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112화 (11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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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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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한자동맹이 생겨났다. 그 뒤로 한자동맹은 수백 년간 발트해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자동맹에 도전하는 세력은 없었던 걸까? 어째서 작은 도시 4곳의 연합체에 불과했던 한자동맹에 발트해의 거의 모든 항구도시가 가입하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귀족들에게 시달리던 상인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합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설과 기존 한자동맹의 도시들이 새로 가입하는 도시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주었다는 설, 그리고 한자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도시에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는 설까지.

나는 이 세 가지 가설이 전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로따로 봐야 할 것들이 아니라 동시에 세 가지가 전부 일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동맹이 발트해의 강자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 그런데 이 세 가지 가설 중 하나만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 어리석은 자들이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있다.

바로 한자동맹이 해적을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한자동맹이 해적을 원조하고 있으며 그 해적들이 한자동맹의 적들을 습격했다는 내용이다. 정말 멍청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매년 해적에게 습격당하는 수많은 한자동맹의 배들은 왜 습격당했을까. 습격당한 배가 없지 않냐고? 아니다. 있다. 매년 한자동맹 총회에서는 해적에게 습격당한 한자동맹 소속의 배의 선주와 상단주들에게 일정량의 보상을 한다.

한자동맹 소속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해적의 습격을 입은 선주나 상단주들을 돕는 아주 좋은 제도다.

해적에게 습격당한 한자동맹의 배가 없다고? 그렇다면 한자동맹 총회에서 습격당하지도 않았으면서 습격당했다고 거짓을 말한 후 회비를 줬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자는 정말 학계에서 추방을 해야 한다.

-누군가와 한자동맹에 대해 말다툼을 한 후 분을 삭이지 못한 어떤 학자가 분에 못 이겨 휘갈겨 쓴 논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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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년 10월 3일 수요일

탈린에 9월 30일에 도착한 나는 며칠간 항구를 돌아다니며 구입할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정말 살게 없군. 여기도 예전에는 한자동맹의 항구였다면서 그런데 살만한 물건이 모피밖에 없다는 게 말이 돼?”

모피 말고도 몇 개 있긴 있다. 목재나, 철 같은 것들. 하지만 목재는 이미 빌럼 공작님이 싼 가격에 공급하고 있어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철은 내가 취급할 자격이 없다. 해당 나라에서 철을 사려면 해당 나라의 왕실에서 발급한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모스크바 공국 사람도 아닌 나에게 그런 허가증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몇 개 자잘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특산품이 아닌지라 가격이 싼 편이 아니다. 질도 별로고 말이야. 여기에서 살 바엔 다른 곳에서 사는 게 더 이득일 것 같다.

이제 겨우 10월인데도 더럽게 추운 탈린에서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녔는데도 별 소득이 없다. 뭔가 소득이라도 있으면 아무리 춥고 힘들었어도 기분은 좋았을 텐데 고생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없으니 짜증만 난다.

“예전 한자동맹의 소속일 때도 딱히 특산물은 없고 모스크바 공국과의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스크바 공국에 식량을 건네주고 모피를 받을 때 너무 폭리를 취하니까 화가 난 차르가 군을 일으켜 점령했다고 하지요.”

내 말을 듣던 야프가 탈린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그래.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야프는 의외로 유식하단 말이야. 뱃사람은 엄청 무식하다고 소문나 있는데 의외로 아는 것이 많다.

“결국 모피군. 가져다가 창고에 박아두는 한이 있어도 모피밖에 가져갈 것이 없어. 하벨.”

“네. 상단주님.”

“애들 데리고 모피 상점에 다녀와라. 품질별로 250만 오션씩 1,000만어치 정도만 골라둬.”

“알겠습니다.”

여기서 애들은 이번에 고용한 에흐몬트의 청년들을 이야기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녀석도 있으니 처음부터 ‘애들’이라 부르지는 않았지만 하는 짓들을 보면 ‘애들’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어찌나 철이 없고 어린애 같은지.... 잘 가르쳐서 제 몫을 하는 녀석을 만들려면 한참 먼 것 같다.

하벨이 ‘애들’ 5명을 데리고 여관 밖으로 나갔다. 하벨이 구입할 상품을 분류해두면 내가 가서 품질을 확인하고 값을 치를 거다. 최종 확인은 내가 직접해야지. 그게 내가 직접 상행을 나오는 이유인데.

“안되겠어. 루이웨 상관에서 모피 판매루트를 개척할 때까지는 다른 항구도 들려봐야겠어.”

“좋은 생각입니다. 발트해에는 모스크바의 모피 말고도 쓸 만한 물건들이 많지요.”

물건을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싸게 사느냐 비싸게 사느냐지. 발트해에서의 거래는 한자동맹에 비해 비한자동맹은 20%정도 더 세금을 물어야 한다. 우리 네덜란드는 그나마 한자동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10%정도 더 관세를 문다.

정확히는 물건을 구입할 때 5%, 물건을 팔 때 10~15%다. 난 이러한 한자동맹의 정책을 ‘내 물건은 팔겠지만 너 네 물건은 안사.’정책이라고 부른다.

한자동맹에 비해 더 비싸게 사고 더 싸게 팔아야하니 당연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게 한자동맹이 수백 년간 발트해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지.

물론 욕만 할 것은 아니다. 우리 네덜란드도 비슷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런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자동맹이 최근 흔들리기 시작한 이유는 하나다. 그들이 싸게 살 수 없는 물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 건너서 온 물건들. 너무나 신기하고 유용해서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야할 것들. 그것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한자동맹의 관세 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자동맹이 비싼 세금을 물리면 그냥 그만큼 더해서 팔면 되니까. 대부분의 상품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독점하니 비싸도 어쩔 수 없이 사야한다. 그러다보니 관세 정책 때문에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신대륙의 상품들이 들어오게 되고 그 때문에 한자동맹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네덜란드의 청어도 그런 상품이 될 수 있을 거란 것을 말이다. 1년간 보관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청어. 항상 식량이 부족하고 종교적 특색이 있는 유럽에서는 필수 교역품이 될 수밖에 없다.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나 주일에는 육류를 먹지 못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요일에도 먹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고 심한 지역은 1년의 반 정도가 육류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날이다. 이건 우리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우리 네덜란드도 주일에는 육류를 먹지 못한다.

그런 날은 당연히 청어를 먹는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청어는 아니더라도 다른 생선이라도 구해서 먹는다. 생선도 구하지 못한 곳은 빵만 먹기도 한다. 그런 곳에 1년이나 보관할 수 있는 청어가 보급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네덜란드 최고의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염장 청어는 우리 네덜란드만 공급하는 것이니 신대륙의 상품들 못지않은 위치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동맹이 우리 상품에 세금을 많이 매긴다? 그럼 원래 가격에 한자동맹의 세금만 붙여서 팔면 되는 것이다.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처럼 염장청어는 우리가 독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청어의 미래 상품가치를 나와 비슷하게 본 빌럼 공작님이 청어를 위한 여러 가지 법을 제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청어를 잡을 수 있도록 그물코를 크게 만드는 법이나 다른 나라에 절대 염장 비법을 유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 등.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네덜란드의 청어 어획량이 발트해를 장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어획량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런 네덜란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흠.. 그럼 이번에 스톡홀름에 한번 들러볼까? 발트해의 강자 중 하나인 스웨덴 왕국의 중심 항구니까 제법 좋은 상품들이 있지 않겠어?”

“괜찮은 생각입니다.”

발트해를 다니면서 각 항구의 주요 상품에 대해 조사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후에 발트해에 진출할 네덜란드 상인들을 위해 공개하는 거지. 그것이 발트해 선발대인 내가 네덜란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중요한 정보는 빼고. 나도 돈 벌어야 하니까.

***

“뭐지?”

항해는 심심하다.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 온 사방이 바다다. 똑같은 풍경만 하루 종일 봐야하니 심심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서 최근 생긴 취미가 독수리를 날려 보내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게 하면서 공유되는 시야로 그 속도감을 즐기는 것이다. 이게 직접 나는 것이 아닌데도 왠지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꽤 재미있다.

가끔 이상한 부유물을 발견하면 가까이 가서 구경하기도 하고 말이다.

탈린을 떠나 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에도 독수리를 통해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이번 항해에서는 독수리를 날려 보내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탈린과 스톡홀름 사이에는 작은 섬이 많이 있어서 그 곳을 살피는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온갖 동물도 보고 처음 보는 꽃이나 나무도 보고 말이다.

지금도 독수리를 보내 근처에 있는 섬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 배다. 그것도 한 척이 아닌 3척. 코그 두 척과 소형 카락 한 척. 별거 없는 섬 같은데 항해하다가 잠시 쉬는 건가?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생겨서 정박하고 수리라도 하고 있는 건가?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를 3척의 선박 근처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3척의 선박의 정체를 확인했다.

해적. 해적이었다.

중구난방인 옷차림과 무장, 지나치게 많은 탑승인원, 발과 손이 구속된 채 일을 하고 있는 노예들. 누가 보아도 아. 해적이구나 할 수 있는 풍경이다. 배에 달려있는 기는 스웨덴 왕국의 기이지만 그건 당연히 속임수일 것이다. 해적들이 나 해적이오...하는 기를 달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한 대 정도만 있으면 나사우 호를 해적이 있는 곳으로 움직여 나포할 텐데 3척이라 부담된다. 나사우 호는 군선도 아니니까. 잘못하면 크게 망가질 수도 있다. 해적선 3척을 나포한다 할지라도 정작 나사우 호가 망가지면 손해다. 그것도 큰 손해.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나사우 호 같은 원양항해가 가능한 대형 카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음.... 탐난다. 저것들 대포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군선이라 대포의 수가 적은 상선에 비해 좀 느리고 적재량도 적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배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쓸 만할 것 같은데. 그리고 나중에 발트해로 진출할 네덜란드 상인들을 위해 해적들을 없애줘야 하기도 하고.

흠... 고민되기는 하지만... 별수 없지. 수가 너무 많다. 3:1은 무리야.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독수리로 계속 주시하며 살폈다. 해적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한 것도 있으니까. 어. 갑자기 선상의 해적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일 모양이다.

빠르게 움직일 준비를 마친 해적들이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움직이는 거지? 아. 저 연기 때문에 그런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보이지 않던 연기가 보이고 있다. 저 연기가 배를 움직이라는 신호라도 되는 건가.

그런데 나사우 호가 근처를 지나가니 배를 움직이다니. 음... 설마.... 설마 아니겠지.

***

“북서! 북서! 1척의 배 출현!”

파수꾼의 목소리에 비상 종 가까이 있던 선원이 비상종을 울리기 시작하고 선상의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창에서 쉬고 있던 선원들도 바쁘게 선상으로 나온다.

아니긴 개뿔. 움직이기 시작한 해적들이 정확히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00톤급 정도로 보이는 소형 카락이 빠른 속도로 나사우 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에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독수리의 눈에는 보이는 조금 느린 7~80톤 정도로 보이는 코그 선 두 척이 따라붙고 있다. 곧 그 코그도 보일 테지.

“해적일까요?”

“그래. 그런 것 같다.”

갑판장 야코뷔스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내게 묻는다. 저번 한자동맹의 정찰선 이라는 녀석들도 비슷하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저렇게 맹렬한 속도로 오지는 않았다. 같은 카락인데 저 소형 카락은 정말 빠르다. 왜 소형 카락을 탐험용으로 쓰는지 이해가 가는 속도야.

“선원들을 무장시키고 몇 년 동안 놀았던 포수들도 포 쏠 준비하라고 해.”

“대포도 사용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나사우 호에도 포수는 있다. 2명. 그들이 일부 선원들을 가르쳐서 한쪽 측면 당 4개씩 총 8개의 대포를 다룬다. 그 동안은 해적을 상대로 나와 토마스가 갑판전을 해 나포했으니 놀기만 했었지만 적이 세 척이니 이제는 밥값을 해야 할 때지.

“그래. 그래야 할 것 같다. 적이 한 척만 있는 게 아닌 것 같거든.”

저 멀리 희미하게 코그선 두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수리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였다.

빌어먹을 느려 보이는 저 코그선 두 척조차 나사우 호보다 훨씬 빨라. 나사우 호 너무 느린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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