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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우리의 목적지는 리스본. 정보에 의하면 알바 공작은 돌아올 병력을 기다리며 리스본에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빌럼 공작님이 직접 작전 개요를 설명해주셨다. 이미 한 번 개별적으로 설명 받은 사항이기는 하나 작전 실행일 전부 모인 상태에서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킨다는 목적이었다.
리스본. 포르투갈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에스파냐의 항구 도시 중 하나가 된 곳. 에스파냐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항해자가 아프리카나 인도, 인디아(아메리카) 대륙을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려 물자를 충당하는 곳이자 다른 대륙에서 돌아올 경우 가장 먼저 들리게 되는 유럽땅이다.
지금 시대 세계의 중심 항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지. 비록 에스파냐에 합병되기는 했으나 지리적 여건상 여전히 중요한 항구인 것은 변함없다.
“알바 공작은 돌아온 이후 각지를 돌아다니며 용병을 고용하고 여유 병력을 수습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을 마무리하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인도양에서 돌아오는 병력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자주 거처를 옮기지만 대부분 이곳.”
빌럼 공작님이 리스본 외곽 한 지역을 가리켰다.
“알프레지디에 있는 저택에 머문다고 한다.”
리스본 서북쪽에 위치한 알프레지디. 솔직히 뭐하는 곳인지도 어떤 곳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곳으로 알바 공작을 암살하기 위해 들어가야 한다니 더 긴장된다.
이번 작전에서 우리는 두 무리로 위장해서 들어갈 것이다. 프랑크 상인과 그 일행으로 위장한 나와 사부님, 토마스, 플로라. 프랑크 귀족과 그 일행으로 위장한 발터, 쿤라트, 헤르트, 요한.
실제로 프랑크로 넘어간 후 그곳에서 배를 몰고 에스파냐로 향할 예정이다. 이미 빌럼 공작님이 배와 선원들을 모집해 놓았다고 한다. 40톤 카라벨. 카라벨은 타본 적 없는 배지만 북유럽을 벗어난 중부, 남부 유럽에서 사용하는 선박이다. 대항해시대의 주역인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과거 주로 사용했던 선박이기도 하다.
어릴 적의 토마스가 리스본에서 떠날 때 탄 선박이기도 하다. 구식이기는 하나 건조비가 싸기에 여전히 쓰이는데 너무 먼 바다는 가기 힘들기에 아프리카 대륙을 오갈 때 자주 쓰인다고 한다. 최근엔 200톤급 카라벨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것이 한계가 아닐까 싶다. 구식인 카라벨로선 너무 크기를 늘리면 내구력이 약해져서 견디지 못할 테니 말이다.
우리 조선소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코그도 비슷한 이유로 100톤급만 생산하고 있지 않나. 설계상 일정 크기를 넘어가면 내구력이 약해져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신식인 카락과 최신식인 캘리온은 얼마든지 더 크기를 늘릴 수 있지. 내가 가지고 있는 카락만 해도 100톤급과 500톤급이 있을 정도고 갤리온은 가장 작은 것이 400톤급이니까. 듣기론 카락은 7~800톤급도 있고 갤리온은 1,000톤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정말 엄청나지. 빌럼 공작님의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는 내 갤리온만 해도 700톤급이니까.
원래는 4월에 건조 완료 예정이었던 갤리온이지만 조선소에서 만드는 첫 갤리온이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계속해서 완성일자가 미뤄지더니 7월인 지금도 건조중이다. 9월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성해서 넘겨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봐야지. 잘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갑자기 샜네. 여하튼 바다의 거지들을 통해서 프랑크로 몰래 이동하고 프랑크에서 빌럼 공작님이 미리 준비해둔 배를 타고 에스파냐로 갈 것이다. 프랑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나와 요한밖에 없으니 배로 이동하는 중에는 우리 둘만 말을 할 것이다. 애초에 용병이나, 노예, 시녀는 말이 없는 직군이고 귀족과 호위기사, 회계사도 선원들과 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니 그다지 의심을 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정말 프랑크 상인으로서 잘 위장할 수 있느냐다. 난 프랑크 말은 잘할 자신이 있지만 프랑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북부 지방에서 양모가, 중서부 지방에서 와인이 유명하다는 것과 무기 제작 기술이 좋다는 것 정도밖에 없으니까. 최대한 말을 아껴야겠어.
“출발은 디에쁘에서 할 것이다. 그곳까지의 이동은 요한이 맡을 것이니 그곳까지의 지휘권은 요한이, 그 이후에는 에흐몬트 백작이 지휘를 맡는다.”
요한과 발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터가 나와 같은 나이로 일행 중 가장 어린 나이기는 하나 가장 높은 지위를 갖고 있으니 당연히 그가 지휘를 맡는다. 이름값으로 따지면 요한이나 사부님이 더 높겠지만 명성보다는 작위가 중요하지. 백작에 대영주이고 의회의 의원이기도 한데 누구에게 지휘를 받을 입장은 아니지. 빌럼 공작님이 직접 작전에 나서면 몰라도 말이야.
하지만 빌럼 공작님은 워낙에 유명한 분이라 모습을 감추면 에스파냐 쪽에서 의심스러워 할 수 있기에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다. 빌럼 공작님까지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놀러가는 기분으로 리스본에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이곳에서 디에쁘까지 5일, 디에쁘에서 리스본까지 25일 예정으로 리스본 도착은 7월 말이나 8월 초가 될 것이다. 도착한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알바 공작의 위치 확인이다. 알바 공작의 위치를 확인 한 후 웬만하면 알프레지디에 있을 때 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만 알바 공작이 8월 10일까지 알프레지디에 가지 않거나 그 전이라고 해도 지휘관이 시급하다 판단하면 어느 곳에서든 습격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 작전에는 제한이 하나 있는데 적어도 지금 떠난 전력의 반 이상이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전부 살아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작전이 위험하다는 거겠지.
“만약 반수 이상이 희생될 위험이 있거나 퇴로 확보가 어려워진다면 알바 공작의 습격을 포기하고 알바 공작의 알프레지디 저택을 습격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던 내용이었으나 이미 그 이유까지 들은 상태였기에 조용히 이어질 빌럼 공작님의 말에 집중했다.
“정보원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알바 공작이 포르투갈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 가장 공들이 곳이 이곳 알프레지디 저택이라고 한다. 알바 공작의 본가 인원들도 대거 이동했고 알바 공작이 여유가 있을 때는 항상 그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 광휘의 기사들 훈련장도 있다고 한다.”
그 전에는 그들이 광휘의 기사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겠지만 나로 인해 광휘의 기사들의 존재가 들통 난 후에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쉬워졌다. 그들의 장비가 유난히 눈에 띈 덕분이다. 그 두꺼운 갑옷과 방패는 그들이 아니면 사용할 자들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들이 항상 알바 공작과 함께 한다는 정보로 보아 광휘의 기사들은 펠리페2세가 아닌 알바 공작에게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광휘의 주인도 알바 공작에게 속해있을 터.”
신화급 유물인 광휘의 소유자가 에스파냐가 아니라 한 공작가의 소속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알바 공작에 광휘, 그리고 알바의 부하들. 이미 알바 공작가의 힘은 웬만한 국가에 맞먹지 않는가.
“이 모든 정보를 종합했을 때. 알프레지디의 저택에 광휘의 주인이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니 알바 공작 암살이 실패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실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적어도 이곳 알프레지디 저택은 거주자 모두를 죽여야 할 것이다.”
도박이다. 정말 광휘의 주인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알바 공작의 암살이 실패했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는 해볼만하다. 이곳에 있는 인원이라면 알바 공작만 없다면 그곳에 무엇이 있어도 어떤 피해도 없이 처리하고 빠질 수 있을 테니까.
“작전 후 귀환시에는 육로를 이용한다.”
해로는 위험하다. 우리가 타고갈 카라벨은 군선도 아니고 구형 선박이라 느리다. 만약 적이 눈치 채고 군선을 이끌고 추격에 나선다면 초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적에게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능력이라면 적어도 나 혼자는 바다 위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움직이며 싸울 수 있겠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에스파냐 해군을 상대로 나 혼자 싸울 수도 없는 일이고.
“귀환 목표는 프랑크 보르도. 보르도에 도착하면 미리 내가 주문한 포도주를 실은 선박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르도까지 가는 방법은 전적으로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
퇴로까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에스파냐나 포르투갈에는 빌럼 공작님이나 네덜란드의 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정보원도 얼마 없어서 알바 공작의 귀환도 한 달이나 지난 후에 알았을 정도다.
귀환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모인 실력자들이 마음먹고 일직선으로 달리면 누가 따라잡겠는가. 길목에 미리 대기하고 있지 않은 이상은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갈지 알고 길목을 선점하겠어. 웬만한 전력이라면 우리의 희생양 그 이상도 이하도 안 될 것이다.
하나 걱정되는 경우는 작전이 실패하고 알바 공작과 그의 초인들에게 발목 잡히는 것인데 이럴 경우는 뭐... 최악의 경우다. 일어나서는 안 될. 그럴 경우는 답이 없다. 신께 모든 걸 맡기고 싸우는 수밖에.
물론 이런 경우에도 나 혼자 도망치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토마스와 사부님, 플로라가 걱정이지. 그렇다고 토마스와 플로라를 떼어 놓고 갈 수도 없다. 이 작전에는 네덜란드의 운명이 걸려있다. 그런 작전에서 위험하다고 유용한 인력을 떼어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혹시 이해가 가지 않거나 다시 듣고 싶은 내용이 있나?”
빌럼 공작님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번 들었던 내용인지라 내용 확인하는 차원에서 다시 한 번 들었을 뿐 작전에 대해서는 각자 수십 번은 생각했을 터였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있을 리 없지.
“그럼 마지막으로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해 설명 듣도록 하지. 불러오게. 디르크.”
“네. 각하.”
이 자리에는 빌럼 공작님과 작전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있었는데 그 외에 유일하게 있었던 이가 바로 디르크 기사장이었다. 그는 작전 계획 처음부터 함께 했던 인물이기에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
디르크가 밖으로 나가 한명의 남자를 데려왔다. 익숙한 자다. 이미 며칠 전에 본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도 봤었던 남자다.
“안녕하십니까. 메신저라고 합니다.”
모두들 이미 한 번씩은 만나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 작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듣거나 보는 인물이 나올 일은 없다. 이 자리는 그저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이니 말이다.
메신저. 약 4~5년 되었을까? 내가 처음 빌럼 공작가와 인연을 맺었던 작전. 나와 디르크 기사장은 제국으로 가 무기를 사오고 빌럼 공작님과 초인들이 브뤼셀의 총독 관저를 습격했던 작전에서 디르크 기사장과 나를 습격했던 3명의 암살대 중 한명이다.
그 당시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고 둘이 도망갔었는데 그 뒤에 빌럼 공작가에 의탁한 모양이다.
펠리페2세 직속의 암살대가 어째서 빌럼 공작가에 의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잠깐 싸웠을 뿐 적대감을 갖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에게 나는 동료를 죽인 사람이었으니까. 보아하니 사이도 좋아보였고 말이야. 겉으로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 동안 빌럼 공작님 곁에서 많은 작전을 수행했고, 사부님과 함께 수행한 임무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완벽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를 완벽하게 신뢰했다면 작전 수립도 함께 했을 것이고 이번 작전도 함께 했을 테니까. 정보 수집에 유능하고 에스파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가 함께 했다면 이번 작전이 더 수월했을 테니까.
“그럼. 제가 파악하고 있는 알바 공작의 전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주의를 드리자면 제가 말씀드리는 정보는 5년 전의 정보이며 그 이후의 정보는 제게 없으며 알바 공작이 가만있었을 리도 없기에 전력의 변화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저 참고만 해주시고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