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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빌어먹을.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닌데.”
“해전에서 대포는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나도 토마스처럼 해전에서 대포는 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대포로 선체에 제대로 피해를 주려면 50m 정도까지는 접근해야하는데 그러면 차라리 배를 밀착해서 갑판전을 걸면 된다고 생각했기 되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포만 쏘려고 해도 50m 정도라면 상대가 갑판전을 걸겠다고 작정했을 때 피하지 못할 거리니까.
그리고 실제로 이제까지 경험했던 해전이 전부 그랬다.
거기에 갑판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대로 피해를 줘봤자 선체에 구멍 몇 개 내는 것이 다일뿐인데 이것이 전투 승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육지전투에서는 성을 무너뜨려야 하니 대포가 쓸모가 있겠지만 해상전투에서는 대포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전투에 있어서 보조적인 위치? 상대를 약간 짜증나게 할 정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콰광. 콰광. 쾅. 쾅.
난 두 척의 코그선이 합류하고 본격적으로 갑판전을 걸어올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모습을 보인 것이고 말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나에게 덤비라고 말이다. 그런데 해적들은 갑판전을 걸어올 생각이 없이 세척이 사방을 포위하더니 대포질만 해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짜증나!”
한 척이 쏴댈 때는 여유 있었는데 세 척이 사방에서 쏴대니 정신이 없다. 아무리 워리어를 컴뱃아머 형태로 입고 있는 나라고 해도 포탄에 맞으면 큰 충격을 받을 거다. 워리어는 멀쩡하겠지만 속에 있는 내가 충격을 입겠지. 워리어의 예전주인인 요앵이 사부님에게 맞아 죽은 것처럼 말이다.
한 쪽에서만 날아오면 내 눈에 보이니 충분히 피할 수 있지만 사방에서 쏴대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방을 살펴야 한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이 아니니 쉬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어디서 포탄이 날아오지는 않나 신경을 써야하고, 포탄에 선실이며 돛이며 부서지고 찢어지고 여러 비품들이 박살이 나고.... 아아아아아악!
빌어먹을 대포! 독수리의 시야를 통해 보려고 해도 이미 연기가 한 가득이라 하늘에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빌어먹을 연기 같으니.
우리 쪽 대포는 이미 무용지물이다. 대포 좀 쏘려고 하는 순간 적의 포탄이 대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니 감히 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대포 몇 대는 망가졌을 거다.
콰광. 퍼펑. 펑.
아악 짜증나! 짜증만 유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짜증만 나는 정도였지만 선원들 중에는 대포에 다친 자도 있는 듯 했다. 특히 대포 쏘겠다고 선창에 내려가 있던 애 중에는 죽은애가 있을지도....
대포... 얕볼만한 것이 절대 아니다. 이 전투가 끝나는 대로 상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포문이 많이 달린 군선도 알아봐야겠어. 아니.... 나포하자. 저것들 전부 나포해서 나사우 호 호위함으로 쓰자.
지금 와서 나사우 호에 포문을 뚫을 수도 없다. 괜히 그랬다가는 균형이 무너져서 수십 년 전 방향을 틀다가 기울어져서 침몰한 메리로즈 함처럼 되어 버릴 거다.
어? 갑자기 포성이 멈췄다.
“대포는 그만 쏘려는 모양이군요.”
“그만 쏴야지. 포탄도 돈인데.”
계속 미친 듯이 쏴대다가는 우리 배를 털어도 적자가 날거다. 돌로 만든 구시대의 탄도 아니고 청동으로 만든 탄인데. 당연히 비싸다. 그걸 이렇게 수십 분 동안 주구장창 쏴대다니. 부자 해적이구나.
나사우 호는 거의 멈춰 있었다. 배가 멈췄으면 올라타서 갑판전 벌일 생각을 해야지 대포를 그렇게 쏘아대다니. 해적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놈들이다. 해적이라면 최대한 상품이 상하지 않게 약탈해야 하거늘.
코그 2척과 소형카락 전부 나사우 호에 배를 붙인다. 나사우 호가 워낙 크다보니 세 척의 배가 전부 나사우 호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렇게 되면 세 곳에서 적이 올라오겠는데. 나사우 호가 워낙 높으니 선체와 선체사이를 뛰어넘는 짓은 하지 못한다. 갈고리를 걸고 마치 등반을 하듯 올라와야 한다.
동시에 갈고리 수십 개가 알아와 배 난간에 걸쳐졌다.
“가자. 갈고리를 끊다가 해적이 올라오는 게 보이면 해적 먼저 노려.”
“네. 알겠습니다. 그르르.”
갈고리를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토마스라면 한번에 하나 정도는 끊어낼 수 있지만 사방에 수십, 수백 개의 갈고리가 동시에 걸린 상황이다. 그걸 두 명이 아무리 빨라도 전부 끊어낼 수는 없지. 그러니 갈고리를 끊다가 해적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녀석들을 노려야 한다.
토마스와 갈라져 우측으로 달려갔다. 토마스는 왼쪽이다. 선수와 선미 쪽은 중앙 갑판보다 상당히 높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쪽에 걸린 갈고리는 거의 없다. 그러니 그쪽으로 올라오는 것은 버리기로 했다.
‘전투형태2.’
-전투형태 2번 퀴버 워리어. 개방합니다.
기이이이잉.
토마스의 손톱처럼 날카로운 무기가 없는 내가 갈고리를 잘라내려면 퀴버를 사용해야 한다. 손날로 갈고리의 밧줄을 쳐낸다. 진동이 더해져 갈고리의 밧줄을 간단하게 잘라냈다. 나는 빠르게 이동하며 갈고리 부분은 놔두고 밧줄만 끊으며 돌아다녔다.
팅. 티티팅.
해적들이 쏜 화살과 볼트가 날아와 컴뱃아머 형태의 워리어에 부딪혀 떨어진다. 활은 워리어에서 충격을 전부 흡수하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는데 석궁은 제법 아프다. 누가 내 맨몸을 주먹으로 때리는 느낌정도. 석궁은 근거리에서 맞으면 보통 컴뱃아머라면 뚫어버릴 정도로 강하니까.
하지만 워리어는 절대 뚫지 못하지.
탕! 탕! 탕! 탕!
터터터텅!
어? 뭐지. 석궁보다는 약하지만 더 빠르고 작은 것들이 와서 워리어에 부딪혔다가 튕겨나갔다.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긴 막대기를 내 쪽으로 들이밀고 있는 녀석들이 보인다. 저게 방금 큰소리를 낸 무기인건가. 들은 적 있다. 핸드캐논. 대포를 손으로 들고 쏠 수 있도록 만든 거라고 하던데..... 별 위력은 없구나.
쓸모없어 보인다. 석궁보다 위력도 약하고 좀 빠르게 날아온다는 것이 짜증나기는 하지만 차라리 석궁이 더 위협적이겠어. 이 정도 위력이면 토마스도 괜찮을 거다. 토마스의 가죽은 석궁으로 쏘아내는 볼트도 10m 안쪽에서 쏴야 조금 박혀들까 말까 할 정도로 질기니까. 무시하고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끊어내는데 다시 집중했다.
미처 잘라내지 못한 갈고리를 통해 거의 다 올라온 놈도 보이는 구나. 안면에 주먹을 먹여주었다. 퀴버가 활성화 된 상태다보니 얼굴이 갈리다시피 부서져서는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몇 놈 떨어뜨려 주었다. 이곳만이라면 해적들이 영원히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적은 내가 있는 곳을 통해서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우아아아아악!
누군가가 기합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온다. 해적 놈이다. 신경을 쓰지 못한 선수루 쪽을 통해 올라온 거다. 그놈이 내게 휘두르는 무기를 주먹으로 부수며 그대로 가슴에 박아 넣었다. 해적은 가슴이 깊숙하게 함몰되며 즉사했다.
선수루 쪽을 보니 이미 올라온 해적 놈들 몇 명이 보인다. 선미루 쪽도 제법 있다. 일단은 내려올 때까지 놔두자. 괜히 죽이겠다고 올라갔다가는 내가 막고 있는 쪽을 통해 훨씬 많은 해적 놈들이 올라올 거다.
크악. 카아악. 아아아악!
계속해서 갈고리를 자르고 다가오는 녀석들을 공격하고 하다 보니 벌써 수십은 죽이고 떨어뜨린 것 같다. 하지만 나사우 호에는 떨어뜨린 만큼이 더 올라와 있었다. 이제 그 녀석들이 나와 선원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제는 갈고리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나는 나사우 호에 올라온 해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저놈이 그 발트해의 작은 악마라고 하는 놈인가. 네덜란드 최강 중 하나의 제자라는?”
“그런 듯하군요. 나사우 호의 선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장? 무인이 아니었나?”
“실제로 배는 다른 자가 움직이고 있겠죠.”
“하긴.”
피에르 자신도 그런 경우다. 원래 프랑크의 기사였던 피에르가 배를 모는 지식이 있을 리 만무. 프랑크에서 사고를 친 후 도망쳐 스웨덴으로 온 후 우연히 해적선에 올라타 선장을 죽이고 그 자신이 선장이 되었다. 당연히 배를 몰 줄은 모른다. 다만 해적선의 우두머리는 선장이라 부르니까 그 자신을 선장이라 부를 뿐이다.
실제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조타수다.
“제법 강하군. 체술이 제법이야. 역시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운 듯 보이는구나.”
“이대로 가다간 밑에 놈들 전부 죽겠습니다.”
그의 말대로다. 아론이라는 녀석은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며 해적들을 학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아론이 없는 쪽에서는 해적과 나사우 호의 선원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피에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초인은 힘들더라도 상선의 선원들은 당연히 가볍게 죽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호각.. 아니 오히려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는 상선의 호위가 아니라 군인이기라도 했던 건가?’
플로라의 능력 덕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피에르로서는 의문만 생기는 상황이었다. 초인을 상대로도 제법 위력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던 스냅펀스 록 건도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컴뱃아머를 입은 아론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노예라는 검은 짐승의 피부(가죽?)도 뚫지 못했다.
‘아론 놈이나 검은 짐승이라는 노예 녀석이나... 명품급 치고는 제법 강해 보이는데... 혹시 명품급이 아니라 전승급이라도 되는 건가?’
둘이 보여주는 움직임과 방어력은 명품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해 보였다.
‘흠... 아니면 저 유물들의 실제 능력은 방어력을 올려주고 신체능력을 약간 상승시켜주는 것이 다고 단련을 많이 해서 강해보이는 건가? 알 수가 없군.’
세간에 알려진 유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같은 편끼리도 잘 보여주지 않는 것이 유물이니까. 야수화를 하려면 최소 전승급 이상이어야 한다는 정보도 유물에 대해 따로 연구하는 에스파냐나 되니 아는 것이지 그 외의 곳에서는 유물을 소지한 자라 할지라도 유물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정확한 위력 측정이 되지 않았다. 강해 보이는 것도 육체능력 강화에 중점을 둔 유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육체능력이 전부야. 특수능력을 가진 나와 내 부하 녀석들에게는 당할 수 없어.’
“별 수 없지. 우리가 나선다. 제법 강해보이니 방심하지 말고 한 놈씩 합공해서 확실하게 처리한다.”
“네!”
피에르와 그의 두명의 초인부하가 갈고리를 잡고 나사우호로 오르기 시작했다.
***
“비켜라!”
음?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해적들 한 쪽이 열리더니 세 명의 제법 괜찮은 옷을 입은 자들이 보였다. 해적선의 간부라도 되는 건가? 잘 됐다. 나는 간부로 보이는 그자들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해적들 수가 너무 많아서 전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토마스는 걱정없지만 선원과 플로라, 하벨이 걱정이었다. 이럴 때 간부로 보이는 자들을 해치우면 해적들의 사기가 떨어지겠지. 어쩌면 물러갈지도 모른다.
“떠올라라!”
“어? 초인!”
간부로 보이는 자들 중 하나가 초인이었다. 내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더니 두둥실 떠올랐다. 1m 정도 오르더니 멈추긴 했지만 공중에 떠버리니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뭐지. 이 능력은. 몸을 구속하는 것도 아니다. 몸이 움직이기는 움직인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지기도 했다. 속도가 느리고 허우적거리기는 했지만 날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날 도와주는 듯한 느낌? 하지만 처음 받아보는 것이다 보니 익숙하지 못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크흐흐흐. 역시 내 능력은 최강이야!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한번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자. 얘들아. 마무리해라!”
“네!”
3명 중 뒤에 서있던 둘이 날 향해 뭔가를 하려고 한다. 빌어먹을 저 녀석들도 설마 초인인거냐. 이대로 무방비로 공격을 당할 수는 없다.
난 독수리를 통해 공간이동을 했다. 위치는 날 공중으로 띄운 것이 분명한 녀석의 뒤.
“어?!”
갑자기 내가 사라지자 당황한 녀석.
“뒵니다!”
기이이이이이잉.
다른 녀석들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내 오른손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으니까. 그리고 왼쪽에 있는 녀석의 목을 손날로 날려버렸다. 오른쪽에 있던 녀석은 놔두었다. 그 녀석은 내가 외친 ‘초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토마스의 손톱이 머리에 박혀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