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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1년 2월 27일 금요일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로테르담을 발견했습니다. 무재 포인트 37, 문재 포인트 75, 상재 포인트 37을 얻었습니다.
바다를 주무대로 활동한다는 놈이 우리나라 최대항구인... 아니지. 최대항구였던 로테르담을 처음 와 보다니. 뭔가 이상하구만.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는 네덜란드 상인이라면 무조건 왔어야 하는 곳인데 말이야.
우리가 로테르담에 들어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부두였다.
“왠지 활기차네. 역시 절인 청어 때문인 걸까?”
“냐아~~.”
토마스 대신 내 어깨에 올라와 있는 마리아가 대답했다. 너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 내 어깨가 많은 수난을 당하는구나. 예전에 솔코가 작을 때는 솔코가 앉아있었고 이제 솔코가 너무 커져서 못 앉으니까 마리아가 앉아있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최근 중부의 어선은 전부 로테르담에 몰려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응.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무래도 최대 판매처인 영국이 가까우니까.”
로테르담은 영국 최대항구인 런던과 가깝다. 그 바로 앞의 도버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거기에 애초에 넓은 항구, 에스파냐의 공격으로 한산해지며 저렴해진 항구 이용료, 로테르담의 영주가 에스파냐에게 빼앗길 것 같아 상인 연합체에게 도시를 판 덕분에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금까지. 아마 로테르담 주축 상인들은 나보다 더 낮은 세금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청어잡이를 하는 상인들이 몰릴 수밖에.
비록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에스파냐 때문에 위험한 곳이긴 하나 분명 안 쳐들어올 확률도 있다. 많은 상인들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안 쳐들어올 확률에 모험을 걸 것이다.
“여긴 영국, 헬데르는 스코틀랜드와 일부 영국.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영국 상인이 이곳으로 몰려드니까. 우리 청어잡이 상인들도 이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겠지. 어. 저거. 저게 청어를 담은 오크통인가?”
난 용량이 3분의 1배럴도 안 되어 보이는 오크통을 가리켰다.
“청어잡이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면.... 맞는 모양이군요.”
내용물은 잘 안보이지만 청어잡이배가 분명한 어선에서 줄지어 내리고 있는데다가 한쪽에서는 뚜껑 닫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렇게 작업하는 오크통은 절인 청어 통밖에 없다.
“작네... 우리 보어&렐리에서 쓰는 것에 비해 정말 작아.”
“이쪽은 우리와 달리 소규모 어선이 많으니까요. 거래 상대도 작은 상인들이기에 너무 큰 통에 담으면 잘 거래가 안 된다고 합니다. 사간 후에 재분배해서 재판매하는 뤼베크 상인들과는 달리 영국 상인들은 사간 후 바로 일반인들에게 판매를 시작하니까요.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1배럴이나 하는 절인 청어를 사놓고 먹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긴 일반 가정에서 1배럴짜리 통째로 사가면 반년은 두고두고 먹어야 할 거야.”
물론 청어만 먹는다면 더 빨리 먹겠지만 매일 청어만 먹는 건 좀.... 우리 네덜란드 사람들도 그건 힘들 거다.
“흠....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
“빌럼 공작님께서 어디로 찾아가라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지를 찾으라 하시더라고. 아니지. 찾으라하지는 않으셨어. 그냥 로테르담 부두에 가 있으면 거지가 찾아올 거라 하셨다.”
“거지라니. 설마.....”
“응. 그 거지.”
토마스가 놀라는 이유는 무려 빌럼 공작님께서 겨우 거지를 만나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녀석도 빌럼 공작님과 로테르담, 그리고 거지라는 단어를 연결해 그를 떠올린 것이다.
“그분을 만나러 온 것 맞습니까?”
“맞아.”
“허. 이거... 좋기는 하지만 좋지도 않은 것이.... 애매하군요.”
“왜.”
“그분을 만난다는 것은 주인님께서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다는 것이니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보아하니 이번에 프랑크를 갈 때 그분의 배를 타야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의 출세가 기쁘지만 위험 또한 같이 찾아오니 기뻐할 수가 없군요.”
“어이구. 충신 나셨네. 충신 나셨어. 헛소리 하지 말고 주변이나 찾아봐. 그분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사실 청어잡이 배를 구경하면서 열심히 주변을 살폈지만 그분처럼 보이는 자를 찾을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찾아온다는 건 힘들겠지.
잠시 기다리니 허름한 옷을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멀리서 나와 토마스를 관찰하곤 어딘가로 달려갔다. 먼 곳, 나와 토마스의 시야 밖에서 우리를 살폈지만 하늘에서 살피는 솔코의 시선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곧 오려나보다.”
“발견하셨습니까?”
“아니. 누가 우리를 확인하고는 어딘가로 달려갔어. 흠... 계속 골목길 사이로 달리는데. 시내 쪽이 아니라 시외 쪽이야.”
남자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솔코보다 빠를 수는 없지. 계속 달리던 남자는 빈민가로 향하더니 빈민가 깊숙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아. 건물로 들어갔네. 그분이 저기에 있는 건가? 찾아갈까?”
“그냥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괜히 찾아갔다가는 경계심을 살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 나라도 숨어 있는 곳에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면 당황할 것 같아.”
당황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심부터 하겠지.
“어. 나온다.”
그 건물에서 남자가 다시 나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동행이 한명 있었다.
“그분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은데? 역시 직접 오시기는 힘든가?”
“아무래도 그분을 잡으려고 하는 에스파냐 첩자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는 힘드시겠죠.”
“그렇지? 그럼 우리도 이렇게 너무 눈에 띄는 곳에 있다가 저들을 만나는 안 되겠다. 혹시 첩자들이 볼지도 모르잖아. 여기 서 있다가 저 사람들 오면 사람 많은 곳으로 가자고 그러면 접선하기 좋을 거 아냐.”
“좋은 생각입니다. 오다보니 저쪽에 청어를 내놓고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래. 여기 있다가 그쪽으로 천천히 가자.”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남자가 나와 토마스를 발견했던 장소에서 잠시 기다렸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그들이 날 못 찾으면 어떡해.
“왔다.”
잠시 기다리자 그들이 나타났다.
“움직입니까?”
“어어. 잠깐만. 이쪽으로 바로 오는데?”
숨어서 은밀히 접촉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나와 토마스가 있는 곳으로 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당당히 다가오니 어딘가로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론 남작님.”
“음? 나를 아시오?”
“예전에 빌럼가 나사우호의 호위장으로 계실 때 먼발치에서 잠깐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당신들이....”
“네. 우리가 거지들입니다.”
“으음....”
목소리가 크다. 내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을 정도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남자가 크게 웃었다.
“하핫. 괜찮습니다. 이곳은. 이곳에서 타지 사람들은 우리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어!”
남자가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부두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일꾼들 모두가 바쁜 와중에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렇군.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여기에선 정체가 드러나도 상관이 없는 거군요.”
“네. 이곳의 모두는 거지들이니까요.”
주변을 살폈다. 절인 청어를 나르는 일꾼들. 오크통을 봉하는 통장인들. 그들을 관리하는 상인들. 그리고 심부름을 하는 어린 아이들부터 쉬는 선원들과 노닥거리는 창녀들까지.
“이들 모두가....”
“네. 모두가 바다의 거지들입니다.”
모두가 ‘바다의 거지들’이었다. 그렇군. 그래서 그런 거였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어째서 바다의 거지들이 10여년간 에스파냐의 해군과 싸우며 바다를 지켜낼 수 있었는지 어째서 전력이 밀리는 와중에도 토벌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난 그저 지휘관들이 뛰어나고 ‘그분’이 존재하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저들이 바다의 거지들을 지켜주었기에 가능한 거였어.
“가시죠. 선장님에게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남자를 따라 아까 솔코의 눈을 통해 봤던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길 가는 동안 침묵을 걷어 내보자 생각했는지 우리를 안내하던 남자가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우리가 어째서 바다의 거지들이라 불리는지 아십니까?”
“으음... 그건 잘 모르겠소이다.”
모른다. 그저 해군력이 약한,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의 바다를 10년 넘게 기적처럼 지켜오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갤리온급은 커녕 카락급 선박도 없는 주제에 오스만 제국을 물리쳐 세계 최강임을 증명한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네덜란드 앞바다를 지켜준 수호신. 그것이 내가 아는 바다의 거지들에 대한 모든 것이다.
“전쟁 초기 빌럼 공작님께서는 파르마 공작부인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로테르담의 귀족들을 파견하셨습니다. 펠리페2세의 누이인 파르마 공작부인이라면 펠리페2세의 광기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죠.”
그렇군. 그럴만하다. 그녀는 펠리페2세의 누이일뿐만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네덜란드 사람이니까. 카를5세와 과거 네덜란드 땅이었던 플랑드르 상인의 딸 사이에서 나온 사생아. 그러니까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고향이 위기에 쳐했으니까.
“하지만 파르마 공작부인을 찾아갔던 귀족들은 도움은 커녕 네덜란드의 ‘거지들’이라는 모욕만 당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온 귀족들, 귀족들만이 아닙니다. 그 일행에 있었던 모두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 로테르담과 그 주변 모든 곳에 퍼졌지요.”
거지들이라니. 고향사람에게 거지들이라고 부르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고향 사람이라고 하면 귀족이 평민도 대우해주는 법인데 귀족들에게 거지들이라 모욕하다니. 정말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파르마 공작부인을 찾아갔던 귀족 중에는 높고 귀하며 강력한 기사분이 한분 계셨었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당연히 알지.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우리는 거지들이다. 나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지 못해 남들에게 도와달라고 구걸하러 다니는 거지들이다. 적이 우리 것을 약탈하고 강도질을 하고 있는데도 그러지 말아달라고 구걸하고 있는 거지들이다. 오늘부터 나는 귀족이 아니다. 무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그저 한 명의 네덜란드 거지가 될 것이다.”
그랬다. 내가 찾아가고 있는 그분은 어느 날 네덜란드를 넘어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졌던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명의 거지라 불러달라 선언했다. 사부님이 등장하기 전 네덜란드 3강이라 불렸던 무인으로서의 명성, 로테르담의 정치가로서 받았던 존경.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작은 어선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분을 따라 다른 이들도 하나 하나 이름을 버리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바다의 거지들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구려.”
처음 들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듣겠는가.
“정말 대단하오.”
“대단할 것까지야.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할 뿐입니다.”
아니다. 정말 대단한 자들이다. 군함 하나 없이 바다를 지켜내고 있으며 과거 한창 알바공에 의해 수세로 몰리던 시기 하나의 성과 하나의 거점을 탈환함으로서 전황을 뒤바꿔놓은 공을 세운 자들이다.
사람들은 육지에서 알크마르 사람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바다에서는 바다의 거지들이 에스파냐에 공포를 주었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했다.
“도착했습니다.”
아까 솔코의 눈으로 보았던 남자가 들어갔다가 나온 건물. 그 앞에 도착했다. 남자는 문을 열어주며 나 먼저 안으로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사양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그리고 안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있으며 허름한 옷을 입고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자. 모르는 자가 보았으면 백이면 백 부랑자라고 했을 모습을 가진 30대 중후반의 남자. 그를 향해 나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 영광은 무슨. 그냥 거지일 뿐인 나를 만난 게 뭐가 영광이오.”
바다의 거지들을 이끄는 자이며 과거 네덜란드 3강이자 현 네덜란드 5강인 자. 요한 반 올덴바르네벨트가 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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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강력한 의지로 3일은 어떻게든 버텨보겠습니다.
초강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