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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여긴....”
반지에서 나온 검은 빛이 뭔가 공격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았던 막달레나와 함께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이동된 곳은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문재 포인트 100을 얻었습니다.
그래. 던전.
..... 어릴 적 토마스의 유물인 ‘비스트’를 얻었던 곳과 비슷했다. 동굴이지만 복도가 있고 뚫려있는 통로의 크기가 일정하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기도 한 그곳. 바로 던전이다.
“어떻게 된 거지?”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넘버127의 실수라고? 넘버127이 실수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뭘 실수했다는 거지.
-‘한자동맹의 패황’이 감정하기 위해 가했던 제 힘에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발로 잠들어 있던 아이템으로서의 힘이 깨어나고 던전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템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저의 주인인 아론님을 던전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자신에게 힘을 가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뭐야. 그럼 원래는 나만 끌어들이려고 했던 건가? 괜히 막달레나를 보호하겠다고 내가 끌어안는 바람에 같이 와버린 거고?’
-그렇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반지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은 보았는데.... 아. 죄송해요. 아론님. 저를 감싸시려다가....”
넘버127에게 한 말을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대답하는 막달레나. 그녀에겐 넘버127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자신 때문에 내가 말려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사실은 반대인데 말이야. 사실을 말해 줘야하나?
음... 그냥 밝히지 말자. 설명하려면 넘버127에 대한 것과 내가 왜 그 반지에 관심을 보였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니까. 그러면 도둑놈 되기 딱 좋지.
“아닙니다. 그 검은 빛의 범위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분명 저도 말려들었을 겁니다. 어쩌면 애초에 제가 목표였는데 괜히 저 때문에 막달레나님까지 같이 말려드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양심에 찔리지만 모른 척 하자. 괜히 사실을 알리면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갈 테니까. 그 뒤에도 잠시 동안 서로 ‘내 탓이오.’를 주장하다가 점점 안정되어 다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게 아론님의 유물의 모습인가 봐요. 굉장히 멋있으세요. 저희 오라버니의 유물은 딱히 외형이 변하는 것은 없던데.”
“겉모습만 화려할 뿐입니다. 겨우 명품급일 뿐입니다. 전승급이라는 막스님의 유물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일단 나는 명품급 유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워리어는 정말 명품급이니까.
”그나저나 이곳 낯이 익습니다.”
“아시는 곳인가요?”
“아는 곳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 이곳과 비슷한 곳에 들어왔던 적이 있지요.”
“어디인가요?”
“던전입니다.”
“던전? 던전이라면... 아! 그 유물이 나오는 던전!”
“네. 아무래도 반지에서 나온 검은 빛이 우리를 던전으로 끌어들인 것 같군요. 반지가 전승급 이상의 유물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이 던전도 반지가 만들었을 겁니다.”
“아..... 하긴.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아무래도 유물이 관련되어야....”
“다만 제가 갔던 던전과 다른 점은 출구가 없다는 점이겠군요.”
내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단단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입구 겸 출구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그런 것이 없다. 유물이 우리를 강제로 이곳으로 이동시킨 모양인데 유물은 그런 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워리어를 다시 브레스트 아머로 되돌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은 최대한 체력을 아껴야했다. 워리어를 개방하고 가만있기만 해도 체력은 소모되니까.
“아.. 그럼 어떻게 해야...”
“별 수 없죠. 일단 던전을 클리어 해봐야겠습니다. 그러면 뭔가 수가 생기겠지요. 클리어했는 데도 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다른 수를 찾아봐야겠지요.”
“던전에는 괴물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예전에 이미 던전을 돌파한 적이 있습니다.”
사부님이 혼자 다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사부님이 클리어 했던 던전정도라면 얼마든지 혼자서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다.
***
토마스는 막스가 쏘아낸 물줄기를 겨우 피해냈다. 그 물줄기는 토마스 뒤편의 건물 벽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는 사라졌다. 저것에 직격했다면 분명 토마스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막스가 왜 갑자기 살수를 쓰는 것일까.’ 토마스는 막스가 왜 저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자신의 주인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와서 아론을 찾을 리 없으니 말이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일단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해주십시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해는 무슨 오해! 내 눈으로 네놈의 주인이 막달레나를 데리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본 것이 명확한데 여기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방금 공격을 피한 것으로 보아 네놈도 보통 놈은 아닐 터. 닥치고 네놈 주인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기나 해라!”
“그러니까 상황을 좀 더...”
“역시 그냥은 말하지 않겠다 이거지. 내 반드시 네놈이 아론 그놈의 위치를 토해내게 만들 것이다!”
토마스는 상황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막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금 토마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다른 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아론의 위치. 그것이면 되었다.
퐁. 퐁. 퐁.
물줄기를 쏘아냈던 반지에서 성인남성의 주먹만한 물방울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물방울은 막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후우...”
토마스는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막스는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일단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할 듯 했다.
“죄송합니다. 제 주인께 뭔가 변고가 생긴 듯 한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군요.”
토마스는 우선 막스를 때려눕히기로 결정했다.
“그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덤벼라!”
토마스가 막스에게 달려들었다. 달리는 그의 몸이 점점 거멓게 변하며 부풀어 올랐다.
“크허헝!”
토마스를 향해 막스 주변에 돌던 물방울 다섯이 날아갔다.
***
크르르르.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어 막달레나를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르르르르.’ 확실하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입구라고 생각 되는 곳에서 제법 걸어왔는데도 던전을 지키는 괴물들이 보이지 않아서 넘버127이 던전이라 이야기 해줬음에도 혹시 던전이 아닌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까지 들던 찰나였다. 드디어 몬스터가 나온 모양이다.
막달레나에게 뒤로 손짓했다. 다시 통로를 되돌아갔다. 제법 멀리 떨어져서 안전하다 싶은 곳에 도착한 후 입을 열었다.
“드디어 몬스터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이곳은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했으니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함께 가서 제가 뭔가 도움이라도...”
이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괴물을 상대하는 데 자기가 가서 뭐하겠다고.
“저도 상인으로 어느 정도 단련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 혼자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혼자 있는 것은....”
안색이 파리해져서 말하는 막달레나. 무서워서 같이 간다고 한 거였나. 하긴 무서울 만도 하지. 하지만 안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막달레나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조금도 없다. 그런 여자를 데려가면 아주 작은 위협으로도 큰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무기도 없으시고 상대는 던전을 지키는 괴물입니다. 예전에 갔던 던전에서는 완벽한 무장을 갖춘 용병들도 던전의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혹시 막달레나님이 상처라도 입으시면 제가 막스님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괴물을 처리하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막달레나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달레나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 다음 다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향했다. 아까 전진했던 곳까지 도착한 후 조금 더 움직이다가 모퉁이 2번을 돌고나니 거대한 공동이 하나 보였다.
던전의 메인 보스가 있는 곳이겠지? 예전에 사부님이 거대 달걀과 싸웠던 곳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그때보다 조금 더 넓다는 것과 집채만 한 머리 세 개 달린 검은색 개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켈베로스?”
책에서 본 켈베로스가 맞는 것 같다. 책에서 한 묘사와 생김새가 꼭 닮아 있으니까. 다만 평범한 개를 생각해서 커봤자 말 정도의 크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상보다 5배쯤 컸다.
켈베로스는 배를 바닥에 깔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리는 ‘그르르르’하는 숨소리. 아마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공동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으로 왔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일어나겠지.
지난 번 거대 달걀도 그랬으니까. 공동으로 발만 들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다가 공동으로 누군가 들어가는 순간 일어나서 공격해왔다.
입구 바로 앞에서 공동을 자세히 살폈다. 저 멀리 유물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제단 같은 것이 보였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곳에 ‘한자동맹의 패황’이 있겠지. 작은 반지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전에 들어왔던 던전과 달리 잔챙이 괴물들이 없다. ‘한자동맹의 패황’이 ‘비스트’보다 급이 낮아서 잔챙이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비스트’보다도 출력이 높은데 잔챙이 만들 힘을 보스 하나에 전부 쏟아 부은 것일까. 어쩌면 둘 다 맞을 수도 있겠지.
여하튼 공동의 정중앙에 있는 켈베로스는 꽤 강해 보인다. 덩치가 크니 힘이 당연히 강할 것이고 짐승이니 만큼 순발력도 뛰어날 것이다. 가죽도 질기고 두껍겠지. 거대 달걀보다도 강할 것 같은데....
하지만 상관없다. 나도 충분히 강하니까.
‘넘버127. 전투형태2.’
-전투형태 2번 퀴버 워리어. 개방합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워리어와 퀴버가 하얀색 입자로 변해 버니팅에 덧씌워졌다. 워리어의 효과로 넘치는 힘이 몸 전체에 전해진다.
퀴버. 진동해라.
우우우우우우웅.
벌의 날개소리 비슷한 소리가 버니팅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소리에도 켈베로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전투는 몇 번을 해도 긴장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숨을 몇 번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땅을 박차고 켈베로스를 향해 달려갔다.
내 몸이 공동으로 들어가는 순간. 켈베로스가 눈을 떴다. 켈베로스는 오래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 개의 머리 중 두 개가 나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짖었고 가운데에 있는 머리가 숨을 들이마시더니 나를 향해 불을 뿜었다.
‘변형.’
짧고 강하게 생각했다. 이제 넘버127은 내 생각에 집중할 것이다. 버니팅이 반원의 형태로 크기를 키워 내 몸 전체를 덮는 것을 상상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왼팔의 버니팅에서 조금의 입자가 발로 이동하여 무릎 아래를 덮는 강철 장화를 상상했다. 아무리 넓은 방패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계속 움직이는 이상 다리 부분이 화염에 노출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상상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푸화확!
켈베로스가 내뿜은 불꽃이 나를 덮쳤지만 나는 어떤 열기도 느끼지 못한 채 그대로 달려갔다.
꽤 오래 이어진 불꽃이었지만 결국 멈출 수밖에는 없다. 켈베로스가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는 한 들이 마시는 숨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생각대로 곧 불꽃이 멈췄다. 불꽃이 멈췄을 때 나는 켈베로스의 바로 앞까지 이동해 있었다.
‘변형.’
강철 장화와 방패의 형태를 띄고 있던 유물들이 다시 버니팅으로 모여들었다. ‘우우우우웅.’
컹. 컹.
양쪽에 있는 켈베로스의 머리들이 나를 물려했지만 늦었다. 불꽃에 가려 내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반응이 느렸던 때문이다. 나는 강렬하게 진동하는 오른 주먹을 켈베로스의 가운데 머리의 아래턱에 박아 넣었다.
============================ 작품 후기 ============================
100편입니다.
매일 쓰는 것도 겨우겨우 쓰는 입장에서 더 이상 연참을 늘리는 것은 무리니 그냥 넘어가야....
100편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