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149화 (14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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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0년 6월 11일 월요일

오늘 마우리츠와 뤼네부르크로 가는 날이다. 처음 빌럼 공작님의 저택에 찾아갔을 때 미리 마우리츠를 만나서 세세한 일정을 상의한 상태였다. 일정만 짜면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어차피 빌럼가의 공적인 일인지라 그쪽에서 알아서 준비할 것이고 나는 몸만 가면 되지.

“빌럼가의 일을 우리 가문의 일처럼 행하여라. 빌럼 공작님은 우리 가문에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절대 남의 가문의 일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어머니.”

떠나기 전 인사를 드리러 어머니의 방에 찾아갔고 그 이후로 10분가량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분이 아닌데... 이 방에 다른 하인이나 하녀가 있었으면 어머니의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빌럼가에서 우리한테 많은 도움을 주기는 했지. 정확히는 빌럼가가 아니라 빌럼 공작님이지만.

“떠나기 전에 드릴게 있습니다. 여기....”

“음? 이건 귀걸이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어색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선물을 줘 본적이 없고 어머니는 나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서로에게 어색한 상황이다.

“잘 쓰마.”

어머니도 어색한지 대답을 짧게 한다. 이래서 내가 떠나기 직전에 어머니께 드린 거다. 준 다음에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려고 말이다.

어머니가 내가 내민 귀걸이를 받아들었다.

“어?”

어머니가 뭔가에 놀랐다.

“이건...”

“네. 유물입니다.”

정확히는 예전 발트해 북쪽에서 나사우호를 공격해왔던 해적 중 하나가 가지고 있던 유물이다. 그때 명품급 유물 두 개를 얻었는데 그 중 하나에 대한 분석이 얼마 전 끝났다.

아마도 지금쯤 어머니에게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을 것이다. 그 덕에 어머니가 바로 유물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고 말이다.

이 귀걸이 유물의 능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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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8,005 (일명 윈드 커터)

형태 : 귀걸이

출력 : 1만6천k

목적 : 바람의 칼날 생성

특이사항 : 형태만 바람일뿐 위력은 평범한 칼과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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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아이템으로 등록해서 시험도 미리 해봤다. 형태가 고정된 내 팔길이만한 바람의 칼날 4개가 만들어져 내 주변을 떠다녔다. 마음대로 떠다니는 것은 아니고 생각한대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그 방식이 조금 까다로웠다.

애초에 바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라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꽤 많이 움직이는데다가 멈추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연습하면 쓸만할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바람이니 잘 보이지도 않고 특별히 무술을 익힐 필요도 없다. 몸을 단련한다고 강해지는 능력이 아니니 말이다.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능력. 어머니에게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유물이 육체도 단련해야 제 능력을 발휘하는 데 비해 이 유물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활용법이 좀 어렵긴 하지만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간 적응이 되지 않겠나. 가녀린 여성이라고 방심했다가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에 당하는 적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우연히 얻은 것인데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그냥 가지고만 있다가 이번에 분석을 끝내고 어머니에게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필요 없다. 팔아서 상단 자본금으로 써라.”

받아들었던 귀걸이를 다시 내미시는 어머니.

“유물을 팔아봤자 천만에서 2천만 오션 정도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상단에게 그 정도 돈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팔다가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팔리기 전 유물을 강탈하려는 자가 있을 수도 있고 유물을 판 돈을 노리는 자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천만 오션만 추가돼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크게 늘어난다. 그리고 유물은 빌럼가를 통해 팔면 되는 일. 그렇게 팔면 우리가 위험해질 일은 없다. 어쩌면 빌럼가에서 사갈 지도 모르지. 그러면 전쟁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여인이 유물을 갖는 것보다 네덜란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상단은 제법 커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커질 것입니다. 당연히 적이 생길 겁니다. 생기지 않을 수가 없지요. 우리 상단이 커진 만큼 적의 힘도 커질 것이고 그들은 당연히 상단의 핵심인 가문의 사람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여기서 가문의 사람은 저와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저는 걱정없습니다. 저 자체가 초인이고 토마스라는 든든한 초인이 곁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가 걱정됩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지금 유물을 취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지금 당장 나가 최고급 용병을 고용할 것입니다.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용병으로요. 네덜란드에 없다면 주변 국가를 뒤져서라도 구해올 것입니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용병의 장기적인 고용비는 유물의 값어치를 뛰어넘을 것이 분명하겠죠. 하지만 어머니께서 유물을 취하신다면 저는 초인이 아닌 일반 용병을 고용할 것입니다. 그 수는 많겠지만 초인 용병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힐 것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나는 걱정할 것 없다. 괜한 돈 낭비다.”

“어찌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께서 저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듯 제가 어머니를 걱정하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말리셔도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용병을 고용할 생각이니까요.”

“으음.....”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께 드리는 첫 선물입니다.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 알겠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선물..... 고맙구나.”

해냈다. 사실 어머니가 받지 않으시려 할 것은 예상했다.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을 가졌고 그에 대한 준비도 해왔지만 의외로 쉽게 승낙하셨다. 이젠 내 의견을 상당히 존중해주는구나.

“그럼 유물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유물 ‘윈드 커터’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알았다. 잘 쓰마.”

어머니의 대답은 처음 평범한 귀걸이라 생각하고 ‘윈드 커터’를 받았을 때와 같았다. 음. 어색하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그래. 몸 조심하고,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 그리고 나사우 백작님을 잘 보필하고, 광산에 문제 생기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빌럼가의 저택으로 향했다. 일행은 나와 토마스 단 둘이다. 어차피 빌럼가의 공식행사이니 그 쪽에서 많은 인원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도우미로서 몸만 가면 되지.

***

리아는 아론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 후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그녀의 방이었다. 방에 도착한 그녀는 아론에게 받은 유물 ‘윈드 커터’를 꺼내 귀에 걸었다.

주인 인식은 이미 아까 전 ‘윈드 커터’를 받기로 결정했을 때 아론의 앞에서 끝내놓은 상태였다.

귀걸이를 찬 리아는 거울을 보며 여러 각도에서 귀걸이의 모습을 확인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들에게 받은 첫 선물. 리아는 너무나도 기뻤다.

“일어나라.”

리아의 말에 리아의 주변에 바람의 칼날 4개가 생성되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나를 지켜주어야겠구나. 부탁한다.”

리아는 4개의 칼날 중 하나를 간단하게 움직여보았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그렇구나. 너희들은 그렇게 움직이는구나. 자.... 그럼. 춤춰 보아라.”

휘휘휭

리아의 말과 동시에 4개의 칼날이 사방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방안에는 소파도 있고 찬장과 책상, 의자, 책장 등이 있었지만 바람의 칼날들은 그것들을 스치지도 않았다.

“더 빠르게.”

휘휘휘휭!

“더. 더. 더!”

휘휘휘휘휘휘휘휘휘휘휘휘휘휘휭!

바람의 칼날들은 태풍이라도 불 듯 방안을 휘저으며 날아다녔다. 바람의 칼날이 일으킨 바람에 여러 서류가 날아다녔지만 칼날들은 그것들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 완벽한 통제.

바람의 칼날은 리아의 통제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었고 그것들은 리아의 말처럼 정말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

바람이 한순간에 멎었다. 바람의 칼날들은 다시 리아의 주변에 모여들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떠 있었다.

***

“규모가 상당히 큰데?”

“아무래도 3억이라는 거액을 옮기게 됐으니까요.”

그렇겠지. 사실 아무리 3억 오션이라는 큰돈을 옮겨야 한다고 하더라도 나와 토마스, 거기에 사부님까지 있으니 전력이라면 차고도 넘치지만 귀족들은 주변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니까. 전에는 비공식적인 이동이었으니 간단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이번엔 공작님의 명령을 받은 공식행사니까. 어느 정도 규모는 갖춰야 한다.

20명의 빌럼가 정예 보병과 크리스틀을 비롯한 4명의 시녀, 그리고 일행의 모든 잡일을 담당할 8명의 하인까지. 원래 5명이었던 간단한 일행이 37명으로 늘어났다.

뭐. 일행이 늘어나도 난 상관없다. 오히려 난 편하지. 마우리츠나 사부님의 수발을 그들이 알아서 들 테니까. 그 전에는 마우리츠는 크리스틀, 사부님은 토마스가 수발들고 토마스가 어찌어찌 나까지 수발들었다 해도 여관을 잡거나 마차를 구하고, 배를 구하는 등의 일은 내가 해야 했으니까. 이번엔 저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이번에 가지고 가게 될 돈은 3억 오션이다. 내가 2억 6,500만 오션짜리 광산을 사겠다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팔렸을 수도 있고 다른 매물이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넉넉하게 3억 오션을 가져가서 그 안에서 내가 괜찮다 싶은 광산을 매입하라는 것이 빌럼 공작님의 명령이었다.

3억 오션이라. 평생 만져본 적 없는 돈이다. 그런 돈을 이렇게 쉽게 내주다니. 역시 부의 차원이 다르다. 그것도 오랜 기간 전쟁을 하느라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전에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했던 거야.

함부르크까지 타고 갈 배도 빌럼가에서 전세를 냈다고 들었다. 하긴 37명이니까. 거기에 귀족도 백작과 남작 두 명이 포함된 일행이니 전세 낼만하다.

***

1580년 6월 21일 토요일

뤼네부르크에 도착했다. 익숙하다.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예전에 묵었던 여관에 다시 짐을 풀었다. 여관이 그리 크지는 않아 모든 일행이 머무를 수는 없지만 마우리츠와 사부님, 그리고 나는 함께 머물 수 있었다. 이 여관에 머물게 되면서 가장 좋은 일은 고급여관이지만 내가 돈을 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빌럼가에서 냈기에 나는 공짜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에두아르?”

“네. 상단주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에흐몬트 5인방 중 하나인 에두아르 메이어였다.

“그렇군. 네가 이곳 광산의 관리자로 파견 된 거로구나.”

“네. 상단주님의 편지를 받은 하벨 부상단주가 저를 이곳에 파견했습니다. 도착은 며칠 전에 했고 지금은 광산의 전 관리자에게서 광산 관리를 인계 받는 중입니다.”

하벨은 에두아르를 선택했군. 하벨에게 광산관리자를 할 자를 보내라고 이야기는 해뒀었다. 사실 믿을 만한 녀석은 에흐몬트 출신 녀석들밖에 없으니 하벨 밑에 있는 4명 중 하나가 올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 잘 되고 있어?”

“전임 관리자를 해고하지 않고 부관리자로 계속 고용하기로 약속한 덕분에 별 잡음 없이 부드럽게 인계받고 있습니다.”

“제국어는? 에두아르가 제국어를 할 줄 알던가?”

“아직 잘.... 뤼베크에서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통역을 구해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뭘 죄송해. 당연한 거지. 네가 제국어를 할 줄 알아도 통역은 구해야해. 네가 제국 사람처럼 제국어를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계약은 아주 조금만 틀려도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거든. 그러니 나중에 제법 제국어를 익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통역은 구하도록.”

“네. 상단주님.”

“그렇다고 제국어 공부를 멈추지 말고. 최소한 통역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아볼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네. 상단주님.”

그나저나 잘 됐다. 이번에도 내가 모든 잡다한 일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부려먹을 녀석이 있구나. 에두아르가 굉장히 반갑다.

“그런데 이곳엔 상단주께서 어쩐 일로....”

에두아르는 빌럼가의 일을 모르니까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 흠... 자신이 관리해야할 광산이 두 개로 늘어난 것을 알게 되면 일이 늘어났다고 싫어할까? 아니면 자신의 권력이 더 커졌다고 좋아할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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