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5 / 0290 ----------------------------------------------
발트해
“거대 독수리 소환.”
‘콜레가’에서 하얀 입자가 스물스물 나와 뭉치더니 곧 독수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거대’ 독수리라며. 근데 왜 이리 작아.”
작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절대 ‘거대’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독수리 정도의 크기?
-출력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원래의 출력의 41.3%밖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환 개체의 크기도 원래 형태의 41.3%의 크기를 갖습니다.
“..... 별 수 없지.”
거대... 아니 그냥 독수리를 소환하자 ‘사용자와의 시각 공유’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치 눈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독수리가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갑자기 시야가 두 개가 되어 버리니 살짝 어지러워진다. 익숙해지려면 자주 사용해야겠는데.
좋다. 독수리의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허공에서 시야만 밝혀줘도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의 공격도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으니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파수꾼이 보지 못하는 너머까지 정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야.
“생각해보니... 차라리 작은 게 더 좋잖아.”
훈련된 독수리 하나 애완용으로 샀다고 해도 되고 말이야. 만약 정말 ‘거대’ 독수리였으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으니까. 음... 자세히 살펴봐도 평범한 독수리다. 정말 그냥 데리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사용자에게 일정 범위 안 공간이동능력 제공’이다. 이건 독수리를 소환하는 순간. 어디서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겠구나...하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충 독수리를 중심으로 반지름 100m정도의 구 범위 안이 이동범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느낌으로 그 범위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이동.”
순간 나는 지하 연무장 끝으로 이동해 있었다. 좋다. 이동을 원하는 순간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은 기습을 할 때 사용할 수도 있고 위험할 때 피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독수리녀석. 전투능력은 아직 미지수지만 일단 갖추고 있는 특수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 않다. 이런 소환 개체가 2개나 더 있다니. 그냥 보너스 단계 포인트를 투자해서 등급을 올려버려?
그러면 보조 아이템의 출력도 늘어나서 새로운 개체를 소환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음... 아니다. 일단은 무역을 좀 더 해보고 하자. 무역을 했더니 갑자기 상재가 빠르게 올라가고 무재가 뒤로 처지거나 하면 어떡해. 보너스 단계 포인트를 아낀다는 것이 바보같은 짓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몇 달 정도는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
***
1579년 5월 4일 금요일.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을 떠나 모스크바 공국을 향해 출발했다. 음. 배 몇 척만 더 있었어도 더 많은 청어를 가지고 갈 수 있을 텐데. 사실 청어 1,400통이 적은 양은 아니다. 거의 200톤에 육박하는 양이니까. 달구지를 이용했다면 대충 250대 정도는 있어야 운송이 가능한 양이다. 으으. 달구지 250대면 노새도 250마리. 거기에 노새와 상품 관리할 일꾼들 250명..... 엄청나구나. 하긴. 급여는 비슷하겠다. 선원이 육지 일꾼보다 3배정도 급여를 더 받고 간부와 상급 선원들은 훨씬 더 받으니까.
하지만 속도와 세금에서 비교가 안 되지. 육지로는 1번 겨우 갔다올 시간에 배라면 2~3번은 더 갔다올 수 있다. 상행을 빠르고 자주 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익으로 연결 되는 법. 역시 배다. 상인은 배를 타야해.
“돛을 접어! 이대로 가다간 돛이 부러질 수도 있어! 토마스! 위쪽의 돛 좀 부탁한다!”
“알았습니다.”
“거기 통 굴러간다! 조심해!”
“예비 밧줄을 몸에 묶어! 지금 바다에 떨어지면 무조건 죽는 거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배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북해에서는 드물게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다. 야프와 야코뷔스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음.... 선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주제에 너무 놀고 있나. 하지만 난 이런 비상상황에 뭘 지시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방해만 할 거다. 그렇다고 내가 야프나 야코뷔스의 명령을 받으며 일을 해줄 수도 없고.... 그 정도로 비상상황은 아니다. 나 정도의 남자라면 배가 뒤집히기 직전 정도에나 움직이는 거지.
...... 그건 아닌가?
여하튼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 초인의 힘이 필요한 곳에는 토마스가 나서주고 있고 플로라가 열심히 카드를 움직여 선원들에게 강한 힘과 체력을 더해주고 있다.
정말 하는 일 없는 선장이네.
흠... 그냥 선장에서 내려올까? 사실 지금은 이름만 선장이지 그냥 선주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주가 하는 일? 없지. 그냥 가만 있는다는 거다. 배의 항해도 야프가 알아서 하고 유사시의 지시도 야프와 야코뷔스가 함께, 그리고 평상시 배의 관리는 야코뷔스가 맡는다.
배의 목적지 같은 것은 내가 정하지만 배의 운전이나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정하는 것은 야프가 한다.
.... 말하다 보니 정말 하는 게 없잖아. 실질적으론 야프와 야코뷔스가 선장이 해야 할 일을 나눠서 하는 중이구나.
애초에 내가 어디선가 선장의 일에 대해 배운 것도 아니고 2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것이 다니까. 제대로 선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사실 지금 말이 선장이지 예전 호위장일 때와 하는 일의 차이는 없으니까.
으음.... 그래. 야프한테 선장자리 넘겨주자. 그렇지 않아도 좀 마음에 걸렸었다. 앞으로 배를 늘릴 예정인데 그곳에 야프에게 일을 배운 자들을 선장으로 넣을 생각이다. 그런데 정작 일을 가르친 야프가 항해장에 머물러 있다니. 비록 앞으로 구입할 배들의 배수량이 나사우호의 반도 되지 않는 것을 구입할 예정이라서 작은 배의 선장이 되는 거라고는 해도 선장은 선장이고 항해장은 항해장이다.
야프의 위신과 권위를 세워주려면 이게 맞다. 나는 선주와 호위장의 역할을 하고 야프에게 선장의 자리를 맡기자. 언제 맡기지? 흠.... 에이. 몰라. 생각난 김에 바로 맡기자.
“야프! 이제부터 네가 나사우호의 선장이다!”
“네?! 지금 상황에 무슨 소립니까!”
지금? 음... 강한 비바람이 불어와서 배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 청어를 담은 오크통이 굴러다니다가 깨질까봐 밧줄로 단단히 묶고 고정하려고 죽어라 일하고 있는 상황? 뭐 그런 상황이지.
“여하튼 네가 선장이다! 이제부터 선장으로서 지휘하도록! 다들 선장 야프의 명령을 들어라!”
“빌어먹을! 야프 선장님! 축하합니다!”
야코뷔스가 먼저 운을 뗐다. 욕을 섞기는 했지만 땀과 비에 온몸이 젖어 있어 짜증나 있을 상황에서 기분 좋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른 선원들도 웃으면서 전부 야프를 축하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선장하라는 내 말에 멍하니 서있던 야프도 상황을 받아들이곤 크게 웃었다.
“크하하. 그래! 나사우 호의 선장 야프다! 다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를 지켜! 못 지키면 선장 야프가 가만두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야프 선장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짜증 가득한 얼굴로 일을 하고 있던 선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다.
***
1579년 5월 25일 금요일
이번에는 중간에 비바람 때문에 고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21일 만에 도착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군함이 한척 더 늘어난 거 같은데?”
“그래요? 하나... 둘... 일곱, 여덟. 정말이군요. 지난번보다 한척 늘었습니다. 저번에는 7척이었으니까요.”
옆에 서 있던 이제는 선장이 된 야프가 내 말에 군함을 세어보았다.
“정말 전쟁이라도 일으키려고 하는 건가. 군함을 꾸준히 늘리는군.”
“지난번에 이곳 실상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북해의 강국이 손을 잡고 모스크바 공국에 식량을 수출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이면 상선을 보내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수입하려고 해도 다른 나라의 군함이 나포하거나 침몰시킬 겁니다. 그러니 모스크바 공국으로서는 살기 위해서라도 군함을 늘려야죠.”
그런 건가..
“하지만 애초에 모스크바 공국이 발트해로 진출하려고 했기에 다른 나라들이 제재하고 나선 거잖아. 그 전에는 식량을 통제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겠죠.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식량을 수출하면서 폭리를 취했을 수도 있고, 식량을 무기로 무리한 요구를 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차르의 국력 확장의 야망이 백성들이 배 곪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긴 하다. 아직은 약하니까. 배가 물결을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아직은 주변의 상황에 따라 나를 맞춰야 하는 시기지.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하며 배가 부두에 완전히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항구 관리가 보였다. 저번의 그다. 왠지 반가운데. 저 사람은 다른 항구의 관리와 다르게 친절하니까.
널빤지를 내리고 부두로 내려서니 항구관리가 환한 얼굴로 인사한다.
“어서 오십시오. 아론 상단주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네. 정확히 2달하고도 보름만이군요. 제가 차르께 아론님께서 돌아오려면 2달 보름 정도 걸릴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아주 딱 맞춰 오셨습니다. 허허.”
항구관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유리안이었던가... 무리안이었던가... 에이 모르겠다. 그렇다고 괜히 이제 와서 이름을 묻는 것도 기분 나빠할 것 같으니까. 그냥 부르지 말자.
그나저나 엄청 좋아하네, 그거 맞춘 게 그렇게 좋나. 하긴 내가 돌아올 날짜를 정확하게 맞춘 거니까. 차르한테 능력을 어필한 게 되는 건가.
“멋진 독수리입니다. 하나 구입하신 모양입니다.”
“하하. 네. 선상 생활이란 게 상당히 무료해서요. 이 녀석 덕분에 즐겁게 올 수 있었습니다.”
내 어깨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보며 칭찬해주는 항구관리. 하긴 내 독수리가 다른 독수리에 비해 좀 멋있긴 하다.
“항구 입항 심사는...”
“아. 제가 알아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이따 내리는 물건만 확인 시켜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세금과 항구 이용료도 없습니다.”
“아.. 네....”
과도하게 친절하네.
“물론 청어를 가져오셨겠죠?”
“네. 저번과 같은 양입니다. 1,400통.”
“오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 청어 덕분에 지난 몇 달간 제법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풍족 씩이나.... 항구관리가 자신을 따라온 병사 중 하나에게 어서 가서 청어가 왔다가 알리라고 이야기했다.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하는지 말은 안했지만 누군지 나는 안다. 차르겠지.
“청어를 내리다 보면 친위대 분들이 나와서 인수해 갈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돈 이야기는 없구나. 와서 그냥 가져가겠지. 물론 청어의 가치보다 훨씬 큰 모피를 주겠지만 거래 과정에서 별다른 흥정 없이 상대방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에서 일종의 박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흥정을 해서 원래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내야 상인으로서의 보람이 느껴지는 법인데 말이야.
더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여러 과정을 통해 충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이 없으니... 물론 그런 충실감보다도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 더 좋으니 다시 이곳을 찾은 것이지만. 상인은 충실감이든 뭐든 결국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장땡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 네. 그럼... 바로 하역작업을 시작해야겠군요.”
“그러시죠.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일꾼도 수배해뒀으니 곧 작업을 할 일꾼들도 데리고 올 겁니다.”
이 아저씨가 내가 청어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하긴 내가 탈린으로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청어를 싣고 왔다는 뜻이나 다름없지. 차르의 항구로 오면서 차르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곧 항구관리의 말대로 수십 명의 일꾼들이 몰려왔다. 저들의 급여는 내가 지급 안한다. 항구관리가 고용했으니 그 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한참 하역을 하고 있는 중에 차르의 친위대 둘이 병사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저들은 몇 번일까....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1번이었다가 12번으로 떨어진 자와 새롭게 1번이 된 자 뿐이다. 다른 자들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몇 번인지도 모르고. 대충 2번에서 11번사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아니지. 그 동안 변경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에이. 모르겠다. 그냥 이름 부르지 말자. 몇 번인지 모를 친위대 한명이 내게 다가와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여 받아주었다.
“차르께서 찾으시오.”
통성명 없이 본론부터 이야기한다. 원래 대화를 하기 전에 통성명을 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이름이 없는 자라서 그런 건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나를 따라오시오.”
그리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앞장서서 어딘가로 간다. 당연히 내가 따라올 거라 생각하는 건가. 하긴 나는 차르의 땅에서 차르의 명을 거절할 배짱은 없다. 야프에게 알아서 처리하고 이야기한 후 하벨에게 독수리를 맡기고 앞장 선 친위대를 따라갔다. 차르한테 독수리를 대동하고 갈수는 없으니까. 혹시 달라고 하기라도 해봐. 엄청 난감해진다. 내 뒤에는 당연히 토마스가 따랐다.
친위대가 간 곳은 갤리온이 정박되어 있는 곳이었다. 친위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배로 향했다. 다른 배에 비해 훨씬 크고 화려했다. 기함이겠지. 저 곳에 사령관이나 왕이 탈 것이다. 이반4세는 직접 전쟁에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니 이반4세가 타게 될 배일지도 모르겠다.
“반갑구나. 네덜란드의 아론.”
친위대의 안내에 선장실로 들어가니 화려한 탁자에 앉아 위스키를 먹고 있는 이반4세가 나를 반겨주었다. 저 오만한 왕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할 줄이야.
“빌럼가의 기사. 아론 보어 렐리가 모스크바의 지배자께 인사드립니다. 미천한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나의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해준 자인데. 당연히 기억해야지.”
나름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라는 건가.
============================ 작품 후기 ============================
제가 전편에서 빼먹었던 ‘-거래를 통해 상재 포인트 1,034포인트 획득했습니다.’를 추가했습니다. 중간 정산으로 받은 1,820만의 이익과 청어의 거래에 따른 포인트를 합산한 양입니다. 이익을 통해 910의 포인트. 청어의 값을 빼고 준다고 하였으니 청어의 값만큼이 들어왔다가 나간 것으로 처리 되어 124의 포인트를 얻었고 둘을 합쳐 1,034포인트입니다.
으으. 자꾸 까먹네요. 지적 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ps. 오타 지적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올리기 전에 한번 퇴고하고 올리는데도 제 눈에는 잘 보이지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