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175화 (17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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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사실 말이 안 되지 않소. 광휘의 기사 10명이라면 명품급 유물을 소유한 초인 10명이나 다름없는 전력인데. 그걸 한낱 상인에 불과한 자가 이겨냈다니.”

“빌럼가의 전승급 초인인 여기사가 함께 했다지 않소?”

암스테르담 시청 회의실. 그곳에는 네덜란드를 움직이는 고위 귀족들이 모여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주제는 ‘광휘가 정말 재림했는가?’였다.

“10명의 초인을 상대로 전승급 초인 하나가 더해진다고 달라질게 있겠소? 그리고 펠로타라는 초인. 그 자는 내가 전장에서 한번 본 적 있는 자인데 적어도 전승급의 유물을 소지하고 있는 자였소. 그뿐이오? 펠리페 2세의 암살대 3인이 포함되어 있다던데. 내 알기로 암살대 3인조라면 적어도 전승급 이상을 암살할 수 있는 전력으로 알고 있소. 펠로타에 암살대 3인, 거기에 광휘의 기사 10명. 총 14명의 초인이오. 이 중에 그만한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분 계시오? 로테르담이나 빌럼가, 에흐몬트가를 제외하고 말이오.”

좌중이 조용해졌다. 로테르담이나 빌럼가, 에흐몬트가는 전부 네덜란드 최강의 초인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들이라면 전승급 이하의 초인 14명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귀족가문의 전력으로는 무리다. 아무리 네덜란드를 움직이는 고위 귀족들이라 할지라도 단독으로 초인 14명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상인에 불과한 그 아론이란 자가 저들을 이겨냈다는 것이 믿기시오? 당연히 진짜 초인은 암살대 3인과 펠로타만 있었고 나머지 10인은 평범한 기사였다고 믿어야 하지 않소?”

“하지만 기사들의 시체를 보지 않았소?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과 방패. 그걸 평범한 인간이 들고 싸울 수 있었겠소? 초인이 아닌 이상 무리일 것이오.”

“그건 그 기사들이 방패만 들고 서 있었던가. 아니면 그 아론이란 자가 거짓 전공을 위해 조작한 것이겠지.”

“어허. 말을 해도 참. 그는 빌럼가의 가신이오.”

귀족 중 하나가 빌럼의 안색을 살피며 눈치를 주었다. 빌럼가의 가신이 전공을 위해 광휘를 거짓으로 꾸며냈다고 하는 것은 빌럼가를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 대부분이 이번 광휘의 기사 사태는 거짓이며 전공을 부풀리기 위한 거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주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빌럼가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정도 부풀리기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번에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광휘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휘의 출현은 심각한 일이다. 프랑크, 신성로마제국등이 관련되는 국가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이번 전공 부풀리기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하며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거짓이라 몰고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이 고위귀족들이라 할지라도 빌럼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빌럼 공작에게 쏠렸지만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들어보니 그자가 ‘푸른악마’ 보어 경의 제자라고 하던데....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소?”

귀족 중 하나가 빌럼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쯧쯧. 그게 말이 되오? 14명의 초인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보어 경 정도의 강자여야 할 것이오. 아무리 보어 경의 제자라고는 하나 이제 19살이 되었다 들었소. 19살에 보어 경 정도의 강자라니. 그게 말이 되오?”

“그건 아니겠지만 조력자가 있었다고 하니..... 그리고 설마하니 광휘에 대한 것을 꾸미겠소.”

“그건 그렇소만....”

이들의 대화는 지난 보름간 반복했던 그대로 다시 토론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회의장의 귀족 대부분은 광휘가 아닐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쏠린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것이 처음 광휘에 대한 정보를 가져온 것이 빌럼가의 크리스틀이고 목격자가 빌럼가의 차남 마우리츠다. 그리고 이 광휘에 대한 안건을 회의에 상정한 것도 빌럼 공작.

만약 이 안건이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버리면 빌럼가를 믿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강경하게 거짓이라 주장하던 자들도 마지막에 가면 꼬리를 내리다 보니 보름동안이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토론이 멈추고 모두가 빌럼 공작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빌럼 공작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잘됐군.”

그리고 드디어 빌럼 공작의 입이 열렸다.

“광휘의 기사 열을 쓰러뜨린 당사자가 왔다고 하는구려. 먼저 그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회의를 이어나갑시다.”

“그자가?”

장내의 귀족들이 놀랐다. 아론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사건을 거짓이라 믿고 있는 자들은 빌럼 공작이 아론을 끝까지 꽁꽁 숨겨둘 것이라 생각했다. 아론이 이 회의장에 나타나는 순간 거짓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니까.

바로 광휘의 기사들이 들고 있었다는 저 두꺼운 방패의 손상. 저 손상을 그대로 똑같이 재현해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정도 두께의 방패라면 대포로도 저런 손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

시청 회의실은 저번에 어업협의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들어가지 못했던 곳이다. 바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통보해주는 말을 듣기만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들어가게 될 줄이야.

회의실 앞의 병사가 열어주는 문 틈으로 보이는 회의실 안쪽.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은 실내가 보이고 거대하고 긴 탁자에 앉아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상석의 빌럼 공작님과 3번째 자리의 에흐몬트 영주 발터의 모습이 눈에 띈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십여명의 귀족들. 그렇다. 저들이 바로 네덜란드를 움직이는 핵심 귀족들인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대부분 나에게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냥 나이든 남자들의 시선이지만 전부가 고위귀족인만큼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다.

나는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시종의 말대로 앞으로 나가 탁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 멈춰 섰다.

마치 법정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군. 저들은 나를 심판하는 판사들이고.

“오랜만이구나. 아론 남작.”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공작각하.”

빌럼 공작님과 인사를 나누고 그 밖에 다른 귀족들에게도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도 있고 모든 이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이곳은 자네를 취조하는 자리가 아니니 긴장할 필요없네.”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함부르크 앞에서 에스파냐의 초인들에게 습격당했을 당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공작 각하.”

천천히 가감없이 당시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플로라는 빼고. 나와 토마스는 어차피 몸으로 싸우는 자들이니 숨길 것도 없다. 이미 목격자도 많고. 하지만 플로라의 능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가 이번 사건에서 플로라의 능력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기는군. 이야기를 들어보면 광휘의 기사 열을 상대한 것은 자네군.”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귀족 중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광휘의 기사들이라 주장하는 자들은 저 갑옷과 방패를 들고 있었고?”

귀족이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나와 싸웠던 광휘의 기사들이 입었던 장비가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부쉈던 모양 그대로.

“맞습니다.”

“그렇다면 저 방패에 구멍을 내거나 칼자국을 만들고 반으로 잘라버린 것 등. 전부 자네가 한 것이겠군.”

“그것도 맞습니다.”

“허. 대답은 잘하는군. 그럼 다시 묻지. 자네 혼자 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모양의 손상을 입힐 수 있지? 살펴본 기사들에 의하면 적어도 2가지, 많으면 4가지의 무기로 낸 손상이라하던데.”

2~4개의 무기로 입힐 손상을 어떻게 내가 혼자 입힐 수 있었냐...하는 질문이구만. 그런 질문을 할만하지.

“제 유물이라면 가능합니다.”

“호오. 그렇다면 재현해줄 수 있겠나? 정말 자네가 낸 손상이라면 지금도 똑같은 손상을 내는 것이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물론이라고?”

내 당당한 태도에 귀족이 당황한 듯 했다. 못한다고 할 줄 알았나? 내가 광휘의 기사들을 상대했다는 걸 믿지 않았나보구만. 그러니 빌럼 공작님이 날 이 자리에까지 부르지.

“유물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일단 허락을 받자. 맘대로 유물을 개방하면 귀족들이 놀랄 수도 있으니까.

“난 괜찮지. 다른 분들은?”

빌럼 공작님이 가장 먼저 대답하고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한다.

“저도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소.”

“나도.”

2번째로 발터가 동의한다. 그래. 넌 내편이구나. 발터가 동의하자 다른 귀족들도 하나 둘 동의하고 결국 전부가 동의했다.

“그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넘버127. 전투형태3.’

-전투형태 3번 더 퀴버. 개방합니다.

워리어와 퀴버가 빛으로 변해 내 양팔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창날이 달린 하얀 건틀릿. 모습을 완성함과 동시에 퀴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이이잉.

“오오. 변신형인가?”

“날이 달린 건틀릿이라니 특이하군요.”

뭔가 내 능력이 전부 드러난 것 같지만 사실 내 능력은 드러나도 상관없다. 모습이 바뀐다는 것을 아는 것 정도론 내 능력의 약점을 찾을 수 없으니까. 내 진정한 능력은 강력한 신체능력을 활용한 전투능력이니 말이다.

천천히 광휘의 기사의 장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퀴버의 진동이 최대가 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광휘의 기사의 방패에 도달했을 때 퀴버의 진동은 최대에 달해 있었다.

주먹을 뻗었다. 퀴버 날은 쉽게 방패를 뚫고 들어갔다.

“허헛. 정말 뚫었어. 강력하군.”

그 다음 팔을 한껏 뒤로 뺏다가 체중을 실어 휘둘렀다.

쾅!

퀴버는 역시나 방패를 뚫고 들어갔지만 주먹은 방패에 약간의 흠집을 내는 것에 그쳤다. 역시 한방에 뚫어내는 것은 플로라의 지원이 없으면 무리구나.

그래도 강력한 위력이 담긴 내 주먹에 귀족들이 놀라는 눈치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전투는 장기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쉴 새 없이 두들겨서 결국 방패를 뚫어냈고 그 덕분에 그들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

“하하하. 자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한 그 자들을 봤나? 지난 보름간 거짓말이니 조작이니 떠들어대던 그 입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군. 아주 잘했네. 아론.”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지난 보름동안 그들이 빌럼 공작님을 많이 괴롭힌 모양이다. 저렇게 통쾌해 하시다니 말이야.

“그나저나 그런 위력적인 공격을 하다니. 역시 보어경의 제자야.”

“제 제자라서라기보다는 아론이 그저 강할 뿐입니다.”

“하하. 보어경도 제자 자랑은 어쩔 수 없군.”

회의가 잘 풀린 모양이다. 난 방패를 뚫어내는 시범을 보인 후 회의장을 나왔기에 회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른다. 그래도 잘 풀렸겠지. 내가 나오고 약 1시간 정도 더 있다가 나온 빌럼 공작님의 표정이 저렇게 밝으니 말이다.

“오늘 완전히 결정난 것은 아니지만 광휘의 기사들에 대한 것이 신빙성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어. 아마도 며칠 후면 광휘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전제로 전략을 짜기 시작할거야.”

“또 바빠지겠군요. 프랑크와 제국에 들려야 할 테니.”

디르크가 프랑크와 신성로마제국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광휘가 나타났다고 하면 가장 크게 반응할 자들이 그들이니까. 소극적이던 그들의 대 에스파냐 정책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을 거야. 제국은 몰라도 적어도 프랑크는 확실해.”

그런 이야기군. 예전에 이사벨라 여왕의 광휘에 프랑크와 신성로마제국이 많이 당했으니까. 제국은 지금 내부가 혼란스러워 광휘가 나타났어도 견제에 나서지 못할 수 있지만 프랑크는 반드시 견제에 나설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 대한 에스파냐의 공격이 주춤하겠지.

“아. 맞다. 디르크 기사장, 보어경. 잠깐 자리를 피해주겠나? 아론 남작에게 긴히 할말이 있군.”

갑작스런 빌럼 공작님의 말에 둘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별 질문없이 방에서 나갔다. 빌럼 공작님이 저렇게 부탁한 이상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 당장 이유를 물으면 정당한 이유없이는 나가지 않겠다는 항명일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왜 나만 남긴 거지?

“마우리츠에게 이야기 들었네. 마우리츠의 비밀을 알아차렸다고?”

아. 그거였나? 난 빌럼 공작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표정을 굳혔다. 알았다고 대답하기에도 난처한 문제였으니까.

“거참. 난처하구만. 언젠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 유물은 마우리츠의 비밀을 완벽히 지켜주고 있었을 터인데.”

마우리츠가 가진 유물이 남색의 취미를 가려주는 건가? 으음.. 여하튼 공작님의 난처해하는 표정을 보면 마우리츠의 비밀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꺼리는 모양이다.

“이 비밀은 제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겠습니다.”

“뭐. 딱히 그럴 필요는 없네.”

음? 그게 밝혀져도 되는 건가?

“애초에 그런 비밀을 안고 있는 마우리츠를 자네의 여정에 동행시킨 것은 어느 정도 결정을 한 후에 한 것이니까. 내가 보기에 자네는 정말 크게 될 사람이거든.”

무슨 말이지? 내가 큰 사람이 될 거란 것과 마우리츠가 남색의 취미를 가진 것이 뭔 관계지? 혹시 큰 비밀을 내가 알게 한 후 그것을 역이용하려는 건가? 아냐. 빌럼 공작님은 그렇게 음흉한 성격이 아닌데?

“마우리츠가 여자란 것을 알게 된 이상 터놓고 이야기하지. 우리 마우리츠 어떤가. 아니. 우리 빌럼가의 사위가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 어어? 어어어? 여자?

============================ 작품 후기 ============================

아싸 성공.

역시 미리 압박을 가해놓으면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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