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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물론. 밑바닥부터 배우라는 것은 아니야. 자네는 초인이고 실력도 증명 됐으니... 배의 호위장정도의 직책을 가지면 될 것 같은데.”
“아.. 그게...”
“좀 놀란 모양이군. 말을 못 잇는 것을 보면”
당연히 놀라지. 안 놀랄 수가 있겠습니까. 갑자기 자기 배에 타는 게 어떤지 묻다니.
“왜 그리 놀라나. 내가 보기엔 각하께서 아주 좋은 제안을 하신 것 같은데. 내가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뱃사람이 되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배워가야 한다고 들었네. 제대로 된 항해사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일해야 한다고 하더군. 물론 보통 상인들은 배와 함께 선장, 항해사 등도 전부 고용하기에 일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자네 꿈은 직접 배의 선장이 되는 것이라 들었는데 아닌가?”
디르크의 말. 그가 맞다. 보통 배를 소유한 상인이 직접 배를 몰고 다니는 일은 없다. 선원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배를 몰게 시키고 자신은 그냥 타고 움직이기만 하지. 그것도 근해를 돌아다니는 배에나 상인이 직접 타고 다니지 원양으로 나가는 배는 상인이 타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양항해를 나서면 길게는 몇 년 동안 배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돈 많은 상인들이 그런 고난을 겪고 싶어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배 위의 생활은 아무래도 땅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 테니 말이다. 거기에 위험하기까지 하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내가 직접 배를 몰고 다니며 세계를 누비고 싶다. 과거 인디아스 대륙을 발견했던 크리스토포로 콜론이나 인도항로를 개척했던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 직접 인도와 향신료 제도를 눈에 담고 싶으며 세상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원제국도 가보고 싶다.
물론 이것들은 2차 목표고 1차 목표는 세계 제일의 대상인이 되는 거지. 네덜란드에 가만 앉아서 선장들이 돈 벌어오길 기다려서 언제 대상인이 되겠는가. 직접 다니면서 상로를 개척하고 연구해야 대상인이 될 수 있는 거다.
“흠... 내 배의 선장이 평민이던가?”
“종자입니다. 2척의 배 모두 선장으로 임명되면서 종자로 임명하셨습니다.”
“내 종자? 내 종자는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에 선장인 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물론 각하의 종자는 아닙니다. 아드님이신 필립스님의 종자로 임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여하튼 선장도 종자, 아론 자네도 종자의 신분이니 밀리지 않겠지. 그리고 호위장으로 참가하는 것이니 딱히 선장의 명령을 들을 것도 없어. 오히려 전투가 일어나면 자네가 선장에게 명령을 내리면 돼. 전투 시에는 호위장이 더 높은 계급이 되니까. 물론 급여도 지급해주겠네.”
“으음...”
“뭘 망설이는가. 아론. 공작각하께서 자네를 위해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인데. 어서 승낙하게.”
좋다. 정말 좋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하더라도 이렇게 급하게 찾아오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내 편력상인으로서의 일은? 이번에 새로 받아들인 상단의 일꾼들과 플로라는?
그리고 호위장이 된다면 당분간은 상인이라는 직업에서 멀어져야 할 것 아닌가. 상인이 아닌 나라니. 태어나 기억나는 한도에서 내가 원하는 직업이 상인이 아니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좋은 기회임에도 망설이게 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게. 이 제안은 유효기간이 없으니 말이야.”
“아닙니다. 결정했습니다.”
망설였지만..... 잡는다. 찾아온 기회를 잡는다. 잠깐 상인이 아니어도 된다. 배에 대해 배우고 항구를 돌아다니며 상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할 거다. 그래. 상인이 아닌 게 아니라 잠깐 직업을 예비 상인 정도로 바꾸는 거다. 더 큰 상인이 위해 배우고 준비하는 예비 상인.
분명 이것은 좋은 기회. 놓쳐선 안 된다.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고 하지만 상대는 침묵공 빌럼이다. 내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대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 반드시 다시 온다고 확신할 수 없는 기회니 말이다.
“하겠습니다.”
“오. 결정했는가. 잘 생각했네.”
“잘 생각했네. 아론.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야.”
빌럼과 디르크가 한마디씩 했다. 나는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사부님도 별말 하지 않고 계셨지만 찬성하고 있으셨던 거다. 사부님의 끄덕임을 보니 제대로 선택했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
그나저나 드디어... 드디어 배를 타게 되는구나. 막상 결정을 하고나니 기대된다. 어떤 배일까. 빌럼가의 재력 정도면 역시 갤리온일까? 2천만 오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사람인데 적어도 갤리온 정도는 타야하지 않겠어? 빨리 보고 싶다. 아마 암스테르담에 있겠지? 빌럼가에서 중점적으로 개발하는 항구이니 말이야.
“언제까지 준비할 수 있겠나.”
빌럼이 묻는다. 준비 되는 데로 태워주겠다는 거겠지.
“언제든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구지와 일꾼들은 루이웨 상단에 맡기면 되니까요.”
“그러면 되겠군. 디르크. 지금 내 배가 어디에 있지?”
“잘 모르겠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만한 녀석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디르크가 선박 일정을 알아보겠다며 마차 밖으로 나갔다. 저런 잔심부름 같은 일은 내가 해야 하겠지만 난 ‘알만한 녀석’이 누군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애니 이모가 좋아하겠다. 달구지가 부족하다고 말이 많았는데 달구지가 다섯 개나 추가 될 테니 말이야. 아니. 루이웨 상단에 주지 말고 에흐몬트에 가져가서 어머니께 드릴까? 달구지가 많으면 소작농들이 좋아할 텐데 말이야. 부족한 달구지 서로 쓰겠다고 난리던데.
그래. 바로 배에 타야 하면 루이웨 상단에 넘기고, 시간이 꽤 남아 있다면 에흐몬트의 집에 갔다 오는 거로 하자.
디르크가 돌아왔다. 마차 안 모두의 시선이 디르크에게 집중됐다.
“얼마 전 출항해서 가장 빨리 돌아오는 배도 한 달은 있어야 한다는군요.”
“그렇군. 아론.”
“네. 공작각하.”
“어차피 둘 다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 담당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고 탈 배를 고르도록 하게. 자네가 원하는 배 어디에든 탈 수 있도록 조치해줄 테니.”
“감사합니다. 공작각하. 너무도 많은 것을 베풀어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꿈을 이루게. 대상인. 세계 제일의 선단을 가진 대상인. 네덜란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주게. 그러면 되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디르크. 자네가 아론을 좀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각하.”
***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후 빌럼들과 헤어져 에흐몬트로 돌아왔다.
상단 일꾼들은 얼마 일하지 않았지만 함께 위험한 일을 겪었고 그 일을 통해 빌럼에게서 2,300만 오션이라는 거금을 얻었기에 4천 오션짜리 금화 하나씩을 상여금으로 지급하고 루이웨 상단에 소개해주었다.
상단 일꾼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온 자들이다. 즉, 집으로 돌려보내봤자 할 일이 없다는 뜻. 내가 책임지겠다고 데려온 이상 일을 소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도 루이웨 상단에서 받아주었다. 그곳은 계속해서 확장하는 중이니까 일꾼의 수를 계속해서 늘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도 5명을 소개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말이야.
물론 그들을 루이웨 상단에 집어넣기 위해 달구지도 함께 넘겨야 했다. 제값은 받았지만 어머니께 드릴 선물이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어머니께 배에 타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다.
“위험하지 않겠느냐. 에스파냐의 해군은 무적함대라 불린다고 들었는데.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이거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내가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그것이 위험한지 아닌 지부터 물으시게 되었다. 아마 알크마르 공성전 이후부터 인 것 같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스파냐의 해군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 해군의 대부분이 지중해의 패권을 위해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는 것과 인디아스 대륙, 향신료 제도 등에서 이루어지는 포르투갈과 벌이는 신경전 때문에 북해에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별 이익도 없고 영국과 프랑크가 장악하고 있는 영국 남부 해협을 지나 이곳까지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제가 탈 배의 주 무대는 발트해니까요. 에스파냐 함대를 만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지중해 쪽으로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에스파냐도 북해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수송선 등은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군함은 다른 곳에 신경 쓰느라 북해까지 신경 쓰지는 못한다. 그리고 군함이 올라온다 해도 영국과 프랑크의 견제에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거다.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그 유명한 ‘무적함대’를 이끌고 와야겠지.
“1년이라고 하였느냐.”
“네. 우선 1년간 배를 타며 항해술을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1년 뒤에도 배움이 부족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고 빌럼공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빌럼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1년간 빌럼의 배인 ‘나사우’호에 호위장으로서 탑승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나사우호는 내 기대와는 달리 갤리온이 아닌 카락이었다. 무려 빌럼이니 무조건 갤리온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두 척의 배 모두 카락이기에 좀 더 큰 배에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말 고마운 분이시다. 너는 그분께서 보여준 호의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항상 어디를 가든지 빌럼공의 종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한동안 종자로서 품위를 지키라는 내용의 설교가 이어졌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종자가 되었음을 어머니한테 알리는 것이었다. 처음 종자가 되었음을 말씀드렸을 때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에 한참동안 지금과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하셨지만 말이야. 크게 티는 내시지 않지만 내가 빌럼의 종자가 된 것이 기쁘신 모양이었다. 아마도 나사우호가 도착하기 전까지 비슷한 설교를 열 번도 더 들을 것 같다.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 꽤 큰 규모의 파티를 준비하고 계실 정도다. 그 때문에 하인과 하녀들이 시내 오븐에서 빵도 굽고, 와인과 치즈, 소와 양고기 등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셨기에 집에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난 지금에서야 배를 타게 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느냐.”
“1년간 사용할 옷이 필요합니다.”
집안사람들이 입을 옷을 준비하는 것은 원래 여자의 몫이다. 그렇기에 내 옷도 어머니가 준비해주고 있다.
“준비하마. 기한은 얼마나 있느냐.”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습니다. 천천히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알겠다.”
한 달 후면 배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올 예정이긴 하지만 돌아온 이후에 암스테르담에 머물면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출항하지는 않는다. 대략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암스테르담에 머물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은 꽤 여유 있었다.
“그리고 플로라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여자는 배에 탈 수가 없으니 그래야겠지.”
플로라는 배에 탈 수 없다. 여자가 타는 것을 불길하다 여기는 선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배라면 어떻게든 태울 수 있겠지만 내 배가 아니니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
“어떻게 대하면 되겠느냐. 노예에서 면천 해주었느냐.”
“아직 노예의 신분입니다.”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려고 해도 플로라가 아직 해낸 일이 없었다. 초인으로서 힘을 능숙하게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노예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결국 면천해줄 것이니 음.... 대충 미래에 제가 꾸릴 상단의 간부가 될 아이라고 생각하며 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과 셈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원래 토마스가 가르쳐 주고 있었지만 이번에 저와 함께 가게 되어서요.”
“알겠다. 교육은 내가 담당하도록 하마.”
어머니라면 믿을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편력상인 일을 위해 바깥에 계실 때 날 교육하신 것은 어머니셨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
“이게 무엇이냐.”
어머니에게 넘긴 것은 2,000만 오션의 돈이 담긴 상자였다. 이번 일을 통해 내 전 재산은 2,550만 오션이 되었다. 그 중에서 550만 오션 정도만 내가 휴대하고 나머지를 어머니께 드리기로 했다. 호위장으로 있으면서 특별히 돈을 쓸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2,550만 오션이라는 돈은 전부 금화로 들고 다닌다 해도 부피가 너무 크단 말이야. 550만도 좀 크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지.
돈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얼마인지, 어떻게 얻은 돈인지 등에 대해 말이다.
“빌럼 공작님의 은혜는 정말 끝이 없구나. 너는 반드시 보답해드려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돈은 네가 돌아와 필요해질 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으마.”
“사용 하셔도 됩니다. 밭을 더 구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알겠다. 생각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조금은 쓰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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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네요.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일교차 심하면 감기 걸리기 쉽다는데 조심들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