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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그래. 마우리츠에게 들었는데 소금광산을 하나 샀다고?”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절인 청어의 생산력 증대에는 소금 보급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우리도 하나 살까. 디르크?”
동네 식품점에서 치즈 하나 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빌럼.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마침 아론이 얼마 전 소금광산을 샀으니 괜찮은 매물을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오. 그렇지. 괜찮은 매물이 있던가.”
“시세에 맞는 매물이 하나 있기는 하나. 가격이....”
르스 광산이 생각났다. 연 2,130톤의 생산량에 적정가보다 500만 오션만 비싼 2억 6,500만 오션이라는 가격. 보통 처음 가격에서 어느 정도 깎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적정가도 너무 비싸다는 거지.
“얼만데 그러나. 망설이는 것으로 보아 꽤 비싼 모양이군.”
“연 2,130톤 생산량에 2억 6,500만 오션이었습니다.”
“2억6,500이라...”
“꽤 비싸긴 하군요.”
디르크가 ‘꽤 비싸다.’라고 한다. ‘꽤’가 아닐 텐데요. ‘엄청’ 비싼 거지 이 아저씨야.
“흠. 요즘 소금값이 꽤 비싸지고 있다지?”
“그럴 겁니다. 워낙에 많은 청어를 잡아들이고 있으니까요.”
“보어&렐리는 아론이 열심히 소금을 실어 나르고 있으니까 소금이 부족하지 않겠지만 다른 상단은 힘들 거야. 이 기회에 내가 어느 정도 소금을 공급해줘야겠어. 아론. 자네 다음 달까지는 이곳에 있을 테지?”
“그럴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 다녀올 만한 시간적 여유는 되지 않을 듯해서...”
“잘 됐어. 아론의 소금광산도 마우리츠 이름으로 샀다고 하니 다른 광산도 그렇게 하지. 그 르스 광산 구입해야겠어. 나사우를 마우리츠에게 줘서 난 제국 귀족은 아니게 됐거든.”
.... 그렇게 ‘야. 나가서 빵 하나만 사먹자.’라고 말하는 거처럼 광산 사시면 안 됩니다. 2억 6,500만 오션짜리 광산을 사는 일을 고민한번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결정해버리다니. 역시 아직은 규모가 다르다. 네덜란드 최고 부자답다. 용병 고용비로 많은 재산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엄청나구나.
“운송은.... 자네에게 맡기지. 해주겠나? 어차피 자네 광산에서 이쪽으로 들여오는 루트가 있을 것 아닌가.”
오. 군수산업인가. 전에 빌럼가의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빌럼가는 뭘 해도 이익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빌럼 공작님의 머릿속에는 네덜란드의 안정과 발전만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 자신의 일을 해주는 상인들이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큰 상단이 되면 결국 네덜란드의 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빌럼가의 일을 하는 상인들을 보며 많이 부러웠는데 말이야. 드디어 나도 그런 상인 중 하나가 되는 건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힘들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제 광산의 운송도 저희 상단이 아닌 제국 상단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제국 땅인지라 저희 상단이 활동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어서... 그리고 그곳 소금 광산 조합에서 면허를 받은 운송 상단을 이용해야 하고 한 상단 당 연간 거래 제한이 있어서...”
“그런가? 복잡하군.”
“그래서 저희도 일단은 현지 상단을 이용해 함부르크나 브레멘으로 운송할 생각입니다. 그곳가지만 옮기면 배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거 좋군.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겠어. 흠.. 그럼 광산 관리인도 필요할 텐데. 관리인은 어떻게 하지? 제국인을 믿을 수는 없으니 우리 네덜란드의 사람을 보내야 할 것 아닌가. 디르크. 추천할 만한 사람 있나?”
이야.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가. 2억 6,500만 오션짜리 광산의 관리인이 ‘야. 누구 보낼 사람 있냐.’라고 옆 사람한테 물어서 결정되는 건가. 연 채굴량이 무려 2,130톤이다. 지금 소금 가격 오르는 걸 보면 적어도 연 6,000만 오션, 몇 년 뒤에는 7~8,000만 오션의 규모가 될 소금 광산이다.
당연히 떨어질 떡고물이 엄청날 거다. 디르크가 말할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한순간에 엄청난 돈방석에 앉게 되겠구나. 어떤 이름이 나올까.
“다른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기 아론의 광산도 있으니 그냥 그 광산 관리하는 김에 공작님 광산도 관리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듣기론 아론이 구입한 광산도 마우리츠 공자님과 공동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새로 구입할 광산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을 하며 내게 살짝 신호를 주는 디르크. 고맙습니다. 아저.. 아니 기사단장님. 역시 기사단장님이십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품위가 넘치는군요.
“그거 좋군. 해줄 수 있겠나. 아론.”
“빌럼 공작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습니다.”
바이세 광산과 같은 방식이라면 9:1이다. 이번엔 빌럼 공작님의 자본으로 살 것이니 내가 1이겠지. 이건 마우리츠의 1과는 다르다. 마우리츠의 1은 순수한 이익 1이다. 하지만 내 1은 그 돈으로 광산 관리를 해야 하는 1이다. 인부 급여와 여러 관리비에 써야 하니 어쩌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아니. 분명 손해 볼 거다. 광산 관리비가 적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고 손해만 볼지라도 내가 맡아야 한다. 무려 연 2,130톤의 소금이다. 그 소금의 관리를 한다는 것은 유통권도 내 손에 쥔다는 뜻. 유통과정에서 광산 관리로 인해 손해를 메우고도 남는 이익을 볼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앞으로 국가의 기간산업이 될 절인 청어 산업. 그 핵심인 소금의 유통권을 손에 쥔다는 것은 상인 사이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내가 소유한 광산에서 생산할 소금에 곧 빌럼 공작님의 것이 될 광산에서 생산할 소금까지 약 연 4,300톤가량의 소금 유통권.... 무조건 맡아야 한다.
“그래. 그럼 부탁하지. 흠... 지분은 어떻게 해야 하지?”
“마우리츠 공자님과의 계약이 9:1이니 그것과 같이...”
“아니. 그럴 수는 없지. 그건 정말 이름만 빌려준 것이고 이것은 자네가 운영도 맡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9:1이면 관리 비용에도 못 미치는 금액일 텐데.”
“괜찮습니다. 관리비에서 약간의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유통비에서 얼마든지 메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금 유통권을 손에 쥐게 될 테니 제 위상도 높아질 것입니다.”
빌럼 공작님과의 관계는 오래 지속해야 한다. 그러니 괜히 거짓말을 할 필요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허허. 이 사람. 솔직해서 좋아. 하지만 그것은 자네가 운영을 맡았을 때 당연히 가져야 할 이익이고 나와의 관계에서는 손해만 보는 것 아닌가. 내가 아론 자네에게 그럴 수 있나. 흠... 그래. 6:4. 6:4로 하지. 괜찮지 않나. 디르크?”
“나쁘지 않군요.”
“아니. 그것은 너무 많습니다. 8:2로 하시죠. 그것만 해도 관리비 외에도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허참... 상인이란 사람이 그래서야 쓰나. 어떻게든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해야지 주는 것도 싫다고 하다니. 그래선 큰 상인이 될 수 없어. 미래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상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 그러면 안 되네. 상대가 귀족이라고 해도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이득을 얻어내야지. 6:4로 하세. 대신 유통에서 이득을 조금만 취하게. 결국 네덜란드 상인들이 사게 될 것인데 같은 동포 아닌가.”
결국 네덜란드인가. 빌럼 공작님의 네덜란드를 위하는 마음은 따를 수가 없다. 자기 이익을 나에게 나눠주면서 다른 상인들을 도와주라고 하다니.
에이. 이렇게 되면 소금을 가지고 다른 상인들을 압박하거나 할 수가 없네. 저런 영웅이 주는 소금 유통권인데 그걸 가지고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공작 각하의 뜻. 받들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아. 광산 구입도 도와주면 좋겠어. 마우리츠는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경험이 없으니 말이야. 뤼네부르크라면 금방 갔다 오지 않겠나.”
“받들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정과 자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마우리츠와 하게. 나는 최근 갑자기 바빠져서 시간이 없어.”
빌럼 공작님이 방 한 면에 서 있는 괘종시계를 봐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벌써 이렇게 시간이. 미안하지만 앞으로 10분 후면 다른 약속이 잡혀 있군.”
“아.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 약속까지 휴식을 가지십시오.”
에이. 조선공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천만 오션을 선물로 준 값은 충분히 했다. 아니,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조선공은 내가 따로 구해야겠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오랜만에 아론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 내 궁금한 것이 많아. 10분 동안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보세.”
“저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니... 정성을 다해 답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자네 계획을 듣고 싶어. 마우리츠에게 간단하게 듣기는 했네. 뤼베크에서 청어를 팔면서 제국 상인들에게 동맹을 제안했다고?”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계획인 듯싶어. 제약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결국 동맹이란 이름하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제약이 되거든. 뭔가 일을 하기 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 동맹이란 이름이니까. 그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생각인가.”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한자동맹의 상인들을 최대한 많이 이 동맹에 이름을 올리게 해주고 창고를 제공해주어 그들의 주 취급 상품 등을 알아낸 다음 나중에 발트해에 진출할 네덜란드 상인들과 연결해줄 것임을.
“오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어. 정말 좋은 생각이야. 처음 진출할 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작은 일에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 그럴 때 자네 같은 도우미가 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아주 좋은 생각이야.”
“역시 아론은 보어경의 제자답습니다. 보어경처럼 공작님의 심중을 헤아리고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군요.”
사부님도 뭔가 하셨나.
“흠... 내가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고.... 그래. 내 이름을 팔게.”
이름을 팔아? 무슨 이야기지.
“그 동맹이란 것에 나도 속해 있다고 하게.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작이란 작위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
어느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도움이다. 하지만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지.
“어찌 천한 상단 일에.... 공작님의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인인 자네가 나라를 위해 이익을 버리고 귀찮고 힘든 일을 감수하는데 내 하찮은 명성쯤이야. 얼마든지 더럽혀져도 되네. 내 이름의 사용을 허락.... 아니. 꼭 사용하게. 명령이야.”
“감사합니다. 공작님의 이름에 절대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아. 누가 되도 돼.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이용해.”
그럼. 마음껏....
“그것 외에 따로 하는 일은 없는가? 자네가 하는 일은 하나하나가 날 놀라게 하는군. 더 듣고 싶어.”
저 말을 기다렸다.
“최근 네덜란드에 선박이 부족한 것 같아 조선소를 하나 만들어볼까 합니다.”
“오. 좋은 생각이야. 역시 아론은 나와 통하는 것이 있어. 그렇지 않은가. 디르크.”
“그렇군요.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그렇고 선박 부족 현상 해결을 위해 조선소를 만드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비슷하군요.”
“허허. 내 젊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 뭔가 이상한데. 말에서 풍기는 미묘한 것이 내 신경을 건드린다. 비슷하다니. 통한다니. 설마....
“나도 자네처럼 조선소를 만들 생각이네.”
윽. 역시인가.
“아. 그러시군요. 그럼 저는 조선소는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왜 그런가?”
“제가 어찌 공작 각하와 경쟁을...”
“아니. 그게 왜 경쟁인가. 나라에 선박이 부족해 조선소를 만들어 선박을 공급해주겠다는 것인데 나 때문에 조선소를 하지 않겠다니. 그러지 말게. 꼭 만들어. 내 누누이 말했듯 앞으론 바다가 우리 네덜란드를 먹여 살릴 것이야. 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러니 나 때문에 그만두지 말게.”
아냐. 그게 아닙니다. 내가 말한 ‘경쟁’은 공작님이 말한 경쟁이랑 달라요. 공작님은 또 이득 생각안하고 막 싸게 파실 거 아닙니까. 그런 조선소와 제가 어떻게 경쟁합니까. 저도 그냥 공작님이 만들 조선소 이용할래요.
“표정을 보니 결국 포기할 모양인데. 그러지 말게. 내가 공작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거나 할 필요 없어.”
아니라니까요.
“쯧. 안되겠군. 만들게. 꼭 만들어. 명령이야.”
“....... 알겠...습니다.”
크흑.
“그나저나 자네는 이미 전부 준비했겠지만 그 조선공이란 기술자들을 구하는 것이 어렵더군. 암스테르담을 싹 뒤졌는데도 내가 원하는 수를 못 맞췄어.”
으윽. 이미 조선공을 전부 쓸어가셨습니까.
“그래서 외국에서 조선공을 구해오라고 사람을 보냈네. 급여는 좀 비싸더군. 하지만 우리 네덜란드 사람이 기술을 배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 기술을 배우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니야.”
크어억. 외국 기술자까지 고액으로 스카웃 하셨습니까!
“시간입니다. 공작님.”
“아. 벌써 10분이 지난건가. 유쾌한 대화였네. 아론.”
안 유쾌합니다!
“그럼 광산일은 부탁하네. 마우리츠와 잘 상의해서 처리해주게.”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공작의 집무실에서 쫓겨났다. 시간이 되어 내 발로 나온 것이지만 쫓겨난 기분이다.
으어.... 조선공 구하는 길이 더욱 요원해지는구나. 힘없는 발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
1580년 6월 9일 토요일
“조선공을 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조선공을 구하기 위해 이틀 동안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을 때. 뜻밖의 사람이 뜻밖의 말을 했다.
“진즉에 절 찾아오셨어야죠. 바다하면 저 아닙니까! 바다에 관련된 일 중 제가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 야코뷔스 네가?”
평생 배를 탔으면서 조타의 조자도 모르고 항해도도 볼 줄도 모르는 네가?
“물론입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으하하하하하하!”
..... 불안하다.
============================ 작품 후기 ============================
결국 7위로 끝나는군요.
감사합니다. 7위라니.
투베에도 못 들어가는 제 소설이 7위라니.
정말 감사합니다.
ps. 어제 하루종일 과식을 해서 글을 못썼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배가 부르면 글을 못쓰겠더군요.
글을 쓰면 쓸수록 쓸데없는 습관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