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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0년 10월 30일 목요일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 마우리츠는 조용히 빌럼가로 향했다. 그 일 이후로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었다. 내가 너무 했던 건가? 아니다. 이런 건 정확히 선을 그어줘야 한다. 내가 마우리츠의 마음을 받아줄 수도 없는데 괜히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두면 나도 괴롭고 마우리츠는 더욱 괴로울 것이다.
“후. 일하자. 일.”
잠시 마우리츠에 대한 것은 한쪽으로 미뤄놓고 일에 집중해야겠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우선 조선소. 내가 조선공을 구하기 위해서 몇 달간의 여행을 하게 만들었던 그 일이 남아있다. 가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이지. 조선소를 짓는데 필요한 인력들을 모아 암스테르담 상관 회의실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나와 토마스, 하벨, 후고와 숙련 조선공 5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인력은 확보했으니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조선소 지을 땅을 확보하는 거겠지. 후고. 100명의 조선공이 함께 일 할 수 있을 정도의 조선소를 지으려면 어느 정도의 땅이 필요하지?”
내 꿈은 크다. 한번에 10척의 배를, 그리고 1년에 20척의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소. 지금 데려온 조선공 전부를 쉬지 않고 일하게 만들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를 통해 우리 상단이 사용할 배 전부를 자급자족할 수 있고 남는 배를 팔수도 있게 하고 싶었다.
“100명이라.... 100명이라면 제가 일했던 조선소의 3배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 3~40명의 조선공이 함께 일했으니....”
.... 그러니까 그게 얼마나 필요한 거냐고. 내가 후고가 일했던 조선소의 크기를 어떻게 알아. 난 후고 옆의 조선공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대답해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아무래도 후고보다는 40~50대의 조선공들이 더 조리 있게 대답하겠지.
“후고 영감님의 말이 맞습니다. 100명의 조선공이 함께 일 할 정도라면 9~10척의 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되니까. 그 정도면 될 것 같군요.”
“......... 그러니까 그 공간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건가.”
“아. 그게 그러니까....”
내 질문을 받은 조선공이 손발을 다 써가며 깊게 생각을 해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음... 대충 100톤 한자코그 20척 정도의 넓이면 될 것 같습니다. 자재를 놓을 공간과 작업대를 만들 공간도 필요하니까요.”
“음음. 그게 맞아. 그 정도면 될 것 같아.”
“나도 그 정도면 100명이 한 번에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냐. 그건 빡빡하게 일할 때의 이야기고 여유 있게 넉넉한 공간에서 일하려면 100톤 한자코그 30척 정도의 공간은 필요해.”
“그건 그렇네. 자재를 쌓아 둘 창고도 필요하고 잡역꾼들이 일할 공간도 필요해.”
“마무리 작업을 할 바다와 연결된 공간도 필요하지.”
귀족인데다가 조선소 주인이 될 내 앞인지라 조용하던 조선공들이 한번 입을 열자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100톤 한자코그 30척 정도가 한 번에 들어설 수 있을 공간이라면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자코그는 코그의 일종인데 한자동맹의 활동이 활발한 발트해 지역에서 많이 쓰이는 배이다. 일반적인 코그와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파도가 약하고 바람이 잔잔한 발트해에서 활동하기 좋게 내파성은 약하나 물건을 많이 실을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저들은 비스마르의 조선공들이니 대부분 한자코그만 만들어봤겠지. 뭐. 그냥 코그와 크게 만드는 방법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발트해에서 많이 활동할 배를 만들 예정이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코그 30척이 한 번에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라.... 대충 생각해도 꽤 넓은 공간이다. 하지만 정확히 감은 안 잡히네...
“일단 나가보지. 나가서 정확히 어느 정도 공간이 필요한지 확인해보자고.”
결국 조선공들을 데리고 부두로 나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여준다고 해도 이들이 지도를 보는 방법을 알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직접 나가서 실측을 하는 것이 정확할 터였다.
어머니를 도와 암스테르담 상관의 거래를 담당하고 있는 룰로프를 불렀다.
“빌럼가의 조선소는 어떻게 됐지? 이미 만들고 있는 중인가?”
비스마르로 가기 전 조선공을 대부분 구했던 빌럼가이니 이미 조선소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네. 항구 한쪽에 조선소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만들고 있구나.
“그럼 그쪽으로 안내해줄 직원을 붙여줘.”
“알겠습니다.”
마차 두 대에 나눠 타고 항구로 향했다. 애초에 이 임시 상단 본부는 항구 근처에 위치해 있다보니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빌럼가의 조선소가 지어지고 있는 곳으로 도착해 조선공들에게 물었다.
“저 정도면 한 번에 몇 척의 배를 만들 수 있지?”
“으음... 6척 정도 되지 않을까요?”
“아냐. 빽빽하게 자리 잡으면 7척도 가능할 거야.”
“그래. 그 쯤 되겠네.”
6~7척이라.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는데 6~7척밖에 만들지 못한다니. 내가 원하는 크기의 조선소를 지으려면 저것보다 50%정도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인가?
“하벨. 우리 상단에 여유자금이 얼마정도 있지?”
“렐리 상단만이라면 약 1억 3천만 오션 정도 됩니다.”
1억 3천만이라.... 예전에 비해 별로 늘어난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게 다 뤼베크 상관을 만들고 뤼네부르크의 소금광산을 구입하고 소금광산의 새로운 광맥을 뚫는 사업을 진행중이어서다. 뭐. 전부 미래를 위해 투자한 것이니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1억 3천만 오션.... 여기에 사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보어&렐리의 여유자금을 더한다면 1억 6천만 오션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보어&렐리는 최근 배의 숫자나 직원을 늘리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 중이라서 현금이 제법 모여 있는 상태이니 말이다.
“그 돈으로 빌럼가의 조선소가 지어지고 있는 땅의 1.5배 정도에 해당하는 땅을 확보할 수 있을까?”
“으음... 사는 것은 힘들겠지만 땅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네덜란드는 배가 상당히 부족한 상태고 조선소를 만들기 위해 땅을 임대해달라고 하면 시청해서 허락해 줄 테니까요. 하지만 빌럼가 이상의 땅을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고 임대료가 비쌀 것이며 미래가 불투명해집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암스테르담의 땅값은 비싸니까. 항구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비싸진다. 그러므로 항구에 가까이 있는 땅을 빌리는 것은 엄청난 임대료를 각오해야 한다. 어쩌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것은 언제 땅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귀족들이 끼어드는 일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나니까. 만약 내가 조선소를 짓고 그것이 잘 된다면 배 아픈 고위 귀족들이 어떻게든 빼앗으려 들겠지.
내가 쉽게 빼앗길 사람은 아니지만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역시 내 땅위에 조선소를 지어야 돼.”
“그렇게 하자면 규모를 줄이는 것도 생각해보셔야 할 듯합니다.”
“으음.....”
그것은 싫다. 어떤 일이든 효율이 가장 중요하다. 한 달에 100의 물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쟁여놓지 않고 그 달에 전부 팔아버리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안겨다준다.
그것을 지금 나에게 적용하면 100명의 조선공이 있는데 그 중 50명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50명을 놀게 한다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손해를 보지 않고 최대의 이익을 보려면 100명의 조선공 전부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배가 만드는 족족 전부 팔려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지만 지금으로선 만드는 족족 전부 팔릴 것이다. 아니면 전부 내가 자급자족해도 되고. 보어&렐리에 보내 어선으로 활용해도 되고 영국이나 발트해를 누비는 상선으로 사용해도 된다.
“흠.... 꼭 암스테르담에 조선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어차피 배잖아. 대부분의 선주가 암스테르담에 있기는 하지만 물만 연결되어 있다면 다른 곳에서 만들어서 이곳으로 가져올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봤자 며칠밖에 차이나지 않을 텐데 뭐. 다른 항구라면 땅값도 상당히 쌀 거고 말이야. 비스마르도 마찬가지야. 애초에 거기 조선소가 몰린 이유가 땅값이 싸고 뤼베크가 가까워서잖아?”
“우리도 암스테르담 근처의 땅값이 싼 곳에 조선소를 만들자는 말씀이시군요.”
“응. 그렇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조선소이니 만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땅값이겠지요. 암스테르담보다는 다른 곳에 조선소를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입니다.”
뭐. 좋은 생각까지야. 쑥스럽네. 이미 수백 년 전에 한자동맹의 상인들이 사용했던 방법인데. 다시 상관 회의실로 돌아왔다. 후고를 비롯한 조선공들은 그들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고 어머니와 룰로프, 플로라를 추가해 조선소를 짓기에 적당한 땅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
1580년 11월 1일 금요일
“그럼 부탁한다. 하벨, 후고.”
“네. 걱정 마십시오. 단주님. 반드시 조선소를 지을 적당한 항구를 찾아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하벨을 위시한 16명의 일행이 암스테르담을 떠났다. 조선소를 지을 항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나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빌럼가에서 호출을 해왔기에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조선소가 지어질 땅이 정해져야 700명의 유대인들이 정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상단 임시 본부와 아직 지어지고 있는 본부 공사터에 나눠서 임시 거처를 짓고 살고 있었다. 일부는 먼저 정착한 유대인 빈민촌에 껴서 살고 있는 자들도 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전부 에흐몬트로 이주시키고 싶은데 말이지. 보어&렐리는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니까. 조선공을 제외한 600명의 가족이 에흐몬트로 이동한다면 적어도 100~200명 정도의 일손이 새로 생기는 것이니 일손 부족도 많이 해결될 터인데 말이다.
하지만 조선공들이 가장이니까. 그의 가족들은 가장을 따라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떨어뜨려 놓을 수는 없지.
하벨과 5명의 조선공들은 한 달간 주변 도시를 돌아다니며 조선소를 짓기에 적당한 땅을 찾아다닐 것이다. 적지를 찾으면 그보다 빨리 돌아올 수도 있다. 그 전까지는 조선공을 비롯한 그 가족들을 렐리 상단과 보어&렐리의 일꾼으로 고용하여 급여를 지급할 예정이다. 공짜로 먹여살릴 수는 없지 않나.
어차피 항구일이란 것이 항구 잡역꾼을 임시로 고용하는 일이 많은 만큼 그들에게 줄 일은 많았다. 모자랄 때는 루이웨 상단까지 동원하면 된다. 루이웨 상단도 꽤 규모가 커서 잡역꾼을 자주 사용하니까.
내가 지을 조선소의 조선공으로 일하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적게 벌겠지만 일을 아예 할 수 없어 굶기만 했던 비스마르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하벨과 조선공들의 안전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특별히 10명이나 되는 용병을 고용해 붙여주었으니 큰일은 없을 것이다. 10명이면 웬만한 도적들은 감히 덤비지 못할만한 수이니 말이다. 정말 안심하려면 초인 한명쯤은 붙여주어야 하겠지만 초인 용병은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는 없고 말이다.
하벨을 배웅한 후 시청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빌럼가의 호출이라고는 하나 정확히는 의회의 호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저번에 싸웠던 광휘의 기사들에 대한 일일 것이다.
“룰로프. 조합에 이야기해서 무기술의 대가를 초청해.”
“알겠습니다. 어떤 종류의 무기면 될는지....”
“어떤 무기든 상관없어. 겹치는 종류만 아니면 된다.”
“알겠습니다. 단주님.”
무기술을 배워볼 생각이었다.
이번에 광휘의 기사들과 싸우면서 느낀 점은 내 공격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방어에 능하고 단단하며 체력이 강하다면 어느 누구든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신체능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내게 딱 맞는 싸움법이라 생각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것이, 내가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것을 중점적으로 수련해왔는데 이번 전투에서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상대를 빠르게 쓰러뜨리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강력한 공격력이 필요했다.
내 전투 스타일의 핵심은 변형이었다. 넘버127의 통제로 유물들의 형태를 마음대로 변화시켜 싸우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하지만 이 변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 상상력이 상당히 중요했다.
변형은 넘버127이 내 생각을 읽어 유물을 그 생각에 맞춰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모양을 뚜렷하고 강하게 생각해서 넘버127이 읽기 쉽게 만들어야 했다.
뚜렷하고 명확한 생각.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고 자주 생각하고 연습한 이후에야 전투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생각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건틀릿이나 워리어의 컴뱃 아머와 같은 것 말이다. 유일한 공격형 변형인 3번 전투형태 ‘더 퀴버’도 상당한 이미지 수련 끝에 겨우 성공한 것이었다. 겨우 건틀릿 끝에 창날을 만들어내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공격력을 강화하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한 길로 변형을 선택했다. 변형을 통해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물들을 공격적인 형태로 마음껏 변화시키는 것.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무기술의 대가를 초청하는 것은 그러기 위한 수련의 일환이다. 평생 익혀본 적 없는 무기술을 익혀서 무기들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투상황에서도 마음대로 유물을 무기 형태로 바꿀 수 있게 할 것이다.
물론 잘될지 안 될지는 일단 해봐야 알겠지만 안하고 가만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럼. 시청으로 가자.”
외출 준비를 끝낸 나는 토마스를 대동하고 시청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점심쯤에 다음 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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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써놓은 것은 없지만 이렇게 질러놓지 않으면 안 쓸것 같아서...
제가 워낙 게으른 인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