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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아티팩트 에이지-43화 (4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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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력상인

근데 왜 여기에 와인이 있는 거야? 그것도 창고 하나를 거의 꽉 채울 만큼 말이야.

“여기 곡물상 아니었어요?”

“뭐. 최근 뒷배가 좀 생겨서 말이야. 홀란트 지역의 곡물들이 우리 곡물상을 거쳐 가기 시작했거든. 아무리 우리나라가 농업이 약하다고는 해도 한 지역의 곡물을 반 이상 취급하면 그 이익이 상당해.”

홀란트.... 홀란트라면 빌럼이 총독으로서 다스리는 지역이다. 완전히 자신의 영지로서 다스리는 것은 아니다. 홀란트는 네덜란드 서부의 거대한 주(州). 그 안에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적어도 수십은 있을 것이다. 빌럼은 다만 그들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가진 권력은 막강해서 ‘곡물은 루이웨 상단을 거쳐서 유통해라.’라는 말 정도만 해도 대부분은 따르겠지.

사부님이 빌럼에게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구나. 이런 혜택까지 주고 말이야.

참고로 빌럼의 영지는 이곳 위트레흐트다. 그의 성도 위트레흐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웅장하게 지어져 있다.

“돈 좀 벌었겠네요.”

“응. 요즘은 가만 앉아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 같아. 딱히 곡물 좀 팔아달라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알아서 팔러 오더라고. 잘난 아버지를 둔 덕택이랄까.”

역시 세상은 인맥이다. 아는 사람이 잘나가는 사람이라면 원래 들일 노력의 반만 들여도 몇 배는 더 성공하는 법이다.

“그래서 요즘 우리 그이랑 다른 사업도 진출할까 해서 논의 하고 있거든. 이 와인들이 그 논의의 결과지. 한번 해보고 괜찮으면 사업을 확장해보려고.”

‘우리 그이’는 현재 루이웨 곡물상단의 2대 상단주를 맡고 있는 애니이모의 남편 야콥 판 베스트로프를 말한다. 난 야콥 이모부라고 부르는데. 무술은 익히지 않았지만 상단일에는 제법 유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한번 해보는 정도의 양입니까. 창고 하나에 와인이 가득 차 있는데? 돈 좀 벌었나 봅니다. 애니 이모.

그나저나... 주류 거래 허가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으음... 아니다. 애니이모는 쉽게 얻겠네. 무려 빌럼 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곡물을 밀어주는 수고를 하고 있는데 주류 거래 허가증 하나 안 주려고.

나 같이 뒷배 없는 평민은 주류 거래 허가증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 적어도 몇 년은 가장 밑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인맥을 다져가다가 길드나 한 영지의 상급 간부 정도 되는 사람과 인연을 맺은 다음 몇 십만 오션 정도는 가져다 줘야 겨우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몇 백만 오션을 부어야 할지도.

“하지만 아무리 뒷배가 든든해도 주류사업은 뛰어들기 힘들 텐데요.”

아무리 빌럼이라는 뒷배가 있어도 힘들다. 주류사업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상계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들이고 그들 대부분은 제법 힘 있는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빌럼이 네덜란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아니. 할 수는 있어도 사부님이 직접 요청하거나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사부님의 딸인 애니 이모가 사업 확장한다고 멋대로 하는 일을 도와주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힘들지. 네덜란드에서라면 말이야.”

여기 네덜란드거든요.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은 왜 하는 거야? 아. 설마.

“네덜란드에 유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는 그냥 임시로 보관하는 지역이고 해외로 운송하려는 것이군요.”

“응. 정답. 우리 아론 3년 동안 공부 많이 했나봐. 척하면 척이네.”

“혹시 배까지 운용하시려는 거예요?”

보르도산 와인을 네덜란드를 거쳐 팔수 있는 지역은 북해다. 하지만 북해는 치안이 좋지 않고 육로로 가기엔 너무 힘든 곳. 대부분의 거래는 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배를 통해 보르도산 와인을 거래한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다. 보르도 자체가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배가 있다면 그냥 보르도까지 가서 사오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애니이모가 배를 직접 운용할 생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네덜란드 사람이 직접 배를 이용해 보르도까지 갔다간 에스파냐 해군을 만날 위험이 있으니까 그냥 육로로 네덜란드에 들여온 다음 항구에서 배에 태워 보내는 것이 안전하다.

그런 방식이라면 굳이 네덜란드까지 와인을 들여온 다음 해외로 보내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아니. 배는 아무래도 힘들어. 배를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배를 몰 사람이 없어. 요즘 대항해시대다 뭐다 해서 너도나도 바다로 뛰어드는 바람에 바닷사람이 부족하거든. 뭐. 일반 선원이야 대충 구한다고 해도 배를 몰 선장이나 항해사 등 고급인력이 부족해. 그러니 우리는 항구까지만 운반하는 거지.”

“항구요? 그건 좀...”

아까도 말했다시피 보르도는 항구도시다. 보르도산 와인을 살 거라면 보르도까지 배타고 가서 사면된다. 뭐 하러 네덜란드 항구도시에서 사겠는가. 육로로 들여왔으니 보르도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가격도 비쌀 것이고 가짜일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다.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 하지만 우리 거래상대는 북해가 아니라 영국이야.”

“영국이요?”

“그래. 영국. 프랑크랑 사이도 무지 안 좋아서 맨날 전쟁만 해대는 놈들이 와인은 또 미친 듯이 좋아하잖니.”

“그럼 더 무리 아닌가요? 영국은 보르도에서 와인을 가져오는 정기항로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정기항로라고 해서 별거 없다. 그냥 항상 같은 길로 똑같은 배가 다니면 정기항로다. 하도 프랑크산 와인을 많이 수입하다보니 영국에는 프랑크산 와인만을 계속해서 나르는 배가 있을 정도다.

자칭 신사라는 놈들이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실제로 보면 신사 아닌 거 아냐?

“맞아. 원래라면 우리가 영국과 와인 무역을 하는 것은 무리지. 하지만 반년 전에 아버지를 통해서 정보를 하나 얻었어. 바로 프랑크가 영국과의 교역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정보.”

“에에. 그거 진짜에요? 프랑크가 왜 영국과의 교역을 끊어요? 100년 전쟁을 하면서도 와인 교역은 끊어진 적이 없었는데.”

정말이다. 100년간이나 이어진 ‘영국 vs 프랑크’의 전쟁 도중에도 와인 교역은 끊어진 적이 없다. 영국인들이 와인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프랑크도 와인은 전쟁물자도 아니고 돈 주고 사가겠다는데 딱히 막을 필요가 없었고 말이다.

“6년 전에 에스파냐랑 포르투갈이 너무 치고나가니까 견제하자는 의미에서 앙리 3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결혼이 추진되다가 무산된 일이 있었잖아. 근데 2년 전에 왕위에 오른 앙리 3세가 이번엔 자기 동생과 엘리자베스 1세와의 결혼을 추진했거든. 근데 거절당했어. 그래서 열 받은 거지. 교역을 금지하겠다는 이야기는 몇 달 전부터 나왔고 2달 전에 실제로 왕명으로 교역 금지 명령이 내려졌어.”

“진짜에요?”

진짜면 엄청난 정보다.

“당연히 진짜지. 아직 얼마 안 돼서 퍼지지 않았지만 곧 유럽 전역에 알려질 걸. 영국 상인들이 와인 구하려고 여기저기 다 쑤시고 돌아다니고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그로닝겐까지만 와인을 운송하면 영국애들이 알아서 찾아와 사갈 거라는 이야기지.”

애니 이모가 말은 쉽게 하지만 정말 와인을 가지고 가서 가만 있는다고 해서 영국 상인이 찾아와서 사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도 해야겠지. 어쩌면 그로닝겐에 영국 상인이 와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와인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내더라도 몇 달이 지나야 영국 상인들이 찾아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느리고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데까지는 더욱 느리니 말이다.

그러니 애니 이모의 말대로 영국 상인이 찾아와 사가는 일은 정말 운이 좋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럼 이미 와인을 팔아보셨나요?”

그게 중요하지.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실제로 해봐야 증명이 되는 거다.

내가 해봤냐고 질문하자 애니 이모의 표정이 난처하게 변한다.

“아니. 말했다시피 최근 우리 상단으로 엄청난 양의 곡물이 밀려오고 있어서 말이야. 그거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그냥 몸으로 때우는 일꾼이야 도시에 넘쳐나니까 충분히 고용했지만 셈과 거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좀 힘드네. 인맥도 총 동원하고 조합에 구인 의뢰도 넣어놨지만 간간히 구하는 사람들은 곡물 거래하는 데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야.”

“그래서 저한테 와인을 보여 주셨군요.”

이 아줌마가 선심 쓰는 것처럼 여기로 끌고 오더니 다 속셈이 있었군.

“에이. 오해하지 마. 사실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맞지만 우리 조카 아니었으면 정보까지 줘가며 물건 맡기진 않았을 거야. 차라리 썩게 놔두면 놔뒀지.”

확실히 그렇긴 하다. 그만큼 애니 이모가 말해준 정보는 대단한 정보였으니까. 와인뿐만 아니라 그 외의 많은 품목에서 새로운 루트가 생기는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거래되던 품목이 와인 하나만 있었겠는가. 그러니 중간에 낀 우리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중계해주면 제법 짭짤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거 애니 이모한테까지 전해졌을 정도면 좀 규모가 있는 자들은 다 알고 있는 거 아녜요?”

“알고는 있겠지만 이제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겠지. 말했다시피 우리는 실제로 왕명이 내려오기 전에 미리 알고 있었거든. 빌럼님이 프랑크에 연줄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러니 우리처럼 미리 알고 있었던 자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특히 우리 네덜란드에서는 말이야.”

그렇겠네. 그렇다면 정말로 이건 좋은 정보다. 이 와인을 그로닝겐으로 옮겨서 영국 상인을 찾아도 되고, 영국 상인이 없으면 영국으로 가는 다른 상인에게 넘기거나 배를 빌려서 내가 직접 영국으로 가도 된다. 정보가 진짜라면 배를 빌려도 남는 장사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난 할 수 없다.

“아쉽네요. 주류 거래 허가증만 있었어도 해봤을 텐데.”

방법이 있긴 하다. 내가 루이웨 상단 휘하의 새끼 상인이 되면 된다. 그러면 루이웨 상단 앞으로 나온 주류 거래 허가증을 쓸 수 있게 된다. 애니 이모도 그걸 상정하고 나에게 와인 거래를 권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게 되는 거잖아. 아버지도 자신의 상단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물려받으라는 사부님의 말을 거역하고 자신만의 상단을 만드셨다.

그런데 내가 남의 밑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훗. 자. 이거 받아.”

‘날 우러러 보거라.’라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뭔가를 품속에서 꺼내서 준다. 근데 왜 가슴 속에서 꺼내십니까. 그쪽에 주머니라도 하나 있는 건가.

뭔가 서류 같은데.

“이게 뭐에요?”

“읽어봐.”

정확하게 세로로 2번 접혀 있어 내용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 읽어봐도 되는 건가. 서류를 펼쳐서 가장 위에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았다.

“교역 허가증?”

대충 내용은 빌럼의 이름으로 거래 품목의 제한 없이 교역을 할 수 있게 하락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대단한데. 이거. 설마 전품목 허가증 같은 게 있을 줄이야.

한마디로 이게 있으면 빌럼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서는 어떤 물건이든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다는 거다. 그 허가증 얻기 힘들다는 보석과 무기류, 직물도 말이다. 특히 직물은 길드가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감히 빌럼의 이름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빌럼의 지배를 받는 곳이라면 지역으로는 홀란트가 있고 도시로는 위트레흐트가 있다. 둘 다 네덜란드에서는 핵심 중에 핵심인 곳이다.

이야. 다시 생각해봐도 엄청난 허가증이다. 애니 이모는 이거 자랑하려고 한 건가. 그런데.....

“교부 대상. 아론 렐리?!”

“헤헷.”

진짜 깜짝 놀랐다. 여전히 아까 지은 ‘날 우러러 보거라.’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있는 애니 이모를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냐는 무언의 질문이지.

“출발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허락받으려고 편지를 보냈다며. 아버지가 드디어 아론이 세상에 나왔다면서 축하 선물이라고 보내신 거야. 너 오기 며칠 전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허가증이야. 하여튼 아버지는... 친딸은 주류 허가증 하나 만들어줬으면서 제자는 전 품목 허가증을 만들어주다니 완전 편애하신다니까.”

“아.. 사부님....”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부님은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베푸시기만 하는구나. 내가 해드린 것은 하나도 없건만. 언제나 보고 싶은 사부님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사부님이 보고 싶어졌다.

“사부님은 어디계세요? 당장 찾아뵈어야겠어요.”

“지금 빌럼공과 함께 프랑크에 가 계셔. 그렇지 않았다면 널 만나러 이곳에 오셨겠지.”

“프랑크....”

좀 멀긴 하지만 가지 못할 곳은 아니다.

“됐어. 갈 생각하지 마. 가봤자 만나기 힘들 거야. 이미 돌아오고 계실 테니까. 괜히 찾아갔다가 길 엇갈리지 말고 와인 싣고 그로닝겐 갔다 와. 그러면 아버지도 돌아와 계실 테니까.”

“그런가요.”

애니 이모의 말이 맞다. 사부님은 공작 신분인 빌럼과 함께 여정 길에 올랐다. 만나는 사람도 분명 평범하지 않을 터. 그런 곳에 평민인 내가 가봐야 만나 뵙기 힘들 것이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들은 말들을 종합해보면 애니 이모는 프랑크에서 와인을 들여오는 것까지 할 테니 와인을 가져다가 파는 건 제가 하라는 거죠?”

“응. 그렇지.”

“그럼 동업인가요. 아니면 사업인가요.”

동업이면 계약을 맺고 와인을 팔고 남은 이익에서 각자의 지분에 따라 나눠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업은 내가 애니 이모에게 와인을 사서 내 개인적으로 가져다가 파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업. 아무리 네가 조카라지만 능력이 검증 안 된 녀석이랑 동업을 맺을 순 없잖니.”

맞는 말이다. 동업을 맺는다는 것은 내가 물건을 잘못 팔아서 손해를 봐도 그 손해를 함께 갚아야 하는 계약이다. 그러니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과 동업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거래 시작이다.

“1배럴당 얼마입니까.”

============================ 작품 후기 ============================

귀농하고 싶네요.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가서 경치 좋은 곳에서 작은 텃밭이나 가꾸면서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여유있게 글 쓰고 싶어요.

하지만 귀농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거라...

능력없는 저는 어쩔 수 없이 글로 귀농했습니다.

마음을 치유하고자 제 맘대로 막 농사짓는 소설을 써봤는데

괴랄하게 나왔네요.

이게 과연 소설인가....하고 의심이 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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