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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80년 5월 14일 수요일
“정말 죄송합니다. 백작님. 하지만 1년에 2천 톤의 소금은 불가합니다. 그 정도면 웬만한 대규모 광산 하나의 생산량과 맞먹는 양인데...”
“그럼 얼마나 가능하지?”
“길드에서 정한 규칙에 의하면 하나의 소금 운송인이 1년에 거래할 수 있는 양은 300톤 이하로 정해져 있습니다.”
“흠... 그래서 백작인 나에게도 1년에 300톤밖에 제공할 수 없다?”
“정말 죄송합니다. 백작님. 하지만 이 규칙은 국가에서 제공한 길드의 권한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법과 같은 강제력을 가집니다.”
마우리츠에 의해 불려온 소금광산의 주인이 쩔쩔 매면서도 마우리츠의 질문에 또박또박 잘 대답한다. 제법 강단이 있구나. 마우리츠가 백작이라는 작위를 내세워 강짜를 부렸는데도 굽히지 않다니.
마우리츠가 ‘얘가 이렇다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소금 운송인 당 300톤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각자 다른 운송인만 확보하면 천 톤 이상도 구입할 수 있지 않겠소?”
“그건 힘드오. 소금 운송인에 대한 심사를 길드에서 직접 하는데 그들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라오. 쉽게 속아 넘어갈 자들이 아니지. 그리고 소금 운송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인으로서 5년 이상 활동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 않겠소.”
“음... 그 상인으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어떻게 조사하는 것이오. 혹시 추천이나 기본 상인들에 의한 검증이라면...”
“세금 내역으로 확인하오. 소금 운송인이 되려는 자가 자신이 활동했던 지역을 신고하면 길드에서 사람을 보내 세금 내역을 확인하오. 상인이라면 당연히 세금을 납부한 기록이 있을 테니까.”
세금 내역까지 볼 수 있다니. 소금 길드 놈들 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많은 이익이 나는 사업이니까. 길드는 돈을 많이 버는 분야의 길드일수록 세력이 강하다. 돈을 많이 버니 세금을 많이 내게 되고 세금을 많이 내니 윗선에서 좋아하게 된다. 윗선에서 좋아하게 되면 많은 혜택을 주고 말이야.
어떻게든 5년 이상 상행위를 한 상인을 구해서 데려올 수도 있겠지만 길드에서 소금 운송인을 뽑을 때 5년 경력의 상행위 경력이 있다고 모두 뽑는 것도 아닐 것이고 뽑힌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말을 들을지.... 나와 딱히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금운송인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가는 배신당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아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배신할 거다. 상인이란 그런 놈들이니까. 신뢰관계가 없는 사이라면 더 큰 이익을 위해 배신하는 것쯤이야.
아쉽네. 마우리츠 덕분에 쉽게 가나 했는데 그런 제한이 있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마우리츠와 노이너 상단까지 동원한다해도 600톤밖에 안 될 텐데... 그 정도면 따로 운송로를 유지하는 게 더 돈이 들겠어. 제대로 관리하기도 귀찮고 말이야. 규모라도 크면 힘내서 관리하겠는데 규모가 작으니....
날 보고 있는 마우리츠에게 작게 고개를 저어주었다. 포기다. 그냥 뤼베크에서 구입하는 수밖에 없겠어.
“알겠다. 별 수 없구나. 갑작스런 부름에도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고마웠다.”
“아닙니다. 이렇게 백작님을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은 무슨. 짜증났겠지. 소금광산주 중에서 가장 신분이 낮기에 만만해서 불러온 자니까. 기사도 아니고 평민인데 감히 백작의 부름을 어떻게 거절하겠어? 저자 외의 다른 광산주들은 적어도 기사 하나 정도는 달고 있어서 부르기가 좀 그렇다. 어떤 광산주는 백작위를 가지고 있는 자도 있었다.
“아. 혹시 꼭 대량의 소금을 확보하고 싶으시다면..... 자금만 충분하면 소금광산을 사시는 것이 좋습니다. 길드에서도 소금운송인을 통하지 않고 광산주 본인이 직접 처리하는 것은 제한을 걸지 않으니까요.”
“아. 그런가?”
마우리츠가 다시 살짝 나를 본다. ‘이건 어떠냐.’라고 묻는 것이다.
‘광산을 소유한다.’라.... 사실 소금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하는 방법은 소금광산을 소유하는 것이다. 소매보다 도매가 싸지만 생산가는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니까. 문제는 광산의 가격이다.
“지금 매물로 나온 소금광산이 있소?”
“있소이다. 있으니 백작님께 물어봤지. 내가 아는 바로는 현재 뤼네부르크에는 3곳의 광산이 매물로 나와 있소.”
3곳이라. 적당하다. 매물이 적으면 비교해가면서 살수가 없으니까. 3곳이라면 적당히 비교해보고 조건이 좋은 곳을 고를 수 있다.
“혹시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소?”
“가격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1억 오션에서 2억 오션 정도 할 것이오.”
억단위를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1억에서 2억이라.... 지금 소금 가격으로 따지면 4,000톤에서 8,000톤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지금 내가 대략 한 달에 150톤 정도를 뤼베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운송하고 있으니 2년 반에서 5년 정도 사용하게 될 금액이군.
아니 사실 미래에 얼마나 사용하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지. 지금 내가 그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암스테르담의 상단 본부와 뤼베크의 상관의 운용과 지방함대의 운용, 청어를 구입하는 데 사용할 금액을 제외하고 여유가 되는 현금은 5,000만 오션이다. 이 금액은 저 광산주가 말한 광산 중 가장 싼 곳도 구입하지 못할 돈. 하지만 현재 루이웨 상관에 위탁판매로 맡겨놓은 모피가 꽤 남아있는데 여기서 적어도 1억 오션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1억 5,000만 오션의 여유자금이 있는 것. 한동안 목돈 쓸 일이 없을 테니 사용해도 되는 돈이지만...... 과연 예정에도 없던 소금광산 매입에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사지 않기로 결정하자니 앞으로 소금의 가격이 높아질 것이 뻔할 뻔자인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상인들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 상인인 나는 안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청어 어획량. 그 청어들을 절이기 위해 소금이 필요해질 것이고 소금을 구할 곳이 한정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특성상 소금 가격은 청어 어획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빠르게 비싸질 수밖에 없지.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더 싸고 안정적으로 소금을 구할 방법이 나타났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바로 안한다고 할 수는 없지.
꽤 고민되는 문제다.
“혹시 소금광산의 소유자가 외국인이어도....”
“안되오. 광산의 소유자는 반드시 제국인이어야 하오.”
내가 소유주가 될 수도 없단다. 그렇다면 마우리츠나 노이너 상단을 끼고 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소금광산을 소유해야 할까?
으음... 고민된다. 지금 당장 그렇다 아니다를 결정하기가 힘들어.
“소금광산 매입에 대한 것은 백작님께서 숙고하신 후에 결정을 내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면 저 광산주도 내가 소금을 필요로 하고 마우리츠는 중개인 일뿐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도 마우리츠가 소금을 사려고 한다는 겉모습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 겉모습이 있기에 소금을 구매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었고 저자도 소금광산을 매입하라는 제안도 할 수 있었던 거니까.
“흠. 그래. 그것이 좋겠구나. 오늘은 고마웠다. 광산의 매입은 충분히 생각해본 후에 다시 연락해주겠다.”
“네. 그렇게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백작님.”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우선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광산을 매입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마우리츠의 의견이다.
“어떻게 할 거야?”
“우선 광산을 매입할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만약 광산을 매입할 경우 공자님의 이름으로 매입해야합니다. 그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응. 당연하지. 내 이름이야. 얼마든지 빌려줄게.”
“그럼. 만약 광산을 구입하게 될 경우 광산 구입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 광산의 지분은 8:2로.....”
“에이. 지분 안 줘도 돼. 돈도 전부 아론경이 낼 건데 내가 왜 지분을 가져.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 없어.”
우리사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기는 하다. 하지만 마우리츠에게 지분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 무조건 줘야 한다. 내가 지분을 주지 않더라도 마우리츠라면 괜찮을 거다. 특별히 권력이나 금력에 신경 쓰는 것을 본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주변사람들이 문제다. 만약 빌럼가에서 이 문제를 문제삼기라도 하면?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빌럼가를 능멸한 자가 될 것이다. 공자와의 친분을 이용했다며 말이다.
“제 성의입니다. 저를 좋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꼭 받아주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 공자님의 도움을 받고 이름까지 빌리는데 염치없이 광산에 대한 권리까지 전부 가져가겠습니까.”
“괜찮은데? 정말 괜찮아. 안 줘도 돼.”
“꼭... 꼭 받아주십시오.”
“음... 아론경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알았어. 대신 2는 너무 많고 1로 하자.”
“그것은...”
“그렇게 해. 아론경. 아니면 없는 일로 하고.”
“....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서 광산 매입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응. 천천히 생각해. 아론경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내 입장은 고려하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8:2에서 2정도를 마우리츠에게 떼어준다고 해도 도매가로 소금을 구입한다고 생각하면 되니 충분히 감수 할 수 있는 거였는데 1로 해준다니 나로선 고마울 뿐이다. 이제 가서 토마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논의를 좀 해봐야겠어.
토마스는 상인으로서 경험이 나보다 많으니까. 아주 좋은 의논 상대다.
***
1580년 5월 16일 금요일
“준비는 마치셨습니까.”
숙소로 찾아온 광산주가 마우리츠에게 물었다.
하루 동안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광산을 보고 결정하자였다. 광산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매입을 하는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가는 것으로. 그래도 광산도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생각도 있었던 것보다는 많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광산주에게는 마우리츠가 매입 결정하기 전에 소금광산을 먼저 봐야겠다고 이야기했고 광산주는 자신이 직접 광산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광산 매매 중개인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겠지.
워낙 덩치가 큰 거래다보니 중개 수수료의 덩치도 클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귀찮은 일에 발 벗고 나서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던 마우리츠가 숙소 밖으로 나섰다.
“그럼. 안내를 부탁하겠네.”
“네. 우선 바이세 광산부터 들리겠습니다.”
***
“바이세 광산은 연 생산량 1,300톤으로 뤼네부르크의 모든 소금광산이 그렇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장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이세 광산에 붙여진 바이세라는 이름은 예전 이 광산을 소유했던........”
광산에 도달하자 우리를 안내했던 자가 바이세 광산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 사람 뤼네부르크 광산 안내인을 해도 되겠는데? 엄청 자세히 안다. 이 사람도 소금광산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주인인데 자기 광산도 아닌 곳에 대해 엄청 자세히 알고 있다. 우리한테 광산을 팔려고 열심히 공부한 건가. 아니면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서 다른 광산에 대해 알아보는 성격인건가.
“원래라면 적어도 1억 5천만 오션은 받아야 하고 최근 소금가격이 올라 가치가 몇 천만 오션은 더 오른 곳이지만 이곳 주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한 모양이더군요. 귀족에게 배상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던가? 그래서 급하게 1억 2천만 오션에 내놨습니다. 저에게 여윳돈만 있었어도 진즉에 사들였을 곳입니다. 주인이 사정이 급해 보이니 제가 잘 말해서 500만 오션정도는 더 깎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 가도 이렇게 싸게 나온 광산은 없을 겁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알려지기만 하면...... 지금 사지 않으면 후회하실 겁니다.”
광산의 위치도 시내에서 멀지 않고... 저자의 설명만 들으면 지금 당장 사야할 것 같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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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네부르크 바이세 소금광산(등외)
-뤼네부르크 지방에 위치한 소금광산. 1,200년도에 발견되어 400년간 많은 소금을 채굴한 곳이지만 최근 광산 곳곳에서 소금대신 평범한 벽이 보이기 시작. 광부사이에서 곧 소금이 바닥 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연 채굴량 : 1,250톤
예상 매장량 : 2,800톤
현 위치 적정 구입 가격 : 4,000만 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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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놈이 사기치고 있거나 지도 모르면서 대충 막 말하는 것이다. 팔기만 하면 수수료는 받아 갈 테니까. 넘버127의 정보가 잘못된 것은 본적이 없다. 분명 매장량이 거의 바닥에 치달은 광산이다.
그러니 주인이라는 작자가 소금값이 오르고 있는 이 시기에 가격까지 깎아서 팔려고 하는 것이겠지.
상재로 광산의 정보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쉽게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 볼 수 있구나.
마우리츠가 나를 본다. 다가가 귓속말로 작게 ‘우선 모든 광산을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우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광산도 살펴보고 결정해야겠어.”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인데....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광산으로 가시죠.”
그는 우리를 다른 광산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페테 광산입니다. 이곳은.....”
“이곳은 르스 광산입니다. 이곳은.....”
매물로 나와 있다는 세 곳의 광산을 전부 돌아봤다. 광산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페테 광산은 생산량과 매장량 둘 다 괜찮았지만 원래의 가격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부풀려져 있었고, 르스 광산은 생산량과 매장량 모두 최고였고 가격도 적정가에 가까웠지만 그 적정가가 2억 오션이 넘었다. 가용 현금을 가뿐히 뛰어넘기에 살 수 없는 곳이다.
별수 없군. 2곳을 사면 크게 손해를 보는 곳이고 적정가격인 곳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다. 결국 소금광산을 사는 것은 포기해야겠어.
광산 매입을 포기하고 마우리츠에게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미션이 주어집니다.
미션? 갑자기 여기서 미션? 그리고 내 시야 한쪽에 나타나는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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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소금광산의 주인이 되다.’
-뤼네부르크의 소금광산 한 개 소유.
보상-무재, 문재, 상재 포인트 각각 1,000
조건-소금광산 소유는 사용자의 지분이 70%가 넘을 때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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