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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플로라!”
저 멀리서 플로라가 날 향해 달려온다. 플로라를 못 본지 4달에서 5달 정도 됐나?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그렇지 않아도 반가운데 불리했던 전황을 단번에 뒤집는 활약을 했으니 더욱 반가웠다.
“어어?”
달려오던 플로라가 그대로 내게 안겼다. 컴뱃 아머 상태였던데다가 다시 브레스트 아머로 돌아가며 피를 털어냈기에 피는 없지만 방금 전까지 격한 전투를 했기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 더러운데..”
“괜찮아요. 단주님. 정말 오랜만에 봬요.”
나를 더욱 꼭 끌어안는 플로라. 허. 얘가 왜 안하던 짓을 하는 거지.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그런 건가. 뭐. 나도 반갑긴 하다. 나는 나를 안고 있는 플로라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그렇게 잠시 나를 안고 있던 플로라가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한발자국 물러나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얘가 정말 예전엔 안하던 짓을 왜 이렇게 자꾸 하지. 예전엔 눈도 잘 안 마주쳤었는데.
“저 단주님께 도움이 되었나요?”
“물론이다. 아주 적시에 잘 가세했다. 네 덕분에 불리했던 전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내 말에 플로라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쁘다.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어린 소녀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니 그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플로라도 많이 자랐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그럼. 전 버려지지 않는 건가요?”
“음? 무슨 소리냐. 널 왜 버려? 당연히 버리지 않는다.”
“아....”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 플로라. 얘 정말 왜 이러지.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헤헤. 그럼 앞으로 영원히 단주님 곁에...”
영원히는 힘들 것 같지만 최대한 오래 내 곁에 있어주면 좋긴 하겠다. 분명 방금 전투에서 플로라는 신체능력 상승과 저주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것은 아주 유용한 능력이다. 이렇게 단번에 전황을 엎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플로라도 언젠간 자기 길을 떠나겠지만 웬만하면 오랫동안 내 곁에 남아줬으면 좋겠구나.
음... 그러자면 돈이 최고지. 승진도 시켜주고 급여도 올려줘야지.
***
플로라를 따라온 용병 10명에게 장내 정리를 부탁했다. 누군가 정리를 하긴 해야 하니까. 그냥 버리고 가기엔 14명의 초인들이 가지고 있던 장비들이 너무 고가다. 그냥 고가도 아니고 초고가지. 명령을 내린 후 내가 직접 용병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하려는데 갑자기 플로라가 나서더니 용병들에게 이것저것 시키기 시작했다.
허. 오늘 참 많이 놀란다. 정말 달라졌구나. 예전의 수줍음만 타던 플로라가 아냐. 뤼베크에서 많이 배운 모양이다. 역시 사람을 가르치려면 일단 실무를 하도록 던져 놓는게 최고인 것 같다.
대충 장내가 정리되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신경을 솔코에게 집중했다.
에스파냐의 암살대는 최선을 다해 퇴각하려 했지만 하늘에서 습격해오는 솔코를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때문에 퇴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자꾸 지연되어 얼마 가지 못했고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 토마스가 솔코에 가세하며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가 끝났다.
-전투를 통해 무재 포인트 6,400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34로 올랐습니다. 보너스 단계 포인트 1 획득했습니다. 총 보너스 단계 포인트 13 누적되었습니다.
무재가 28(+3)단계로 올랐습니다. 수련 효율과 신체 한계가 높아집니다.
오랜만의 무재 포인트 획득이구나. 그것도 엄청난 양. 덕분에 1단계를 올리기 위해 5,000포인트 정도 필요했던 무재의 단계를 단번에 올려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 쌓여있던 레벨 포인트에 이번 포인트가 더해지며 레벨까지 상승해서 보너스 단계 포인트까지 얻었다. 힘들긴 했지만 힘들었던 만큼 큰 보상이구나.
사실 초인 14명을 상대했으니 이 정도는 줘야지.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초인 14명을 상대한 것 치고는 너무 짠 포인트 획득이라고 해야 하나? 전에는 암살대 인원 중 하나만 잡았는데도 700포인트를 획득했으니 말이다.
뭐. 넘버127이 알아서 잘 계산했을 테니 따지진 않는다.
솔코의 눈을 통해 쓰러진 암살대 세 명 중 두 명의 시체에서 유물이 하늘로 떠올라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깝네. 저기로 내가 갔으면 저 두 개를 내가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방패와 이동 능력을 가진 유물이다. 흠. 다른 건 몰라도 이동능력은 꽤 탐났는데 말이야. 원거리 공격용 유물인 그 대롱도 괜찮긴 하지만.... 내가 그 대롱에 입을 대고 뭔가를 쏘아낸다는 상상을 하니.... 별로 쓰고 싶은 무기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상대했던 10명의 기사들 중에는 유물이 사라진 자가 아무도 없구나. 즉, 전부 명품급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뜻. 비록 등급이 낮기는 하지만 비슷한 계열의 유물이 10개라면 그 가치는 명품급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를 부여해도 되지.
그들과 직접 싸워본 내가 인정한다. 그들은 명품급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했어. 비슷한 방식으로 훈련시켜서 상단 호위대를 만들어도 되겠는데. 웬만한 자들은 이 비슷한 유물을 가진 10명의 합공을 뚫지 못할 것이다. 좋은 거 배웠다. 에스파냐.
자. 그럼 유물을 회수하러 가보실까.
***
“없어! 없어!!!!”
잠시 뒤. 나는 비명 섞인 절규를 질렀다. 없다. 없어. 왜 없는 거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뭐가 없는데?”
마우리츠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그만이 아니라 크리스틀과 플로라까지 다가왔다.
“크윽.... 유물이 없습니다.”
그렇다. 유물이 없었다.
“어? 왜? 쟤네 분명 초인이었는데?”
그렇게 말입니다. 분명 초인이었는데. 초인이라면 응당 유물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유물을 회수하러 온 거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넘버127에게도 확인시킨 후이니 확실하다. 이 초인들은 유물이 없다. 유물이 없는 초인이라니 말이 돼?
“누가 이미 가져갔나?”
“그건 아닙니다.”
그럴리 없다. 내가 저들을 쓰러드린 이후 단 한순간도 눈을 뗀 적이 없다. 유물 하나가 얼마짜린데 어떻게 눈을 뗄 수 있을까. 장내를 정리하고 있는 용병들도 기사들 근처로는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혹시 전부 전승급 이상의 유물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날아간 건가? 아니 그게 말이 돼? 난 몰라도 넘버127까지 속이면서 사라진다고? 10개나 되는 유물이? 그럴 리 없다. 우리 넘버127이 어떤 유물인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도대체.... 유물 없는 초인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뇨. 유물 없는 초인. 말이 됩니다.”
내 넋 빠진 혼잣말을 크리스틀이 받았다. 그녀는 떨어진 곳에 있는 용병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인가?
“특히 에스파냐라면 더욱 그렇지요.”
에스파냐라서 더욱 그렇다고?
“에스파냐. 이사벨라. 신화급 유물.”
“설마......”
크리스틀이 하나 둘 늘어놓는 단서들. 그 단서들은 너무나 유명한 것이라서 모를 수가 없는 것들이다.
“광휘?”
“네. 광휘라면 유물 없는 초인이 말이 됩니다. 100년전 유물이 없는 초인을 찍어내어 지금의 에스파냐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준 유물. 이사벨라 여왕의 광휘. 그것이라면.....”
충격에 휩싸였다. 나뿐만이 아니다. 마우리츠도 큰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정도로 광휘가 주는 충격은 엄청났다. 단순한 유물 하나가 아니다. 세상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한 강력한 유물에게 부여하는 등급 신화. 그 등급을 부여받은 최초의 유물 광휘.
유물이 없이도 초인을 찍어낼 수 있는 그 유물은 에스파냐를 그저 그런 나라 중 하나에서 지금의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불리는 위치로 올려주었다.
이사벨라 여왕 말년에 그녀가 만들어낸 초인은 50명에 달했을 정도다. 비록 명품급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없었지만 비록 명품급이라도 초인은 초인이다. 특히 유물이 많이 깨어나지 않은 시대였던 당시에 명품급 초인 50명은 거의 절대적인 전력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 광휘라고 확신 할 수는.....”
내가 희망을 담아 토해내듯 말을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정황이 발견되었으니 어서 공작각하께 보고 드려야 합니다.”
크리스틀의 말이 맞다. 하지만.....
“한번만. 한번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혹시 제가 놓쳤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아니다. 내가 안다. 놓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닥친 큰 일에 조금이라도 더욱 완벽을 기하고 싶었다. 나는 기사들의 시체는 물론 그 주변까지 샅샅이 다시 수색했다. 그리고 결국 어디에서도 유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몸을 일으키며 말을 내뱉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한다. 전부 움직여.”
용병만이 아니라 토마스, 나, 플로라, 크리스틀에 마우리츠까지 전부 참여해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도망쳤던 마론과 말, 노새들을 찾아와 달구지에 연결하고 급히 뤼베크로 향했다.
***
아론 일행이 장내를 서둘러서 정리한 후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고민하고 있던 검은 고양이는 결론을 내렸다.
‘쫓아간다. 그리고 관찰한다.’
아론이 펠로타의 유물을 강제로 취득하는 것을 보며 어떤 가능성을 엿본 검은 고양이는 당분간 아론일행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
1580년 9월 6일 금요일 뤼베크
“다음 우리 배 출항이 언제지?”
갑자기 뤼베크 렐리 상관에 들이닥친 내가 하벨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이었다. 하벨은 앞뒤 영문을 모르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대답은 곧바로 했다.
“4일 뒤 취항 예정이고 한번 취항하면 대략 일주일에서 10일 가까이 머무니 11일에서 14일 뒤에 출항예정입니다.”
“그러면 취항하고 물건을 내리는대로 새로 물건을 싣지 않고 그대로 암스테르담으로 출항시켜. 운송물은 이거다.”
난 마우리츠가 친필로 작성하고 자신의 인장을 찍어 봉인한 편지를 하벨에게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큰 손해를 봐야 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받아들이는 하벨. 역시 내 충성스런 부상단주답다.
***
1580년 9월 11일 수요일
펠로타와 기사 10명, 암살대 3명의 시신과 유물을 제외한 그들의 장비, 그리고 마우리츠의 편지를 실은 나사우호가 뤼베크를 떠났고 그 뒤를 3척의 배가 호위하듯 따랐다.
단순히 편지와 시체를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라면 배 한척만 보내면 되는 것이지만 혹시 해적이라도 만나면 위험해진다. 그렇기에 최대한 무장시킨 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빈배로 4척 모두 출할시킨 것이다.
더욱 완벽을 기하려면 나와 토마스 등도 함께 타야하겠지만 며칠간 고민한 끝에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나 토마스가 간다고 해도 딱히 할 일이 없는데다가 어떤 해적도 나사우호를 비롯한 4척의 배를 당해내지 못할 테니까.
나사우호와 다른 배들을 믿지 못해 나와 토마스까지 승선하는 것은 정말 큰 낭비였다. 거기에 몇 개월을 공들인 조선공을 모셔오기 위한 일정이 다시 1~2달 밀리게 되니까. 그것은 좋지 않다.
대신 크리스틀을 보냈다. 상황을 편지로만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상황을 알고 있는 자가 한명정도는 있는 것이 좋았다. 크리스틀이 가니 마우리츠도 함께 가야하겠지만 마우리츠가 나와 함께 하겠다고 고집 피웠다.
이미 마우리츠의 위치가 노출된 이상 한시라도 빨리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을 위해 최선이지만 무조건 나와 함께하겠다고 할 뿐이었다. 여기서 백작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가장 높은 사람이 고집피우는 데 별 수 없지. 하자는 데로 할 수밖에. 결국 크리스틀만 돌아가고 마우리츠는 남게 되었다.
뭐. 위험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신성로마제국 최북단이니까. 이미 한번 적이 습격해오긴 했지만 꽤 큰 전력이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그 정도의 전력으로 연이어 공격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적들이 정비하고 전력을 파견하기 전에 조선공을 데려오는 일을 마치고 뤼베크로 돌아와 얌전히 있다가 다시 올 배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비스마르는 이틀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공자님.”
“응.”
뤼베크로 온 김에 보고도 받고 일을 처리해야겠어.
***
1580년 9월 12일 목요일
“이건.....”
“응. 마리아야. 인사해. 마리아.”
“니야옹.”
별일 없이 내일 비스마르를 향해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별일이 생겼다. 마우리츠가 어딘가에서 검은 고양이를 주워 온 것이다. 더러울 텐데. 원래대로라면 마우리츠가 어떻게든 고양이를 포기하게 만들어야겠지만.... 고양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마우리츠를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에이. 별 수 없지. 깨끗하게 씻기면 되겠지. 이따가 이레인에게 고양이의 목욕을 지시해야겠다.
***
멀리서 아론을 살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 가까이에서 대화와 행동을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전투에서 보았듯이 상당히 강력한 초인인 아론에게 몰래 근접해서 관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접근할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검은 고양이는 자신이 과거에 한 인간에게 아무 의심없이 접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것을 실행했다.
“니야옹.”
“와아. 완전 귀여워!”
검은 고양이는 마우리츠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우리츠의 발에 볼을 비비는 등 여러가지 애교를 부렸다.
“와와와. 너무 예뻐!”
마우리츠가 손을 뻗어 검은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검은 고양이는 작전이 성공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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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로는 30위에 겨우 들어가는 제가 쿠폰베스트 4위에 올라갔네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