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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1579년 4월 12일 목요일
암스테르담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다시 암스테르담에 돌아왔다. 뤼베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0일이나 걸렸다. 윌란 반도만 없었어도 5일이면 충분했을 텐데. 괜히 툭 튀어나와 있어서 배들을 가로 막는다. 마치 발트해를 지켜주는 성벽 같은 느낌이야. 실제로는 성벽보다는 방해꾼 같지만.
근해 중에 하나인 발트해를 다녀온 것뿐인데 2달이나 걸리다니. 오래도 걸렸다. 나중에 내 꿈인 원양항해를 하게 되면 1~2년은 기본이겠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스크바 공국을 단 2달 만에 갔다 온 것이다. 그 먼거리를 말이야. 중간에 뤼베크를 들리지 않았다면 1달 반. 육로로 갔다면 3~4배는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160톤의 소금. 육로로 운송하자면 적어도 200대의 달구지가 있어야겠지. 그리고 국경을 건너면서 세금도 많이 뜯겼을 것이고.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제대로 된 무역을 하려면 역시 배다.
“흐읍.”
암스테르담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역시 같은 항구라고 해도 고향의 향기는 달라. 훨씬 맛있는 느낌이다. 크으. 나중에 인도라도 가게 되면 이 맛있는 공기가 그리워서 어쩌나.
“여어. 아론~.”
“어? 애니 이모! 야콥!”
부두에 들어가는 배가 완전히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제대로 정박해야 부두와 이어지는 다리를 놓을 수 있으니까. 그냥 뛰어내려도 되지만 난 선장이니까. 배의 출발과 도착을 끝까지 지휘해야 할 의무가 있다.
.... 사실 아무 것도 안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내야지.
그래서 배가 멈추고 항구로 내려갈 널빤지가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사우 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내게 손을 흔드는 애니 이모와 야콥을 발견했다. 음.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있으려고 했건만...
“웃차.”
결국 배에서 뛰어내렸다. 반가워서 널빤지 연결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야이. 위험하게 왜 뛰어!”
“에이.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리고 너 초인인거 광고할래? 숨겨도 모자랄 거 왜 퍼뜨리려고 난리야! 그리고 기사씩이나 돼서 왜 이리 품위가 없어! 기사는 준 귀족이란 말이야! 그러니 준귀족답게 품위를 지켜야지!”
어차피 이 근처 사람들 중에 내가 초인인거 모르는 사람 없을 텐데... 그리고 품위는 애니 이모가 더 없거든요? 이제 결혼도 해서 한 집안의 마님이 되신 분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어떡합니까. 여자가 교양 없다는 소리 들어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봐야 잔소리만 더 길어지겠지. 여기선 가만있어야겠다. 아니. 가만있으면 안 되고 도움을 요청해야지. 야콥에게 살짝 눈짓을 했다.
야콥이 내 눈짓에 눈짓으로 답해주었다. 살려줄 테니 나중에 보답하란다. 잠깐의 눈짓이었지만 대화는 통했다.
“당신을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좀 참는 게 어떻소. 오랜만에 돌아온 아이에게 잔소리부터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쟤가 위험하게....”
“나중에 좋게 말합시다. 지금은 일단 반가워해야 할 때가 아니겠소. 그리고 아론도 한 상단의 주인이고 한 선박의 주인인데 아론 밑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혼내면 아론이 곤란하지 않겠소.”
“우웅.. 알았어요. 아론 너 조심해. 니가 아무리 힘 센 초인이라고 해도 삐끗하면 다치는 거야. 한 상단의 책임자씩이나 됐으면 몸을 아낄 줄 알아야지.”
“알았어요. 죄송해요. 이모.”
역시 애니 이모를 제어할 사람은 야콥 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거침이 없는 애니 이모가 가장 약한 사람이 야콥이다. 다행이다. 야콥이 없었으면 앞으로 30분은 잔소리 들어야 했을 거다. 야콥에게 격렬하게 감사의 눈짓을 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이렇게 빨리 오려면 나사우 호가 항구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 뒤에 출발했어야 겨우 도착할 시간이다.
“며칠 전에 편지 도착했어. 그 편지보고 나사우 호를 아는 일꾼을 항구에 대기시켜뒀지. 배 들어오면 바로 알려달라고.”
역시 그런 거였나. 뤼베크에 도착했을 때 암스테르담으로 편지를 보내긴 했었다. 이제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 상품을 받을 창고도 비우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겠지. 그게 대충 보름 전이니까 우리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애니 이모와 기분 좋게 포옹을 하고 야콥에게 고개짓을 해 인사를 했다. 애니 이모가 날 안아주며 ‘우리 아론도 이제 결혼해야 할 텐데. 이모가 신부감 알아볼까?’라고 했지만 그냥 못들은 척 했다. 이 말에 대답했다간 어떤 대답을 하든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 뻔했으니까. 지금은 상인으로서 일을 하느라 바쁘다. 결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곰 가죽 가져왔어?”
“당연히 가져왔지요. 최고급으로 가져왔으니 기대하셔도 됩니다.”
자신이 부탁했던 곰 가죽에 대해 물어보는 애니 이모. 그냥 구해온 정도가 아니라 차르에게 진상되는 최고급품을 가져왔으니 내 태도는 당당하다. 오랜만에 큰소리 좀 치겠구나.
“오. 진짜 좋은 거 가져왔나 본데. 태도에서 거만함이 느껴져.”
“하하. 곰 가죽만이 아니라 호랑이 가죽도 가져왔으니 그것도 생각해보세요. 응접실에 놓을 거라면 곰 가죽보다는 호랑이 가죽이 좋지 않겠어요?”
“어. 호랑이 가죽도 구해왔어? 호랑이 가죽도 좋지. 그거 구하기 힘든 거라 곰 가죽으로 부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시아 쪽으로 가야 겨우 구할 수 있는 호랑이 가죽이니까. 맹수인지라 잡는 것도 쉽지 않아서 아시아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무려 7장이나 구해왔지. 무려 차르가 진상 받은 녀석으로 말이다. 그 중 1장 정도는 애니 이모에게 선물 할 수도 있다.
“나중에 물건 내리면 그때 보여드릴게요. 정말 좋은 녀석으로 구해왔어요. 무두질도 잘 되어 있어요.”
“이야. 말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넘치네. 알았어. 기대할게. 아. 그건 그렇고 빨리 집으로 가자. 나사우 호에서 물건 내리고 입항 수속 밟는 건 너 없어도 되지?”
“저 없어도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선주이자 선장으로서 첫 항해니까. 선원들에게 잘 해줬다고 연설도 좀 해야 하고 물건을 내리는 것까지 지켜본 다음에 선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으로 내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어? 뭐니뭐니해도 돈 주는 것만큼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은 없으니까.
“그럼. 가자. 아버지께서 너 엄청 기다리고 계셔.”
“어? 사부님이 여기 와 계세요?”
“응. 얼마 전에 돌아오셨어.”
사부님이라면 새롭게 남부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임명된 파르마 공작을 막기 위해 출정한 빌럼을 따라 남부 전선에 나가 있었는데. 전선을 비우고 돌아오시다니. 그쪽 전장이 좀 소강상태인 모양이지?
“그냥 나오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시더라고. 체면만 아니었으면 우리보다 먼저 달려오셨을 걸. 지금쯤 너 언제 오나...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계실 테니까. 빨리 가자.”
“하하. 사부님이 설마 그러겠어요.”
“아냐. 애니 말이 맞아. 장인어른 얼굴에서 초조함이 엿보였다니까. 나가볼까 말까를 엄청 고민하시는 것 같더라고.”
야콥까지 애니 이모를 지원하고 나선다. 사부님이 그런 것을 겉으로 드러낼 사람이 아닌데 이 부부사기단이 엄청 과장을 하는구나.
“그러면 빨리 가야죠. 하벨!”
아직 나사우 호는 완벽하게 정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하벨은 아직 배위에 있었고 나는 큰목소리로 하벨을 불렀다.
“네! 상단주님!”
하벨이 목청껏 소리쳐서 대답한다.
“나는 루이웨 상단에 가볼 테니 네가 알아서 상품을 하역하도록!”
“우리 상단에서도 일꾼을 지원해줄게.”
애니 이모가 말했다. 지원해주면 고맙지. 항만 일꾼을 인건비를 아낄 수 있으니까.
“네. 그리고 루이웨 상단에서 일꾼을 지원해준다니 기다렸다가 같이 해라! 모자라면 재량껏 추가로 일꾼을 고용하고!”
“네! 알겠습니다!”
“상품은 전부 루이웨 상관으로 보내고 일이 끝나면 선원들에게 급여와 상여금 1,000오션을 지급하고 보름간 휴가를 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하벨의 대답 외에도 선원들이 환성소리가 들려왔다. 급여와 상여금을 지급하라는 말을 듣고 저러는 것이겠지. 두 달간 배를 타면서 쌓인 급여는 제법 목돈이다. 거기에 상여금 1,000오션까지 준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토마스는 하벨과 플로라를 호위해서 일 끝나면 같이 와.”
토마스는 여전히 배 위에 있었다. 이놈은 노예주제에 주인인 나보다도 더 품위를 지키는 녀석인지라 배에서 뛰어내리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하벨에게 말 할 때는 크게 소리쳤지만 토마스에게는 그럴 필요 없다.
토마스의 유물은 토마스에게 발달된 후각과 청각을 더해주었으니까. 작게 말해도 전부 들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이것 봐라. 작게 지시했는데도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가.
***
“사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모스크바 공국에 갔었다고 들었다. 거긴 괜찮더냐.”
“복잡하더군요. 최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이 모스크바 공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습니다. 그래서 탈린에 외국의 배가 들어오지 않은지 반년이 넘었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식량 사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면 청어 비싸게 팔 수 있겠네?”
이게 상인의 반응이다. 애니 이모는 역시 천생 상인이구나.
“그러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당분간 발트해에서 활동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나면 위험할 듯싶은데.”
“설마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겠습니까. 스웨덴, 덴마크와는 동맹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요. 그리고 모스크바 공국은 식량을 가져다주니 반기는 눈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사부님께선 이곳에 와 계셔도 되는 것입니까.”
사부님은 네덜란드 3대 강자 중 하나다. 엄청난 전력이라는 뜻이다. 그런 전력이 전장에서 빠져도 되는 건가.
“괜찮다. 당분간 전쟁은 없을 것이야.”
“네? 파르마 공작이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금방이라도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파르마 공작은 많은 전공을 세운 에스파냐의 명장이다. 그런 자를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임명한 것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당분간 전쟁이 없을 거라니.
“파르마 공작이니까. 그라면 괜찮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그런가 물어볼까 싶은데 그럴 필요없이 바로 사부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명장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냈고 그가 지휘한 전쟁 중 대부분을 승리로 장식했지. 업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좋을 그런 대단한 자다. 적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싸우게 된다면 우리도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 거야.”
파르마는 우리 네덜란드를 몇 년간 괴롭혔던 강철대공 알바와 맞먹는 명성을 가진 사령관이니까. 무서운 상대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살피고 따져보고 또 따져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움직이지. 그런 성격을 가진 덕분에 지금의 명성을 쌓았지만 그 신중함 덕분에 당분간 전쟁이 없을 거다. 그도 우리를 상대로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위트레흐트 동맹을 통해 이룬 군사력은 네덜란드 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기회를 기다리겠지 병력이 더 충원되거나 우리 네덜란드에 뭔가 변고가 생기거나 하는 기회를. 그 증거로 그가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작은 국지전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가? 신기하다. 나는 당장이라도 큰 전쟁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여하튼 사부님의 말대로 흘러간다면 다행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래도 상인으로서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없지. 잘하면 배도 징발되어서 군사물자를 수송해야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사로서 전장에 나서도록 강요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제법 강하니까.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만 내가 무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은 어디까지나 상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전장에 나서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는다. 사부님처럼 네덜란드 3대강자라는 명성을 얻는 것보다 네덜란드 3대 상인이라 불리는 것을 더 바라는 것이 바로 나다.
무명을 알리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던 사부님 밑에 나 같은 제자라니. 우리 사제도 참 희한한 조합이다.
“그래. 카카오차 한잔 하겠느냐.”
“당연하죠.”
내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사부님이 카카오차를 권한다. 당연히 마시지. 내가 카카오차를 거절할리 있겠는가. 잘 마시겠습니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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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순위가......
왜 저러죠.
이제 하루면 마감인데 4번째에 있다니. 무조건 10위 밖으로 밀려날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1일 2연재 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ps. 오늘 놋북이 죽었습니다.
..... 크흑. 수리 보냈는데 며칠 있어야 한다는군요.
내일부터는 도서관 가서 써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