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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중에 붕 떠 뒤로 날아가는 와중. 광휘의 기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자신과 동료들을 뻥뻥 하늘 높이 날려 보내는 아론을 보며 든 생각이다. 자신들의 방어는 완벽했다. 대포로도 뚫기 힘든 두터운 방패를 내세워 정면으로 막는 것도 아니고 비스듬히 세워 충격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동료 셋이 몸을 받쳐주기까지. 실제로 고국에서 연습할 때는 5m 앞에서 쏜 대포의 포탄도 막아내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제 겨우 스물이 될까 말까한 어린 외국인 주먹의 충격에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다니.
“방패 파손. 선두 교체.”
“동의!”
선두에 있던 광휘의 기사가 교체를 원했고 뒤에 있던 기사 중 하나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뒤로 물러난 기사의 방패는 반절이 사라져 있었다. 아론의 주먹에 파손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약간의 흠집, 혹은 퀴버의 날만큼의 구멍이 생기는 정도였지만 플로라가 개입하는 순간부터는 아론의 주먹 한방 한방에 큰 구멍이 뚫리거나 크게 구부러지거나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파괴력이...’
아론의 주먹을 가장 선두에서 막아내다가 방패가 파손되어 뒤로 물러난 기사는 아론의 파괴력을 가장 크게 실감하고 있었다. 한방한방이 대포와 같았다. 유도기능이 달려 정확하게 내려 꽂히는 대포.
물론 어떤 다른 유물에 의해 자신들의 능력이 떨어짐으로써 그렇게 강화 된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어떤 유물의 개입이 있기 전에도 소구경 대포정도의 위력은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중구경 대포만큼 강해진 상태고 말이다.
쾅!
다시 아론의 주먹이 선두의 기사에게 내려 꽂혔고 뒤에서 받쳐주고 있던 기사들까지 다함께 튕겨나갔다. 다시 원치 않는 비행을 하는 기사들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떠 올랐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기사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이 술을 마시게 되면 초인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떤 힘입니까.
-신체능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된다. 신체능력 강화 명품급 유물을 사용한 것처럼.
10번이 넘는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운 자신에게 찾아온 초인이 될 수 있는 기회. 그것도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능력 강화. 그는 망설이지 않고 술을 마시려 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잠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단, 유물 없이 초인이 되기 때문에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
그 뒤를 이어 말하는 막대한 돈을 준다던가 직급이 올라간다던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던가 하는 내용은 들리지도 않았다.
-얼마나.... 얼마나 줄어듭니까.
-모른다. 다만 이 힘을 받고 가장 오래 산 이는 11년을 살았다.
-11년. 하겠습니다.
망설임은 없었다. 돈에 혹한 것도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목숨 때문에 가족들을 걱정해서도 아니다. 강함. 전장에서 항상 보는 초인들의 강력함. 그것을 동경해서였다.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는데 11년이나 살 수 있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라. 가장 오래 산 이가 11년이라는 거지 적게 산 이는 2년이다.
-2년.....
2년이라니. 꽤 놀랐었다.
-그래. 2년이다. 아직 30대 초반인 자네는 살날이 많아. 어쩌면 몇 년 안에 유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생각해. 위에서 시키기에 묻기는 하지만....
-2년. 길군요.
길다. 짧아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길어서 놀란 것이다.
-......
-제가 처음 종자로서 전쟁에 참전한 이후로 14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자들이 돈을 탕진할 때. 그는 언젠가 좋은 유물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그 동안 싼 명품급 유물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었다. 하지만 시장에 간간히 나오는 유물들은 대부분 기사에게는 필요 없는 능력들. 그것도 1~2년에 하나 정도 나오며 경쟁자가 많아 말단 기사인 그는 살 수도 없었다.
기사는 자신보다 약했던 사람이 유물을 얻어 초인이 되고 강력해지는 것을 보며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드디어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 비록 수명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항상 기도했습니다. 초인이 되어 역사에 이름이 남는 영웅이 되고 싶다고. 그를 위해서라면 단 한순간만 살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는 전신에 충만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넘쳐흐르는 힘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힘을 얻고 이미 초인으로 이름 높은 영웅들에게 수련도 받았다.
비록 부여받은 힘은 명품급 유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신체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비를 받고 기술을 갈고 닦아 웬만한 전승급 유물의 소유자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역시 신께서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쾅!
다시 아론의 주먹에 뭉쳐 있던 4명의 광휘의 기사들이 날아간다. 그들이 날아간 자리를 다른 광휘의 기사 4명이 메꿔주며 아론의 다음 공격을 막으려 준비한다. 새롭게 방어진을 짠 광휘의 기사들. 그들도 이미 아론의 공격에 의해 방패와 갑옷이 너덜너덜했고 연달아 받은 충격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자신들이라면 2명이라면 전승급, 4명이라면 전설급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쾅!
이제 겨우 20이 된 어린 남자의 주먹에 이리저리 휘둘리고만 있다.
쾅!
점점 힘이 빠지고 느려지는 광휘의 기사들에 비해 아론은 점점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방패를 내밀어억!!!!”
뒤에서 누군가가 비명처럼 소리질렀다. 하지만 기사는 방패를 든 손을 올릴 수 없었다. 이미 수십 번이나 아론의 공격을 막으며 망신창이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기사는 멍하니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아론의 주먹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기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론의 주먹이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
퍼퍽!
“후우....”
마지막 기사를 쓰러뜨렸다. 정말 강적이었다. 플로라가 등장한 후 갑자기 둔해진 기사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들은 플로라에 의해 어떤 불이익을 받았고 자신은 신체능력 강화를 받았다. 그로 인해 전보다 훨씬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고 주먹 한 방 한 방이 적의 장비를 파괴했다. 그럼에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상태에서도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이야.
“상성이 좋지 않았던 건가.”
나도 방어형이고 적들도 방어형이었다. 나는 공격력도 꽤 강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방어에 더 뛰어나니까. 나 혼자라면 방어가 뛰어나다는 것이 장점이겠지만 다른 이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전투로 깨달았다.
공격력을 어떻게든 더 올려야겠어. 퀴버의 날을 주먹 끝에 만들면 제법 강력한 위력을 낼 수는 있지만 너무 짧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충격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퀴버의 진동을 멈추고 전장을 둘러보았다. 토마스는 에스파냐 초인 간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된 것이 전부 방어형만 모인건가. 에스파냐 초인 간부도 방어쪽으로 특화되어 있는 듯 했다. 몸 전체를 경화하는 능력인가. 꽤 높은 충격이 가해졌을 공격에도 멀정한 것을 보면 내부도 단단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플로라가 나타난 이후 그의 공격은 토마스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반대로 토마스의 손톱은 조금씩 상처를 내고 있었다.
지금 에스파냐 초인 간부는 피투성이 상태. 다만 토마스의 손톱도 상대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못해 깊은 상처는 없는 상태. 보아하니 이대로 놔두면 피를 많이 흘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듯하다.
다른 전장. 솔코와 3인의 암살대가 싸우고 있는 곳. 그 곳은 이 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원래는 솔코가 꽤 밀리고 있었지만 플로라가 나타나고 강화와 저주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다만 나나 토마스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도는 아니고 아주 약간 유리한 정도?
그것도 나와 토마스가 유리해진 것을 본 후에 퇴각을 선택했기에 일어난 전세 역전이다. 솔코가 최대한 막고는 있지만 이대로 놔두면 결국 놓칠 것 같다. 그럴 수는 없지.
몸을 날려 토마스와 에스파냐 초인 장교가 싸우는 곳으로 향했다.
퍽!
“커억!”
내 주먹에 맞은 초인 장교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단단하네. 꽤 힘을 준 상태였는데 머리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튕겨나가는 정도로 끝나는 건가.
“주인님.”
“응. 넌 저쪽으로 가봐. 솔코와 에스파냐 암살대 3명이 싸우고 있을 텐데 가서 그놈들 죽여.”
“네. 주인님.”
나보다는 토마스가 빠르니까. 그들을 따라잡아 죽이는 것엔 토마스가 적임자다. 그리고 토마스의 손톱보다는 내 주먹이 단단한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에 더 적합하다.
“크윽. 비겁한 놈들! 역시 이교도놈들은 기사도도 없느냐! 1:1 전투에 끼어들다니!”
“어떤 놈들은 8명이 덤비더라고.”
“으윽.”
내 주먹이 머리에 직격으로 꽂혀서 어지러운지 머리를 흔들고 있는 적. 음... 플로라에 의해 강화된 주먹을 맞고도 조금 어지러운 정도라니. 단단하긴 더럽게 단단하구나. 그리고 내부도 단단하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겉만 단단했으면 토마스의 손톱은 몰라도 내 주먹을 맞고도 저렇게 멀쩡할 수는 없으니까.
기이이이이이이이잉!
잠시 멈췄던 퀴버를 다시 진동시켰다. 비록 방패를 뚫고 충격을 주기엔 짧은 날이지만 방패도 없는 저놈의 몸에는 꽤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겠지.
“잠깐! 잠깐만!”
갑자기 초인 장교가 소리친다. 내가 그 놈 말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 땅을 박차고 그놈을 향해 쇄도했다.
“아아악! 항복! 항복한다!”
“어어?”
크윽. 의외의 말에 갑자기 멈추느라 잠깐 균형을 잃었다.
“항복이라고?”
“그래! 항복한다!”
으음... 난감하다. 항복이라니. 항복은 무조건 받아줘야 하는 것이라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봤다. 싸우다 죽은 빌럼가의 기사 둘과 병사들, 그리고 하인 하녀들. 그들이 죽었는데......
고민된다.
“이름이 뭐지?”
“펠로타. 에스파냐 상급 기사 펠로타다.”
“펠로타라....”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나는 멀리서 이쪽을 보고 있는 마우리츠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자님! 에스파냐의 상급 기사 펠로타란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처음 들어봐!”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큰 소리로 물었고 내 질문을 들은 마우리츠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크리스틀님은 들어본 적 있소?”
“없습니다!”
크리스틀도 들은 적 없다고 한다. 그럼 결정 됐다.
기이이이이잉.
퀴버가 다시 울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그걸 멈춰!”
“왜?”
“아니. 항복을 했으니 포로로서 명예롭게 대우해줘야 한다. 나는 에스파냐 상급 기.... 우와악!”
더 들을 것 없이 주먹을 뻗었다. 펠로타라는 자는 양손을 교차에 내 주먹을 막았다. 주먹은 막았지만 퀴버의 날은 펠로타의 양손바닥을 꿰뚫었다.
“크으윽! 왜 이러는 것이냐! 항복했잖아!”
“필요없어.”
펠로타의 양손바닥을 꿰뚫고 있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었다. 펠로타가 다시 기사답지 않게 비명을 질러댔지만 내 주먹은 비명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그대로 퀴버의 날이 머리에 박혀 들어갔다.
“좀 유명했으면 포로로 받아줬겠지만....”
네덜란드 국내도 아니고 정식 전장도 아닌데 이름도 모를 에스파냐 기사 하나를 포로로 잡아서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머리에 퀴버가 박힌 펠로타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몸이 아무리 단단해도 머리에 창날이 박힌 상태로 살아있을 순 없지.
펠로타가 죽자 그의 검이 떠올랐다. 저게 펠로타의 유물이구나. 아마도 주인이 죽었으니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려 하는 것일 터다.
하지만 내 목에 걸려있는 넘버127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와 날아 사라지려는 펠로타의 검을 감쌌다. 검의 움직임이 멈췄다.
-대상이 아론님을 새로운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음. 전에 해적에게서 ‘래빗’을 얻을 때는 바로 날 주인으로 선택하더니 이번엔 거부하는 건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역시나 사라지는 걸까?
-대상을 전리품으로 등록합니다.
.....
......
........
등록 완료.
넘버127의 하얀 빛을 거뒀고 펠로타의 검도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리품? 그게 뭐지?
‘전리품이 뭐야?’
-아론님이 다른 사용자와의 결투를 통해 이기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획득하는 아이템이 아론님을 새로운 사용자로 인정하면 보조아이템으로 등록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운 사용자를 찾거나 아론님을 사용자로 인정할 때까지 전리품으로서 아론님 곁에 머물게 됩니다.
‘뭐야. 그럼 그냥 운반인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건가? 나중에 새로운 주인을 얻으면 그냥 떠날 거 아냐.’
-그렇진 않습니다. 전리품으로 등록된 아이템이 새로운 사용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아론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호오. 그건 괜찮네. 가지고 다니다보면 이 녀석이 날 인정할지도 모르고 내 주변인을 주인으로 모실 수도 있고 말이야. 엉뚱한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하면 막으면 되니까. 좋네.
바닥에 떨어진 펠로타의 검을 주워들었다. 웬만하면 날 주인으로 선택하면 좋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인을 선택하지 않으면 절대 떠나지 못할 거다. 후훗.
***
아론이 펠로타의 검이 떠나는 것을 막고 떨어뜨린 다음 다시 집어드는 장면. 아론의 몸에 가려져 마차쪽에 있던 마우리츠나 크리스틀, 후고와 헤르만 등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었던 어떤 고양이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고양이는 눈을 빛냈다.
============================ 작품 후기 ============================
왜 놀라시는 겁니까. 2월 1일에 복귀한다고 이야기 했고 그 날 복귀한건데. 내가 그렇게 신용이 없었다니. 크흑.
그럴만 하지만.
......
..........
ps. 제가 제 날짜에 복귀하자 놀란 독자분들께서 쿠폰을 쏴주시고 계십니다. 덕분에 순위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