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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토마스가 말을 두 마리 구해왔다. 원래 마차를 구하려 했는데 파리로 가는 길에 마차가 지나지 못하는 좁은 길이 많다고 한다. 조금 돌아간다면 마차로도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길 돌아가고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으음.... 한 10년만에 타는 것 같은데.”
“저도 그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말 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요.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난 어려웠거든. 니놈한테는 뭐가 어렵겠냐.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상행이 끝나고 쉬실 때마다 함께 말을 타고는 했다. 정확히는 말이 아니라 망아지를 탔지만 말이야. 10살도 안된 꼬마에게 다 자란 말은 너무 크다.
그때 망아지도 잘 다루지 못해서 결국엔 토마스가 앞에서 끌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여유만 있었으면 마론을 데려왔을 텐데. 아쉽다.”
“마론을 타고 다니시려고요? 느릴 텐데요.”
“아니. 누가 애완동물을 타고 다녀. 프랑크가 마론의 고향이잖아. 그니까 이왕 올 거면 마론 고향 구경도 시켜줬으면 좋았겠다 싶은 거지.”
“........”
토마스놈이 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저런 격 떨어지는 놈. 노예놈이 애완동물을 기르고 애완동물과 교감을 하는 귀족의 교양있는 격 높은 삶을 어찌 알겠어. 그냥 내가 이해해주자.
“오. 순한데? 그다지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 말이야.”
오랜만에 다루는 말인지라 조금 긴장했지만 역시 내 재능이 뛰어난 덕분인지 말을 다루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토마스야 당연히 쉽게 다루고 말이다. 저놈이 ‘예전에 해봤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전에 완벽하게 마스터했습니다.’라고 이해해야한다.
마리아는 내 어깨에서 내려와 내가 탄 말의 머리위에 자리를 잡았다.
“야. 너 거기 있다가 떨어져. 이리 와라.”
“니야~~~!”
“이놈이 한번 떨어져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지 걱정해서 품에 안고 가려고 했는데 성질내면서 반항한다. 마론의 머리에 앉아있던 시절 생각하는가 보구나. 마론이 얌전해서 머리를 잘 안 움직여서 편한 거였지 말들은 달라 임마. 한번 당해봐라.
르아브르를 빠져나와 파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1581년 3월 4일 금요일 저녁
-루앙을 발견했습니다. 무재 포인트 75, 문재 포인트 150, 상재 포인트 75을 얻었습니다.
무재가 29(+3)단계로 올랐습니다. 수련 효율과 신체 한계가 높아집니다.
오오. 고맙다. 루앙아.
요즘 할버드 익힌다고 열심히 수련한 덕분에 거의 다음 단계로 가기 직전까지 포인트를 올려뒀었지만 빠르게 이동한다고 수련을 하지 않아 단계가 오르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견 포인트로 단계를 올리니 공짜로 올린 느낌이다.
이번 여행 중에만 무재와 문재를 한 단계씩 올렸다. 그 전에 이미 많은 포인트를 얻어놓은 상태였기에 올랐겠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대하지 않던 중에 오르니 기분이 좋다.
루앙은 영국과 프랑크 사이에 있었던 100년 전쟁의 영웅 잔다르크가 묻혔다고 하는 곳이다. 시간만 있으면 그곳에 들려서 문재 포인트를 얻을만한 것이 없을지 찾아보겠지만 시간이 없구나.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
“네.”
숙소를 찾아 나섰다. 짧지 않은 거리를 이틀에 거쳐 달려 오다보니 나나 토마스는 괜찮아도 말들은 꽤 지친 기색이다. 빨리 가서 좋은 여물 주고 쉬게 해야지. 좋아하는 콩도 많이 넣어달라 해야겠다.
지쳐 보이는 말들과 달리 마리아 녀석은 쌩쌩하다. 참 신기한 녀석이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말 머리 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고 있을 수 있는지. 갈기를 발톱에 휘감고 버티는 건가?
나 같으면 그나마 흔들림이 덜한 말안장 쪽으로 내려오겠구만 죽어도 말머리 위를 고집한다. 사실 말머리 위에서 조금 고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혹시 저 녀석 초묘아냐? 흐흐. 고양이가 유물을 얻으면 초묘. 으흐흐흐. 내 유머 감각은 보통이 아니구나.
야밤에 고급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다. 고급 숙소가 ‘나 여기있습니다!’하고 자체발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면 그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이 늦은 밤에 사람들이 돌아다닐리 없잖아?
이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칼에 맞아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일 거다.
그래서 대충 찾아 들어간 여관은 대부분의 여관이 그러하든 1층에 식당 겸 술집을 겸하는 여관이었다. 단,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사람들이 없었지만.
딸랑딸랑.
카운터의 종을 들어 흔들었다. 인기척이 없기에 몇 번 더 흔들자 안쪽에서 자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주인이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그는 퉁명하게 ‘둘?’이라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들과 합방은 안하오.”
그러자 주인은 다시 내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선불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눈에 안 띄려고 저렴한 옷을 입고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돈 낼 재력은 있어 보였을 것이다. 토마스가 은화를 꺼내 지불하고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작은 방에 침대 두 개가 들어가 있는 방. 옷과 소지품을 놓을 수 있도록 작은 탁자가 하나 있다.
“이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지 않아?”
“무슨 추억 말씀이십니까.”
“너와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우리 단 둘이 여행을 한 것은 그때 이후로 처음이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니야~~.’ 마리아가 작게 울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무시했다. 토마스와 둘이 여행했던 때는 내 인생 첫 여행이었을 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품을 찾아오라 명령을 내리셔서 떠났던 여행.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단 둘은 아니고 마을 출신 용병하나가 껴 있었지만 중간에 우리를 배신해서 토마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때도 이런 허름한 방에서 같이 잤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2층 침대였죠.”
그랬다. 내 인생 최초의 외박. 알크마르의 작은 여관방이었다. 하지만 그 여행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그런 허름한 여관에서 지낸 적이 없었다. 사부님과 다닐 때는 주로 노숙을 했고 그 이후의 여행은 상인으로서 상단을 이끌며 여행을 했기에 일꾼들은 허름한 숙소에서 지내도 나는 항상 제법 깨끗하고 좋은 숙소에서 지냈다.
그 시절이 생각나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허름한 싸구려 여관에 가끔 오는 것도 좋....기는 개뿔이... 사방이 벌레 천지다. 나는 침대에 깔려 있는 모포를 들어보았다. 모포 밑에는 짚더미가 깔려 있었다. 나름 침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푹신함을 제공하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겠지만....
“벼룩이 엄청 많겠지?”
“물론입니다.”
“으으....”
며칠 바다의 거지들과 함께하고 야영도 하고 그랬으니 내 몸에도 벼룩이 제법 살고 있겠지만 이 침대는 벼룩이 몇몇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벼룩들의 집단 거주지 일 것이다. 지들도 좁다고 난리겠지. 저런 곳에 누워 자면 충구과밀현상으로 고생하던 벼룩들이 드넓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한 모험을 떠날 것이다. 내 몸으로 말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예전엔 저런 데서도 잘 잤는데.”
좋은 곳에서만 살고 좋은 거만 먹고 살다보니 차마 이런 침대에서는 잘 수가 없다. 차라리 바닥에 야영용 모포 깔고 자는 것이 좋겠다. 배낭을 열어 모포를 꺼내니 내 의도를 알아챈 토마스가 다가와 모포를 받아 들고 바닥에 깔아준다. 토마스 자신은 필요 없는지 자신의 모포까지 두 겹으로 깔아 제법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넌 침대에서 자려고?”
“네. 전 벼룩은 별로 신경 안씁니다.”
“흑인 피부는 돌 피부라도 되냐? 벼룩이 못 물어?”
대답이 없다. 이 건방진 노예놈.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주인이 물었으면 대답을 지어서라도 해야지. 자비로운 주인인 나는 노예의 무례를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누운 것을 확인한 토마스가 불을 끄고는 침대위에 누웠다.
“잘자라.”
“주인님께서도 좋은 밤 되시길 빕니다.”
“그래.”
***
“아. 간지러워.”
바닥에서 잔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벼룩들이 몸에 달라붙었다. 덕분에 온 몸이 간지러워 긁었다.
“어차피 벼룩이 피부를 뚫지도 못하잖습니까.”
그렇기야 하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칼날은 박히지도 않는 신체가 되었다. 마치 괴물이 된 듯한 느낌이지만 애초에 초인이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선 괴물들을 가리키는 단어니까.
“그래도 이놈들이 기어 다니는 느낌 때문에 간지럽단 말이야.”
단단한 몸을 가진데다가 감각도 날카로워졌다. 벼룩 기어 다니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놈들 기어 다니는 것이 마치 누가 깃털로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서 힘들다.
“넌 괜찮아?”
“전 피부도 질기고 감각도 둔해서 전혀 상관없습니다.”
이 부러운 놈. 변신 유물을 얻더니 몸도 짐승이 되었구나. 평소엔 딱히 부러운 유물은 아니지만 지금은 정말 부럽다.
“가자. 며칠 참으면 굶어죽겠지.”
나나 토마스나 벼룩들의 이빨이 뚫지를 못하니 먹을 것을 못 먹어 옮겨온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는다. 그러니 며칠만 참으면 사라질 것이다. 이젠 절대 싸구려 여관 가지 말아야지. 야밤에 도시를 헤매는 한이 있어도 고급 여관으로 갈 테다.
출발하기 위해 말에 올라탔다. 역시나 지정석인 말머리 위에 앉아 있는 마리아가 보였다. 팔자가 얼마나 좋은지 앉아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마리아를 잡아 안고는 막 비볐다.
“니야!!!!!”
마리아가 소리 지르며 반항했지만 소용없지. 옮겨가라 벼룩들아. 여기 있다가는 굶어죽으니 저 얄미운 고양이의 몸으로 옮겨가 배를 채워라~~.
***
1581년 3월 9일 수요일
-파리를 발견했습니다. 무재 포인트 75, 문재 포인트 150, 상재 포인트 75을 얻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넘버127의 안내음을 들으며 파리에 입성했다. 프랑크 제1의 도시, 문화의 도시, 아름다운 도시 등등 파리에 대한 수식어를 엄청 들어왔기에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그냥 런던이나 함부르크 보는 느낌 외에는 안 들었다. 그냥 똑같다. 뭐가 대다하다는 거야. 그냥 다른 도시와 똑같은데 말이야.
도시에 들어서며 병사들에게 파리에 온 이유로 앙리3세의 알현이라 밝혔다. 빌럼 공작님께 받은 친서와 내 신분도 확인시켜주고 말이야. 그러자 병사들이 윗선에 보고를 하고 좀 높아 보이는 자가 나와 나를 왕성으로 안내했다.
아마 내 신분만 밝혔으면 나를 안내해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빌럼 공작님의 친서를 보여줬기에 이렇게 안내를 받고 있는 것이겠지. 빌럼 공작님은 프랑크의 공작이기도 하시니까. 제법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강력할 줄이야.
노예는 왕성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기에 마리아를 맡기며 왕성 근처에서 기다리라 지시했다. 마음같아서는 숙소를 잡고 쉬고 있으라 이야기하고 싶지만 노예 혼자 가면 숙소를 잡기는커녕 탈주 노예 잡겠다고 사람들이 달려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빌럼 공작님의 친서는 정말 강력했다. 뜯어보지도 않고 그곳에 찍힌 인장만으로도 왕성문을 통과하더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1~2시간 정도 이곳저곳 구경하며 기다렸더니 바로 앙리3세에게 안내해주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다. 그냥 왕에게 가는 직행 티켓이구나. 한방에 모든 걸 뚫어버린다.
그리고 내가 안내된 곳은 왕성 안이 아니라 정원 깊숙한 곳이었다. 너무 으슥한 곳으로 가기에 잠깐 ‘이 인간들이 앙주공의 사주로 날 암살하려 하나?’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을 무렵.
탕!
이제는 익숙해진 핸드캐논의 소리와 함께 정원 한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모직물을 새로 취급하게 되면서 공부한 덕에 발달한 의복 확인 스킬에 의하면 대부분 고급 의류를 입고 있었다. 즉, 귀족이란 뜻이지.
그 많은 귀족들은 반원으로 빙 둘러 서서 한 사람이 핸드캐논을 쏘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시종들이 잡고 있다가 놓아주는 새들을 향해 핸드 캐논을 쏘고 있는 자. 그가 누군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왕성에서 핸드 캐논을 마음껏 쏠 수 있는 자는 단 한명뿐이니까. 그 왕성의 주인. 즉, 왕.
앙리 3세였다.
나를 안내했던 시종이 앙리3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 중 하나에게 가 말을 했다. 시종의 말을 들은 그는 나를 힐끗 보고는 옆에서 새로 장전해서 주는 핸드 캐논을 계속해서 쏘아대는 앙리3세의 옆에가 섰다.
“할 말이 있는가?”
자신의 옆에 와 선 사람을 느꼈는지 앙리3세가 보지도 않고 물었다.
“오라녜공의 편지를 가진 자가 도착했습니다.”
“가져오라.”
그의 말에 시종이 재빠르게 다가와 내게서 빌럼 공작님의 편지를 받아 앙리3세에게 말을 걸었던 자에게 건넸고 그는 다시 앙리3세에가 다가가 편지를 건넸다. 앙리3세는 핸드캐논을 내려놓고 봉인을 뜯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사위가 조용했다. 편지를 읽는 앙리3세를 절대 방해하지 않겠다는 필사의 의지까지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다 읽었는지 편지에서 시선을 뗀 앙리3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자네가 그 아론 남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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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할머니 생신이셔서 어디 다녀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아싸 20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