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155화 (15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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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0년 7월 23일 수요일 네덜란드

“역시 배를 탄 적 없다고?”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배를 탈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젊을 적부터 배만 만드느라고요. 그리고 딱히 비스마르를 떠난 적이 없으니 배 탈일이 없었다고.... 이번에 배를 타냐며 왠지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좋아하다가 혹시 멀미를 걸리는 체질이기라도 하면 죽다 살아날 텐데. 하벨 녀석 처음 배 탈때는 일주일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가는 데에도 죽다 살아났었다. 그런데 보름 가까이 걸리는 뤼베크 행 배를 탈 후고 영감이 혹시 멀미라도 하면.... 겨우 구한 조선공 한명 잃는 것은 물론 이번에 데리러 갈 비스마르의 숙련 조선공들도 데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지.

“그럼. 별 수 없지. 이번 여정은 육로다.”

배로 가는 것보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지. 70먹은 노인이니까. 조심해야한다. 사실 요즘은 70까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기적이니까. 전쟁과 전염병, 범죄 등 많은 요인 때문에 4~50정도 살면 많이 사는 것 아닐까? 그런데 70이라니. 운 좋은 거지. 그 운 조금 더 이어질 수 있게 조심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육로로 비스마르까지 가는 여행 일정을 짜놓겠습니다.”

알아서 하겠다고 나서는 룰로프. 아무것도 모르고 하벨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제법 일을 할 줄 아는 녀석이 됐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에흐몬트에서 학교를 졸업한 10명이 상단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 녀석들이 먼저 고용한 5명만큼만 해주면 원이 없겠어.

“나도 갈 예정이니까. 호위병력은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출발은, 흠..... 이번 주일을 어머니와 보내고 다음 주 월요일에 하는 것으로 하지.”

“네. 그럼 28일 아침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응.”

원래라면 세세한 사항을 지시하겠지만 일단 한 번 맡겨보자. 맡겨서 잘하면 앞으로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는 것이고 못하면 귀찮더라도 다시 내가 가르쳐야겠지.

***

1580년 7월 27일 일요일

“일요일에 호출이라니. 뭔가 일이 생겼어.”

“그런 것 같군요.”

토마스가 내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 토마스와 나는 빌럼 공작님의 부름을 받아 공작가로 가는 중이다. 보통 일요일에는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상단의 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몇몇 일을 빼고는 전부 손을 놓는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이 쉬는 날이니 당연한 일이다.

비록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독실한 가톨릭교도로서 그분을 믿어온 빌럼 공작님도 당연히 일요일에는 딱히 일을 시키거나 사람을 부르지 않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 불러들이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심각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아. 사부님.”

길에 멈춰 나를 보며 서 있는 사부님을 발견했다. 아마도 공작가로 가시다가 내 기척을 발견하고는 기다려주신 것일 터이다.

그런데 사부님도 호출 받으신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사부님도 공작님의 호출을 받으셨습니까.”

“그래.”

함께 길을 재촉하며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공작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을 보면 보통일은 아닌 것 같구나.”

공작가 사람들의 기척을 감지하셨나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공작가까지는 적어도 1km는 떨어져 있을 텐데. 역시 사부님의 감각은 대단하다.

“공작가의 분위기가 많이 안 좋습니까?”

“대영주 셋에 영주 일곱이 모였고 그 외의 초인 21명이 있다. 저 정도 전력이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전력의 전부라고 봐도 되겠지.”

역시 보통일이 아니다. 대영주와, 영주, 그리고 초인들이라면 전쟁이다. 무조건 전쟁에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 네덜란드와 전쟁을 하고 있는 유일한 적은 에스파냐지. 분명 에스파냐에 관련된 일일 것이다.

공작가에 도착하고 사부님은 대영주와 영주, 직책 높은 초인들이 모인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대기했다.

별 수 없지. 난 아직 저들 사이에 낄 자격은 되지 않으니까. 직책만 따지면 아직은 말단 기사에 불과 하니까.

“아론경!”

“공자님.”

도대체 무슨 일일까 고민하며 앉아있는데 마우리츠가 찾아왔다.

“여긴 왜.... 회의실로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우리츠는 나사우 백작에 빌럼 공작님의 차남이니까. 저들 사이에 낄 자격이 충분히 된다.

“형님이 오셨거든. 형님은 내가 그런 자리에 있는 걸 조금 싫어하시지.”

‘조금’이 아니다. 엄청 싫어할 것이다. 항간에는 필립 대공자가 마우리츠를 같은 형제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돌고 있을 정도다.

“아버지도 내가 들어가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으시고.. 그래서 그냥 안 들어갔어.”

말을 하는 마우리츠의 표정이 왠지 씁쓸해 보인다.

빌럼 공작님은 방임주의다. 자식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얼 하든지 알아서 하도록 놔둔다. 자신의 자식이니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못하면 쳐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뤼베크에는 안 돌아가?”

“돌아가야죠. 하벨이 일을 잘하긴 하지만 신분상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테니까요. 이번에 육로로 비스마르로 갈 예정인데 그때 뤼베크도 들릴 예정입니다.”

하벨은 유대인이니까. 비록 네덜란드인인 내가 주인으로 있는 상단에서 일하고 있으니 대놓고 차별하는 자들은 없겠지만 내가 없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제국이나 동유럽쪽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하니까. 몇몇 국가나 도시는 유대인을 일정 지역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곳도 있을 정도다.

“비스마르! 새로운 곳이구나. 새로운 곳을 가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아. 언제 출발이야? 크리스틀한테 준비하라고 이야기 해야겠어.”

말이 묘하다. 마우리츠도 가려는 건가?

“가시는 겁니까?”

“음? 당연한 거 아냐?”

왜 그러냐는 듯 오히려 반문하는 마우리츠.

“아. 당분간 쉬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휴식 없이 꽤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으니까요.”

“에이. 이게 어떻게 잡은 여행 기횐데. 나 내후년부터 레이덴 대학에 들어가. 그 전까진 갈 수 있는 곳은 최대한 다닐 거야.”

“대학에 말씀이십니까?”

마우리츠의 나이가.... 아직 열두 살 아닌가? 11월생이니 곧 열세 살이 되고 내 후년이면 열네 살이 되긴 하겠지만 대학에 들어가기엔 좀 어린 나이 같은데.

“아버님께서 만든 대학이니까. 아버님의 아들인 내가 들어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많은 학생들이 본받고 열심히 공부한다나?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렇습니까.”

역시나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형제에게 미움 받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한다. 나는 그런 삶이 어떤 삶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마우리츠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

“여하튼 공자님께서 가신다니 잘 됐군요. 이번엔 해로가 아니라 육로로 갈 예정이니 많은 도시에 들려 구경을 하도록 하죠.”

“응!”

내 말에 마우리츠가 환하게 웃는다. 그래. 쓸쓸한 표정은 짓지마. 어울리지 않으니까.

***

“에스파냐가 포르투갈을 합병?!”

“응. 그렇다니까. 어제 저녁에 들어온 정보야.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대영주와 영주들이 집합하고 난리 났었어.”

그렇군. 그 정도 일이니까 이정도 난리가 난거야.

“정말... 위험하군요.”

“응. 위험하지. 그래서 아버님과 대영주들이 아침부터 회의실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있는 거고.”

보통 일이 아니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던 에스파냐의 라이벌이 포르투갈이다.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에스파냐 전력의 3~40%가 포르투갈 한 국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 그 전력이 풀린다는 거다. 그 전력이 어디로 향할까. 혹시라도 네덜란드로 향하면..... 아주 잠깐 누리고 있던 평화라는 행복이 깨지고 지옥이라는 불행이 다가 올 것이다.

***

“미안하군. 이른 시간에 불러놓고 저녁까지 기다리게 해서.”

“아닙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점심이 지나고 해가 떨어져 어두워질 때가 되어서야 빌럼 공작님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군?”

“네. 공자님께 들었습니다.”

“아. 마우리츠라면 알고 있었겠지. 그래. 대략적인 상황을 알고 있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구만.”

“참전하면 되는 것입니까.”

빌럼가의 기사로서 전쟁에 참전. 드디어 그때가 온 것인가. 예전 빌럼 공작님의 기사가 되면서 자유를 보장받았지만 국가적인 위기가 찾아올 경우엔 빌럼가의 기사로서 전쟁에 참전할 것을 약속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않을까?

“후후. 자네가 참전해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없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그럼?”

“참전대신 자네는 더욱 더 상업에 힘을 써줘야겠네.”

상업을? 그럼 이때까지와 똑같이 행동하라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상업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맡겨도 될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가 위험할 수 있으니 작은 힘이나마 공작님께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내 꿈이 대상인이고 나 스스로 상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나쁘지 않은 무인이란 것도 자각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도 나라가 있기에 가능 한 것이다. 네덜란드가 사라진다면 내 꿈인 대상인도 함께 사라질 터. 지금은 나라의 존속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할 때다.

“허허. 참. 디르크. 그 작고 어리던 아론이 저렇게 컸군.”

“그러게 말입니다. ‘전 무인이 아니라 상인입니다.’라고 말하던 꼬맹이가 어엿한 무인이 다 됐군요. 보어 남작님이 뿌듯하시겠습니다.”

내 말에 방안에 있던 세 남자. 빌럼 공작님, 사부님, 디르크 기사장이 전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잘 웃으시는 일이 없는 사부님까지 웃을 줄이야.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건가?

“정말 기특하군. 좋아. 아주 좋아. 하지만 나라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분명 위험한 시기이기는 해. 아마도 펠리페2세는 입안의 가시 같은 네덜란드를 처리하기 위해 군사를 보낼 거야. 하지만 막아내지 못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네. 우리 네덜란드도 그 동안 놀고만 있지 않았거든. 그리고 프랑크와 신성로마제국에 에스파냐가 네덜란드를 공격해올 경우 에스파냐를 압박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놓은 상태지. 에스파냐는 포르투갈을 상대하던 전력 전부를 네덜란드로 보내지 못할 거야. 많아봐야 반 정도겠지. 그리고 그 정도라면.... 이기지는 못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

그런 건가.

“하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오랜 세월 버티지는 못할 거야. 에스파냐는 바다를 장악했으니 점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 군사력을 증강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거든. 그것을 자네가 해결해줘야 하네.”

그렇구나. 빌럼 공작님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를 보고 계시는 거다. 자신이 있으신 거다. 저 에스파냐를 막아낼 자신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버틸 자신이. 그리고 걱정하고 계신 거다. 모든 것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후의 네덜란드를. 자신이 더 이상 네덜란드를 지킬 힘이 없더라도 자생할 수 있는 네덜란드를 원하시는 거다.

“무력도 강하고 상업에도 밝은 젊은 청년. 그리고 발트해를 개척할 수 있는 유일한 네덜란드인. 그게 너다. 아론. 너밖에 없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어.”

“.........”

“다만 이제부터는 내가 지원해 줄 수 없을 거야. 프랑크와 신성로마제국에 가서 예전에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고 확답을 받아와야 하고 남부 전선을 지켜야 할 테니까. 자네 사부도 나와 함께 해야겠지. 그러니 자네 혼자. 우리의 도움 없이 자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거야.”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쉽게 지나온 길들을 앞으로는 몇 배는 더 어렵고 험난하게 헤쳐 나가야한다는 이야기다.

“자네도 알고 있을 것이고 지금 노력하고 있을 테지만... 발트해. 발트해가 중요하네. 발트해에 진출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어. 그러니 부탁하네.”

“부탁한다.”

“부탁해. 아론.”

빌럼 공작님, 사부님, 디르크 기사장 모두가 나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가슴이 다시 뜨거워졌다.

“반드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28일 월요일. 원래대로라면 후고와 동행하여 비스마르로 출발했어야 할 그날. 나는 여전히 암스테르담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론 보어 렐리 남작 임명식이 열렸으니까.

============================ 작품 후기 ============================

해피 뉴이어.

모든 분께 좋은 일이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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