를 24시간 운용해왔다. 거기에 사람 하나를 매달고 반나절을 날아다니는 것은 훨씬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큰 체력을 소모하는데다가 일이 잘못됐을 때 한두 명이 죽을 위험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도망치고 있었던 데다가 얼마 가지 않아 산맥에 들어가면 도망치는 것이 더 수월할 예정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솔코를 이용하는 방법은 뒤로 미뤄뒀었다. 최후의 방법으로서 말이다.

방금 루이웨는 그 최후의 방법으로 살릴 사람으로 세 명 중 발터를 선택한 것이다. 무인으로서 자긍심이 깊은 루이웨가 앞으로 이익에 따라 누굴 살리고 죽이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슨 이유로 발터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론은 그냥 따르기로 했다.

***

1582년 8월 19일 목요일 오후

“여기야! 여기!”

땅속 수색에 나선지 하루 하고도 몇 시간이 흘렀을 무렵. 수색 중이던 병사들이 작은 진동을 감지하곤 삽을 들고 다니는 병사들을 불렀다.

“진짜야? 진짜 소리 들었어?”

어제부터 지금까지 얼마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땅만 파고 있는 병사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소리는 아닌데 진동을 느꼈어.”

“아씨. 그거 또 잘못 느낀 거 아냐? 정말 느꼈어? 그냥 근육 경련을 착각한 거 아냐?”

“아. 정말 느꼈다니까.”

“아오. 그 정말 느끼거나 정말 들었다는 말을 내가 어제부터 몇 번을 들었는지 알아? 전부 허탕이었다고. 하도 힘줘서 땅을 파다보니 이젠 가만있어도 손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라니까.”

삽을 들고 있는 병사들은 계속해서 정말 느꼈냐고 거듭해서 물었다.

“아. 가서 간부님이라도 불러와야 일할 거야? 정말 느꼈다고 몇 번을 말해.”

“아씨. 그 진동 우린 못 느끼니까 그렇지. 니가 무슨 초인이라도 돼? 우리는 못 느끼는 진동을 넌 어떻게 느꼈다고 그러는 거야?”

“지금은 멈췄으니까 그렇지. 아까는 정말 진동이 일어났었으니까 빨리 땅이나 파. 이번에도 다른 말 하면 정말 가서 간부님 불러온다.”

“에이씨.”

그제야 삽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땅에 삽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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